[뫼루니통신 3-3/190128]사모곡-엄마의 18번
어머니는 원래부터 수다스런 분이 아니었다. 나는 크면서, 成人이 되어서도 그것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아무런 內功도 없이 수다스런 분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이 있다. 사실은 우리 또래의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다. 들어보면 귀를 씻고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그럴 듯하게 지껄이는 친구들도 많다. 거기에 비하면 ‘말수가 적고’ 어지간하면 다른 사람의 ‘흉’을 먼저 보지 않는 우리 어머니는 ‘兩班’이었다.
어머니도 구십 평생을 사시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일례로 27세에 청상과부가 되신 할머니와 40년을 함께 살았으니, 오죽 그런 일이 많았을 것인가. 아버지가 결코 ‘베갯잇송사(訟事)’로 막아줄 분도 아니고, 어머니가 그런 ‘송사’를 할 분도 아님에야. 잘 모르겠다. 여느 어머니들처럼 담배를 배워 즐기는 것도 아니고, 술은커녕 콜라조차 한 모금 마시는 것을 ‘대비상(큰일)’으로 아시는 분이기에 궁금증은 더하지만, 이제 돌아가시는 마당에 알 道理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아픈 追憶이 있다. 언젠가 “누가 그렇게 우리 애기한테 술을 멕이냐? 술이 얼마나 맛있는지 나도 한번 보자”며 洋酒를 스트레이트로 들이마시고 昏絶을 하신 적이 있다. 형들은 기겁을 하여 “엄마 어떻게 되면 愛酒家인 니 잘못이고 責任”이라며 나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지금 생각해도 낯이 불거지는 記憶이다.
또한 동네 여느 아주머니들처럼 ‘욕’을 잘 하시는 편이 아닌 것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전라도지역에서 자란 우리 어릴 적에는 욕이 日常事처럼 亂飛했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자기 자식들에게 거친 막말을 쏟아냈을까? 아마도 팍팍한 삶의 스트레스를 자식들에게 풀어내지 않았을까. “사지를 짝짝 찢어주길 놈” “오살헐 놈” “쳐죽일 놈” “호랭이가 달싹 물어갈 놈” 등은 예사였다. 그런 풍토에서도 어머니는 당신 자식들에게 그런 욕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 고작 한다는 게 “저 늑대, 어디에다 써먹을까?” “쇠틈배기(찍소처럼 말이 없다는 것을 뜻함)” “게을박씨. 상게을박씨” 등이 전부였다. 조금 더 화가 나시면 “쳐죽이네” 정도였다. 나는 늘 그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의 말투 중 유난히 자주 쓰는 말이 “참말로”였다. ‘참말로’의 의미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무척이나 다양했다.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가 서른 몇 가지로 ‘번역’된다고 했지만 ‘참말로’ 역시 거시기와 진배 없다하겠다. 어느 때에는 ‘와(wow)-’ 하는 감탄사로, 어느 때는 ‘그럴 리가 있냐(no)’는 부정어로, 어느 때는 ‘굿(good)'이라는 긍정어로, 어느 때에는 ’배드(bad)’로 쓰이는 판이니, 그 속내를 알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脈絡을 보고 그 뉘앙스를 잘 캐치(catch)해야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그것이 ‘참말로’ 新奇했다.
이 단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말투 18번’으로 ‘아이-갸이’가 있다. 이 단어는 표기하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두 음절로 쓰자면 ‘알-걀-’이 가장 맞춤일 것같지만, 실제 입으로 내뱉는 것과 비교하면 그 느낌이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이고, 그 말은 무슨 상황을 설명하는 것일까? 대부분 ‘그럴 수 없다’ ‘그러면 안된다’ ‘왜 그렇게 하냐’ ‘그것 참’이라는 뜻일 듯하다. 우리는 엄마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머시 ‘아이-가이’여? 진짠디이-. 요즘말로 리얼real이여”라고 반문하며 엄마의 말을 일축하곤 했다. 不孝다. 엄마의 깊은 뜻을 헤어리지 못하는. 형제자매끼리 어쩌다 모여 어느 주제를 화제삼아 얘기를 나누다, 어느 누가 “참말로?”라거나 “아이-갸이”하면 어머니를 떠올려 배꼽을 잡곤 하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의 말을 흉내내며 兄弟愛를 돈독히 하는 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어머니는 이런 것을 겨냥해 ‘18번’으로 두 단어를 곧잘 썼을까? 아지 못할 일이다.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처럼 술도, 노래도, 춤도 잘 추지 못했다. 유행가 한 자락도 제대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유머스럽지도 못했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프로 농사꾼’일 따름이었다. 오죽하면 신혼 3개월만에 새각시가 지게를 지고 동네 고샅을 나섰을 것인가. 시한(겨울)만 되면 하루빨리 봄이 되기를 一片丹 비는 분이었다. “일 허고자파 못 살 것다. 지질병나서 못살것네”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곰씹는 봄처녀, 봄아줌마, 봄할머니였다. 논두렁, 밭두렁을 헤치며 쑥을 한 바작 캐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우리 어머니. 이제 立春이 내일 모레이고 그 좋아하던 봄이 코앞이건만. 大寒 즈음에 영영 돌아오실 수 없는 길을 떠나셨다. 외할아버지는 딸이 일곱이었지만, 셋째딸인 우리 어머니에게만 유독 ‘들일’을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直觀으로 여러 狀況을 파악, 이 寸鐵殺人 두 단어를 적절히 씀으로써 座中을 압도하곤 했다. 나는 지금껏 숱한 어머니와 할머니들을 만나 비위를 맞추며 얘기해 봤지만, 우리 엄마처럼 '18번'을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쓰시는 분을 한분도 만나지 못했다. 기똥찬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우리 엄마 18번은 '참말로'와 '아이-가이'였다"고. 모름지기 이런 분들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어머니의 ‘18번’은 두고두고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는 유쾌한 화제의 소스(source)가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 어머니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南無觀世音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