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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대중교통을 고려해 '성삼재 → 노고단 고개 → 돼지령 → 피아골 삼거리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목통골 → 칠불사 → 범왕리 버스정류장'의 대략 15km, 8시간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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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般若峰]
높이: 1,732m
천왕봉, 노고단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주봉 중 하나로 꼽히는 반야봉(般若峰, 1,732m)은 서부 지리산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여기엔 천왕봉의 마고 할미 전설이 전한다. 지리산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 할미는 어느 날 지리산에서 불도(佛道)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 결혼했다. 세월이 흐른 뒤 이들 부부는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다. 그렇지만 반야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처와 딸들을 뒤로하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
마고 할미는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남편의 옷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을 전국 팔도로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때 갈기갈기 찢긴 옷은 바람에 날려서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고, 남편을 기다리던 마고 할미는 석상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그의 딸들은 전국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 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계곡에서 밀려오는 상승기류가 구름으로 변하면서 펼쳐진 반야봉 운해는 마치 수묵화처럼 아름답다.
또 반야봉에서 바라본 낙조는 ‘지리 십 경’의 하나로 꼽힌다. 서편 하늘을 물들이며 스러지는 붉은 태양은 마음의 찌든 때를 깨끗이 씻고,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 지리산 둘레 보고
아무리 산악회를 둘러봐도 11월 첫 주에 동참할 만한 산행이 보이지 않아, 지난 10월 9일 평창 거문산, 금당산[산행기]과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천산행을 진행할까 하다가, 2021년 들어 지리산을 거의 찾지 않은 걸 깨닫고 방향을 지리산으로 바꾸었다. 다른 해 같으면 적으면 다섯 번, 많으면 아홉 번 이상 오르는 게 지리산인데, 2021년 올해는 바케스 아니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묘향대, 이끼폭포 탐험[탐험기]이 유일한 지리산행이었다. 해서 이왕 대중교통으로 산을 다녀올 바에는 지난 8월 산행 계획을 세우고 그동안 천산행에 밀렸던 목통골을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해서 10월 13일 동서울에서 성삼재로 유일하게 하루에 한 대 출발하는 23시 정각 버스를 예매했다. 지금은 그 한 대가 승객으로 꽉 차자, 정규 시각 5분 전 출발로 한 대가 추가되었고, 다시 그 차의 5분 전 출발 한 대가 추가 되면서 총 3대가 성삼재로 출발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버스 추가라는 건 상상을 못 해 높은 경쟁력을 뚫고 자리 하나라도 차지 하기 위해 예매 시작 시각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나, 그 습관은 남아 있어, 이번에도 거의 한 달 전에 예매했다.
배차된 버스 3대의 예매 현황은, 첫차가 제일 혼잡스럽고 다음이 마지막 차, 가운데 버스가 28석 중 14석이 비어 제일 한가했다. 첫차가 만석이라 두 번째 차를 배차했으니, 승객이 제일 많은 거야 당연했고, 두 번째가 아니라, 마지막 차가 다음으로 많은 이유는 종주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로 인해 대피소가 개점 휴업인 상태에서 종주하려면, 한 번에 끝까지 가든가, 아니면, 비박이라는 불법적 수단을 써야 하는데, 그 짐이 만만치 않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비박을 할 생각이라면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다. 반면 당일 끝까지 달리는 종주꾼이라면, 가능한 이른 시간에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게 그만큼 여유가 있어, 마지막 차에 몰린 거란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 봐야 10분 빠르지만. 사실 그런 사정이야 나와는 상관이 없으나, 궁금해서 나름 분석해봤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편히 성삼재까지 가야 한다는 거고 그럼 차를 바꿔야 했다. 해서 바로 1호 차의 단독 석에서 2호 차의 두 자리가 붙은 좌석으로 변경했다. 당연히 옆자리가 빈!
무박 산행을 싫어하는 이유 중 첫째는 자야 할 시간에 달리는 버스에서 시달린다는 거. 그나마도 시간이 짧다(긴 게 지리산의 4시간 정도다). 깊은 잠으로 피로를 푸는 게 아니라, 버스에 시달리느라 오히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아직도 깜깜한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는 거라, 보통 체력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다. 둘째는 보통 아침과 점심 두 끼를 준비해야 해서 배낭이 그만큼 더 무겁다는 거. 물론 종주를 한다면, 세 끼에 간식도 챙겨야 해서 더 무겁고. 고로 잠을 제대로 못 자 피곤한 상태에서 배낭까지 다른 산행에 비해 무거우니, 소위 꾼들은 먹는 걸 최소화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까지 산에 다닐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해서 무박 화대(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종주, 꿈은 꾸나 감히 시도를 못 하고 있다. 아니, 무박 성중(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종주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와중에 백두대간 연결 산행 중인 흥수가 같은 날 산악회를 이용해 대간의 끝인 지리산 화대, 성중, 또는 화중 종주에 도전한다. 대단한 친구다!
어쨌든 목통골은 화개재에서 하산하는 거라 성삼재 기준 거리상으로 얼마되지 않으나, 아침, 점심 두 끼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뭘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한 끼는 늘 산에 가지고 다니는 영양 간편식으로, 다른 한 끼는 떡국을 끓일 생각으로 2주 전에 마트에서 사골곰탕과 떡국을 사다 놓았다. 그런데 산행 일이 가까워질수록 떡국은 조리 과정도 복잡할뿐더러,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아, 꼭 떡국이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출발 아침에 떡국에서 라면으로 바꿨다. 그리고 애초 계획에는 없었는데, 오랜만의 지리산행인데 길목에 있는 반야봉에 들르지 않으면, 그동안 산행을 보살펴 준 마고와 반야를 무시하는 처사라, 들르기로 했다. 그럼 카메라는 무겁고 큰 걸 가져가야 하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일단 카메라는 집을 나설 때 결정하기로 했으나, 산행 당일인 11월 6일 토요일 산악날씨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기온은 낮고 종일 흐리다는 예보다. 그렇다면 당연히 작고 가벼운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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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 성삼재로 향하는 날, 안내산악회와 같이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했던 흥수에게서 몇 시 차로 성삼재로 가는지 묻는 텔이 왔다. 해서 10시 55분 차라고 알려주자 본인은 10시 50분 차라고 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 물어보니, 애초 3대의 버스가 준비 중이었으나, 취소자가 속출해 2대만 출발하기로 하고, 나머지 승객은 짤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안내산악회도 그렇지만, 성삼재행 시외버스 또한 초기에는 3대도 부족할 정도였으나, 막상 출발 사흘 전에는 승객의 시간(그래 봐야 5~10분이지만)과 자리를 조절할 수 있으면, 두 대만 가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거의 매일 산행지 날씨를 확인했으나, 비 소식은 없었기에, 왜 취소가 속출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던 차였다. 어쨌든 시외버스를 이용해 흥수가 나보다 5분 먼저 성삼재로 출발한다.
반복하는 얘기지만, 무박 산행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달리는 버스에서 잠을 자기가 쉽지 않아서다. 해서 과거부터 그 해결책으로 버스 타기 전 일행이 모여 수면제를 마시는 거였으나,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그 전통이 사라진 후로는 저녁 반주로 빨갱이 한 병 정도를 마시고 집에서 출발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아, 최대한 저녁을 늦게 먹으며, 반주 겸 수면제로 빨갱이 한 병 반을 마셨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10분 전에 평소에 물처럼 마시는 차를 뜨겁게 데워 보온병에 넣는 동안, 영양 간편식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다른 산은 몰라도 지리산에서는 물 걱정을 하지 않으나,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상태라, 뜨거운 차를 준비했다. 준비한 물과 간편식을 배낭에 넣고 21시 45분경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그동안 새벽에 다녀서인지 못 보던 가게가 있었다. 복권판매점이다. 하긴 새벽에 문을 열 일은 없는 집이다. 지난밤 꿈도 괜찮은데, 복권이나 하나 살까 하고 있는데,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마을버스가 보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에 도착, 열차로 동서울터미널로 출발, 10시 35분경 도착했으나, 과다한 수면제 복용으로 속이 쓰려 따뜻한 국물이 필요했다. 해서 급하게 터미널 앞 포장마차로 달려가 어묵 1인분을 주문했다. 과거 대학 시절부터 즐겼던 해장 방법으로, 목적은 당연히 어묵이 아닌 따듯한 국물이다. 급하게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흥수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승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아직 시간이 안 됐음에도, 승차장에 있던 직원이 배낭 멘 내 모습을 보더니, "55분?"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승차장에 서 있는 23시 차 뒤에 있는 버스를 가리키며 타란다. 해서 흥수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55분 버스로 가서 모바일 표를 제시했는데, 이 버스는 종이 표가 필요하니 발권해 오란다. 정신없이 뛰어 매표 장으로 가 발권하고 돌아오니 출발 예정 시각인 10시 55분이다. 이미 흥수가 예매한 50분 차는 출발한 다음이다. 성삼재에서 만나기를 바라며, 55분 차에 타려고 하니, 승객을 관리하는 직원이 옆 사람을 위해 배낭을 짐칸에 두고 타라고 해 "옆자리가 비었는데, 무슨 옆 사람?" 하고, 그냥 버스에 탔다. 그리고 자리로 가 배낭을 옆자리에 벗어 두고 바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도 없는데, 버스 실내등이 들어와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금산 휴게소 같았다. 다시 잠이 들어 기사가 '앞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구간이니, 안전띠 꼭 매고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은 거 같아, 잠결에도 성삼재가 멀지 않았구나, 생각하고 시계를 보니 2시다! 예정 시각 3시보다 1시간 이르나, 심야에 1시간 정도는 다반사라,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기사가 마이크를 잡는 바람에 깊은 잠은 깨고, 선잠이 이어졌다. 그렇게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눈을 뜨지 않아도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는 버스의 움직임이 있었다. 인월이다. 터미널 구조가 특이하고, 초등 2학년부터 수시로 이용하던 곳이라 몸이 기억해 잠결에도 인월에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아까 기사가 말한 곳은 함양에서 인월에 이르는 구간으로 고개와 급커브가 유난히 많기는 하다. 그것도 심야에 고속으로 달리는 버스라면 더 위험하다. 어쨌든 성삼재는 아직 멀었다.
몇 명의 승객이 내리고 탔는지는 모르나, 바로 인월을 떠나 성삼재로 향하는 버스를 비추는 도로의 가로등이 얼마나 밝은지 도저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해서 선잠을 자는 동안에도 가끔 여기가 어딘가 하고 커튼들 젖히고 창밖으로 확인했다. 그러다가 숙취로 몸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으나, 3시간 동안의 깊은 잠에 만족하고, 자는 걸 포기했다. 이게 과도한 수면제의 부작용이다. 무박 산행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고. 승객의 깊은 잠을 방해하는 산내 반선부터 달궁에 이르는 대낮 같은 가로등 불빛에, 한국 참 많이 발전했다 생각하며, 책을 읽을 만한 정신 상태는 아니어서, 패드로 유튜브를 감상했다. 그리고 위에서 반짝이는 게 있어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자, 저 위로 성삼재 휴게소가 보였다. 들머리가 멀지 않았다는 얘기라, 등산화 끈을 다시 매고, 이제는 당연하게 된 미니 스패츠를 착용하는 등 내리자마자 바로 산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치고 난, 조금 후인 2시 43분에 버스는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전날 저녁 흥수가 종주를 해야 하는데 핸드폰 충전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해, 버스에서 충전하려고 했으나, 콘센트가 없어 못 했다고 혹시 보조 배터리가 있는지 물어왔었다. 해서 나보다 5분 먼저 출발해 몇 분 먼저 도착했는지는 몰라도 보조 배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차장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종주를 시작했을 거라 생각하고 나도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탐방로 입구로 가고 있는데, 누군가 툭 친다. 얇은 옷차림에 벌벌 떨며 서 있는 흥수다! 해서 어디서 기다렸냐고 물어보자 막 버스에 내렸다고 했다. 뭔 말인가 해서 다시 물어보니, 같은 버스를 탔다는 거다. 이런 황당한 일이. 55분 차를 예매하고 텔로는 50분 차라고 하는 바람에 발생한 사건으로, 자기 옆을 지나 버스에 타는 걸 봤지만,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서 그런가 보다 했다고. 어쨌든 바로 보조 배터리를 꺼내 흥수에게 주자, '너는 어떡할 거냐?' 물어, '난 아무리 늦어도 3시 이전 하산이라 보조 배터리 쓸 일이 없다!' 말하고 탐방센터로 향했다
국립공원 탐방로 개방 시간은 3시이나, 예정보다 심야 버스가 일찍 도착하는 일은 비일비재해 개방 시각 이전이라도 별문제 없이 통과했었다. 그리고 안내산악회 게시판 공지를 통해 11월은 동계로 분류돼, 개방이 한 시간 늦은 4시라는 것과 동계부터는 시간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요원과의 통화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버스 출발 시각을 통제할 수 있는 안내산악회 얘기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착한 등산객에게는 약간의 융통성이 있을 거로 생각해 고민 없이, 탐방로 입구로 갔다. 그런데 당연할 거라 생각했던 융통성은 없었다. 등산객의 사정과 협박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설악산 용아장성 사고 기사를 봤을 때 예상했던 바이기는 하다. 해서 일단 센터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로 가, 난 볼일을 보고, 흥수는 콘센트로 휴대폰을 충전했다. 이후 화장실에서 기다리는 건 분위기상 좋지 않아 주차장에서 봤던 환한 식당이 기억나 거기서 봉 감독이 먹어보라던 국수도 맛보고 추위도 피하기로 했다.
그런데 식당이라 알고 있었던 곳은 무인편의점이고, 밖에서 봤던 플래카드에 있던 메뉴는 냉동식품을 팔고 있다는 얘기였다. 편의점은 휴게소를 통해 들어가는 구조였는데, 그곳은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연히 별도로 있는 식당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이렇게 된 마당에 평소 무인편의점의 시스템이 궁금하던 차라, 출입증으로 흥수의 신용카드를 사용해 내부로 들어가 둘러보니, 낮에는 유인, 야간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거 같았다. 시스템 구경도 끝나고, 편의점에서 마냥 서성일 수도 없어, 다시 휴게실로 돌아왔으나, 앉을 만한 자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더 있다가는 나갔던 코로나도 돌아올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코로나로 요원에게 사정해 볼 생각으로 다시 탐방센터로 갔는데, 이미 다른 등산객이 코로나 감염 위혐으로 협박하고 있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코로나 협박이 통하던 시절도 옛 얘기다. 추운 겨울에 더 극성이라는데, 안내산악회야 알아서 조정할 거고, 시외버스 출발 시각이 23시에서 24로 바뀌지 않으면, 겨울 동안 국립공원 탐방로 입구가 코로나 19 배양기가 될 듯하다!
그렇게 코로나 감염 위협과 싸우고 있는데 안내산악회 버스도 속속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외버스처럼 승객을 내려놓고 떠나지는 않았다. 어쨌든 코로나 19도 안 먹히는 상황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통하지 않을 거 같아, 어둠을 틈타 센터 뒤로 돌아가는 것도 고민해 봤으나, 그 정도까지 할 거는 아닌 거 같아, 그나마 바람을 막아주고 사람이 거의 없는 화장실 입구에서 탐방로가 개방되길 기다렸다. 물론 그동안 흥수는 폰을 충전하고. 애초 예상은 3시 30분이 지나면, 개방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전혀 융통성이 없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등산객이 많았는지, 30분이 지나자 서서히 탐방로 입구로 모였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군소리 없이 그걸 참고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그러다 거의 입구가 등산객으로 가득 차고, 10여 분이 지난 4시 정각에 탐방로를 막고 있던 차단기가 올라갔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된 것도 아닌데, 이래도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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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수가 탐방로를 막고 있던 차단기가 올라가기 직전 인산인해를 이룬 도로를 촬영하기 위해 맞은편 센터 계단 위로 올라가, 아직 돌아오기 전에 탐방로를 개방하자 물밀 듯이 등산객이 노고단 방향으로 올라갔다. 화장실 앞에서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흥수가 보이지 않아, 나도 등산객 무리에 끼어 노고단을 향해 갔다. 거의 달리다시피 올라가는 등산객 대부분은 안내산악회 종주 팀으로, 당일에 종주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1분 1초라도 아껴야 하는 처지다. 흥수도 애초 그 팀이었으나, 짤려서 거의 2배 이상의 비용을 들여 대중교통으로 온 거고. 흥수 얘기로는 시작 시각은 국립공원공단 규정에 따라 3시에서 4시로 한 시간 늦췄는데, 안내산악회 마감 시각은 변함이 없어, 결과적으로 애초 계획보다 1시간 줄어들어 더욱 서둘러야 했다. 해서 당연히 흥수도 서둘러 떠났을 거로 생각하고, 그들을 따라 올라가는데, 흥수가 뒤에서 툭 쳤다. 그리고 보조 배터리를 돌려주었다. 폰은 충분히 충전했고, 본인은 종주 중 대피소에서 충전하면 되나, 내가 가는 곳에는 날머리에 도착하기까지 충전할 수단이 없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반야봉에서 낙조가 아니라 일출을 기대할 정도의 시간이라, 당연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하늘의 별이 더 잘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 주위 등산객의 랜턴 빛에 의지해 노고단 고개로 갔다. 흥수나 나나 랜턴이 있으나, 굳이 꺼낼 이유가 없었고, 특히 흥수는 랜턴 배터리 교체를 위해 편의점에 갔었으나, 배터리를 찾지 못해 그나마 있는 배터리를 아껴야 했다. 노고단 고개까지 오르막이라 경사는 있으나, 길 자체는 평지 못지 않아, 시속 4km에 가깝게 오르자, 아랫배가 슬슬 아파지기 시작한다. 이미 볼일을 봤으나, 수면제 과다 복용의 후유증으로 어쩔 수 없었다. 해서 노고단 대피소가 보이는 순간 흥수에게 난 볼일을 봐야 하니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그리고 대피소 직전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볼일을 보고 나오자 대부분 등산객이 떠나고, 소수의 유유자적한 사람만 대피소 앞에 있는 마고 상과 사진을 찍거나 취사장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있어, 노고단 고개까지 의지할 랜턴이 없었다.
대피소에서 노고단 고개로 올라가는 200m는 평소 5시 정도면 여명이 밝아와 랜턴 없이도 희미한 빛에 의지해 올라갈 수 있었는데, 겨울 초입으로 밤이 길고 날도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보조해줄 빛이 없이는 한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해서 배낭에서 랜턴을 꺼내는 순간, 흥수가 걱정됐다. 그나마 다행인 거는 많은 등산객이 뭉쳐서 출발했으니, 의지할 빛은 주위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랜턴 빛에 의지해 돌길을 올라 4시 51분 노고단 고개에 도착해 어둠속에 주위를 둘러보니, 종주가 목표로 보이는 동호회 팀이 주 능선 입구에 있는 차단기 앞에서 인증을 찍고 있었다. 그 장소가 인증으로 좋은 게 문으로 만든 입구 위에 '노고단 고개'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고, 오른쪽 기둥에는 '천왕봉 가는 길'이고 쓴 팻말이 붙어있다. 동호회 팀이 인증 대상을 바꾸는 잠깐 동안 그 옆을 지나쳐 주 능선이자 백두대간에 들어섰다. 올해는 지난 묘향암, 이끼폭포 산행[산행기] 후 두 번째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찍을 것도 없어 그저 묵묵히 랜턴 빛만 보며 전진했다. 가끔은 주변을 비추기도 하며 전진해, 5시 36분에 돼지령을 지나고 5시 44분에 임걸령에 도착했다. 임걸령에는 서둘러 출발했던 종주 팀들이 뒤섞여 간식을 먹으며 휴식 중이었는데, 종주 시 거의 지나치는 반야봉에 오르고자 하는 몇몇은 서둘러 자리를 뜨고 있었다. 임걸령에서는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물맛을 보기 위해 약수터로 내려가 두 번에 걸쳐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바로 다음 목표인 피아골 삼거리로 향했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노루목으로 향하는데, 공사장이 나타났다. 묘향암 산행이 지난 7월인데, 그 사이에 등산로가 많이 변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국립공원을 다니다 보면, 등산로에 세금을 넣고 있는 걸 늘 보게 되는데, ‘과연 이 정도까지?’라는 의문이 생기는 구간은, 그 저의를 의심한 적이 많은데, 이것도 그중 하나다. 이번 산행 중 확인한 공사 중 하나가 노루목 직전 작은 봉우리 오르막 구간을 데크 계단으로 바꾸는 거다. 그리고 다른 거로는 목재로 등산로 벽을 만드는 구간도 곳곳에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강하게 머리를 때리는 건 '다 때려치우고 국립공원 공산 판에나 뛰어들까? 이것도 줄과 빽이겠지, 없으면 수주 확률이 로또 당첨 확률?!'
6시 14분 노루목에 도착하자, 종주꾼 몇이 쉬고 있었다. 애초 계획은 상황에 따라 반야봉은 우회할 생각이었으나, 노루목 도착 시각이 너무 이르다. 깜깜한 새벽이라 별생각 없이 앞만 보며 걸으니, 평속 3.3km에 가까운 속도가 나왔다. 해서 곰곰이 계산해 보니, 이렇게 간다면 무박 화대종주도 결코 전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만 안 들고 가도 주어진 시간 내 주파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들을 뒤로하고 좌회전해 바로 반야봉으로 향해, 5분 정도 올라가자 뒤에서 누군가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 유명한 아디도스 츄리닝(여기서는 이 말이 어울림)을 입고, 맨발에는 삼디다스 쓰레빠(이것도)를, 거기다 꽤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한쪽 어깨에 멘 산꾼?이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쳐다만 보고 있는데, 바로 내 뒤를 따라오던 등산객이 그에게 말을 붙인 후 둘이 친해져 같이 올라왔다. 그들이 쉽게 지나갈 수 있도록 등산로 한쪽에 서 있는 동안 본의 아니게 둘의 대화를 들었는데, 그 복장으로 남도의 산은 거의 안 다닌 곳이 없는 듯했다. 이후 이번 산행에서 만난 거의 모든 등산객의 대화 주제가 그 산꾼이었다.
그 산꾼이 뛰어올라오는 경사를 힘겹게 올라가며 반야봉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어차피 왕복해야 해 이정표에 배낭을 걸어두고 갈 생각이어서, 이정표가 빨리 나타나기만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삼거리라고 생각한 지점에 도착했으나 이정표도 갈림길도 없었다. 그때 든 생각은 공단에서 등산로를 정비(노루목에서 좌회전해 반야봉 등산로에 들어서는 순간 알았음)하며, 반야봉 삼거리에서 삼도봉으로 바로 가는 등산로를 폐쇄한 게 아닌가였다. 사실 그 등산로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허물어지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럼 어디든 다시 돌아오는 길목이라, 오르다 적당한 나무가 있으면 배낭을 걸어두기로 하고 올라가는데 저 위로 이정표가 보였다. "반야봉 삼거리"다! 만약 아래에 배낭을 두고 왔으면 낭패 볼 뻔했다.
삼거리에 도착해서 보니, 평소 배낭을 걸어 두었던 나무에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이 배낭을 걸고 있어, 다른 나무 밑동에 배낭을 벗어 두고 랜턴과 카메라, 폰만 들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평소 전망대로 애용하는 암릉 구간에 도착하자 여기저기 널린 공사 자재가 보였다. 그 암릉도 데크 계단으로 도배할 예정인 거 같았다. 도대체 산을 무슨 재미로 다니라는 건지? 아, 등산객을 핑계로 한 누군가의 지갑을 채우기 위한 프로젝트? 어쨌든 그 순간 랜턴도 깜빡이더니 꺼져버렸다. 혹시 내가 실수로 버튼을 눌렀나 해서 다시 켰으나 바로 다시 꺼졌다. 흥수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은 여명이 밝아 오는 중이고, 암릉이라, 다른 곳보다는 잘 보여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암릉 정상, 다른 이들은 잘 가지 않는 전망대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자,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오는 천왕봉과 중봉, 그리고 흥수가 열심히 달리고 있을 백두대간이자 주 능선이 보였다.
반야봉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이정표를 제외하고 유일한 인공물이었던, 데크 계단(이것도 몇 년 전에는 급경사의 철계단이었다)을 오르자, 등산로를 막고 공사를 하고 있었고, 임시 등산로는 그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나 있었다. 처음 반야봉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여기는 공사 중이라 다른 곳에 길이 있을 거로 생각할 만했다. 실제 많은 등산객이 정규 등산로가 아니라 샛길을 통해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상 직전에도 대규모 데크 공사 중이었다. 거기는 우회로를 만들 수 없는 구간이라, 아직 미완의 데크를 징검다리 놓듯이 띄엄띄엄 판자를 설치해 밟고 갈 수 있도록 했다. 그 옆 숲에는 인부 숙소가 있었다. 다른 곳은 뭐 그러려니 하는데 정말 이 구간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됐다. 서리가 내려 약간 미끄럽기까지 한 징검다리 데크로 위로 가는데 정상이 가까워지자, 위에 난장이 벌어졌나 궁금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애초 뒤에서 따라오는 등산객보다 먼저 도착해 한가한 틈에 재빨리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오산이었다. 종주보다는 반야봉, 피아골, 뱀사골 코스 산행자가 더 많았다. 왜 종주자가 대부분일 거로 생각했을까?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는 게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현실에 맞춰 카메라 설정을 타이머를 맞추던 걸 멈추고 다시 원위치했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자 주변에 20여 명이 넘는 등산객이 각자 인증을 찍거나, 이른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 삼디다스의 산꾼도, 친구가 되어 같이 올라갔던 등산객과 한쪽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이미 수없이 찍은 거지만,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제 막 도착한 등산객에서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나, 역광이고, 같은 환경에서 한두 번 찍는 것도 아니라, 애당초 사진의 품질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왕봉이 있는 동남쪽을 바라보니, 조만간 해가 뜰 거 같으나, 일출을 바라기는 힘든 날씨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천왕봉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야낙조를 보겠다고 비박 계획 세웠던 인간이, 오늘 이 자리 같은 장소에서 일출을 기대하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일출이 7시 10분경이라는 주위의 얘기에 반야봉 정상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건 7월에는 없었던 데크 전망대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금줄로 막아 놓았으나, 무시하고 들어가 남쪽으로 뻗은 몇 개의 능선을 사진으로 남겼다.
일출을 보기 위해 천왕봉이 잘 보이는 정상석 뒤로 돌아왔으나, 일출 감상은 틀렸다는 판단에 하산하기로 했다. 문제는 너무 이른 시간 목통골 진입이라, 점심시간 이전에 날머리인 범왕리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이 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해서 날도 밝았겠다, 사진을 많이 남기며 유유자적 진행하기로 하고, 떠나기 전 다시 정상 주변을 둘러보고 의외의 모습에 약간 놀랐다. 중봉으로 가는 길을 막은 철책에 있는 유일한 문이 열려 있었다. 평소에는 늘 자물쇠로 잠겨 있었는데. 이유가 뭘까? (서울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봉 헬기장에 인부 숙소와 자재 저장소를 만들었다면, 열려 있는 문이 이해된다. 감히 등산객이 들어갔다가는 중봉에서 바로 딱지다!) 중봉을 개방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정상을 떠나 날이 완전히 밝아 뚜렷이 보이는 공사판을 지나는데, 노란색의 굵은 전선이 보였다. 아니 여기까지 전기를? 해서 그 전선을 따라 내려가자 발전기가 나타났다. 그러면 그렇지, 설마 여기까지 전기를 끌어오지는 않았겠지. 어쨌든 이 모든 걸 헬기로 동원했을 거니.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하산해 7시 21분에 배낭이 기다리고 있는 반야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6시 24분에 떠났으니, 반야봉 왕복에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예상보다 빠른 진행이라, 부러 시간을 지체하고 있으나 단독 산행이라 그것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반야봉 삼거리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적당한 식당을 찾아보니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길목 오른쪽, 고목이 쓰러진 곳에 서너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배낭을 들고 그리로 가 방석을 꺼내 깔고 앉았다. 그리고 먼저 뜨거운 차를 조금 마신 후 준비해 온 영양 간편식을 총각김치, 파김치와 같이 먹기 시작하자 다른 등산객 두 팀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중 내 옆에서 먹고 있던 친구로 보이는 두 중년 남성 중 한 명이 수없이 거절했음에도 거의 반강제로 사과 반쪽을 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다. 이정표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중년과 노년의 혼성팀(선후배 사이로 보이는) 중 노년의 선배에게 이것도 드셔봐라. 저것도 드셔보라고 권하는데, 본인은 지난번 산행에서 먹은 떡 때문에 고생해 죽을 싸 왔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그중 한 남성이 배낭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싸 온 건 본인이 먹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도 사과를 들고 갔음에도 다른 사람이 호의로 주는 사과를 먹어야 하는 고역!
아침을 먹고 있는 동안 문제의 삼디다스 산꾼이 하산해 삼도봉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이것 좀 먹고 가라고 붙잡는데, 사양하고 오히려 귤을 줄까 하고 묻고는 거절하자 바로 삼도봉으로 뛰어갔다. 당연히 그 이후 모든 대화의 주제는 그 산꾼이 차지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먼저 두 친구가 삼거리를 떠나 삼도봉으로 갔고, 다음으로 내가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삼도봉으로 향했다. 삼도봉으로 가며 등산로 상태를 보자, 역시 잘 정리했고 위험한 구간은 무너지지 않게 돌로 잘 쌓았다. 이런 걸 해야지! 잘 정돈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 7시 50분에 노루목 삼거리에 이르렀고, 바로 이어진 묘향암 갈림길을 지나, 7시 59분에 삼도봉 삼각 꼭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먼저 정상석 아니 정상철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른 이들은 잘 모르는 진정한 삼도봉 정상이자 전망대로 갔다.
먼저 이번 산행의 목표인 목통골을 세밀히 관찰한 후 사진으로 남겼다. 좌는 칠불능선, 우가 불무장등이다. 그리고 주 능선을 바라봤는데, 토끼봉이 전면을 가로막아 보이지 않고, 토끼봉 뒤로 천왕봉과 중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불무장등과 왕시루봉을 한 앵글에 담은 후 정상에서 내려와 삼각 꼭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인증이라도 남길까 했으나, 그사이 도착한 등산객이 인증을 찍느라 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남는 게 시간이라, 기다리면 되지만, 멍청히 기다리는 걸 싫어하고, 삼도봉에서 인증한 사진이야 수도 없이 많아, 미련 없이 8시 3분 봉우리를 떠나 화개재로 향했다. 우천 후 며칠만 석간수를 떨어뜨려 지금은 메마른 석간수 터를 지닌 거대 바위를 지나 화개재로 향하며 과연 쉽게 목통골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사실 산행 전 사용하는 등산 앱 중 하나인 'e-산경표'에 그 길이 표시되는지 확인했었다. 물론 길을 확인한 후 자신 있게 이번 산행에 단독으로 나선 거고. 그런데도 막상 화개재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중봉 중턱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묘향암의 노랗게 칠한 양철 지붕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유명한 계단을 내려가 화개재 200m 전방에 도착했다. 화개재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과거부터 품어온 궁금증이 떠올랐다. '왜, 이 고갯마루를 화개재라 부르냐?'다. 반선재나 산내재가 아니라! 실제 화개재에서 산내 반선으로 내려가는 게 뱀사골이다. 그런데, 화개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없다. 없는 게 아니라, 목통골이다. 자고로 고개라 하면 양쪽을 넘나들고, 보다 유명한 지역의 명칭을 따온다고 가정하면 과거에는 화개로 가는 길이 산내로 가는 길보다 더 좋지 않았을까? 말인즉 뱀사골보다, 목통골이 더 좋지 않았을까? 멋대로 이렇게 결론을 내리자, 목통골이 아주 쉽게 여겨졌다. 자기 최면의 한 방법이다. 드디어 화개재가 보이고 등산로인 데크는 중앙을 비우고 둥글게 설치되어 있다. 물론 중앙 생태계 복구를 위함이다.
좌로 떨어지면 뱀사골, 우로 떨어지면 목통골이다. 해서 일단 오른쪽의 데크를 선택해 들어가자, 데크 전망대이자 쉼터가 있었다. 배낭을 배낭 걸이에 걸고 쉼터의 긴 나무의자가 젖은 상태라 방석을 꺼내 그 위에 두고 앉아 뜨거운 차 한잔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까 반야봉 삼거리에서 만났던 선후배 팀이 막 도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은 채로 폰의 'e-산경표'를 기동해 위치를 확인했다. 정확히 갈림길 위에 앉아 있었다. 해서 그대로 데크 주변을 둘러보니, 좌측 조릿대 사이로 분명 길이 있었다. 벽소령이 목표라는 그 팀이 떠나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 후 목책을 넘어 그 길로 접어들어 조금 가자 바로 조릿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 이런 길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엉뚱한 곳으로 가기 쉬웠으나, 오지 산행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키 낮은 조릿대 사이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내려가자,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등산로가 나타났다.
조릿대 사이로 난 급경사의 길로 200여 미터를 내려가 의외의 물건을 보고 놀랐다. 아니, 날머리까지 쉽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공물은 딴 게 아니라, 고로쇠나무에 주삿바늘을 꽂아 흡혈한 수액을 마을까지 내려보내는 검정호스다. 길을 잃고 헤맨다면 이 검정호스만 따라가도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화개재 7분 거리에서 이 흡혈 검정호스을 발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역시 추측대로 화개재라는 명칭을 얻은 이유가 화개가 산내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내 멋대로의 결론이다. 산꾼보다는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마을 주민이 다녀, 길 상태는 좋았다. 다만, 메마른 계곡인 너덜을 지나면, 조릿대 지역이고, 그 지역을 빠져나오면 다시 너덜의 패턴이 반복됐다. 문제는 내려가면 갈수록 조릿대의 키가 높아져, 어느 지점부터 내 키를 넘었다. 왕시루봉[산행기]과 불무장등[산행기]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그나마 다행은 조릿대가 물기를 품지 않았다는 거. 만약 지난 두 번의 산행과 같이 물기마저 품고 있었다면, 다시 지옥을 맛봤을 거다.
메마른 계곡에 쓰러진 고목에 핀 버섯을 구경하며 다시 조릿대 터널을 통과하기를 반복해 9시 9분에 조릿대 지옥이 더 나타나지 않는 너덜이자, 아래로 계곡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화개재를 8시 26분경 떠났으니, 43분 만에 목통골에 도착했다. 물론 흡혈한 수액을 전송하는 검정호스는 계곡 여기저기서 뻗어 나와 굵은 호스로 합류해 주 계곡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목통골의 첫인상은 이 좋은 계곡이 왜 산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반야봉에서는 귀가 시리고 손이 얼 정도로 추웠는데, 계곡으로 접어든 이후 해가 내리쬐어 땀이 나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오지라, 길이 좋지 않아 몸 보호를 위해 두꺼운 바람막이를 그대로 입고 있어, 가끔 강한 바람에 날리는 낙엽 비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화개재에서 계곡에 접근하기까지 급경사의 조릿대, 너덜의 반복은 다음에 이어진 계곡에 비하면 고속도로였다. 미지의 계곡답게 애당초 길이란 게 없었고, 상류답게 바위와 관목이 뒤엉킨 곳이 많아 뚫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화개재에서 내려와 보고 놀랐던, 수액을 아래로 보내는 검정호스를 따라 내려가는 게 그나마 편했다. 그 시점에는 사람 몇이 매달려도 끄떡없을 거 같은 굵은 호스, 아니 파이프에 가까웠다. 가끔은 그 굵은 호스에 의지하며 계곡을 따라 내려가 9시 35분에 쌍폭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용하고 있는 등산 앱인 트랭글, e-산경표 지도에 의하면 쌍폭 아래에서 계곡을 건너야 했다. 해서 건너편을 매의 눈으로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노란 리본 두 개가 달린 게 보였다. 계곡에 접어든 이후 처음 보는 등산로 표지다!
등산로 표지를 발견했고, 그 아래 등산로를 확인했으니, 땀을 삐질거리며 조릿대와 너덜, 관목을 뚫고 오느라 심해진 갈증을 해소하고, 목통골 물맛을 확인하기 위해 배낭을 벗어 두고 물잔을 들고 쌍폭 아래 소로 가 물을 떠 마셨다. 물 잔에 잎을 띄워주는 선녀가 아쉬운 순간이다. 그리고 오른손등이 따끔거려 보니,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관목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긁혔으나, 당시에는 관목을 뚫는데 집중해 상처가 난지도 몰랐다. 오지 산행에서 상처 한두 군데야 당연한 거고, 어디 부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게 다 평소 방문하는 산의 신에게 정성을 다한 덕이다. 상처는 무시하고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계곡을 건너 노란 리본 두 개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갔다. 계곡을 벗어나 산 중턱으로 이어진 길로 가는데, 상처 난 손등이 계속 따끔거렸다. 무시하고 그냥 두면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거 같은 감이 들어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에서 밴드를 꺼내 상처에 붙였다. 산에서 응급 시 필요한 거의 모든 걸 배낭에 넣고 다니지만, 꺼내기가 귀찮아 사용하지 않는 귀차니즘을 버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밴드를 손등에 붙이고 다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등산로로 계속 나아가는데, 갈수록 계곡과는 멀어졌다. 계곡을 타기 위해 조릿대와 너덜 지옥을 뚫고 내려왔는데, 계곡과 멀어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등산 앱인 ‘트랭글’로 확인해 봤다. 분명 지시하는 등산로로 가고 있었고, 그 등산로는 계곡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다른 등산로는 없고. 말 그대로 등산객을 위한 등산로는 맞지만, 원했던 길은 아니다! 다음에는 ‘e-산경표’를 확인했다. 등산로가 두 개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과 지금 가고 있는 트랭글과 같은 길! 고로 원하는 계곡을 타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주저 없이 뒤로 돌아, 왔던 길로 다시 갔다. 당연히 여기까지 오는 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갈림길이 있나, 아래쪽을 유심히 살피며.
왕복 600m가 넘는 길을 갔다 왔지만 없었다. 분명 등산 앱의 지도에는 있는, 아랫길을 찾기 위해 다시 쌍폭에 도착하기까지 유심히 계곡 부분을 살폈으나 없었다! 순간 퍼뜩 든 생각이 ‘따로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계곡 자체가 길이다!’라는 거다. 탄탄대로를 원하면 좀 전에 갔다가 돌아온 길이 맞고, 계곡을 타겠다면 계곡 자체가 등산로라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고로 e-산경표에 표시되는 아랫길은 계곡을 타고 다녔던 앞선 산꾼의 흔적이다. 길을 찾는 게 아니라, 길을 만들며 계곡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중 놀라운 장소를 발견했다. 흡혈한 고로쇠 수액의 1차 집결지로 보이는 곳인데, 바닥은 검은색의 평평한 바위가 마치 침상처럼 깔려 있었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코펠, 버너, 가스가 갖춰져 있었다. 아마, 검정 호스 점검 시 사용하는 임시 숙소, 비박 장소인 거 같았다. 그 숙소를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계속 내려가며 계곡을 즐겼는데, 가면 갈수록 산꾼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 미스터리였다. 혹시, 나만 모르고 있을 수도!
계곡을 즐기며, 물론 일반 등산로라면 금방 갔을 10m 아래로 가기 위해 정신을 초 집중해 100m를 돌아가야 하는 계곡을, 가자 갑자기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이 보였다. 등산로가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다. 오랜만에 본 리본이 반가워 아무 생각 없이 그게 가리키는 등산로로 가다가 아까 쌍폭에서 등산로에 접어든 것과 같이 계곡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다시 e-산경표로 위치를 확인했다. 지금 가고 있는 이 등산로가 1시간여 전의 쌍폭에서 만났던 그 길이었다. '계곡 자체가 길이다!'라는 큰 깨달음을 망각한 결과다. 아는 것과 실천은 아주 다르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득도의 목통골 산행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가는 건 한 번으로 족하지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만 더 가면 주 계곡으로 합류하는 지류를 건너야 했다. 고로 그 지류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된다.
지도의 지시대로 조금 더 가자 지류가 나타났고, 주 계곡과의 거리는 100여 미터 남짓했다. 볼 것도 없이 지류를 따라 다시 주 계곡으로 합류한 후 하류로 향해 갔다. 높은 바위에서 내려갈 때는 엉덩이 신공을 발휘하고, 물을 건널 때는 훌쩍 뛰기를 반복하며 5분 정도 가자 아래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렸다. 폭포다! 큰 기대 없이 만난 이름 없는 폭포는 놀라움을 안겨줬다. 물론 위의 쌍폭도 내가 임의로 붙인 명칭이고, 이 무명폭도 따로 이름이 있을 수 있다! 무명폭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길 당시의 시각이 10시 26분으로 성삼재에서 탐방로로 접어든 지 6시간 26분이 지났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목통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칠불사 아래에 있는 범왕리에는 오후 4시(당시는 이렇게 알고 있었다) 화개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 고로 칠불사 갈림길을 놓치면 안 된다. 등산 앱 지도에 의하면 그 갈림길이 멀지 않았다.
화개재 이후 험난한 오지 산행을 하느라 지쳐 배가 고프고, 칠불사 갈림길로 접어들면 라면 끓이는 게 쉽지 않아 보여, 여기서 라면을 끓이자는 유혹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실 반야봉 삼거리에서 영양 간편식으로 아침을 먹은 게 7시 25분이라, 배가 고플 시점이기도 했고, 라면을 끓이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계곡이다. 역으로 배낭에서 장비를 꺼낸 후 막상 먹기까지의 과정이 귀찮고, 지도로 남은 거리를 예측한 결과 12시 이전 날머리인 범왕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에 화개행 버스가 있으면, 정황상 12시 즈음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라면을 두고 내부에서 치열한 투쟁이 발생했고, 결국 귀차니즘이 이겼다(결국 들고 간 라면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가져왔다). 일단 12시 이전 날머리 도착을 목표로 하기로 하고 지도를 주시하며 갈림길을 찾아 내려가 10시 38분에 찾았다.
칠불사까지 이어지는 길은 국립공원 정규 등산로 못지않게 좋았다. 화개재에서 목통골 접속 구간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 그만큼 많은 사람이 다녔다는 건데…. 그럼 목통골이 꽤 유명하다는 얘긴가? 나만 모르고 있었나? 어쨌든 간혹 앞을 암봉이나 암벽이 가로막고 있으면, 생각지도 못한 우회로가 나타나는 게 전형적인 국립공원 등산로다. 기복이 거의 없이, 급경사의 계곡과는 달리, 점진적으로 하산하는 등산로는 거의 3.5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고로 갈수록 계곡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평소의 페이스대로 칠불사로 향하며 건너편 불무장등 능선의 단풍을 감상했다. 사실 붉은 건 단풍이 아니라, 빨갛게 말라죽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사귀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유유자적 가고 있는데, 아래로 평지가 보이고, 거기에 통나무를 그대로 잘라 만든 의자 세 개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분위기상 칠불사가 가깝다. 그 시각이 11시 9분이었다.
위에서 보기에는 임도에 있는 쉼터다. 그걸 보며 20여 미터를 더 가자 앞에 임도처럼 보이는 길이 나타났다. 그 길에 도착한 순간만 해도 당연히 구 임도라 생각하고, 위에서 본 쉼터가 있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다. 고로 구 임도가 아니다! 그리고 그 바위 아래 굴이 있었다. 암굴! 그 안에는 기도용품이 있었는데, 동굴 입구에는 흰 페인트로 "기도행위 일체금함", "(접근금지)"라 쓰여 있었다. 분명 기도처인데, 기도행위 금지라, 누가 썼을까? 칠불사? 궁금해서 구글링해보니, "청굴"이라는데 용도에 관한 얘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청굴을 떠나 임도로 착각했던 길을 따라가자 고색창연한 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글을 쓰며 궁금해 구글링한 결과 '부휴대사' 부도로 알려져 있으나, '부휴대사감(浮休大師龕)'이라 새겨져 있을 뿐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송광사에 부휴대사탑이 있다[기사]는데 정체가 뭘까?
부도를 지나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은 앞에 보이는 '운상선원'으로 가는 길이라, 하산이 중요하므로 우회전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공포를 조장하는 쇠를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적막한 산사 숲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쇠 때리는 소리! 내려갈수록 소리가 커지다가, 갈림길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자, 갑자기 멈췄다. 갈림길을 지나며 오른쪽을 보니,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체력단련장이다. 젊은 중이 운동기구 중 하나인 철봉을 때리고 있었던 거다. 이왕 때리는 거 목탁처럼 박자에 맞춰 때리면 될 걸 박자니, 뭐니 다 무시하고 때리니, 겁 많은 산꾼이 무서워하지. 물론 그걸 때리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운상선원 갈림길에서 200여 미터를 내려오자 낙엽에 덮인 나무다리가 있었고, 그걸 건너자 숲 사이로 포장도로가 보였다.
큰 절간에는 다 있는 대나무 숲을 통과해 나오자 전면에는 아스팔트 포장도로, 왼쪽으로는 키 높은 비석 두 개와 그 뒤로 3개의 부도가 보였다. 혹시 칠불사를 들머리로 했을 때, 등산로 시작 위치가 중요한 만큼 사진을 보면, 아!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한 장 찍은 후 부도와 비석을 살펴봤다. 일단 전면에 보이는 뭐하는 건물인지 예측이 안 되는 절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도로로 나온 후 뒤로 돌아 겁 많은 민초를 위압하는 거대한 비석과 그 사이로 보이는 부도와 단풍을 찍었다. 그리고 위압으로 가득 찬 절간에 모신 본존불에게 신고해야 하나 잠깐 고민한 결과, 그도 원치 않을 거 같아 미련을 버리고, 한여름이나 다름없는 날씨에 급경사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날머리인 범왕리로 향했다.
신고도 못 한 본존불이 등을 떠밀어 칠불사 입구 비석과 부도가 있는 곳을 떠나 급경사 포장도로로 250m가량 내려가자 광활한 주차장과 그 앞에 버티고 있는 일주문이 보였다. 그걸 본 첫 소감은 '아니, 이 깊은 산골 오지에 왕복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도 부족해 광활한 주차장? 선후가 바뀌었나?' 다음은 '이래서 산내재가 아니라, 화개재구나!'였다. 가진 게 많은 불자가 많으니, 한 집안의 일 년 치 쌀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의 땅이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별 날도 아닌 11월 첫 주 토요일 임에도 칠불사로 오르는, 차량은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주차장은 가뿐히 씹어주고, 일주문을 우회해 칠불사로 바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럼 대웅전 주변에 이만한 주차장이 또 있다는 얘긴데. 중도 먹어야 살고, 요즘 풀때기 값이 만만치 않으니 그러려니 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불무장등과 통꼭봉 덕에 자연히 떠오르는 지난 산행[산행기]을 복기하며 내려갔다. 와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목통 갈림길을 만났는데, 거기에는 '목통 0.6km', '칠불사 주차장 0.3km'의 이정표가 있었다. 목통까지 600m? 그럼 목통으로 하산해 범왕리로 올라왔어도 문제없었네?
한여름 못지않은 땡볕의 더위와 배고픔, 무박 산행이라 잠을 못 자 흐려진 정신 상태로, 고급 승용차를 위한 급경사의 포장도로로 쓰러지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스스로에 감탄하며, 한편으로는 이게 다 "마고와 반야" 덕임을 깊이 새기며 어느 정도 가자, 저 아래로 마을이 보였다. 범왕리다! 워낙 경사가 급해 뛰어내리면 바로 닿을 거 같았다. 마을을 향하는 도로의 가로수에 달린 붉은 열매가 탐스러워 사진으로 남기고 비몽사몽 내려가자, 어느 순간 마을 내다. 와중에 마을의 보호수를 지났는데, 과거에는 서낭당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내부 도로로 내려가며 눈을 씻고 버스정류장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요즘 대한민국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인데,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아, 무엇인가 묻기 역시 쉽지 않다. 고로 다음 버스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간이 버스 정류장에 있는 시간표를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거기가 아니며 버스도 안 태워준다.
아무리 둘러봐도 버스정류장은 보이지 않아, 배터리가 다한 핸드폰이 어느 정도 충전되면 지도로 확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나마 밑으로 갈수록 버스 정류장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경험을 믿고 갔다. 그런데, 이 땡볕에 도로 옆 고추밭에서 굽은 허리로 고추를 따고 있는 할머니가 있어, "버스정류장이 어딥니까?"하고 물었다. 역시 돌아온 답은 한발 앞선 거로 "지금 몇 시지? 아, 11시 30분 차 갔어!"였다. 그때 시각이 11시 55분으로 12시 5분 전이다. 12시까지 도착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했으나, 버스는 25분 전에 떠났다. 이어 "다음 차는 3시야! 손 흔들면 잘 태워줘!"라는 친절한 얘기 후 "시간 있으면 고추 좀 따 가!"가 이어졌다. 당시 심정은, 먼저 나는 4시로 알고 있는, 버스 시간이 3시인 이유가 궁금했고, 다음으로 ‘여기서 점심으로 라면 끓여 먹고 버스가 올 때까지 고추나 딸까?’ 였다. 먼저 귀가 후 확인한 사실인데, 혹시 버스 시간과 정류장을 망각할까 봐, 산행 계획 중 그 부분만 캡처해 이미지로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15시다! 4시라는 시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다음으로 심신이 지쳐 고추를 딸 체력이 아니라 씩 웃고 말았다. 뭘 하든 이번 지리산 목통골 산행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등산 앱의 트랙 기록을 멈춘 시각이 11시 57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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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따기에도, 평소와 달리 당당히 손을 들고 내려가는 차를 잡기에도, 심신이 지친 상태라 모든 게 귀찮았다. 당연히 3시까지 버스를 기다릴 힘도 없고. 남은 건 택시다! 바로 폰을 꺼내 구글링으로 화개 택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했다. 내 위치를 알려주고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었다. 15분가량 걸린다고 해서, 배낭을 벗어 도로 한쪽에 두고, 난간 턱에 주저앉아, 등산 채비를 해체했다. 그리고 뒤로 보이는 계곡 아니, 개울로 내려갔다. 당연히 씻기 위해서. 그런데 평소라면 피서객으로 붐벼 거하게 한 상 차려야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는 물을 보고도, 준비과정이 귀찮아, 그냥 올라왔다. 무박 계곡 산행으로 심신이 지쳐 만사가 귀찮았다. 귀차니즘과는 좀 다른데. 이래서 내가 무박 산행을 싫어한다. 그리고 다시 난간 턱에 주저앉아 패드로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고추 따는 할머니가 "손을 흔들어!"하고 외친다. 해서 "택시 불렀어요."라고 하자, "모레 서리가 내린다는데, 그 전에 고추를 다 따야 해!", "아, 네?!"
와중에 택시가 도착해,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화개로 향했다. 그리고 12시 30분이 좀 넘어 도착해, 기사에게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 물은 후 택시에서 내려, 건너편에 있는 공용 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시간표를 보니, 서울행은 1시 25분 차가 있었고, 다음 차는 3시 25분이다. 출발 시각까지 대략 40여 분이 남아, 혼자서 점심 겸 하산주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여겨 1시 25분 차의 표를 산 후 택시 기사가 추천한 식당으로 갔다.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식당은 점심 손님으로 가득 차, 빈 테이블이 몇 개 없는 게 동네 맛집임은 틀림없다. 일단 테이블에 앉아 차림표를 보고, 혼자 온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현지 음식 중 땡기는 건 '은어회'와 '참게탕'인데, 실제 점심을 먹고 있는 가족 또는 지인과 같이 온 손님 전부가 그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를 먹고 있다. 문제는 이건 혼자서 먹을 양이 아니고, 시간도 부족했다. 시간이야 표를 바꾸면 되지만. 그나마 혼자서 먹을 수 있는 게, 재첩정식과 재첩회인데, 그건 별로고.
만만한 게 더덕구이 정식이라,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하다는 더덕구이 정식 1인분만 시켰다. 불쌍해 보였는지, 2인분 같은 1인분이 나왔고, 술이 빠질 수 없어 현지인은 다 이슬이를 마시는데, 외지에서 온 나만 '좋은날'을 마셨다. 홍도에서도 잎새주 마시는 인간은 우리밖에 없는 걸 보면, 예약하지 않으면 조만간 대한민국에서 지역 소주 맛보기도 힘들 거 같다. 물론 정식의 국은 재첩국이다. 한 병으로는 부족했으나, 지쳐서 그런지 더 마시고 싶지도 않았고, 버스 시간도 가까워 1시 20분경 식당을 나와 터미널로 향하며, 뒤로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의 정체가 뭔지 메모리를 뒤져 봤으나, 화개 뒤에 있는 거니, 삼신봉?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뾰족 봉우리가 지리산 주 능선에 있는 게 아닌 건 확실하고, 그럼 그 외에 어떤 봉우리가 있을까? 내가 미쳐 이름을 모르는 뒷산? 형제봉의 오기 성제봉은 오른쪽에 있어야 하니, 아니고,
1시 25분 정각에 도착한 남부터미널행 버스를 타고 앉아 건너편 좌석 창으로 보이는 섬진강을 구경하며 구례까지 달렸다. 구례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버스가 구례를 빠져나가는 동안 맑은 하늘 아래 노고단 부근의 주 능선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노고단과 마주 보고 있는 종석대 그사이의 통시 시설 등. 내 기억으로 전경을 뚜렷하게 본 건 처음이다. 그리고 잠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인 휴게소다. 편의점으로 가 식혜를 사 마시고 버스로 돌아와 이인 휴게소는 산악회 버스를 타고 몇 번 들렸으나, 어느 구간인지는 메모리에 없어 어딘지 확인했다. 가장 정체가 심한 천안논산고속도로다. 이 구간을 오갈 때마다 기존 대전에서 호남고속도로도 가던 걸 천안에서 논산으로 바로 가게 했는데, 과연 시간이 단축됐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 핑계로 기존 경부고속도로 정체만 해소한 거 아닌가?
역시 예상대로 휴게소를 나가 얼마 달리지 않아 거의 움직이지를 못한다. 토요일 오후 4시가 채 안 된 시각에 이 지경이면 어쩌라는 건지. 버스 기사도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갑자기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세종시 주변 국도를 달리다가 거의 천안 부근에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그렇다고 정체가 해소된 건 아니었고, 경부고속도로가 가까워졌을 뿐이다. 그리고 경부에 들어서자마자 아우토반이다. 이러니 백제 푸대접론이 나오지! 어쨌든 경부고속도로 버스 전용 차선으로 막힘없이 달린 버스는 5시 43분경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금요일 심야 동서울을 떠나 토요일 오후 남부 도착으로 마지막 남았던 지리산 계곡 산행을 마쳤다.
애초 계획대로 미지의 목통골을 탐험하기 위해 '성삼재 → 노고단 고개 → 돼지령 → 피아골 삼거리 → 노루목 → 반약봉 삼거리 → 반야봉 → 반약봉 삼거리 → 삼도봉 → 화개재 → 목통골 → 목통 갈림길 → 청굴 → 부휴대사 부도 → 칠불사 → 범왕리 버스정류장'의 18.45km(트랭글), 8시간 코스를 달렸다. 이동 7시간 35분, 휴식 25분!
국립공원공단에서 만든 ‘지리산국립공원 탐방안내도’에 따르면 성삼재부터 반야봉을 거쳐 화개재까지 총 9.6km라고 나온다. 그리고 이번 산행 중 트랭글로 기록한 트랙에 의하면 들머리인 성삼재를 시작으로 반야봉에 들른 후 화개재에서 목통골로 내려가, 칠불사를 거쳐 날머리인 범왕리까지 총 18.45km다. 고로 화개재에서 범왕리까지는 8.85km라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약간의 오차와 길을 찾아 헤맨 걸 고려하면 실제 미지의 탐험 구간은 8.5km 내외다! 화개재에서 칠불사까지는 대략 7km로 지리산 계곡 중 긴 편에 속한다.
지리산의 마지막 계곡 탐험으로 기대보다 훌륭했다.
혹시 계획이 있다면 칠불사를 버리고 목통으로 하산하기를 권한다. 범왕리 마을회관까지 내려오면 화개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칠불사 코스보다는 1km가량 더 길다.
단독으로 앞만 보고 간다면 무박 화대종주도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산행이다.
올해가 가기 전 천왕봉에 오르는 거로 2021년 지리산행은 마감할 생각이다.
첫댓글 길 찾느라 늘 고생하는 오지 산행, 이번에는 여지없었구나. 계곡 따라 내려가는 길이라니!
(난 밤길은 폰 후레쉬 켜고 갔지. 손에 들고 가는 게 좀 불편해도 밝고 배터리도 많이 먹지 않아)
그래? 배터리 소모가 많을 거 같아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사용 안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