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지금 고3이다.
아들의 초등학교 친구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학생들에겐 아직 '문상'이나 '조문'이란 단어가 지극히 생소할 터였다.
그런데 친구의 황망한 떠남을 위로하기 위해 문상을 다녀왔단다.
며칠 간 일상과 학업이 손에 잡혔을 리 없없다.
내가 봐도 아들의 표정이나 모습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했다.
아들은 잔뜩 우수에 찬 얼굴을 한 채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가슴이 아프다.
못 다 핀 꽃 한 송이.
그 꽃망울은 어째서 스스로 개화를 포기했을까?
내 아들에게서 먼저 떠난 그 친구의 가정환경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얼마간 납득이 가긴 했었다.
하지만 몇 마디 짧은 말로는 그 떠난 학생의 입장을 온전하게 다 헤아릴 순 없었다.
'개콘'에서 인기 개그맨 '박성광 씨'가 유행시킨 말이 있었다.
한 때 우리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폭소와 격한 공감으로 어느 한 시기, 우리 사회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던 강력한 메시지였다.
촌철살인이었다.
짧은 멘트였지만, 그 안에 우리의 뼈아픈 병리와 애절한 슬픔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끝없는 경쟁, 그 쳇바퀴 속으로 학생들을 내몰기에 바빴던 어른들이었다.
잘난 꽃이든 못난 꽃이든, 향기롭든 그렇지 않든, 조건과 형상을 떠나 존재 하나 하나가 가장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모른 척하며 눈을 감은 채 앞만 보며 달렸다.
먹고 살기 위한 뜨거운 질주 탓에 눈 감고 귀 닫았던 어른들.
그들의 생명에 대한 희박한 감사와 무뎌진 감동 앞에서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가 얼마나 크게 공명할 수 있었을까?
힘들었을 것이다.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영혼의 작은 여백조차 없이 부모는 부모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살기 위해서 그리고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 숨가쁘게 매진했을 터였다.
SKY가 아니어도, 대기업이나 많은 연봉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마음 먹고 행동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째서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강조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일까?
빼어난 조건만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님을 잘 설명해 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도 부모가 그리 살았어야 했다.
지금 중,고생을 둔 부모들은, 자신이 자녀들에게 훈육했던 대로 본인의 삶도 그렇게 반듯하게 경작했던 것일까?
그런 부모들이 몇 %나 될까?
나는 단언컨대, 매우 드물다고 본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등'을 보며 성장한다.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진중하고 한결같은 '행동'이 인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창업을 했을 때, 그 사업의 성패는 짧으면 1-2년, 길면 4-5년이면 판가름 난다.
그러나 사람을 낳고 기르는 덴 최소 2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이 필요하다.
그 긴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숱한 대화와 공감이 잘 버무려져야만 비로소 꽃이 핀다.
예외는 없다.
야생의 화초들에겐 가능할지 몰라도 인간의 육아와 교육에선 '우연한 만개'와 벼락같이 임하는 '어쩌다 성공'은 존재할 수 없다.
눈물과 간절한 기도 그리고 따뜻한 사랑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훗날 세상을 더 향기롭게 밝힐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어른이 아니라 준비된 어른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성찰을 해야만 할까.
말보다 행동으로, 일생 동안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뚫어야 하는 게 인생이다.
그러할진대 우리네 삶이 여북하겠는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로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하고 또 절감하게 된다.
만개하지 못한 채 고3 때 먼저 하늘로 떠난 아들 친구의 명복을 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군가에게 세상적인 잣대로 낙인을 찍거나 어줍잖은 조건들로 가차없이 평가하며 비난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내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세상의 보물이며 하늘에서 내게 보내주신 진정한 축복임을 잊지 말자.
오늘도 낮은 마음으로, 매양 감사하면서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살이 별것 아니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모든 학생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힘내자.
2011년 3월 8일,
복잡한 마음으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