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동시 모임 동인 작품집 《나 나왔다》 < 문예지 < 기사본문 - 문학인신문 (munhakin.kr)
7번째 동인집에는 회원 10명의 작품 4편씩을 선두로 산문도 1편씩 곁들였다. 이들 동인은 ‘좋은 동시 쓰기’라는 목표 아래 자칭 장거리 마라톤 중이라고 말한다. 따로 또 같이 가는 동인들의 마음자락이 살포시 동시처럼 다가온다.
동시답게 순수하고 무구한 마음들이 가득하다. 잊고 있던 나비도 날고 여름 산타도 만난다. 신기한 하느님의 꽃꽂이 그릇도 있고 사람의 마음을 만땅으로 충전도 한다. 낯선 동네 이름 대신 달도 살고 산도 있는 동네 이름이 다정하다.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난 아빠도 불러보고 고장 난 경운기의 투정도 동시 안에서 잠시 쉼을 갖는다. 동인지에 참가한 시인은 박두순 서금복 조영수 김순영 문성란 박순영 조은희 정나래 류병숙 전지연 작가다.
(미래동인 저/ 계간문예/ 1만원)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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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하나로 / 박두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어버린
소녀에게 물었다
얼마나 괴롭고 불편하냐고,
아니요
한 팔로도
별을 가리킬 수 있고
한 팔로도
엄마를 꼬옥 안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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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구에서 / 서금복
멀리 안 나가도 꽃구경 할 수 있으니 참 좋네요.
가던 길 멈추고 사진 찍던 아주머니가
지나가던 엄마에게 말을 보낸다.
엄마도 가던 길 멈추고 말을 받는다.
꽃도 예쁘지만 사진 찍는 모습도 예뻤어요.
어머, 그랬어요?
처음 본 엄마와 아주머니가 마주 보며 웃는다.
마스크 사이로 나오는 웃음소리에
벚꽃 구름도 몽실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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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띠가 달리고 있다 / 서금복
할머니네 오면 놀고 싶어서 잠이 안 와요.
그렇다면 이야기 하나 해줄까?
옛날에 동물들이 달리기 시합을 했대.
쥐가 1등, 소, 호랑이에 이어 쭉쭉 들어오다가
돼지가 12등을 했다는구나.
둘씩 짝지어서 외워볼까?
자축, 인묘, 진사, 오미, 신유, 술해.
할머니, 차라리 자는 게 날 것 같아요.
- 쥐는 작고 소는 크고,
호랑이는 무섭고 토끼는 순하고,
용은 하늘을 날고 뱀은 땅을 기고….
할머니가 그 다음엔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말은 혼자, 양은 떼 지어서
원숭이는 나무 사이로, 닭은 땅에서
코가 멋진 개와 코가 납작한 돼지가
달라도 너무 다른 짝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내 꿈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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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벌레 일기 / 조영수
좋아하는 자귀나무
높이를 쟀습니다
흔들리는 자귀나무
넓이를 쟀습니다
옮겨 다니는 자귀나무 그늘
둘레도 쟀습니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자귀나무를 재느라
나를 조금밖에 못 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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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인터뷰 / 김순영
너희들은 누가 해치려고 하면
어떻게 하니?
발로 차?
소리 질러?
도망가니?
주머니 먹물을 확 뿌려.
눈앞을 캄캄하게 하고선
꽁지 빠지게 도망가버리지.
날 지킬 땐
체면 따윈 없어
비겁해 보이면 어때
지키는 건
나를 잃지 않는 거거든.
그래서
늘 주머니에 먹물을 꽉 채워
차고 다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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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름 / 문성란
연탄이
릴레이로 올라갔다는
'산동네'
이름 없는 봉투가
기부 천사로 나타났다는
'달동네'
김장김치가
일만 포기나 전달되었다는
'꽃동네'
산동네 달동네 꽃동네
예쁜 이름 가진 동네엔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 모여드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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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왔다 / 박순영
텃밭 방울토마토들
꽃 속에 숨어 있다가
나 나왔다
동글동글 인사.
오이들도
꽃 속에 숨어 있다가
나 나왔다
길쭉길쭉 인사.
울타리 호박들도
꽃 속에 숨어 있다가
나 나왔다
둥글둥글 인사.
때 되자 돌아와
생기 가득한
인사를 하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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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자동차 / 조은희
도로 주행 연습하는
노란 차 뒤를
트럭 버스 자동차가 갑니다
오리 떼처럼
졸졸 따라 갑니다
외길 따라
서두름도 속도도 늦추며
따라 갑니다
노란 자동차 걸음마를
따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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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기만 해도 / 정나래
발코니 밖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은 까치 두 마리
그대로 오래 앉아 있다
깍깍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도 궁금해
계속 보고 있다.
슬플 때는
곁에 있어만 줘도
위로가 된다는 걸
까치도 알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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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도 / 박순영
탈탈탈탈 타, 아, 아, 알
탈탈탈탈 타, 아, 아, 알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
한참 지나도
탈탈탈탈 타, 아, 아, 알
탈탈탈탈 타, 아, 아, 알
경운기 시동 걸리지 않는다
기계도 쉬고 싶은 날엔
고집을 부리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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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택배 / 류병숙
아참 창 밖
'오늘'이 택배처럼 와 있다.
ㅡ 산뜻한 하늘이야
ㅡ 공기가 싱싱해
새것이라고 식구들이 좋아한다.
밤이 애써 포장해 보낸
'오늘'이란 신상품,
이번 토요일
내 생일도
택배처럼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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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가락 / 전지영
탐스러운 꽃송이
가지 휘게 달린 서양난 화분
길쭉한 꽃대 아래
화분 턱을 베고 누운
작은 풀에게
아이가 물을 줍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 먹입니다
-힘이 생기면 일어나
약을 먹이듯
떠 먹입니다
-네 힘으로 일어나야 해
말도 한 숟가락씩
떠먹이며 약속합니다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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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운 종이 / 전지영
어른들 따라 간 카페
문 앞에서 딱 막혔다
종이 한 장에
발길이 막혔다
NO KIDS ZONE
노 키즈 존
ㅡ형, 영어 모르면
들어오지 말래?
ㅡ 아니, 강아지는 되고
너는 안 된대
종이 한 장이
아이들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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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싫은 단어 하나
NO KIDS ZONE
노 키즈 존
출산율이 낮은 나라에서 이게 필요한 단어일까, 늘 의문입니다.
웰컴 키즈 존~~~~
이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