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대 |
🌱02년 우리 나라 처음으로 전화 개통(서울-인천)
1902년 3월 19일 오늘 우리 나라 처음으로 전화 개통(서울-인천) | |
🌱20년 항일 무장군,은성서 일본 경찰과 교전 🌱44년 학도동원 비상조치 발표 🌱48년 김구 김규식 방북, 남북대표자 연석회의(제1차) 참석 🌱50년 선거법 국회 통과 🌱52년 광무 신문지법 폐기 | |
🌱59년 반공 예술인단(단장 임화수) 결성
1959년 3월 19일 오늘 반공 예술인단(단장 임화수) 결성 | |
🌱62년 원자력연구소, 한국 최초의 원자로 점화시험에 성공 🌱62년 최고회의, 1963년 민정이양 발표 | |
🌱70년 동, 서독 첫 정상회담 개최
동서독으로 분단 당시 양국은 7차례의 공식 정상회담과 6차례의 비공식 정상접촉이 있었으며, 공식회담 가운데 4차례 회담은 베를린장벽 개방 이전에 있었고 3차례는 베를린장벽 개방 이후 동독정권의 붕괴과정이 시작된 후 개최된 회담이다.
1969년 10월 28일 브란트 총리는 취임연설에서 “독일에 2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서로 외국이 아니다. 두 국가는 단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며 소위 ‘2국가론’ 을 제기했다. 이는 기존의 외교원칙인 ‘할슈타인 독트린’ 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할슈타인 독트린(Hallstein Doctrine)이란 서독의 발터 할슈타인이 1955년에 내세운 외교 원칙으로, 서독만이 독일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을 승인하거나 동독과 수교하는 국가와는 관계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정책이다.
1970년 3월 19일 제2차 대전 후 상호 적대시해 온 동서독이 동독국경의 소도시 에르푸르트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49년 동서독 국가탄생 이래 첫 정상회담으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독을 방문했다. | |
🌱71년 원자력발전소 기공(59만5000kw,경남 동래)
한국 최초의 원자로 점화시험에 성공 고리원자력발전소 기공. 경남 양산군 장안면 고리에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고리원전(原電) 1호기가 1971년 3월 19일 경남 동래군 장안면(당시 주소) 고리현장에서 기공됐다.
공사 7년 만인 1978년 4월 29일 처음 상업운전을 시작해 7월 20일부터 설비용량 58만7000kw로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1호기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로 ‘제3의 불’을 점화한 나라로 기록됐다. 1호기에 이어 2호기(1983. 7.25) 3호기(1985.9.30) 4호기(1986.4.29) 등 고리에서만 4기가 준공돼 현재 가동중이고, 전국적으로는 전남 영광에 6기, 경북 울진에 4기, 경북 월성에 4기 등 모두 18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다
1971년 3월 19일, 고리원자력발전소 기공 고리원자력발전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효암리,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로 총 4기로 이뤄져 있다. 이중 최초의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는 1971년 3월 19일 첫 기공식을 가진 이후 87개월간의 건설 공사를 거쳐 1978년 7월 20일 준공됐다.
하지만 상업운전은 전력난을 이유로 준공으로부터 약 3개월 전인 1978년 4월 29일부터 시작했다.
건설 공사는 미국의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전반적인 설계와 시공을 주도했다. 웨스팅 하우스가 원자로계통 설비의 공급과 초기 원전연료 공급을 맡았으며 영국의 GEC가 터빈·발전기 계통 설비의 공급과 토건공사 감독을 맡았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현대 건설이 원자로 계통을, 동아건설이 터빈·발전기 계통 공사를 하도급 형태로 참여했다. 건설 공사에는 미국 정부의 차관 등으로 조달한 총 1560억 7300만 원이 투입되어 당시로선 사상 최대 규모의 단위 사업으로 꼽혔다.
이로써 세계에서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 원전보유국이 되었으며, 지속적인 원전건설을 추진하여 2015년 12월말 기준으로 24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고리는 원자로를 설치하기에 좋은 암반이 있고, 냉각수 사용이 쉽고 기상 조건과 상수원이 좋기 때문에 적지로 선정되었다. 인류가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은 1942년 12월2일 페르미가 미국 시카고대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실험에 성공하면서였다.
발전용량은 1호기 - 587000kW / 2호기 - 680000kW / 3호기 - 950000kW / 4호기 - 950000kW / 신 1호기 - 1000000kW / 신 2호기 - 1000000kW이다. | |
🌱73년 헌법위원회 구성 🌱73년 3급 행정직 시험 첫 여성 합격자 🌱74년 창원에서 성산패총 발굴 | |
🌱75년 주한 유엔군사, 비무장지대에서 북한 제2 땅굴을 발견 했다고 발표
1975년 3월 19일, 북한 제2땅굴 발견, 중부전선 철원동북방 비무장지대 중앙군사분계선 남쪽의 유엔군측 지역 내에 북괴군이 땅굴을 파 들어오고 있다는 확증을 잡았다고 국방부 대변인과 유엔사령부가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철원동북방 13km지점 중앙분계선 남쪽에서 이미 수직 시추작업으로 인지한 북괴땅굴을 확인하기 위해 약 800m길이의 차단터널 굴착작업을 진행했던 바 북괴터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유엔군사령부는 제3백61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인지한 이 땅굴을 특수 카메라로 촬영, 증거로서 제시하고 북괴가 불법적으로 땅굴을 구축했다고 비난했었다.
육군공병대가 굴착으로 발견, 도달한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정확한 크기는 폭이 상부 2.1m, 하부 2.2m, 높이 2m였다고 대변인이 말했다. 1973년 11월 이 지역의 북괴 땅굴작전을 낌새 챈 전방부대에서는 각종 시설로 땅굴굴착폭음을 포착, 이 지하작업이 진행중인 지점을 철원동북방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남쪽의 낮은 구릉지대로 추정하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지하 100m남짓의 굴착작업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남침땅굴] 1997년 미국 해병대가 발간한 《북한 핸드북》에 따르면, 남침 땅굴은 모두 합하여 2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는 4개의 땅굴이 발견되었다. 제1땅굴 : 1974년 11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서 발견. 제2땅굴 :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발견. 제3땅굴 : 1978년 10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서 발견. 그 위치가 서울에서 가깝고, DMZ에서 남쪽 400 m 까지 연장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음. 제4땅굴 : 1990년 3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서 발견. | |
🌱75년 국회, 외국인 상대 반국가 언동을 규제하는 형법개정안 통과 🌱76년 해운항만청 발족 🌱77년 서울시, 4대문안 한옥 940채중 17채를 지방 문화재(민속자료)로 지정 🌱79년 제10대 국회 개원(의장 백두진 선출) 🌱81년 중앙선거관리 위원회, 제11대 국회의원 지역구 후보 634명 등록 🌱81년 삼국사기 최고본(最古) 발견 🌱85년 서울신정.목동철거주민 시위-강서 부구청장 16시간 연금 🌱89년 전민련 전대협 등 재야 11개 단체 5000여명, 한양대에서 '노정권퇴진투쟁대회' 개최 🌱90년 소련 모스크바 라디오, '한인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4월1일부터 방영 한다고 보도 🌱91년 한국화학연구소 이해방 박사팀, 당뇨 치료제인 인슐린을 피부에 붙여 투여하는 치료법 세계최초 개발 🌱91년 정부, 해외 이주 허가절차 등을 완화, 연고자의 초청이 있을 경우 등 신고만으로 가능토록 조치. 🌱91년 국군기무사령부(前보안사)가 민간인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사찰을 계속하고 있다고 동아일보 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