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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천하의 모든 물 중에 동해와 서해와 남해와 북해 네 바다물이 제일 큰지라. 그 네 바다 가운데에 각각 용왕이 있으니 동은 광연왕(廣淵王)이요, 남은 광리왕(廣利王)이요, 서는 광덕왕(廣德王)이요, 북은 광택왕(廣澤王)이라. 남과 서와 북의 세 왕은 무사태평하되 오직 동해 광연왕이 우연히 병이 들어 천만가지 약으로도 도무지 효험을 보지 못한지라.
하루는 왕이 모든 신하를 모으고 의논하되,
“가련토다. 과인의 한 몸이 죽어지면 북망산(北邙山) 깊은 곳에 백골이 진토에 묻혀 세상의 영화며 부귀가 다 허사로구나. 이전에 여섯 나라를 통일치지하던 진시황(秦始皇_기원전 221년에 천하를 통일한, 중국 진(秦)나라의 제1대 황제)도 삼신산에 불사약(不死藥_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선약(仙藥)을 구하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 인을 보내었고, 위엄이 사해에 떨치던 한무제도 백대(柏臺_백량대(柏梁臺). 중국의 한무제가 장안(長安)의 서북쪽에 지은 누대)를 높히 짓고 승로반(承露盤_한무제가 불사약인 이슬을 받기 위해 구리로 만든 그릇)에 신선의 손을 만들어 이슬을 받았으되 하늘 명이 떳떳치 아니하여 필경은 여산(廬山)의 무덤과 무릉침을 면치 못하였거늘 하물며 나같은 한쪽 조그마한 나라 임금이야 일러 무엇하리. 누대(累代_여러 대) 상전(相傳)하던_대대로 이어 전하던) 왕의 기업(基業)을 영결(永訣_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이별함)하고 죽을 일이 망연(茫然)하도다_아무 생각 없이 멍하도다) 고명한 의원을 널리 구하여 자세히 진찰한 후에 약으로 치료함이 마땅하도다.”
하고 하교(下敎_왕의 명령. 전교(傳敎))하여 가로되,
“과인의 병세가 심히 위중하니 경의 무리는 아무쪼록 충성을 다하여 명의(名醫)를 광구(廣求)하여_널리 구하여) 과인을 살려서 군신이 더욱 서로 동낙(同樂)하여 지내게 하라.”
한 신하가 출반주(出班奏_여러 사람이 모인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하여 아뢰어 가로되,
“신은 듣자오니, 오나라 범상국(范相國)이며 당나라 장정군이며 초나라 육처사(陸處士)는 오나라와 초나라 지경에 제일되는 세 호걸이라 하오니, 세 사람을 찾아 문의하옵소서.”
하거늘 모두 보니 선조 적부터 정성을 극진히 하던 공신인데 수천 년 묵은 잉어라. 왕이 들으시고 옳게 여기시어 근신(近臣)한 신하를 보내어 그 세 사람을 청하니 수일 만에 다 왔거늘 왕이 전좌(殿坐) 하시고 세 사람을 인도하여 보실새 왕이 치사(致謝)하여 가로되,
“선생네들이 과인의 청함을 인하여 천리를 멀리 여기지 아니하시고 누지(陋地)에 왕림하시니 불안하고 감사하여 하노라”
세 사람이 공경 대답하여 가로되,
“생의 무리가 진세(塵世) 부생(浮生)으로_덧없는 인생으로) 청운(靑雲_높은 지위나 벼슬을 가리키는 말과 홍진(紅塵_번거롭고 속된 세상)을 하직하고 강산 풍경을 사랑하와 오초강산 궁벽한 곳에 임의로 왕래하며 무정한 세월을 헛되이 보내옵더니 천만뜻밖에 대왕의 명을 받자오니 황송하옵기 가이 없사이다.”
왕이 가라사대,
“과인이 신수 불길하여 우연이 병든 지 지금 수 년이나 되도록 약 신세도 많이 하였건마는 범상한 의술이라 그러한지 종시 효험을 조금도 보지 못하오니, 선생은 죽게 된 목숨을 살려 주시기를 하늘같이 바라노라”
한즉 세 사람이 가로되,
“술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약이오, 색은 사람의 수한(壽限_타고난 수명)을 줄이는 근본이라. 대왕이 술과 색을 과도히 하시어 이 지경에 이르심이니 스스로 지으신 죄악이라 수원수구(誰怨誰咎_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의 뜻) 하시오리까마는 혹은 이르되 사람의 소년 한 때 예사라 하오니 저렇듯이 중한 병이 한 번 들면 회춘하기 어려운 병이로소이다. 푸른 산에 안개 걷히듯 봄바람에 눈 슬 듯_사라지듯. 슬다는 사라지다 또는 스러지다의 옛말) 오장육부가 마디마디 녹아지니 화타(華陀_중국 후한(後漢) 때의 의원으로 조조(曺操)의 시의(侍醫)가 되었으나, 후에 그의 노염을 사서 살해됨)와 편작(扁鵲_중국 전꾹시대(戰國時代)의 명의)이 다시 살아나도 용수(用手_손쓰다. 조치나 방도를 취하다)할 수 없사옵고, 금강초와 불사약이 구산(丘山)같이_산더미같이) 쌓였어도 즉효(卽效)할 수 없사옵고, 인삼과 녹용을 장복(長服_같은 약이나 음식을 오랫동안 계속하여 먹는 것)하여도 재물이 쌓였어도 대속(代贖_남의 죄를 대신하여 당하거나 속죄하는 것)할 수 없고, 용력(勇力)이 절인(絶人_남보다 뛰어난 사람)하여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리저리 아무리 생각하여도 국운이 불행하고 천명이 궁진(窮盡_다하여 없어짐)하심인지 대왕의 병환이 평복(平復_병이 나아 건강이 회복되는 것)되시기가 과연 어렵도소이다.”
왕이 들으시고 정신이 산란하여 가로되,
“그러면 어찌할고? 죽을 자는 다시 살지 못하리로다. 이 세상 일년 일도(一到) 저같이 좋은 이삼월 도리화(桃李花)와 사오월에 녹음방초(綠陰芳草_우거진 나무 그늘과 아름다운 풀)와 팔구월에 황국단풍(黃菊丹楓)과 동지섣달 설중매화(雪中梅花)며, 저렇듯이 아리따운 삼천 궁녀의 아미분대_미인의 화장한 교태)를 헌 신짝같이 바리고 속절없이 황천객이 되오리니 그 아니 가련하오. 설혹 효험이 없을지라도 선생은 묘한 술법을 다하여 약방문(藥方文_약을 짓기 위하여 약 이름과 분량을 적은 종이)이나 하나 내어 주시면 죽어도 한이 없겠노라.”
하니 세 사람이 웃으며 가로되,
“생의 말을 들으실진대 방문(方文)이나 하여 올리리이다. 상한 병에는 시호탕(柴胡湯_감기나 말라리아의 치료에 쓰이는 탕약)이요, 음허화동(陰虛火動_음허로 나는 병)에는 보음익기전(補陰益氣煎_보혈이 되면서 외감(外感)을 푸는 탕약)이요, 열병에는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_주독(酒毒)을 푸는 약)이요, 원기부족증에는 육미지탕(六味之湯_숙지황, 산약, 백복령, 택사 등으로 짓는 가장 흔히 쓰는 보약)이요, 체증에는 양위탕(養胃湯_인삼을 주제(主劑)로 하여 달인 탕약)이요, 각통에는 우슬탕(牛膝湯_도가니탕)이요, 안질에는 청간명목탕(淸肝明目湯_간화(肝火)를 다스리는 탕약)이요, 풍증에는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_몸에 열이 많아서 부스럼이 나고 얼굴빛이 붉어지며, 배설이 잘 안될 때 쓰는 약)이라. 천병만약에 대증투제(對症投劑_질병의 증세에 따라 약제를 지어 주거나 쓰는 것)함이 다 당치 아니하옵고, 신효(神效)할신통한 효험이 있을) 것 한가지가 있사오니 토끼의 생간이라. 그 간을 얻어 더운 김에 진어(進御임금이 먹고 입는 일을 높여 이르는 말)하시면 즉시 평복되시오리이다.”
왕이 가로사대,
“어찌하여 그 간이 좋다 하느냐?”
대답하여 여쭈오되
“토기란 것은 천지개벽한 후 음양과 오행(五行_우주간에 운행하는 金․木․水․火․土의 다섯 가지 원기(元氣))으로 된 짐승이라. 병을 음양오행의 상극(相剋)으로도 고치고 상생(相生)으로도 고치는 법이라. 토끼 간이 두루 제일 좋은 것이온데 더구나 대왕은 물 속 용신이시오 토끼는 산 속 영물이라. 산은 양이요 물은 음이올 뿐더러 그 중에 간이라 하는 것은 더욱 목기(木氣)로 된 것이온즉 만일 대왕이 토끼의 생간을 얻어 쓰시면 음양이 서로 화합함이라. 그럼으로 신효하시리라 하옵나이다.”
하고 말을 마치고 하직하여 가로되,
“녹수청산(綠水靑山) 벗님네와 무릉도원(武陵桃源_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신선이 산다는 곳) 화류촌(花柳村)에서 만나기로 금석같이 언약하고 왔삽기로 무궁한 회포를 다 못 펴 드리옵고 총총히 하직하니 바라건대 대왕은 옥체를 천만 보중(保重)하옵소서.”
하고 섬에 내려 백운산으로 표연히 향하더라.
왕이 그 세 사람을 보내고 즉시 만조백관(滿朝百官_조정의 모든 벼슬아치)을 모아 놓고 하교하여 가로되,
“과인의 병에는 토끼 생간이 제일 신효한 약이요 그 외에는 천만가지 약이 다 쓸 데 없다 하니 나를 위하여 뉘 능히 토끼를 살게 잡아 올꼬?”
문득 일원대장이 출반주하여 가로되,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한 번 인간에 나아가 토끼를 살게 잡아오리이다.”
하거늘, 모두 보니 머리는 두루주머니 같고 꼬리는 여덟 갈래로 돋힌 수천 년 묵고 묵은 문어라.
왕이 대희하여 가로되,
“경의 용맹은 과인이 아는 바라. 급히 인간에 나아가 토끼를 살게 잡아 오면 그 공이 적지 아니하리라.”
하고, 장차 문성장군(文盛將軍)을 봉하려 할 즈음에, 문득 한 장수가 뛰어 내달아 크게 외쳐 가로되,
“문어야. 네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威風_위엄이 있는 풍채나 기세)이 약간 있다한들 제일 언변도 넉넉치 못하고 의사(意思)도 부족한 네가 무슨 공을 이루겠다 하며, 또한 인간 사람들이 너를 보면 영락없이 잡아다가 요리조리 오려내여 국화 송이며 매화 송이처럼 형형색색으로 갖추갖추 아로새겨 혼인 잔치 환갑잔치에 크고 큰 상 어물접시 웃기_음식의 모양을 돋보이게 하고자 위에 꾸미는 재료)거리로 긴요하고, 재자가인(才子佳人)의 놀음상과 공문거족(公門巨族)의 식물상과 어린아이의 거둘상과 오입장이 남 술안주에 구하느니 네 고기라. 무섭고 두렵지도 아니하냐, 이 어림 반푼어치 없는 것아. 나는 세상에 나아가면 칠종칠금(七縱七擒_제갈량(諸葛亮)이 맹획(猛獲)을 일곱 번이나 사로 잡았다가 놓아 준 데서 나온 고사.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 주었다 함)하던 제갈량(諸葛亮_자(字)가 공명(孔明)으로,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과 같이 신출귀몰한 꾀로 토끼를 살게 잡아 오기 용이하다.”
하거늘 모두 보니 그는 수천 년 묵은 자라이니 별호는 별주부라.
문어가 그 말을 듣고 분기가 대발하여 긴 꼬리 여덟 갈래를 샅샅이 엉벌리고 검붉은 대가리를 설설이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니 물결이 뛰노는 듯, 웅어눈_웅어(熊魚)처럼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어 가로되,
“요망한 별주부야, 내 말 잠깐 들어 보아라, 포대기 속에 있는 어린아이가 장부를 저희(沮戱_훼방을 놓아 해롭게 함)할 줄 뉘 알았으리오. 진소위(眞所謂_정말 그야말로) 범 모르는 하룻강아지요, 수레 막는 쇠똥벌레로구나. 네 죄를 의논하고 보면 태산도 오히려 가볍고 황하수(黃河水)가 도리어 얕다 하겠으니 그것은 다 그만 덮어 두고 첫 문제로 네 모양을 볼작시면 사면이 넓적하여 나무접시 모양이라. 작고 못 생기기로 둘째 가라면 대단 싫어할 터이지. 요따위 자격에 무슨 의사가 들어 있으리오. 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면 잡아다가 끓는 물에 솟구쳐서 자라탕을 만들어 동반(東班) 서반(西班) 세가자제(勢家子弟) 구하나니 네 고기라. 무슨 수로 살아오랴?”
자라가 가로되,
“너는 우물 안 개구리라.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알지 못하는도다. 지나(支那)에서 세상을 주름잡던 초패왕(楚패王_중국 진시황의 뒤에 일어난 유명한 장수 항우(項羽)의 높인 이름)도 해하성(垓下城)에서 패하였고 유럽에서 각국을 응시하던 나파륜(拿破崙_나폴레옹의 음역(音譯))도 해도(海島) 중에도 갇혔는데 요망한 네 용맹을 뉘 앞에서 번쩍이며, 또는 무슨 지식이 있노라고 내 지혜를 헤아리느냐. 참으로 내 재주를 들어 보아라. 만경창파(萬頃蒼波_끝없이 너른 바다) 깊은 물에 기엄둥실 사족을 바투 끼고 긴 목을 움치며 넓적이 엎드리면 둥글둥글 수박이오 편편납작 솥뚜껑이라. 나무 베는 목동이며 고기 잡는 어부들이 무엇인지 모를 터이니 장구하기는 태산이오 평안하기는 반석이라. 남 모르게 다니다가 토끼를 만나 보면 어린아이 젖국 먹이듯 뚜장이 과부 호리듯 이 패 저 패 두루 써서 간사한 저 토끼를 두 눈이 멀겋게 잡아올 것이요, 만일 시운이 불행하여 못 잡아 오는 경우이면 수궁에 돌아와서 내 목을 대신하리라.”
문어 할 수 없이 주먹 맞은 감투가 되야 슬쩍 웃으며 뒤통수를 툭툭 치고 흔들흔들 달아나거늘 만조백관이 주부의 의사와 언변을 한없이 칭찬하더라. 자라가 다시 엎드려 왕께 아뢰어 가로되,
“소신은 물 속에 있는 물건이옵고 토끼는 산 속에 있는 짐승이온즉 그 형용을 자세히 알 수 없사오니 화공을 패초(牌招_조선 왕조 때 승지(承旨)를 시켜 왕명으로 신하를 부름)하시와 토끼 형용을 그려 주옵소서”
하는데 용왕이 옳게 여기어 화공을 패초하시니, 지나로 이르면 인물 그리던 모연수(毛延壽_한나라 때의 화가)와 대 잘 그리던 문여가(文與可_송나라 때의 화가로 대와 산수를 잘 그린 문동(文同). 여가는 그의 자(字))며, 조선으로 이르면 산수 그리던 겸재(謙齋_조선 중기의 산수화가 정선(鄭敾). 겸재는 그의 호))와 나비 잘 그리던 남나비_남계우(南啓宇:1815-1888)의 별호. 남구만의 5대손으로 나비와 화초를 잘 그려 남나비라 불렀다)며, 그 외에 오도자(吳道子_중국 당(唐)나라 때의 화가 오도현(吳道玄). 그는 불화․산수화 등에서 당대(唐代) 제일이라 일컬어졌었다. 도자는 그의 자(字)) 김홍도(金弘道_조선 영조 대의 서화가(書畵家). 호는 단원(檀園))와 같이 유명한 여러 화공들이 제제(濟濟)히_많고 성하게) 등대(等待_미리 준비하고 기다림)하거늘, 왕이 명하여 토끼의 화상을 그려 들이라 하시니, 화공들이 전교를 듣고 한 처소로 나와 보니 각색 제구 찬란하다. 고려자기 연적이며 남포청석(藍浦靑石_충청도 남포에서 생산되는 검은색 돌) 용연(龍硯_용이 새겨진 벼루)이며 한림풍원(翰林風月_황해도 해주에서 나던 먹 이름) 해묵(海墨_석판 인쇄에서 쓰는 특수한 기름 먹)이며 중산 황모 무심필과 백릉설한(白綾雪寒_눈같이 하얀) 대장지(大壯紙_보통 장지보다 특별히 큰 장지)며, 청황적백 녹자주홍 여러가지 물감이 전후좌우에 벌려 있더라.
이에 화공들이 둘러앉아서 토끼 화상을 그리는데 각기 한 가지씩 맡아 그려 토끼 한 마리를 만들어 내는데, 하나는 천하명산 승지(勝地_경치 좋은 이름난 곳) 간에 경개(景槪) 보던 저 눈 그리고, 또 하나는 두견 앵무 지저귈 때 소리 듣던 저 귀 그리고, 또 하나는 난초 지초 등 온갖 향초 꽃 따먹는 입 그리고, 또 하나는 방장 봉래_영주산과 함께 중국에서 가상으로 지은 삼신산(三神山)) 운무 중에 냄새 맡던 코 그리고, 또 하나는 동지섣달 설한풍(雪寒風)에 방풍(防風)하던 털 그리고, 또 하나는 만학천봉(萬壑千峰_첩첩이 겹쳐진 깊고 큰 골짜기와 많은 봉우리) 구름 깊은 곳에 펄펄 뛰든 발 그리니, 두 눈은 도리도리, 앞다리 짤막, 뒷다리 길쭉, 두 귀는 쫑긋, 뛸 듯 뛸듯 천연한 토끼라.
왕이 보시고 크게 기뻐하사 모든 화공에게 각기 천금씩 상급하고 그 화본을 자라를 주며,
“어서 길을 떠나라.”
하신대, 자라 재배하고 화본을 받아 들고 이리 접고 저리 접쳐 등에다 지자하니 수침(水沈_물에 가라앉음)이 될 것이라. 이윽히 생각다가 움친 목을 길게 늘려 한 편에 집어넣고 도로 움츠리니 전후가 도무지 염려 없는지라.
용왕이 신기히 여기사 친히 잔을 들어 권하여 가로되,
“경은 정성을 다하여 큰 공을 이루어 수이 돌아오면 부귀를 한가지로 하리라.”
하시고 즉시 호혜청(互惠廳)에 전교하시어 전곡(錢穀)의 다소를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별주부에게 사송(賜送)하시니_임금이 신하에게 물건을 내리어 보내시니), 별주부 천은에 대단히 감격하여 사은숙배(謝恩肅拜_임금의 은혜를 사례하여 공손하게 절함)하고 만조백관을 작별한 후, 집에 돌아와 처자를 이별할 때, 그 아내가 당부하여 이르되,
“인간은 위지(危地)니 부디 조심하여 큰 공을 세워가지고 수이 돌아오시기를 천만 축수(祝手) 하옵나이다.”
하거늘, 자라가 대답하되,
“수요장단(壽夭長短_오래 삶과 일찍 죽음)이 하늘에 달렸으니 무슨 염려가 있으리오. 돌아올 동안 늙으신 부모와 어린 자식들을 잘 보호하라.”
하고 행장을 수습하여 소상강(瀟湘江_중국 동정호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을 함께 부르는 말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과 동정호 깊은 물에 허위둥실 떠올라서 벽계산간(碧溪山間_푸른 시내가 흐르는 산골)으로 들어가니 이때는 방출화류(放出花柳_꽃과 버들이 피다) 좋은 시절이라.
초목군생(草木群生) 온갖 물건들이 다 스스로 즐거움을 가져 있으니, 작작(灼灼)한_꽃이 핀 모양이 화려하고 찬란한) 두견화는 향기를 띠었는데 얼숭얼숭 호랑나비는 춘흥을 못 이기어서 이리저리 흩날리고, 청청한 수양 늘어진 시냇가에 날아드는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벗 부르는 소리로 구십춘광(九十春光_봄의 석달 90일 동안)을 희롱하고, 꽃 사이에 잠든 학은 자취소리에 자주 날고, 가지 위에 두견새는 불여귀(不如歸)를 화답하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_별세계.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問如何事棲碧山 笑而不答自閑, 桃花流水沓然去 別有天地非人間”에서 나온 말)이라.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現身)하고, 조팝나무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오, 방울새 떨렁, 물떼새 찍걱, 접동새 접둥, 뻐국새 벅, 까마귀 골각, 비둘기 국국 슬피 우니 근들 아니 경(景)일소냐. 천산과 만산에 홍장(紅粧_붉게 피어 있는 꽃의 비유) 찬란하고 앞 시내와 뒤 시내에 흰 깁_명주 실로 바탕을 좀 거칠게 짠 비단)을 펴인 듯,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는 천고의 절개요,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순식간 봄이라. 기괴한 바윗돌은 좌우에 층층(層層)한데 절벽 사이 폭포수는 이 골 물 저 골 물 합수(合水)하여 와당탕퉁텅 흘러가는 저 경개 무진(無盡) 좋을시고.
그 구경 다 하고 나무 수풀 사이로 들어가면 사면으로 토끼 자취를 살피더니 한 곳을 바라보니 각색 짐승 내려온다. 발발 떠는 다람쥐며, 노루 사슴 이리 승냥이 곰 도야지 너구리 고슴도치 사지 주지_사자(獅子). 사지와 주지는 각각 사자를 가리키는 말임) 원숭이 범 코끼리 여우 등이 담비_족제비과의 동물. 족제비와 비슷하며 황갈색이나 겨울에는 담색(淡色)으로 변함) 성성이_유인원과의 짐승. 수상(樹上) 생활을 하는 오랑우탄)라. 좌우로 오는 중에 토끼 자취 알 수 없어 움친 목을 길게 늘여 이리저리 휘둘러 살피더니 후면으로 한 짐승 들어오는데 화본과 방불(彷佛)하다.)비슷하다) 토끼 보고 그림 보니 영낙 없는 네로구나. 자라 혼자 마음에 매우 기뻐하여 진가(眞假_진짜와 거짓)를 알려할 때 저 짐승 거동 보소. 혹 풀도 뜯적이며 싸리순도 뜯적이며 층암절벽 사이에 이리저리 뛰어 뺑뺑 돌며 할금할금_남의 눈치를 살피려고 연해 곁눈질을 하는 모양) 강똥강똥_채신 없이 경솔하게 뛰는 모양) 뛰놀거늘 자라 음성을 높혀서 점잖게 불러 가로되,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