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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장안산(長安山) / 영취산(靈鷲山)
2023-09-19 셋째 화요일 / 흐림 ( 20º ~ 29º)
장안산(1.237m) / 영취산(靈鷲山,1,076m) (1일 2산)
코스 : 무룡고개 - 샘터 - 1데크쉼터 - 억새군락지 - 2데크쉼터 - 장안산(원점회기)
무룡고개(벽계쉼터) - 영취산(원점회기)
※ 산행후 의암주논개생가지와 장수 도깨비전시관 관람
함께한 분들
달친 / 별친 / 민대감 / 피오나 / 이프로 / 이프로 지인2분/ 청마(靑馬).
차량지원(운전) : 달친 / 이프로
사진 촬영 청마(靑馬)
금산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금산인삼랜드휴게소(錦山人蔘랜드休憩所)는 충남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 금성면 대암리에 위치한 통영대전고속도로의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양방향 모두 휴게소가 존재하며, 2011년 10월 31일부터 고속버스 환승이 가능해졌다. 개통 당시 명칭은 인삼랜드휴게소였으나, 2020년 9월 25일에 현재의 금산인삼랜드휴게소로 변경되었다.
장안산( 長安山 1.237m)
장수군 3개면 경계상에 우뚝 솟아 있는 장안산은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에서 분기되어 금남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있는 영산이며 1986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상 북동쪽 주능선에는 광활한 억새밭이 있는데 아침햇살에 반사되어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풍경은 장관을 이룬다. 장안산군립공원은 덕산계곡과 방화동가족휴가촌, 지지계곡 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정상 남서쪽 기슭에 있는 덕산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용소가 수없이 이어지고, 방화동에는 가족휴양촌이 있다. 장안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는데, 동쪽으로는 백운산에서 영취산과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팔공산과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 산줄기가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덕유산서봉과 남덕유산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시원스럽게 바라보인다.
장안산은 주변 일대의 계곡과 숲의 경관이 빼어나게 수려하여 덕산계곡, 용소의 비경 등이 있는 일대가 군립공원으로 지정 개발되어 여름에는 피서지, 가을에는 장안산 억새와 단풍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안산에 또 하나의 명물은 산등에서 동쪽 능선으로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이다. 흐드러지게 핀 갈대밭에 만추의 바람이 불면 온 산등이 하얀 갈대의 파도로 춤추는 장관은 등산객들을 경탄케 한다. 장안산에서 발원하여 용림천으로 흘러드는 풍치절경의 골짜기가 덕산계곡이다. 이 계곡에 '덕산용소'가 있다. 덕산용소는 '큰 용소'와 '작은 용소'로 이루어져 있다. '큰 용소'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을 휘감아 도는 맑은 계류 위로 넓은 암반이 펼쳐진다. 장수군의 산자락 일대에는 논개의 사당과 생가 등이 있어 문화 유적 답사도 겸할 수 있는 산이다.
덕산계곡 : 장수읍에서 논개사당 뒤로 6km쯤 가파른 덕산고개를 넘어가면 몇 채의 집이 있는 덕산마을이 나온다. 영화 '남부군' 에서 6.25 때 회문산에서 철수한 전북도당이 덕유산에서 이현상 부대인 남부군과 합류, 빨치산 오백명이 1년 만에 처음으로 옷을 벗고 목욕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이 계곡이다. 그만큼 덕산계곡은 깊고, 은밀하며 물은 맑고 깨끗하다.
방화동가족휴가촌 : 장안산 상류에서부터 죽산리까지 30리 골짜기 중간 쯤에 물길이 S자를 그리며 흘러가는 편편한 곳에 방화동이 있다. 주변 자연수림과 물길이 어우러져 천혜의 경관을 이루는 곳에 가족 휴양을 위한 휴가촌을 조성해 놓았다. 진입로가 말끔히 포장되어 접근하기가 쉬우며 휴가촌에는 체육광장, 자동차 야영장, 넓은 주차장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가족호텔과 휴양콘도미니엄 등도 건설되고 있다.
지지계곡 :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의 무룡고개를 상류로 서남쪽에 장장 오십리를 감돌아 번암면 소재지로 나오는 골짜기를 지지계곡이라 한다. 88 고속도로에서 진입할 수도 있고 남원에서 국도로 장수 가는 길목으로 가다가 번암 소재지가 나오면 여기서 오른쪽 골짜기로 꺾어 올라가면 여기서부터 지지계곡이 시작된다. 번암교를 건너 동화초등학교가 있는 동화리와 길다란 동화댐을 끼고 오르면 군데군데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지지리를 거쳐 3거리 청옥마을에 당도하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수림속에 4줄기 물줄기가 내려 쏟아지는 청옥폭포를 만난다.
영취산(靈鷲山,1,076m)
영취산은 경상남도 함양군 사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번안면 지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1,075m의 산이다. 인도의 영취산과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 되었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으로 함양의 진산인 백운산에서 백두대간이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도중에 거치는 산이다. 영취산 정상에는 정상 표지석이 있고 북으로 남덕유산이 서쪽으로는 장안산이 남쪽으로는 백운산이 조망된다. 영취산은 준말로 영산 또는 취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 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로써 걸맞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의암주논개생가지와 장수 도깨비전시관 관람
논개생가지 :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은 의암 주논개가 태어난 마을이다. 1574년 9월 3일의 4갑술의 특이한 사주를 타고난 논개는 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 마을은 오동제에 수몰되고 조부가 살던 곳에 논개생가지 확장 정화사업으로 20,000평이 조성되어 문화유적지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시설물로는 생가, 기념관, 비각, 논개석, 의랑루, 단아정, 부모묘 등이 있고 매년 음력 9월 3일을 전후하여 3일에서 7일간 논개 대축제가 거행되고 있다.
논개 생가지는 대곡저수지를 만들면서 마을 전체가 수몰되어 현재의 위치에 복원했다. 의암 주논개 생가지에는 생가 뿐만 아니라 생가지를 들어가는 의랑루(義嫏樓)가 있고 연못과 정자, 주논개 석상 그리고 의암 주논개의 사료를 전시한 전시관 및 생가가 있다.
의암 주논개는 1574년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탄생, 1593년 6월 남편 최경회 현감을 따라 진주성 전투 참전 중 사망하자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군 승전연에 참석, 왜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했다.
논개(論介)
진주목(晉州牧)의 관기(官妓)로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한 의기(義妓)이다. 진주성이 왜적에게 짓밟힐 때 기녀로서 적장을 유인하여 남강(南江)에 빠져 산화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널리 유포되었다. 구전되어오던 논개의 순국 사실이 문헌이나 금석문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620년경부터라고 추정된다.
사회의 멸시를 받던 기녀의 몸으로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충성심에 감동한 유몽인(柳夢寅)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채록하여 문자화된 것이었다. 한편 진주 사람들이 논개의 애국적 행위를 기리고 전하기 위하여, 순국한 바위에 ‘義巖(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논개를 추모하는 지역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중의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는 논개의 순국 사실이 누락되었다. 이는 유교 윤리에 젖은 일부 편집자들이 관기를 정렬(貞烈)로 표창함이 불가하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집권 사대부들의 편견 때문에 논개의 애국 충정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것이었다.
일부 사대부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진주성민들은 성이 함락된 날이면 강변에 제단을 차려 논개의 의혼(義魂)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국가적인 추모 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진주성민들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은 경종 이후의 일이었다. 진주성민들은 절의(節義)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친 논개의 의로운 행위를 정부가 마땅히 표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진주성민들의 요청을 받은 경상우병사 최진한(崔鎭漢)은 1721년(경종 1)에 기녀 신분으로 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논개의 의열에 대한 국가의 포상을 비변사에 건의하였다.
이때 거론된 구체적인 포상 방법은 봉작(封爵)을 내려주고 사당(祠堂)을 건립해주는 것이었다. 최진한의 건의를 받은 비변사는 보다 확실한 인증 자료를 요구하였다. 이에 최진한은 관민합동으로 「의암사적비(義巖事蹟碑)」를 건립하고, 그 인본을 제출하여 자손의 급복(給復)에 대한 특전을 허락받기에 이르렀다. 이는 진주 지역민들의 숙원인 논개에 대한 봉작과 사당을 세워 사액(賜額)을 받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가 논개의 순국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의기가 논개를 지칭하는 공식 호칭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논개 자손에 대한 급복의 특전이 베풀어진 20여 년 뒤, 의혼을 봉안하는 사당이 건립되었다.
1739년(영조 16)에 경상우병사 남덕하(南德夏)의 노력으로 의기사(義妓祠)가 의암 부근에 세워지고, 논개 추모제가 매년 국고의 지원을 받아 성대히 치루어지면서 국가의 공식적인 포상 절차가 마무리된 것이었다. 의기사는 그 뒤 홍화보(洪和輔)·홍백순(洪百淳)·이지연(李止淵) 등이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까지 촉석루(矗石樓) 옆에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이후 현재까지 논개의 출생이나 성장 과정에 대한 다양한 이설이 제시되었다. 논개는 전라도 장수 출신이며, 양반 가문 출신이고, 성은 주씨(朱氏)이며, 최경회(崔慶會) 혹은 황진(黃進)의 애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문헌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논개의 출신 성분에 대한 지나친 미화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조선 선조 때의 관기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된 후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1593년 6월 관군과 의병의 결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분개한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서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이때부터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1721년(경종 1) 의암사적비가 세워졌으며, 1739년(영조 15) 무렵 논개의 애국충정을 기리는 의기사라는 사당이 세워졌다. 1868년(고종 5) 매년 6월 논개를 기리는 의암별제가 마련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중단되었다.가 최근에 진주논개제로 부활되었다.
전북 장수 출신으로 성은 주씨. 1593년(선조 26) 진주싸움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1593년 6월 김천일(金千鎰)·최경회·황진·고종후 등 관군과 의병의 결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등이 이끄는 일본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의분한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서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이때부터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1721년(경종 1) 경상우병사 최진한(崔鎭漢)이 의암사적비를 세웠으며, 1739년(영조 15) 무렵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논개의 애국충정을 기리는 의기사라는 사당을 세웠다. 1868년(고종 5) 진주목사 정현석의 노력으로 매년 6월 논개를 기리는 의암별제가 마련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중단되었다.
장수 도깨비 전시관
개관시간: 9:00~18:00
입장시간
하절기 10:00~17:30
동절기 10:00~17:00
휴관일
월요일, 설, 추석
위치 : 전북 장수군 장계면 논개생가길
31-12
문의
장수 도깨비 전시관
063-352-2143
일반, 청소년, 군인 1000원
단체 500원
만 65세, 어린이 무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세계 신화나 전래동화를 책과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들었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 등으로 우리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보다 다른 나라의 신화나 전래동화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양한 문화를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전해 내려오는 신화나 전래동화에 대해 더 잘 알고 기억해 대대손손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북 장수에도 우리이야기를 전해주는 곳이 있다. 그것도 신기한 도깨비 이야기다. 오늘은 신기하고 기묘한 도깨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장수 도깨비 전시관'을 소개한다.
장수 도깨비전시관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이야기를 소재로 꾸며진 공간이다. 수많은 도깨비 이야기들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는 이색적인 전시관이다. 아이들에게는 도깨비에 대해 알아가는 학습의 기회로, 어른들에게는 옛 이야기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볼 수 있다. 도깨비도서실, 도깨비 이야기 및 도깨비 퀴즈 등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또 장수 도깨비 전시관은 논개생가지 뒤편에 조성돼 있어 전시관뿐만 아니라 논개생가와 주촌민속마을까지 구경할 수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장수 도깨비전시관은 총 10가지의 프로그램으로 구성 돼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에서는 전설, 도깨비의 특색을 알아보는 코너, 생활 속에서 알아보는 도깨비 이야기, 도깨비 전래동화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도깨비 마을 속으로'에서는 게임형식의 4면 영상 쇼를 통해 4명의 도깨비가 내는 자기소개 퀴즈를 풀어야만 문을 통과할 수 있다. 도깨비 퀴즈를 맞춰야만 전시를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어 전시관 입장부터 흥미를 자극한다.
'장수전설관'에서는 장수군의 주요 전설을 모형화한 공간으로 4가지의 전설(뜬봉샘, 최영장군, 타루비, 와암전설)을 모형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장수에 전해내려오는 신비한 전설들을 생생한 모형으로 들을 수 있다. 상전을 따라죽은 하인의 이야기인 타루비의 이야기부터 뱀에게서 자신들을 구해준 선인을 위해 울다가 바위가 된 와암전설까지 기이한 전설들을 만날 수 있다.
'12도깨비관'을 가면 12가지의 도깨비 모형을 통해 도깨비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도깨비의 모습을 확인해보는 흥미로운 코너다. '도깨비 마당'은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던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민속, 문화를 알아보는 공간이다. 각 코너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곳에서는 도깨비감투 이야기, 탕건바위 이야기, 도깨비로 변하는 물건 등을 통해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도깨비전시관을 관람하다 보면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다, 가족, 친구 단위로 방문한 방문객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재미난 공간이다. 자동센서를 통해 나타나는 프로그램, 직접 참여해보는 알쏭달쏭 도깨비 퀴즈,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도깨비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도깨비 전시관 관람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무료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종이컵 도깨비 만들기, 도깨비 방망이 만들기, 도깨비 가면 만들기 등으로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깨비 전시관 관람을 하면서 각종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와 설명을 듣고 난 이후 바로 이어지는 만들기체험이라 상상 속에만 있던 도깨비를 만들어보는 더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무료 체험이라고 하니 더 알차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하면 별자리, 그리스 신화, 드라큘라 등 다양한 전설과 신화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된다. 강시, 유령, 드라큘라, 각종 귀신과 신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지만, 우리의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각종 도깨비에 대해 알고 보면 더 매력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는 사실! 동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나 보는 것도 좋지만, 장수 도깨비전시관에서 환상의 도깨비 나라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에 대해 직접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번에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사진 작업이 늦어져 이재야 올립니다.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