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1일
대구수목원 산길에서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한시,
'춘망사(春望詞)를
송독하다.
春 望 詞(춘망사)
봄을 기다리며
薛濤(설도, 770~830)
風 花 日 將 老
佳 期 猶 渺 渺
不 結 同 心 人
空 結 同 心 草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꽃다운 기약은 아득히 먼데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공연히 동심초만 맺고 있네
이 시는 제목이 ‘춘망사’, ‘봄을 기다리며’ 이다. 시 제목으로 보면 봄을 맞이하는 영춘시(迎春詩)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영춘시가 아니라 한 여인이 따뜻한 봄날, 사랑하는 임에 대한 그리움, 이별의 안타까움을 섬세하고 애틋하게 나타낸 연정시이다. 원래 네 수인데 이 시는 세 번째 시이다. 당나라 현종 때의 기녀이자 빼어난 여류 시인이었던 설도의 작품이다. 설도는 14살에 관료이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16살에 기녀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아름다운 데다가 문학적 재능이 이미 돋보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어느 날, 뜰을 거닐다 오동나무를 보고, “뜰 안 오래된 오동나무 한 그루, 우뚝한 줄기는 구름까지 닿을 듯하네”라고 읊고는 다음 구절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여덟 살 베기 어린 딸 설도가 “가지는 남북에서 날아드는 새들을 맞고, 잎사귀는 오가는 바람을 배웅하네.”라고 읊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설도의 아버지는 어린 딸의 재능을 알아 차리고 딸에게 시를 가르치며 사랑으로 가르쳤지만 설도의 운명은 기녀의 세계로 들어가고 만다. 이 시는 설도의 ‘우물의 오동나무를 읊다’라는 ‘정오음(井梧吟)’ 시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설도는 비록 기녀의 몸이지만, 워낙 시를 잘 지어 당시 당나라의 내노라 하던 백거이, 두목 등과 같은 문인, 거유들과 어울려 많은 시를 남겼다. 오늘날, 청두 두보초당 인근에 있는 망강루공원은 설도가 만년에 ‘음시루’(吟詩樓)라는 정자를 지어 살던 곳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설도의 시와 동상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설도의 명성은 조선에서도 인기가 높아 많은 시인 묵객들이 설도를 좋아하고, 그의 시를 사랑하였다. 1960년대 초 유명한 봄의 가곡 ‘동심초’는 작곡가 김억교수가 이 설도의 시를 번역하여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