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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란 하늘이 주는대로 살아가는 것이라
봄은 가고 있고 봄은 오고도 있는 것이다.
진달래 아직 피어나는 팔공산 서부능선을
오랜만에 닫힌 오도암을 다녀왔다.
헤르만 헤세 가 불교나 동양사상에 오래동안 심취한 방랑자이다. 철학적사상이나 사유의 그늘에서 사는 시인은 언제나 위안慰安을 스스로 가진다. 젊은 날 심취한 헤세에게 또 다시 젊은 날을 얻기위해 문신같은 글귀를 읽고 읽고 또 읽는다. 마치 알수없는 내용투성인 젊은 날 밤새워 쓰다만 연서를
읽고 읽고 또 읽는 위안을 가진다. 헤세가 쓴 '싯타르타 ' 에는 철학의 노래가 들린다. "지식은 전해줄수 있지만, 지혜는 전해줄수 없어, 지혜란 사람들이 스스로 발견 하는거야, 사람들은 삶을 통해 지혜를 터득할수 있고, 지혜로 인해 행실에 영향을 받을수 있지," " 구하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갇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칫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누구나 마법을 부릴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이룰수 있어요. 생각하고, 기다리고, 딘식정진 할수 있다면 말입니다."
'싯타르타' 는 헤세의 단편집 이지만 종교의 기본이 담겨있다. 기독교의 교리나 불교나 힌두교, 도교의 본질의 공통점이 비슷하게 마음의 위안을 준다.
헤세는 자연속에서 언제나 위안을 받으려 한다. 찬란한 글로 언제나 그때의 모습을 느끼는 감성으로 마치 한편의 시처럼 나타낸다. "ᆢᆢ산에서 숱한 회오리바람이 나를 스치고 내려가고, 저 너머 푸른 하늘 조각이 다른 나라의 땅을 내려다 본다. 저 하늘 아래에서 나는 종종 행복해하고, 자주 향수병도 앓으리라. 나처럼 순수한 방랑자 중에 왼벽한 사람은 향수병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맛보는 기쁨의 값을 치르듯, 향수병의 대가도 치른다. 내가 바람결을 거슬러 올라가며 맞는 맞바람에 물길이 나뉘고, 언어의 경계가 있는 산 너머 저쪽 먼곳에서 불어오는 향긋한 향기가 산등성이와 남쪽을 향해 불어온다. 내게 많은 것을 약속해 주는 바람이다.ᆢᆢ" 헤세의 '모든 길은 집으로 향한다.' 에 나오는 글이다.
마치 오래된 산꾼같은 느낌의 글을 몇번이고
읽어보면 마치 내가 가는 어느 산어귀에 같이 걸어가는 산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헤세는 언제나 마음속의 이정표이다.
"ᆢᆢ이제 나는 안다! 그 식당에는 나와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눈부신 금발에 볼이 유난히 빨간 젊은 여인이 있었다. 천사같은 여인!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가슴벅찬 기쁨과 고통이었다. 그날 그자리에서 난 그녀를 얼마나 사랑 했던가! 나는 마치 열여덟 살 같았다. 갑자기 기억이 선명해진다. 아름답고, 눈부신 금발의 상큼한 여인! 난 그대의 이름을 더 이상 기억하다 못한다. 그날 그곳에서 나는 그대를 줄곳 사랑했고, 오늘 사골 마을의 양지바른 길에서도 한 시간동안 사모했다. 이세상 어느 누구도 나처럼 당신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위력을 행사하게 두지 않았을 거다. 맞다. 그것은 위력이다. 그러나 나는성실하지 않음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 나는 여자를 사랑한게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사랑했다고 떠벌리는 허풍쟁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우리 방랑자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다. 방랑하고 싶은 욕구와 바랑생활의 대부분은 사랑과 에로티시즘으로 가득 차 있다. 방랑에 대한 로망의 절반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모험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다른 절반은 성적인 욕구를 변형시키고, 해소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충동이다. 우리 방랑자들은 총족킬 수엢는 사랑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에 품은 채 실제적으로는 한여인에게 향했던 사랑을 마을과 산, 호수와 협곡,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 다리 위에서 만난 거지, 푸른 조원 길에 있는 소, 새와 나비에게 마치 유희를 즐기듯이 나눠주는 것에 익숙해 있다.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분리하는 것이다. 사랑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랑하면서 목적지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길을 나서는 것, 방랑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아름댭던 젊은 여인이여. 난 그대의 이름을 알고싶지 않다.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마음에 품거나, 채우고 싶지 않다. 당신은 내 사랑의 목적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갖게한 원동력이었다. 나는 그 사랑을 길에서 만난 꽃, 술잔에 반짝이는 햇살, 교회의 붉은 종탑에 나누어 주었다. 그대는 나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사랑에 흠뻑 빠지게 만들어 주었다. 아! 어리석은 소리! 나는 지난 밤 산장에서 금발의 여인이 나오는 꿈을 꾸었댜.
나는 그녀를 미치도록 사랑했다. ᆢᆢ" 헤르만 헤세는 방랑자이다. 어느 곳에 묶여 사는 영혼이 아니다. 그의 글은 내마음을 헤아리는 젊은 날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헤세가 내마음이다.
혹한의 바람이 불고 차거움이 심신을 덥어면
산야를 오르고 내리는 산꾼인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무더위 작열하는 불볕사이 거니는 산길에서 산꾼인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추울수록 따스한 난로 옆이나 포근한 온기는 다가갈수록 심신이 녹는 위안을 얻고, 더울수록 흐르는 땀속에서 바라보는 숲길을 지나면 계곡에는 은빛 찬란한 시냇물이 소리내어 부른다. 갈증은 물을 찻고 더욱 위안을 바라는 것이 산꾼이다,
"ᆢᆢ 아름다음을 철저하지 못하나 기쁘거 즐기지 못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추구하고,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다시 예술적인 방법으로 재구성하는 가능성을 사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나의 저주이자 행복이다. ᆢ" " 나는 그녀의 얼굴의 선을 보며 사랑하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내것처럼 즐겼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충분히 감상한 후에 대가의 그림을 내것처럼 즐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의 육체를 눈앞에 그리려할 때면 그때마다 그것을 상상하는 힘은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여인, 그 가련한 아가씨를 그런 외양만으로 밝힌다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여러번 그녀의 아름다운 손을 다정하게 잡고, 그녀에게 말을 하게 하고,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싶어 했던가! 이러한 상념과 욕망 속에는 저 피안彼岸의 아름다움의 반사가 포촉할수 없이 작용하고 있다.ᆢᆢ" 헤겔의 글을 읽어면 마치 첫사랑에게 들켜버린 속마음 처럼 위안을 받는다. 마치 갈증난 사막의 사자 같은 모습이 된다. 위안이란 갈증이 나면 더욱 잔인하게 그리워진다.
"ᆢ인간과 그의 얼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두려움이나 희망이나 욕망이나 목적이나 어떤
요구를 지니고 인간을 보면 상대방은 인간이 아니라 다만 나의 욕망의 흐려진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그는 접근하기 쉬울까, 아니면 거만한가, 나를 존경하고 있을까 하는 등등 편협하고 솔직하지 못한 의문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보게 된다.ᆢᆢ나는 젊은 시절에 인간에 대해서보다도 자연 풍경과 예술품에 대해서 보다 가깝고 보다 깊은 관계를 맺었었다. 그뿐 아니라 공기와 대지와 물과 나무와 산과 동물 만이 등장하고 인간이 나오지 않은 문학을 여러해 동안 꿈꾸기도 했었다. 나는 인간이 영혼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욕망에 완전히 지배 당하고, 동물적이고 원숭이와도 같은 원시적인 목표를 거칠게 추구하고, 잡동사니 같은 보잘것 없는 것을 열망하고 있다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아마도 인간은 영혼으로 통하는 길에서는 이미 타락해 버렀고 퇴행하고 있으므로 영혼이라는 샘물은 다른 어떤 자연 속에서 그길을 찻아야만 할것이라는 곤란한 오류에 지배된 적이 일시적이나마 있었다. ᆢ" 헤세의 ' 영혼에 대하여 ' 의 글을 읽고 있어면 마치 나의 지나간 어린 시절의 상념으로 산을 다니던 때가 떠오르는 것은 또 다른 위안을 얻는 것이다. "ᆢ전쟁은 개미도 한다. 국가는 꿀벌도 가지고 있다. 재산은 쥐도 모으고 있다.당신의 영혼은 다른길을 찻고 있다. 영혼이 상처를 입을 때, 영혼을 희생해서 성공할때, 당신에게 결코 행복의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복을 느낄수 있는 것은 오직 영혼뿐이며, 이성도, 위장도, 머리도 더구나 돈자머니도 아니기 때문이다.ᆢᆢ" 헤세의 글을 읽고 있어면 어찌 몇번이고 다시 읽지 않아도 마음에 담긴다.
" ᆢᆢ시인이 '심장 '이라고 말하고, 그것으로써 인간이 갖는 가장 생생하고 약동하는 감정, 인간의 가장 심오한 능력과 약점을 나타내려 할 때, 그 언어는 동시에 근육도 의미하는 것이다. '힘' 이라고 할때, 그 의미를 공업가나 전기학자에게 침해당하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 '지복 ' 至福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시인이 표현하면 시인이 표현하려는 것에 신학의 냄세가 따른다. 시인은 어떤 말을 쓰더라도 그말은 으례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보내고, 발성된 순간에 무관계하고 거치적거리고 좋지 않은 관념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어떠한 말이라도 반드시 그 자체 속에 방해와 제한을 지니고 있다. 소리가 좁은 벽에 부딪혀 여운도 없이 튕겨 오듯이 자기 자신에게 부딪혀 힘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세꾼은 모든 것을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보이려고 하지만,
시인은 결코 허세꾼이 되지 못한다. 시인은 자기가 전달하려는 것의 10분의1, 백분의 1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시인은 자기가 하는 말이 대충 웬만큼만 이해도기만 하면, 최소한 가장 중요한 점에 있어서 심한 오해를 받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 이상의 결과를 얻기란 드문일이다. 그리고 시인이 칭찬 받거나, 비난 받거나, 성공하거나, 실패 하여 비웃음 받거나, 사랑을 받거나, 버림받거나 항상 그것은 그 시인의 사상이나 꿈 자제에서 오는 운하를 거쳐 간 이루어진 백분의 1의 사상과 꿈이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이다. ᆢᆢ" 언어에 대하여 라는 헤세의 글에 나오는 시인들의 언어라는 개념은 늘 시인이 되기를 흥얼거리는 철부지 마음을 위안하는 즐거운 길잡이 이다. "ᆢᆢ그가 '이쪽,' 즉 시민들도 사는 주지周知의 밝은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언어의 빈곤은 끝없이 그를 괴롭히고 억압한다. 그리고 시인이란 것은 고난에 가득찬 생활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시인이 '저쪽 ' 인 영靈의 나라로 갈떼 언어는 흐르듯이 그를 찻아간다. 바람이 언어를 실어 오고, 별들이
노래를 연주하고, 산줄기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세계는 완전하며, 세계는 신의 말씀이다. 그곳에서는 한마디 한자의 부자유도 없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표현된다. 또한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소리를 발하고, 모든 것에 얽메이지 않는다."
언어란 시인을 만나면 언어가 아니다.
시인의 세계는 언어의 영역을 넘는다.
"ᆢᆢ스무살때 내가 갖고 있었던 시에 대한 판단력의 자산은 다음과 같은 것에서 유래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꽤 많은 시와 시인들을 매우 강렬하게, 그리고 오직 그것들만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책이건 시이건 이내 그것들과 비교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면 그것은 좋은 시 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쓸모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에게는 특히 사랑하는 몇몇 시인이 있다. 그중의 어떤 사람은 스무살때 사랑하던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그 음조가 이러한 시인중 누군가를 상기하게 하는 시에 대해서는 더욱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ᆢᆢ " 헤겔의 '시에 대하여 ' 를 읽어면 젊은 날부터
각인된 시인을 좋아하는 버릇이 어찌 같다고 아니 할수 있는가? 시인의 버릇이 좋아하는 것에 따르기 마련이다. 왕유 의 과향적사 過香積寺 를 좋아하고 왕유를 사모하지만
이백은 천재天才, 두보는 지재 地才, 왕유는 인재 人才로 칭하듯이 시선詩仙, 시성詩聖,
시불 時佛로 부르지만 모두를 사모하고 좋아한다. 특히 왕유의 삶을 동경하고 즐겨읽는 시들은 산을 다니는 산꾼의 삶에 위안을 얻는다. "ᆢᆢ그와 비슷한 일이 내게는 가끔 나쁜 시에 대해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갑자기 그 시가 조금도 나쁘지 않게 보이게 된다. 갑자기 고운 향기가 풍겨오게 된다. 그 서튼 곳, 분명한 결점이 감동을 준다. 독창적이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띠게 된다. 그리고 그것과 비교하면 이제까지 사랑하고 있던 아름다운 시도 얼마쯤 퇴색하고 유형적인 것으로 보이게 된다.ᆢᆢ" 시인이나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변하기 마련이다.
중광스님이나 이외수나 '귀천' 의 천상병 시인을 좋아하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는 마음의 위안보다 천재들의 모습을 닮고 싶은 것인가 보다. 밤하늘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두운 밤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늘 어두운 밤하늘처럼 빛나는 별들이 위안을 주기에 깜깜한 길을 가는 인생에 아름다운 것이다.
"ᆢᆢ평화 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더욱 규정하기 어렵다. 평화는 낙원적인 원시상태도 아니며, 협정으로 규정된 공동생활의 형식도 아니다. 평화는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것, 우리가 오직 추구하고 어슴푸레 예감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이다. 평화는 하나의 이상이다. 평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복잡한 것, 불안정한 것, 위협받고 있다. 평화를 파괴하려면 살짝 입김을 불어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서로 읻고 있는 두 사람 간에도 진정한 평화 속에서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다른 어떠한 윤리적인, 또는 지적인 작업을 하기보다 어렵고, 극히 드물게 이루어질 뿐이다. ᆢ" 헤세는 '인간에게 전쟁이란' 글에서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폭력이니 전쟁이니 하는 것은 어쩌면 동조한 우리 모두의 편가르기 하는 어리석은 결과이다. 우린 늘 다르다. 같을수는 절대로 없다. 옳고 그른 것은 각자의 생각일 뿐이다. 소중하지 않는 것은 없다.
ᆢᆢ 그렇다면 장차 어디에서 언제쯤 참된 평화가 이 지상에 찻아올 것인가? 그것은 규율에서도 아니고, 물질적인 경험에서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인식에서 온다. 그러나 인식은 모두 그 어떤 살아 있는 것으로서, 학구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면 하나의 대상밖에 갖고 있지 않다.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수많은 형태로 인식되고, 수많은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항상 단 하나의 진리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 내부에 있는 생명, 나와 너와 우리 각 개인 내부에 있는 생명 의 인식,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 지닌 비밀의 마법, 비밀의 신적인 인식이다. "ᆢᆢ 인간은 각자가 인식하지 못하면 상대가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늘 느끼고 살아야 한다. 영혼의 교류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안식이란 영혼의 느낌이 주는 가장 고요한 평화이다. 이 지상의 모든 것은 자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더 말할 여지 없이 모든 것들이 지니고 있다. 온갖 들, 온갖 풀, 꽃, 수풀, 온갖 동물들이 제각기 자기의 마음에 따라 성장하고 살아가고 행동하고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훌륭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꽃과 열매가 존재한다는 것, 자작나무며 존재한다는 것, 말이며 닭이며 존재한다는 것, 주석과 철, 금과 석탄이 존재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오직 우주에서는 아무리 미소한 것이라도 자기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법칙을 지키고, 완전히, 확실하게 미혹없이 자기의 법칙에 순종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ᆢᆢ" ' 아집과 순종' 을 읽어보면 마치 우리의 생각을 위로하는 헤세의 글이다.
헤세의 '산마루' 에 실린 글은 산꾼인 내 마음처럼 도란도란 얘기 나눈다. "ᆢ젊은 시절의 추억이 먼 계곡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내 안에 울려 퍼진다. 처음으로 남쪽 나라로 여행 갔을때 느꼈던 흥분! 푸른 호숫가에 풀이 무성한 정원의 공기를 취한 듯
들이마시던 호흡! 저물녘 흐릿해지던 먼 고국 설산에서 들려오던 소리! 고대 유적지에서 만난 성스러운 기둥 앞에서 울렸던 첫 기도!
갈색 바위 너머로 거품이 이는 바다를 처음 보았던 꿈같은 순간! ᆢᆢ그 모든 게 내게 예전보다 더 깊이, 풍성하게, 수백가지의 의미로 다가온다. 취해 있는 나의 그리움이 베일에 싸인 먼 곳을 더 이상 꿈의 색깔로 그리지 않는다. 내 눈이 그 사이 제대로 보는 법을 배워 이제는 존재하는 대로 보는 것에 만족해한다. 그렇게 된 다음부터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혼자지만 홀로있음에 고통받지 않는다. 아무런 소원도 없다. 이제 나는 태양에 빨갛게 익혀질 준비가 되어 있다. 더 성숙해지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고, 다시 태어날 마음의 쭌비도 있다.
"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 "
언젠가 마치 느꺼보았던 마음을 들켜버린 소녀의 모습같은 순수해지는 것을 어찌 나타낼수있는가? 몇번이고 되새겨 보지만 마음의 위안은 주어야 한다. 방랑자인 헤세에게ᆢᆢ
어느 날 문득 홀로 술에 취해 마냥 진실된 순수한 마음을 얻고 싶은 날이 있다. 마냥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함에 겨워 술 한잔에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는 것들을 괜히 찻아내고 싶은 날이 있다. "ᆢᆢ어쩔수 없는 일이다. 너는 방랑자면서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시민이자 품위 있는 건강한 사람은 될수 없다. 술에 취할 거라면 숙취의 고통도 감수하라. 햇빛과 아름다운 환상에 '예' 라고 했다면, 더러움과 혐오에도 '예 '라고 말해야 한다. 황금가 오물, 쾌라과 고통, 어린아이와 웃음과 죽음의 공포, 그 모든 게 네 마음안에 들어있다. 그러니 모든 것에 예 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억누르지 말고, 회피하러 하지 마라.
너는 보통 시민이 아니고, 그리스인도 아니고, 조화로운 성격도 아니고, 너 스스로 너의 주인이고, 폭풍속의 새다. 푹풍이 몰아치게 하라! 너 자신을 내맡겨라! 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 왔는가? 수천번이나, 시와 글을 통해서도, 조화롭고 지혜로운 사람인양 굴었고, 행복하고 사러깊은 사람처럼 굴지 않았던가? 전시에 적진의 공격을 받을 때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영웅들은 그렇게 했었다. 맙소사? 인간은 더구나 예술가는, 더구나 시인은, 특히 나 자신은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 허세꾼이던가? ᆢᆢ 절망이 지쳐 나가떨어지고, 잠과 위로가 나를 다시 찻아 올때까지, 스무살때도 그랬고, 오늘 도 마찬가지고, 앞으로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럴 거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생에에 대해 그런 날들로 여러 번 반복해 값을 치룰 거다. 두러움, 혐오스러움과 절망이 난무한 그런 낮과 밤이 계속나를 찻아올 거다. 그래도 난 살아갈거고, 그래도 난 삶을 사랑하리라. " 술의 힘으로 내일은 오늘과 다른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위안을 받을 려는 나는 헤세의 글을 몇번이고 되새긴다.
외로운 밤
너희가 나의 형제라면,
별들의 구역에서
고통에 위로를 꿈꾸는
가까이 혹은 먼 불쌍한 사람들아,
창백한 별이 빛나는 밤을 향해
고통을 견디는 야원 두 손을
말없이 맞잡은 자들아,
고통받고. 깨어있고.
가난하고. 방황하는 무리여.
별과 행운 없이 떠도는 뱃사람들아.
낯설지만 나의 동지가 된 자들이여.
내가 보내는 인사에 응답하라!
헤세의 '외로운 밤' 을 오늘도 술 한잔에 순수해지는 착각에 마음속에 담고싶어 되새겨본다. 마치 어린시절 밤늦은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넋두리 같은 소리에 마음 담는 순수했던 작은 시인이 되는 꿈에 젖어 있는 소년을 그리워진다.
위안
ㅡ헤르만 헤세 ㅡ
의미없이 그저 살기만 하며
보낸 세월이 얼마던가!
지킬 만한 것도
기뻐할 만한것도 없다.
시간의 물결이 무수히 모양을 바꾸며
내게로 밀려왔다.
어느 것 하나 붙잡을 수 없었고.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내게서 빠져나갈지라도
내 마음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깊고 불가사의하게 느낀다.
삶의 열정을.
열정은 의미도 목적도 없고.
가깝든 말든 모든 것을 안다.
놀고 있는 아이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다.
♡ 다정스러운 말은 시원한 몰보다도 한결 더 목마름을 축여준다. ㅡ조지 허버트ㅡ
" 昔之得一者 석지득일자 天得一以淸 천득일이청 地得一以寧 지득일이녕 神得一以靈 신득일이령 谷得一以靈 곡득일이영 萬物一以生 만물일이생 侯王得一以爲天下貞 후왕득일이위천하 基致之一也 기치지일야 ᆢ 옛날에 '하나' 를 얻은 자가 있어, 하늘에 하나가 있어 맑고, 땅에서 하나가 있어 신령스럽고, 골짜기에는 하나가 있어 채워지고, 만물에 하나가 있어 생성하고, 후왕에게는 하나가 있어 천하의ㅈ바름을 삼았어니, 그 하나가 이르게 한 것이다." 도덕경의 39장에 나오는 하나의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하늘도 한가지 모양이 있어면 맑고 고요하고 태평하다. 땅도 하나의 모양으로 있어면 만물은 안정된다. 노자는 하나에 대한 완벽함을 말한다. 우리의 세인들은 하나 를 모르고 산다. 그래서 항상 두려움으로 고통속에서 헤어날수가 없다. 하늘이 하나를 잃어면 얻는 것은 밝음대신 혼란이다. 하나는 만물을 생성하고, 안정되게 하고, 신묘하다.
무슨 말인지 조차 모르고 산다. 부모도 하나요, 가정도 하나요, 사회도 하나이다.
다만 하나를 얻지 못하면 온전하게 삶을 살아갈수 없다. 눈으로 불수있는 것도 하나요, 코로 맡을수 있는 것도 하나요, 혀로 맛불줄 아는것도 하나요, 귀로 들을수 있는 것도 하나요, 몸으로 느끼는 것도 하나요, 생각도 하나로 만물을 만드는 것이다. 다 잘하고 있는 것을 하나를 버리고 욕구의 잣대 요구를 따르는 번뇌에 휩씨여 고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하나의 실체를 모르고 혼란을 찻는 것이 인간들이다. 마음도 하나일때 가장 안정된다.
늘 나와 평생을 같이 다니는 유일한 내 마음을 위안 하는 것이 삶인가?
깊고 깊은 골짜기 심오한 마음을 고요한 적막을 바라보는 날들이 지금인가?
산은 늘 위안을 주기만 하는가?
첫댓글 山紫水明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