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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추억여행
** 시간상 일정표
* 첫 날 : 집에서 7시 20분, 출발 ~ 경부고속도로 ~ 9시 30분, 신탄진 졸음쉼터 휴식 ~ 10시, 금산 인삼랜드, 아. 점식사 45분 간~ 10시 45분, 출발 ~ 11시 50분, 거창 수승대 관광지 도착 ~ 12시 10분, 걷기 시작 ~ 12시 20분, 수승대 썰매장 앞 ~ 모리재 방향으로 ~ 12시 40분, 전망대 ~ 13시, 헬기장 ~ 1시 40분, 도로 위 ~ 2시 10분, 마항 4거리 ~ 회로 ~ 2시 50분, 3거리 아스팔트 도로로 ~ 3시 10분, 마항 마을회관 앞 ~ 3시 40분, 정온 종택 관광 10분 ~ 4시 10분, 원점 도착 ~ 출렁다리로 ~ 5시, 출렁다리 도착 ~ 잠김 ~ 5시 30분, 주차장 도착, 완료 ~ 출발 ~ 7시, 김천 진땡이 국밥집에서 저녁식사 ~ 9시, 금오산 아래 상가지역의 "한솔모텔"(1박 35.000원)에 도착, 첫 날일정 완료.
* 둘쨋 날 : 아침 6시 기상 ~ 7시 40분, 모텔 출발 ~ 아침식사하지 못하고 김밥으로 대체 ~ 9시 금오산 산행시작 ~ 9시 20분, 금오산성 문 도착 ~ 9시 50분, 해운사 도착 ~ 5분 간 관광 ~ 10시 5분, 대혜폭포 ~ 할딱고개 ~ 11시 25분, 상안 3거리 도착 ~ 12시, 약사암 ~ 12시 10분, 금오산(현월봉) 정상도착 ~ 5분 간 체류 후 하산 ~ 약사암에서 약 30여분 관람 후 12시 50분에 약사암 출발 ~ 1시 15분, 상안 3거리 ~ 오후 2시, 대혜폭포 ~ 2시 10분, 해운사 앞 ~ 2시 50분, 주차장 도착, 출발 ~ 3시 10분, 박정희대통령 생가 주차장 도착 ~ 4시 20분까지 생가관람 ~ 출발 ~ 6시, 충주 수안보 온천장의 "르네상스 호텔(1박 4만원)" 도착 ~ 상록식당 석식 ~ 일정 완료.
* 세쨋 날 : 7시 기상 ~ 준비 후 상록식당에서 아침식사 ~ 9시 10분, 식사 후 출발 ~ 10시 30분, 제천 백운면 애련리 정지준 형님댁 도착 ~ 식사와 환담으로 시간 보낸 후 오후 2시 10분, 귀로에 ~ 38번 국도 ~ 3시 30분, 용인 원삼의 미영이네 집 도착 ~ 물건 주고받고 곧바로 출발 ~ 양지ic로 영동고속도로 ~ 5시 10분, 집에 도착 ~ 5시 20분, 회장단 모임에 출발 ~ 5시 50분, 고천 "청기와 뼈 감자탕" 식당 도착 ~ 회장단 모임 ~ 밤 8시 모임완료 ~ 8시 30분, 걸어서 집에 도착, 모든 일정 완료.
** 이번여행의 방향을 경남권역으로 잡아본다.
* 중부지방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와 눈이 내린 후 강력한 한파가 올 것이라는 예보로 좀 더 따뜻하고 날씨도 상대적으로 좋을 것이라는 경상도 남부권역을 택하게 된 것이다.
* 오늘 아침, 직장에서 근무를 마치고 걸어서 집으로 온다(아침 퇴근길걷기 제 76차)
오늘 아침에 아내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날이기에 차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아내에게 양보하고, 기도회가 끝이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7시 직전이니 그 시간에 맞춰서 나도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 다.
* 오늘 아침걷기는 직장에서 집까지의 여러코스 중에 제일 짧은 코스를 선택한다.
경험상 제일 짧은 코스의 소요시간이 약 1시간 내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시한 결과 역시 새벽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1시간이 소요된다.
* 집에 도착해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내도 기도회에서 돌아오고...
사전에 오늘 아침은 집에서 하지않고 출발 후 휴게소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기에 출발준비 만을 한 후 7시 20분 경에 집을 나선다.
** 이미지 사진
* 집에서 여행에 필요한 짐보따리를 들고 차안에 실은 후 오늘 첫번 째 목적지인 거창의 수승대관광지를 향해서 출발, 그러나 창밖으로 내다보는 오늘의 날씨는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비가 내리지만 아랫지방은 괜찮다는 예보를 믿고 출발, 그러나 빗방울이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음 그리 좋지않다.
* 날씨도 흐리지만 역시 출근시간대의 수도권역을 빠져나가는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여행이나 산행을 자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수도권(내가사는 의왕을 중심으로)에서는 아침 출발시간을 6시 이전으로 잡아야 막힘없이 수도권역을 지날 수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정체를 피하기 어렵다.
* 아침에 물을 많이 먹는 습관 때문에 도로가 정체되면 소변을 해결하는 문제에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되는데 오늘도 역시 도로가 정체되니 방광이 꽉차 오르고...
더구나 심리적인 문제까지 더하게 되니 조급증까지 보태진다.
* 차량 지체는 천안을 지나서야 조금 풀리고...
결국 신탄진 간이휴게소에서(9시 30분 경, 졸음쉼터) 볼 일을 잠시 본 후 다시달려서 아침은 대전. 통영간 도로상의"금산인삼랜드"휴게소에 도착하니 10시인데 늦은 아침으로 아내에게 선택권을 주니 왕만두국을 선택한다.
나도 아내따라 왕만두국으로 아. 점식사를 한다.
* 오전 11시 50분, 거창군 위천면에 위치한 수승대관광지 도착.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잔뜩 흐린날씨는 곧 비가 내릴 것 같이 성질을 내고있는 모습이다.
잠시 그곳의 지리나 이정표로 서있는 지도들을 보면서 오늘 우리의 일상이 되어줄 방향을 만들어 본다.
* 현 위치에서 흐르는 강물을 직선으로 건너게 하는 다리를 건너 체육시설을 지나고 썰매장을 옆으로 끼고 돌아서니 바로 나타나는 산책로가 나타나는데 이 길이 "거창 문화유산 여행길"로 명명된 등산로.
* 썰매장 옆으로 길 따라 조금 오르니 이런 이정표가 고갯마루에 서 있는데 우린 우선 모리재 방향으로 오른다.
처음 생각은 정온종택을 들린 후 다시 이곳으로와서 모리재로 향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들리기로한다, 실제로 오늘 하산방향에서 정온종택을 들렸다.
* 등산로는 순한 길로 형성, 소나무가 많은 숲길을 힐링한다.
이곳의 소나무는 윗쪽 지방의 홍송과 달리 해송 종류들이 많았다.
* 12시 40분 경, 전망대에 도착.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수승대관광지 관리사무소 주변의 모습.
* 오후 1시, 헬기장 도착.
* 모리재 방향으로 계속 전진.
* 수명을 다한 나무가 마지막 먼지로 승화될 때까지 기다리나?
그 옛날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는 현상이지만 금세에는 그림으로 승화를 하네.
* 농산리 방향은 북상면이고 수승대 하산방향은 위천면으로 그 아래에는 아래사진과 같이 터널(말목고개)로 형성된 아스팔트 대로가 지나간다(1시 40분)
* 터널위에서 북상면 방향(농산리, 북방)의 모습과 위천면(강천리, 남방, 아래사진) 방향의 모습을 찍어본다.
* 터널위를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이정표로 하산할 때 여기서 정온종택방향으로 하산했다.
* 산속의 겨울풍경 모습.
* 고사리가 지천이다.
* 이 길은 정온종택과 모리재를 오고가는 거창 문화유산 길로 대개의 이정표에서 두 곳의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 2시 10분, 오늘 우리가 걸어온 길은 여기까지 걷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어차피 현성산이나 모리재 방향으로 돌아옥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정온종택을 구경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곳을 들리고자 하산을 결정한 것.
* 마항방향으로 하산해도 종택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산길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적어 희미하고, 낙엽만 수북히 쌓여서 미끄러울 것 같아서 왔던 길로 다시 간다.
* 내년에 빗물을 듬뿍 머금으면 다시 살아날 등갈색 미로버섯.
* 위에서 말한 그 이정표로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면 아스팔트 대로가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서 걷는다.
*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쌓이는 눈은 아니고 그냥 사람 마음을 낭만에 젖게하고 구름 잔뜩 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그림을 만들어 줄 뿐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 능선이 우리가 걷다가 도중하차한 금원산과 현성산 줄기 능선.
* 말목고개에서 아스팔트 길을 걷기시작해서 길따라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강동리 마항마을(3시 10분)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마을길을 걸으면서 나타나는 그림이나 문귀가 이 마을의 성격을 나타내 준다.
* 갖가지 지형이름이나(마항의 산수)지도로 나타내는 위치, 또 충과 효를 강조한 문구들이 이 고장이 충효(忠孝 )의 고장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실제로 이 지역을 거닐면서 충효에 대한 글자들을 여러번 만난다.
지금 현세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면 좋겠지만 우리가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 마항마을을 지나서 개찬과 함께하는 도로를 따라서 걷다보면 선비의 고장답게 여러 사당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강동마을의 정온종택에 이르고...
* 정온종택에 도착해(3시 40분 경) 밖에서 부터 종택 안까지 두루 구경한다.
중요민속자료 지정
• 지정일 : 1984년 12월 24일
• 소유자 : 정완수, 관리자 : 정완수 (15대 종손)
• 소재지 : 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 건축시기 : 조선시대
거창의 동계 정온 선생 고택은 초계 정씨 윗대에서 거창의 용산, 안음, 서마리 등지에서 살다가 동계의 조부인 승지공(諱淑, 1501~ 1563)때 강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고택은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년)선생의 후손들이 사당 을 모시고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종택으로 대문채, 사랑채, 중문간과 행랑채, 곳간채, 안채, 사당 등이 토석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현재의 고택은 후손들이 정온선생의 생가(生家)를 1820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는 사랑채 상량대에 "(숭정기원후 사경진삼월)崇禎紀元後四庚辰三月"이라 적혀있어 이는 순조(純祖) 20년(1820)에 건립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랑채 상량대. (중요민속자료 기록화보고서, 「鄭蘊先生家屋」, 문화재청)
솟을대문의 대문간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안쪽으로 一자형의 안채가 자리하였다. 안채의 오른쪽에는 뜰아래 채가, 왼쪽에는 곳간채가 있다. 안채의 뒷쪽에 따로 담장을 두르고 3문을 설치한 후 사당을 세웠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정온(鄭蘊, 1569∼1642)선생은 초계정씨(草溪鄭氏)로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진사 유명(惟明)의 아들로 선조 2년(1569)에 태어나 선조 39년(1601)에 진사가 되고, 광해군 2년(1610)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시강원겸설서, 사간원 정언을 역임하였다. 동계선생이 46세 되던 해, 광해군은 어린나이의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1614)을 강화도로 귀향 보냈다가 강화부 사 정항을 시켜 영창대군을 사사하고, 선조의 계비이며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를 폐출하려 했다. 이에 동계는 임금에게 폐륜행위 에 대한 거침없는 상소문을 올리자 이에 진노한 광해군은 정온선생의 관직을 삭탈하고 1000리 밖,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배를 보내고 10년 동안 위리안치(圍籬安置)1)되는 형을 내렸다.
정온선생은 제주도에서의 10년이란 짧지 않은 유배 기간 동안 ‘덕변록(德辨錄)’, ‘망북두시(望北斗詩)’ 등을 지어 군주를 사랑하고 나라 를 염려하는 마음을 글로써 남겼다. 유배 10년만인 1623년 인조반정이 동계를 불러들여 사간원 원납의 벼슬을 내리고 이후 남원부사, 이조참의를 거쳐 1624년 10월 대사 간에 임명하였다.
인조 14년(1636)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선반도가 청나라에 굴복하게 되었다. 당시 이조참판이었던 정온선생은 조선과 명(明)나라의 의리를 내세워 끝까지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국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당하게 되자 청과의 화의를 적극 반대했던 동계는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기도하였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동계는 벼슬을 물러나 덕유산의 모리(某里)라는 곳에 은거 하면서 일생을 보내었다. 숙종 때 절의를 높이 평가하여 영의정에 추종되었고 광주(廣州)의 현절사(顯節祠), 제주의 귤림(橘林)서원, 함양(咸陽)의 남계(藍溪)서원에 제향 되었으며 종가의 사당에는 불천위2)로 모셔져 있다. 나라에서는 정온선생의 이러한 충절을 기려 ‘문간공동계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이라는 정려를 하사하였고 지금도 당시의 정려 가 고택의 솟을대문에 걸려있다.
문간공동계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 정려
하지만 영조 4년에 발생한 무신란의 주동자에 동계의 현손인 정희량(鄭希亮 ?~ 1728)이 있음으로 해서 일순간에 동계선생의 가문이 역적의 집안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건 속에서도 집안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동계와 같은 충신의 제사가 끊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대부의 여론 때문이었다고 한다. 숨죽여 지내던 정씨 집안을 다시 일으킨 인물은 영양현감을 지낸 야옹 정 기필(鄭夔弼, 1800~1860)선생으로 피폐한 강동마을을 거의 복구하였다.
정온선생가옥(鄭蘊先生家屋)은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동계고택의 15대 종손은 정완수(鄭完 秀)씨이고, 차종부가 되는 류성규(柳星奎)씨는 안동의 전주 류씨 유치명 선생의 직계 후손이다. 14대종손 古정우순(鄭禹淳)선생의 부인이시고 현재고택의 종부이신 최희(崔熙)여사가 줄곧 종택을 지켜오셨다. 종부의 친정은 12대 만석꾼을 지낸 것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이다.
사랑마당
안채마당
[네이버 지식백과] 정온선생가옥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고택, 2008.,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정온종택을 나와서 한 마을에 있는 "반구현"이라는 고택도 돌아본다.
반구현 이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집" 이라고...
* 강동마을을 벗어나서 다시 수승대로 돌아갈 참인데 산길보다는 돌아가더라도 큰 대로를 택해 걷는다.
* 거창 연극고등학교도 있네.
* 돌아보면서 우리의 차를 주차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4시 10분 경.
* 주차장에서 우리는 다시 수승대 출렁다리를 구경하기 위해서 출발.
이 지도에는 출렁다리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런데 이곳에 그려있는 다른 이정표에서도 출렁다리에 대한 정보가 없다.
* 주차장에서 관리소와 축제극장 앞을 지나면 거북바위가 나타나는데 이 거북바위가 이곳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거북바위를 지나면 바로 냇가를 건너서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등산로 길을 따라서 출렁다리로 향한다.
거북바위로 가는 길목에는 여러 볼거리들이 있고...
* 그러나 그 중에서도 거북바위가 제일 인기있는 곳이라고...
오늘도 촬영기사 한 분이 시간을 죽이면서 대기하는 모습인데 무엇을 찍으려는지 궁금했다.
거북바위 바로 머리 맡에 구연교 라는 다리를 건너서 반대편 길을 이용해서 출렁다리로 향한다.
거북바위 옆에서 드라마 촬영도 했다고...
* 냇가를 건너서 출렁다리로 향하는 길.
산책로를 따라 문화유산 길을 가노라면 성령산과 반대편 야산을 잇는 출렁다리가 보이는데(4시 55분 경)...
머리를 숙이라는 하심송도 있고, 정자도 보이는 문화유산 길을 걷다보면 4시 55분 쯤에 출렁다리앞에 도착.
* 출렁다리 아래에 도착해서 보면 출렁다리가 저 만큼 위에 있는데 그곳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어마무시.
어렵사리 계단을 올라가니 출렁다리 문이 닫혀있다.
* 이용안내 문구를 자세히 읽어보니 오후 4시 50분까지 개방인데 우리가 약 5분 정도 늦었다.
허사일세, 허사 여...
마음속으로는 직원에게 원망을 해 보지만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그 5분 늦은 시각에 문 닫고 떠났어도 보여야 할 직원의 모습은 커녕 그림자도 안 보이니 원망도 섞는 것이지... 사방에 오로지 우리 뿐이다.
* 허탈한 마음 가슴에 묻고 우리는 하산을 한다.
* 하산길에도 거북바위를 지나면 요수정이라는 정자와 원각사 라는 사찰이 있고, 원각사를 지나면 다시 주차장 마을을(주차장이 있는 곳) 잇는 현수교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널 즈음에는 벌써 동지를 며칠 남기지 않는 겨울날의 빛이 어둑어둑해 진다.
** 셰익스피어의 글.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요, 모든 인간은 제각각 맡은 역할을 위해 등장했다가 퇴장해 버리는 배우에 지나지 않죠" 라는 동상앞의 글귀가 밤길을 걷는 나를 사로잡는다.
** 배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을 한낮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이나 울음을 선사해 주는 배우역할에 비유한 것을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삶이 왔다가 사라지는 배우역할일 뿐이구나.
살다가 사라지면 그만인 것을... 무대에서 공연끝나고 사라지는 배우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 일장춘몽( 一場春夢), 한단지몽(邯鄲之夢), 호접지몽(胡蝶之夢), 노생지몽(盧生之夢), 황량일몽(黃粱一夢), 여옹침(呂翁枕) 모두 하 비슷한 뜻을 지닌 말들이지요.
한단(邯鄲) 지역에서 노(盧)씨 성을 가진 서생이 도사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려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부귀영화의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이다.
나비가 된 꿈이라는 『장자(莊子)』 의 호접지몽(胡蝶之夢)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 그 일장춘몽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한번 올려보면서 깊이 새겨보자.
💙일장춘몽💙
도술이 뛰어난 도사가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
한 청년이 옆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
도사는 웃으며 자신의 보따리 속에서 베개를 꺼내서
청년의 머리에 받쳐주자 ~
꿈속에서 유명한 부잣집 딸과 혼인을 하여
잘생긴 아들 세명을 낳고 자신도 과거에 급제하여
마침내 정승까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다른 신하의 음모에 빠져
역적으로 몰리게 되어 마침내 죽을 운명에 처해
지난날을 회상하는데 ~
고향에서 농사나 짓고 살았다면
억울하게 죽지 않을텐데 ~
부귀와 영화가 이렇게 덧없는데
무엇 때문에 벼슬자리에 안달을 했던고~
지난날이 한없이 그립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
눈물을 흘리며 사약 사발을
마시려는 순간 잠에서 깨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약 사발은 보이지 않았으나 ~
아름다운 아내와 자식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옆에 앉았던 도인이 한 말씀하기를
인생이 그토록 허망한 것을 이제야 알겠는가?
도사의 말에 청년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었지만 ~
꿈에서 보낸 일생이
낮잠 잔 한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
* 불평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지름길~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비우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하루를 사는것이인생이고
사는동안 재미있게즐겁게 살면 그것이 행복~
인생 뭐 별거있나요~
잘나면 얼마나 잘났고
못나면 얼마나 못낫겠나요~
다 거기서 거기일뿐~
훗날 모두 한곳(?)에서 만나는데~^^
현실에서즐겁게 멋지게 열정으로
살아가는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멀리서 오는 봄을 시샘하듯 조금 쌀쌀하네요
이젠 일반 감기와 같이 코로나도 대중화 된거 같네요
그래도 조심하시고 오늘도 즐거운 일들이 쭉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그리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둑해 지면서 시간은 5시 반이 지나고 있다.
** 다음 행선지를 진주방향으로 정해서 진행하다 스마트폰의 날씨를 점검하니 구미의 날씨가 내일 아침부터는 좋아질 것이라는 예보에 갑자기 진주로 향하던 차를 구미방향으로 바꾸어서 대덕을 지나 김천방향으로 진행.
* 구미에는 금오산이 있고,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도 있는데 산행을 꽤나 했다고 하는 내가 정작 금오산을 등산하지 못해서 가슴속에 한을(?) 갖고 있어서 날씨가 좋다고 하니 방향을 틀어버린 것.
* 밤길에 김천의 대덕면을 지나고 김천시내 양금동으로 들어서니 밤 7시.
오늘 식사를 아. 점으로 금산휴게소에서 떡 만두국 한 그릇씩 먹고서 굶었으니 오죽 배가 고프랴, 물론 아내의 꼼꼼함으로 이것저것 챙겨온 간식거리를 먹었다고 해도 배에서 쪼로록 소리가 들려오는 환상을 겪으니 마을에만 들어서면 옆의 아내에게 식당을 찾으라는 소리를 하고...
* 결국 김천 양금동에 도착해서야(이 지역 이름도 식당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것 임) 식당을 찾고...
주차시설도 없어서 길가에 무단주차를 하고 "진땡이 국밥"이라는 식당에 들어가서 국밥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 식사 후 다시 김천시내를 벗어나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구미ic에서 이탈해서 금오산 도립공원내의 금오랜드 마을로 들어가서 그곳의 숙박시설주 있고, "한솔 파트 빌리지" 라는 모텔로 들어간다(1박 4만원)
첫 날 일정 끝.
** 둘쨋날과 여행 세쨋 날까지 한 페이지에 실어 볼려고 했으나 사진이 100개 이상은 엎 로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날짜별로 올려야 하겠구나.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않는 일이 더 많은 법이지... 그냥 1부로 등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