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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퇴출
이 홍사
사육당하고 있다.
병원에서 밥이 나올 시간을 기다리는 나는 분명히 사육당하고 있는 게다.
언제 밥이 나오려나?
밥이나 기다리는 나는 어지간히 따분한 모양이다. 일곱 시 기차가 지나갔는데 밥이 나오질 않는다. 병실 출입문 반대쪽에 달린 창 너머가 바로 철로다. 기차가 지나가면 병원 건물이 흔들리고 창으로 담배꽁초를 던지면 철로에 떨어질 정도로 가깝다. 지축을 울리면서, 여섯 시 기차가 지나가면 저녁이 나온다. 그 시간은 정확하다. 그런데 오늘은 감감무소식이다.
나뿐만 아니라 병실의 환자 모두가 사육되고 있다. 목줄만 없을 뿐이지 사육이 분명하다. 이곳에서 목줄이 풀려 출하되는 날을 기다리지만, 있는 동안은 사료를 배합하는 칠 층의 주방 아줌마가 가장 존경스럽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사료의 맛과 영양을 위해, 저렇게 열성적으로 맛을 위해 자비로운 손을 놀리면 후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복을 받을 일이다.
이 병원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이 조리하는 아줌마다. 원장이나 의사들은 뒷전이다. 그다음에 존경하는 사람은 칠 층 옥상 흡연실에 청소해주는 아줌마다. 그녀는 언제나 친절하다. 담배 연기가 자욱해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다.
일단 밥이 나오면 밥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지.
나의 절친, 촌장이 문지기로 취직한 강성병원 510호실이다.
촌장이 출입문 앞에 있을 적에, 훼손된 나의 정서와 감성을 거룩한 손길로 보듬어줄 양식을 구해왔다. 그 거룩한 양식은 인류가 훌륭하게 개발한, 그 이름마저도 거룩한 소주다. 저녁에 경비가 나오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촌장이 지키는 낮에 이미 준비했다.
밥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지.
형우는 내가 소주를 사 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 간호사보다 형우의 입단속을 잘해야 할 일이다. 까딱하다간 천기가 누설되는 수가 있다. 그러기 전에 형우에게 안주로 사 온 과자를 주고 입을 대충 막아 놓았지만 불안하다. 간호사실에 있는 제 이모에게 가서 슬쩍 얘기할 수도 있다.
촌장이 보안요원 겸 문지기로 선 것은 일 년 전이다.
병원은 낮에 보안요원이 근무하고 밤에는 일반 경비원들이 문지기를 한다. 예술창작촌 촌장이었는데 돈이 나오지 않는 그곳에 작업실을 빼면서, 지금 일 층 문지기 겸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조각가다.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시에서 매입해서 예술창작촌으로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조각에 관해 연구하고 작업을 하며 평생 전업 작가로 가난하게 살다가 오십이 넘어서 처음으로 취직을 한 곳이 이 병원이다. 그렇다고 조각가라는 예술을 때려치운 건 아니다. 퇴근하면 밤늦게까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한다. 예전에는 건축물 중에서 일정한 평수 이상이 되면 조형물을 세우는 게 의무화되어 있어서 공모전에 당선되어 일 년에 그런 조형물을 한두 개만 하더라도 조각가가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는데 규제가 완화되어 그런 법이 없어졌다. 그래서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밤에만 작업을 한다. 저녁을 먹고 심심하면 가끔 그의 작업실로 찾아가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이제 병원에서 만난다.
촌장이 그의 택호가 되었다. 그렇게 주경야독해서 지난달에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촌장으로서는 아홉 번째인 그 개인전 오프닝에서 이 병원 원장이 참석했던 모양이다. 전시 작품 중에서 도자기 문양, 아니다 여러 개의 도자기 반쪽을 연결해서 유약의 색과 질감으로 분류해서 알 수 없는 형체의 큰 액자를 전시했는데 원장은 거액을 주고 그 액자를 점 찍었다. 그 작품은 지금 병원 일 층 로비에 걸려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보안요원 문지기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보안요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작년인가 서울에 가서 한 달가량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고 촌장의 대학 후배가 사무장으로 있는 이 병원의 보안요원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이 병원에 그런 자리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공부를 한 것 같다. 평생 고정 수입이 없이 전업 작가로 살던 촌장은 월급을 믿고 새 차를 할부로 뺐다. 여태까지 고정 수입이 없었으니 남들이 타다가 버릴 지경이 된 고물차를 그냥 얻다시피 해서 타던 촌장인데 고정 수입이 생기니 얼굴에 생기가 돈다.
이 병원으로 온 것은 촌장이 있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이 병원은 흡연자의 천국이다. 옥상에 올라가면 흡연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옥상에는 철제로 된 탁자와 비를 맞아도 괜찮은 철제 의자가 있다. 탁자 위에는 큼직한 깡통이 있다. 작년엔가 누군가 입원을 해서 면회를 왔다가 옥상에 올라간 일이 있는데 커피 자판기까지 있어서 흡연자의 천국이다.
“밥이 온다.”
나의 장난감 형우가 소리쳤다.
밥을 실은 수레의 바퀴 소리가 복도에서 들렸던 모양이다. 이 방에서는 형우의 말이 법이다. 형우는 초등학교 이 학년인데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배우다가 굴러서 손목을 분질렀다. 왜 아동 병원에 가지 않고 이 병실에 있느냐고 물으니 제 이모가 이 병원의 간호사라서 이리로 들어왔다는 아이다. 오른 손목을 분질러 깁스를 했는데 왼손으로 밥 먹는 걸 보면 어설프게 보이지만, 밥그릇을 야물게 비우는 아이다.
“아줌마! 오늘은 반찬이 뭐예요?”
복도에서 식판을 꺼내는 영양사의 엉덩이를 보고 형우가 소리쳤다.
콩나물국이라고 하자, 형우는 소시지는 언제 나오느냐고 볼멘소리로 묻는다.
“아줌마가 올라가서 소시지를 구워올까?”
영양사가 웃으며 묻자, 형우는 괜히 해본 소리라고 괜찮단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내가 실수를 했다. 좀 전에 저녁에 일용할 양식을 구할 적에 형우가 먹을 소시지를 사는 걸 잊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병실에서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이 텔레비전 리모컨을 쥔 환자인데 우리 방에서는 형우가 리모컨을 쥐고 있다. 고로 우리 방에서는 형우가 대장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형우의 엄마가 올 것이다.
그 시간은 정확하다.
형우 엄마는 공무원으로 시청의 세무과에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퇴근하면 바로 병원으로 온다. 그 시간이 병실 사람들 저녁을 먹고 난 다음이다. 그러나 형우는 엄마가 오는 시간을 싫어한다. 그녀의 입에 달린 말은, 빨리 나아서 학원을 가야지, 형우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지난밤에는 형우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아이에게 물었다.
“형우야! 학원에 가기 싫지?”
그 말에 학원에 가지 않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오면 계속 아프다고 해.”
“에이 그러면 나도 나일론이 되잖아요?”
“인마! 여기 있는 아저씨들 다 나일론이야.”
나일론이라는 말을 하니 다리에 깁스를 한 박 씨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분질렀다. 나일론이라는 말이 귀에 껄끄러웠던 눈치였다. 그걸 눈치챘는지 형우는 고사리손으로 박 씨를 가리키며, 저 할아버지는 나일론이 아니라고 했다. 아이는 나일론이 뭘 뜻하는지 또렷이 알고 있었다. 옥상을 오르락거리며 들은 말일 것이다.
“그럼 오 층의 병실을 다 돌아다니며 나일론을 찍어내서 집으로 가라고 해.”
말이 떨어지자 아이는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는 각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찍어냈다. 누구는 나일론, 누구는 진짜, 누구는 나일론 누구는 진짜, 병실 문 앞에 서서 병실을 들여다보고 큰소리로 그렇게 외치며 빨리 나일론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 듣는 사람으로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얼마나 큰소리로 외쳤던지 복도 끝 간호사실에서 간호사들이 깔깔 웃는 소리가 우리 방까지 들렸다. 그렇게 병동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오 층에서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하는 형우에게 물었다. 나는 나일론이 아니냐고? 사고가 난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나일론이 아닌데 앞으로 나일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환자라고 했다.
형우는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면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간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다쳤다고 하면 왜 다쳤는지 꼬치꼬치 묻는다. 교통사고나 산재로 들어온 환자는 형우는 나일론이 될 확률이 진하다고 진단을 내린다.
“형우야, 이 아이언맨은 나일론이 되지 않을 거야. 아저씨는 일이 바쁘거든.”
형우는 나를 보고 아이언맨이라고 한다. 맨몸으로 차를 때려눕혔기 때문이다. 형우는 내가 사고 난 상황을 듣는 걸 좋아한다, 녀석에게 그 상황을 두 번이나 들려주었는데 자꾸 묻는다. 이젠 누가 나에게 병문안을 와서 어떻게 다쳤느냐고 물으면 형우를 부른다.
“형우야 네가 그 상황을 설명해.”
그러면 형우는 사고 당시의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지난 금요일, 덕기 선배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요즘은 술을 마시러 나가면 절대로 승용차를 가져가지 않고 시내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버스를 타고 들어간다. 그날도 기분 좋게 소주를 한 병 마시고 버스를 타고 들어가던 길이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자 바로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물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며 횡단보도 앞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여학생 하나와 횡단보도 신호를 받고 건넜다. 그다음은 이 차선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 차례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정신이 팔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껌뻑껌뻑할 적에 건너는데 퍽 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고 쏜살같이 달려오던 승용차가 그대로 쳤는데 나는 때린 차 보닛 위로 날아가 머리로 그 차의 앞유리를 깨고 다시 보닛 위를 굴러 차 앞으로 떨어졌는데 그 차가 미처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약 오 미터나 밀고 가는 바람에 팔이면 엉덩이 부분이 다 까지고 온몸에 멍이 들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이 벌떡 일어섰다. 차는 범퍼와 유리가 깨졌는데 나는 멀쩡하다.
대충 그런 상황인데 형우는 병실에서 한 번 듣더니 아이언맨이라고 불렀다. 다른 사람이 와서 또 물었다. 그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다 외웠다. 그다음에 문병을 오는 사람이 있으면 형우를 부른다.
“형우야! 내가 어떻게 다쳤지? 설명해봐.”
“이 아이언맨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그렇게 시작해서 형우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녀석은 마치 제가 당하거나 본 것처럼 실감나게 손짓까지 해가며 말한다.
죽지 않은 이유 1, 차가 너무 빨리 달렸기에 튕기지 않고 보닛으로 날았다.
죽지 않은 이유 2. 술을 한잔했기에 받치는 순간 몸이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서 살게 된 것이다.
형우는 그렇게, 죽지 않은 이유까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또 올 것이다. 그러면 형우에게 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라고 하면 된다.
형우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이 아니면 잠시도 병실에 붙어있지 않고 돌아다니며 간섭을 한다. 누가 주사를 맞으면 간호사에게 무슨 주사인지 확인을 하고 환자에게는 아프지 않은지 묻는다. 혈압 체크를 해도 마찬가지로 간섭을 한다.
“아저씨는 혈압이 높아요. 담배를 끊어야 하겠는데.”
형우는 오늘 종일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놀았다. 철근공 박 씨의 휠체어를 타고 나갔다. 박 씨가 침대에 잠깐 올라간 사이에 타고 나간 것인데 어디를 갔는지 박 씨가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복도를 내다보니 오 층에는 없었다. 한쪽 팔은 깁스를 해서 못 쓰지만 한 손으로 두 발을 이용해서 잘 탄다. 박 씨는 하는 수 없이 다른 병동의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사용하고 침대 다리에 휠체어를 묶어 놓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제일 먼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형우 엄마였다. 그녀가 나타나는 시간은 일정하다. 칼퇴근을 하고 바로 달려오는 티가 역력했다. 하긴 종일 간호를 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이니 냉큼 오는 게 맞겠지.
형우 엄마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깔끔한 인상인데 좀 차갑게 보이는 게 흠이다. 인사를 하는 것도 영판 공무원의 사무적인 태도라 정이 가지 않는데 제 자식에게 하는 말은 사근사근하다.
“형우 어르신들 말씀, 잘 듣고 잘 놀았어?”
그렇게 살갑게 인사를 하는데 형우의 인상은 뭔지 모르지만 못마땅하다.
“엄마 또 학원 얘기할려구 그러지?”
먼저 초를 치며 제 엄마의 입을 막았다.
형우 엄마가 가면 소주를 마시고 거룩한 밤에 거룩하게 잠이 들 것인데, 그녀는 여느 날과 달리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형우의 침대에 걸터앉아 형우랑 무슨 얘기를 하며 놀고 있다.
“엄마 저 아저씨 아이언맨인데.....”
형우는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아이언맨이라고 하고 내가 사고가 날 당시의 상황을 또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던 얘기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외웠다.
형우는 알고 있다.
횡단보도에서 난 사고는 신호등과 상관없이 가해자는 피해자와 개인 합을 봐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운전자는 구속이다. 그게 10대 항목에 들어가서 가중 처벌되는 조항인데 그걸 형우는 알고 있었다.
제 엄마에게 아이언맨의 사고 경위를 제가 그렇게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그런 조항이 있다고 설명을 했다.
“우리 형우가 병원에 있더니 똑똑해졌구나. 그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
형우 엄마는 침대에 올라앉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손을 쓸어넘기며 대견하다는 듯이 물었다.
“엄마! 의사들은 다 옥상에 있어. 그리고 경찰관이나 손해사정사도 다 옥상에 있어,”
“옥상? 그게 무슨 소리야?”
옥상이라는 말에 박 씨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아이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올까 보아 조마조마했던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 편한 자세로 돌아앉아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지만, 모자간에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옥상에 모이는 환자들이 의사보다 더 박사란 말이야. 그리고 교통사고나 근로자 법에 관해서도 박사야. 합의금이 얼마라는 것까지 다 맞추는데?”
그건 사실인데 형우 엄마가 들어서 좋을 건 없다. 옥상에 올라가면 산재 사고나 교통사고 환자들은 자기가 합의금을 얼마를 받을 거라는 걸 다 알게 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받을 수 있을지 받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어느 방법을 택해야 얼마를 더 받는지 알 수가 있다. 그건 한 사람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고 환자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것이다. 원조는 누구인지도 모른다. 옥상에 올라가서 들으면 보상을 받는데 박사가 된다. 보상법에 대해서는 다들 박사다. 이 강성병원은 척추와 골절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기에 다른 병원보다 정도가 심하다.
형우의 말을 거기까지 들었을 적에 촌장이 병실로 들어섰다.
“파마머리 아저씨 왔네.”
형우가 촌장을 보고 반기는 눈치였다. 촌장은 머리를 길러서 예술가답게 파마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퇴근 시간인 모양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형우 엄마가 촌장의 목에 걸린 명찰을 보고 병원 관계자인 줄 먼저 알고 촌장에게 인사를 했다.
촌장은 나를 보고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다. 낮에도 물었던 말이다.
“그냥 그래!”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갈까요?”
촌장이 먼지 제의했다. 옥상에 가자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을 먹고 담배를 피우러 가려는 참에 형우 엄마가 들어와서 참고 있던 터였다. 퇴근을 해야 할 촌장이 담배를 피우자는 말은 뭔가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냉큼 일어섰다.
복도로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지만, 엘리베이터 한 대는 이미 촌장이 가동을 중단시켰고 한 대 있는 것이 일 층에 내려가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지.”
내가 제안했다.
“그러죠.”
계단으로 들어서서 올라가는데 골반에 통증이 왔다. 며칠간 계단을 오르지 않아서 몰랐는데 아직 골반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다. 골반을 한 손으로 눌러 통증을 완화시키며 계단을 올랐다. 옥상에 올라가니 저녁 바람이 시원했다. 저녁을 먹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옥상에서 담배를 맘껏 피우기 위해 이 강성병원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할 정도로 흡연자에겐 자유롭다. 병원 관계자 중에서 청소하는 아줌마 외에는 잘 올라가지 않는 곳인데 촌장이 올라가니 너도나도 인사를 했다.
촌장은 일을 마치면 바쁜 사람이다.
낮에 구상했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할 말이 있기에 마음이 바쁠 시간에 담배를 피우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옥상에서 가장 구석에 있는 빈 테이블을 가리키고 그리로 가자고 내가 제안했다. 보상을 많이 받는 방법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담배를 물자, 촌장은 말했다.
“다친 부위를 한 번 봅시다.”
“피멍이 잔뜩 들었어.”
나는 환자복 바지를 조금 내려 엉덩이와 허벅지를 보여주었다. 엉덩이와 오른쪽 허벅지는 차에 받히면서 처음에는 피멍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시커멓게 변했다.
“아이구야.”
시커먼 엉덩이와 허벅지의 멍을 보더니, 촌장이 한숨 같은 놀라움을 토해냈다.
“이래선 안 되겠는데, 치료는 무슨 치료를 받고 있어요?”
치료라고 달리 없다. 하루에 한 번, 물리치료를 받는데 허벅지와 엉덩이에 핫팩을 대고 있다가 자외선이라며 빛을 쏘이는 게 고작이다. 어지럽고 구토가 나는데 먹는 약은 사흘을 주다가 그다음부터는 약값이 자부담이라고 해서 먹지 않고 있다. 그 말을 했더니, 촌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병원을 옮기라고 했다. 이 병원은 골절 환자나 척추디스크 환자를 잘 보는 병원이지, 나 같이 교통사고 후유증 환자를 잘 보는 병원은 아니라고 했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지?”
담배를 물고 내가 물었던가?
시청 서문 옆에 있는 청심 한방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옛날 등기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한방병원인데 시설이 좋다고 했다. 여기가 삼급수라면 그 병원은 환자에게 일급수라고 했다. 여기가 병원이라면 거기는 호텔이라며 좋아하는 책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수가 있다고 하면서, 거기 가서 사혈해서 죽은 피를 부항을 해서 뽑아내고 침을 맞고 뜸을 뜨는 것이 좋겠노라고 했다. 교통사고 환자가 종내에는 한방병원으로 간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가야 할 줄은 몰랐다. 나일론 환자들이 보상금을 더 타려고 가는 병원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피멍이 든 허벅지와 엉덩이에 사혈하고 죽은 피를 뽑아내면 아무래도 가렵고 아픈 곳이 시원하고 통증도 가라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병원에 가면 규제도 자유롭고 식사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으며 잘하면 일 인실에서 사육을 당하는 게 아니라 인간 대접을 받으며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하면서 나 같은 환자는 강성병원에 있어도 강성병원에서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이 병원에 있지 않으면 촌장이 월급을 받는데 지장이 생길까 봐 있는 것인데, 내일 옮길까?”
촌장은 내일 옮기면 일단 자리가 있나 알아봐 주겠다고 하면서 자리가 나면 예약을 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전화해보고 연락을 주겠노라고 했다.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병실로 내려오니 그때까지 형우 엄마가 가지 않고 형우와 놀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형우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제 엄마의 귀를 잡아당겨서 뭐라고 소곤거렸다.
저놈이 냉장고에 소주가 들었다고 고자질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좀 곤란해지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모르는 척하고 말을 돌렸다.
“형우는 다 큰 애가 엄마에게 재롱도 뜨는구나?”
한참을 놀다가 형우 엄마가 가고 간호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며 박 씨의 엉덩이에 진통제를 놓고 돌아갔다. 이젠 형우가 나가지 않으면 병실에 들어올 사람이 없다.
“자! 우리들의 세상, 해방공간이다.”
내가 그 말을 하자 박 씨가 침을 꿀꺽 삼키는 눈치였고 형우가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종이컵은 준비되어 있다. 거룩한 소주는 마트에서 이미 물병에 넣어서 위장된 상태로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 박 씨는 술을 꽤 좋아하는 눈치였다. 지금은 속칭, 노가다판에서 철근공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해병대 중사 출신이다. 귀신을 잡는다는 해병대에서 사령부 보급 사관의 보직을 받고 있었다는데 이야기만 하면 귀신을 잡은 것이 아니라, 보급품을 빼돌려서 술을 사 먹은 얘기다. 술을 마시면서 박 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박 중사라고 불러주면 더 좋아하는, 자발 없는 인간이다.
“너 인마! 아까 엄마 귀에 대고 소곤거리며 냉장고에 소주가 들었다고 일러주었지?”
내가 형우를 잡고 핀잔을 주었다.
“어 아이언맨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이언맨은 척 보면 삼천리다. 인마.”
그 말을 하자 박 씨가 형우를 불렀다. 형우가 무슨 일인가 싶어 침대에 바짝 다가서자 박 중사는 대뜸 형우의 이마에 꿀밤을 주었다. 형우는 장난인 줄 미리 알고 꿀밤을 피하며 병실 구석으로 도망을 가서 깔깔거렸다. 박 중사는 깁스한 다리를 침대 난간에 얹어 놓았기에 형우를 잡을 수가 없다.
안주로 형우가 좋아한다는 소시지는 없지만, 녀석이 먹을 만한 과자는 있었다. 박 씨는 쥐포를 안주로 좋아한다. 그 점을 알고 쥐포도 준비했다. 술은 역시 금지된 곳에서 숨어서 먹는 게 제맛이다. 술상은 박 중사의 침대 바로 아래 차려졌다. 술상이라고 해봤자. 보조 의자를 당겨놓고 플라스틱 물통에 종이컵과 안주뿐이다. 박 중사는 컵에 소주를 콸콸 부어 단숨에 들이키고 나는 반 잔씩 나누어서 마셨다. 박 중사 안주로는 쥐포이고 내가 씹을 안주는 수입이지만, 소고기 육포였다. 과자부스러기는 단연히 공범인 형우의 몫이다.
510호실의 비밀을 위하여!
막 건배를 하고 있을 적에 침대에 던져둔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촌장이었다. 파악하니, 빈자리가 있다면서 내일 한방병원으로 옮길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름과 어떻게 알았는지 주민등록번호로 예약을 해두었다는 것이다. 알겠노라고 했다. 전화를 그렇게 받았지만. 형우는 물론이고 박 중사도 눈치채지 못했다. 전화 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칠 층의 주방 아줌마 미모에 대해서, 영양사가 더 예쁜지 조리사가 더 예쁜지 둘이서 떠들고 있었다. 박 중사가 형우를 데리고 놀고 있는 셈이었다.
자칭 술고래라는 박 중사가 종이컵에 소주를 콸콸 따라서 마시는 바람에 사 홉들이 소주 두 병은 금세 바닥이 났다. 과음을 하는 게 아닌가 했지만, 박 중사는 이미 수술 부위가 아물고 실밥을 뺀 다음이라 곪을 염려는 없다.
깨끗하게 마시고 뒷정리는 내가 했다.
술 냄새가 날 만한 병과 컵은 병실 밖의 화장실 옆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잔을 걸치니 거룩한 밤이 되었고 오랜만에 깊게 잤다.
새벽에 일어나 무슨 핑계를 대고 퇴원을 요구해야 할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식전에 씻고 나면 간호사들이 병동을 한 바퀴 돌며 혈압과 체온을 측정한다. 간호사가 내 팔에 혈압을 체크하고 있을 때 형우가 부스스 눈을 떴다.
“아줌마! 아이언맨은 어젯밤에 술을 마셔서 보나 마나 혈압이 높을 거예요.”
형우가 뒤에서 그렇게 말했다. 어젯밤에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은 잠결에 날아갔는가 보다.
“술 드셨어요?”
간호사가 물었다.
“포도주 한 모금......”
말을 얼버무리는데 형우가 다시 맹랑하게 소리쳤다.
“포도주는 무슨, 소주 사 홉들이 두 병이예요.”
그 말에 박 중사는 침대에 앉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형우의 말대로 내 혈압은 높게 나왔다. 간호사가 가고 나면 형우는 또 꿀밤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박 중사는 더 마셨는데 혈압이 정상이었다.
누가 불었을까?
간호사 아니면 형우의 엄마다.
아침을 먹고 주치의들이 회진하는데 내 상태를 묻던 주치의가 술에 관해서 얘기를 꺼냈다.
“지킬 건 지켜야죠. 병실에서 술을 자시면 어떻게 해요. 머리도 어지럽다면서. 술은 집에 가서 자셔요.”
“차도도 없고, 저 오늘 퇴원했으면 좋겠는데요.”
“술을 마시는 분 강제 퇴원시키고 싶다는 말을 참고 있었는데 잘 되었네요. 퇴원하세요.”
봉곡득타, 울고 싶은데 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니다. 주치의가 퇴원을 허락한 게 아니라 내쫓기는 형국이었다. 주치의는 뒤에 선 간호사에게 퇴원시키라고 하고는 간호사 그걸 들고 있던 챠트에 기록하고 나갔다.
주치의가 나가자, 박 중사가 형우를 불렀다. 꿀밤이 날아갈 것을 안, 형우는 병실 문밖으로 달아나서 병실을 들여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언맨 퇴출!”
“너 이 자식! 안 들어와?”
내 속내를 전혀 모르는 박 중사가 낮은 목소리로 협박하자 형우는 복도 끝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달아나며 소리쳤다.
아이언맨 퇴출이다. 아이언맨 퇴출!
형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
아무리 바빠도 칠 층에 올라가서 주방 아줌마들에게 인사는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동안 나를 거두어 주었는데, 인사를 하더라도 잠시 머물다 퇴출당하는 철새의 깃털 같은 내 존재를 알아보려나?
거, 참! 고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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