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또 내가 알고 있네
중국 후한 시대의 양진은 청렴결백한 선비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양진이 동래 태수로 부임하던 길에 향읍이라는 곳에서 쉬어 갈 때의 일입니다. “내가 과연 태수 노릇을 잘 해낼 수 있을까?”양진은 처음 맡은 중책에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 쉬이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나리, 안에 계십니까?”“누, 누구요? 이 늦은 밤에.”양진은 흠칫 놀라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관리 옷을 입은 뚱뚱한 사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사내는 들어서자마자 넙죽 절부터 올렸지요. “태수 나리,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형주에서 신세를 졌던 왕밀입니다.”“왕밀? 아니,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양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왕밀이라면 오래 전 자사라는 벼슬에 추천해 준 인물이었지요. “이 낯선 땅에서 자네를 만나다니 꿈만 같네.”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그리고 옛 추억을 되새기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지요. 한데 새벽녘이 가까워지자, 왕밀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양진의 무릎 위에 묵직한 물건 하나를 턱 올려놓았습니다. “태수님, 이걸······.” 그건 꽤나 묵직한 황금 덩어리였습니다. “이, 이게 뭔가?” “은혜를 갚는 뜻에서 드리는 것이니 아무 말 말고 받아 두십시오.”양진은 진땀을 흘리며 황금을 다시 왕밀에게 내밀었습니다. “도로 집어넣게. 은혜를 갚고 싶다면 더욱 훌륭한 관리가 되는 걸로 충분하네.”“태수로 부임하시면 돈 쓸 일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여기엔 우리 둘밖에는 없습니다. 밖으로 새어 나갈 염려도 없으니 그냥 받아 두시지요.”왕밀이 눈을 끔뻑거리며 속삭였습니다. 바로 그때, 찍찍! 달그락달그락! 천장 위로 쥐 한 마리가 요란하게 달려갔습니다. 양진은 천장을 가리켰지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으니 아무도 모른다고? 아닐세, 저 천장 위의 쥐는 벌써 다 들었을 걸세. 게다가 이 일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또 내가 알고 있네. 세상에 어찌 비밀이 있겠는가!”하지만 왕밀은 끈질겼습니다. “허, 그냥 받아 두시는 게······.”양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네 이놈, 감히 황금 따위로 사람의 마음을 사려 하다니!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썩 물러가거라, 이놈!”그제야 왕밀은 시뻘개진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양진은 이렇듯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대나무처럼 곧은 성품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에 실려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