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 정채봉,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 백두산 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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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웠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둘러앉아 이야기꽃 피우며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시겠지요? 지난 목요일 의정부에서의 국가대표 상비군 합숙훈련을 마친 해인이를 데리고 오는 길에 치료에 전념하던 지우와 뒷바라지하던 아내를 함께 태우고는 장장 5시간 반에 걸쳐 귀성길을 뚫고 의성에 내려와 저희 가족은 오랜만에 완전체를 이루어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명절이라고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글자가 주는 큰 힘이 있습니다. 그저 아내와 딸들과 아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쿨해지는 명절입니다.
우리에겐 저마다 가족이 있지만 여러 관계들 속에 살아가면서 가족의 개념은 확장되기 마련이지요. 함께 정을 나누는 이웃들도,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걷는 교우들도, 왠지 마음이 가는 누군가도 모두 가족이라 느끼며 마음을 나눕니다. 그렇게 가족애는 인류애로 확장되어 갑니다. 저 또한 가족처럼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얼굴을 떠올리며 늘 그립고 안부가 궁금한 이들이지요.
지난 주일 고(故) 북산 최완택 목사님을 기억하는 북걷사(북산을 걷는 사람들) 모임이 전북 장수에서 있었습니다. 북걷사의 일원이 된 이후 북산의 사람들은 저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지요. 외부일정을 잘 다니지 못하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서로 부등켜 안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행복해했습니다. 그간의 못다 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다가 모두가 잠든 밤, 저와 장수에서 가나안초대소라는 이름의 터를 일구고 계신 양재성 목사님, 그리고 늘 그리웠던 거창의 여승훈 목사님, 이렇게 셋이서 밤을 지새우며 그간의 그리움을 서로 다독여주었습니다. 이분들은 첫 목회 시절부터 저를 잘 이끌어주시고 목회가 무엇인지, 사람됨이 무엇인지를 온 삶으로 가르쳐오신, 제게는 너무도 소중한 선배 목사님들이어서 그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목회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최근 지우의 상황을 듣고는 함께 마음 아파하며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북걷사 회원들과 함께 장수에 있는 100명산 가운데 하나인 신무산에 올라 금강 발원지인 뜬봉샘에 가 목을 축이고는 다시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지요. 집에 돌아와 모임 중 여승훈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부탁하신 시노래들을 메일로 보내드렸더니 바로 답장을 보내오셨습니다. 답장 안에는 정채봉 시인의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 백두산 천지에서>라는 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밤새 너의 저린 고백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던 정채봉 시인이 떠올랐다”며 보내온 짧막한 시 한편에 제 마음이 무지근해졌습니다. 사실 여승훈 목사님이야말로 인생의 큰 고통을 온 삶으로 짊어지고 오신 분이어서 이 시가 더욱 절절히 다가왔는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이었고, 이후의 치료의 과정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도 여전히 다리를 절룩거리시며 진한 후유증을 앓고 계시지요.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고, 아픔이 아픔을 위로합니다. 저는 큰 산 같은 목사님의 너른 품에 기대어 한 움큼 위로를 얻고 오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2024. 2. 10.>
첫댓글 💌 <백두산 천지에서>를 읽으며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이 떠올랐습니다. 낙동강의 발원지, 긴 슬픔의 시작인 황지연못을 정채봉 시인이라면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을까요?
✔️ 아!
이렇게 유장한 강도
이렇게 긴 눈물샘을 안고 흐른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