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줌 손톱 몇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 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통인지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 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