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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마우스(Mickey Mouse)
“꿈을 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생쥐 한 마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세요.” - 월트 디즈니
떠돌이 목수 아들로 태어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한 소년이 있었다. 농촌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 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했어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를 따라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 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만화는 보석이었다. 꿈과 자존심 이었다. 소원대로 소년은 자라서 신문사 만화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항상 평가절하(平價切下) 하며 퇴짜를 놓았다.
“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 두는 게 어때.”
소년은 결국 신문사를 떠났다. 그는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고향 농촌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생쥐가 출몰하는 교회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얼마후 지하창고의 생쥐들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젊은이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미키 마우스는 꿈 많은 가난한 젊은이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만들었다.
월트 디즈니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만든 미키 마우스는 그가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만들어졌다. 미키 마우스의 극적인 탄생과 관련해서는 그가 가난하고 배고픈 화가 시절, 작업장에서 함께 치즈를 나눠 먹던 생쥐를 캐릭터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졌고 여기서 파생된 수많은 전설이 있지만, 대부분은 검증된 이야기가 아니라 위인전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던 작가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본래 월트 디즈니는 '모티머(Mortimer)'라 이름 지었는데, 아내 릴리언이 '미키(Mickey)'라 부르는 것이 낫겠다고 조언해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키 마우스 :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키 마우스는 1928년 <증기선 윌리>로 데뷔한 이래 지난 90여 년간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의 심볼로 여겨져 왔다. 현재 디즈니 캐릭터 산업 수익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대중미디어예술이 배출해낸 전무후무한 슈퍼스타다.
마블 엔터테인먼트, 픽사 등 거대 미디어 회사를 먹어치우며 헐리우드 6대 메이저 스튜디오의 하나로 군림하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거대한 성공을 가능케 한 인물은 과연 누구였을까? 애니메이션 산업을 일으켰고, 미국 저작권법을 좌지우지하는 거물. 월트 디즈니가 아니라 바로 ‘미키 마우스’다.
‘쥐’를 의인화 한 캐릭터라 그런지 미키 마우스의 모델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가 사실인양 전한다., 월트 디즈니가 살던 캔자스시티 하숙집의 생쥐들이라는 둥, 신문사에서 해고 당한 후 세들었던 교회 지하창고의 생쥐들이라는 이야기는 후에 덧붙여진 ‘탄생 설화’일 뿐 사실이 아니다.
미키를 고안할 당시 월트 디즈니는 이미 잘 나가던 애니메이터였다. ‘검은 고양이 펠릭스’에 대적하기 위해 만든 토끼 캐릭터 ‘오스왈드’의 판권을 투자자와의 갈등으로 빼앗기자, 대안으로 만든 캐릭터가 미키 마우스다. 월트 디즈니 입장에서는 일종의 플랜 B였던 셈이다.
1928년 개봉한 <증기선 윌리>의 포스터
미키는 <정신나간 비행기(Plane Crazy:1927)>등 몇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데뷔했다가 1928년 세계 최초의 발성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증기선 윌리>에 등장했던 휘파람 부는 미키는 현재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영상 로고로 쓰이고 있다.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은 1932년 미키를 주인공으로 한 컬러 애니메이션을 처음으로 제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당시 열렸던 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소품으로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미키 주연의 컬러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린 것은 3년이 지난 1935년 <밴드 콘서트>에 이르러서다. 이후 미키는 3편의 장편 애니메이션과 TV시리즈를 포함한 120편의 애니메이션에 출연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넘어 미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미키 마우스의 디자인 변천사
보다 가까이, 보다 친숙하게
미키 마우스의 디자인은 90여 년의 세월 동안 내외부적으로 조금씩 바뀌어 왔다. 초창기의 미키는 흰자위가 없는 눈이 까만 점처럼 박혀 있는 형태였고, 하얀 장갑도 끼지 않았다. 그는 1929년작 <오프리 하우스>에서 처음으로 하얀 장갑을 착용했는데, 까만 몸통 때문에 손과 발이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작은 몸통에 길쭉했던 팔다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짧아졌고 손과 발, 머리의 비율이 커지면서 아동과 비슷한 체형으로 다듬어졌다
.
성격도 큰 변화를 겪었다. 미키는 본래 성격이 급하고 장난이 과해 일견 폭력적일 정도로 과격한 캐릭터였으나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은 뒤 점점 부드러워졌다. 특히 미니 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 등 소위 ‘미키 마우스 패밀리’라고 하는 디즈니 캐릭터 브랜드의 수장이 되면서부터는 ‘상냥하고 친절하며 유쾌한 미키’로 완전히 변모하게 되었다.
미키 마우스는 디즈니랜드의 호스트이자 마스코트로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디즈니 캐릭터 산업의 중심, 미키 마우스
미키 마우스가 미국에 얼마나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실감하고 싶다면 미국 저작권법을 들여다보면 된다. 1998년, 디즈니는 어마어마한 로비를 통해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을 통과시켰다. 덕분에 디즈니는 2003년까지였던 미키의 저작권 보호 기간을 20년 연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미키와 함께 다른 디즈니 소유 캐릭터들의 저작권 보호 기간도 어물쩍 연장 받으면서, 해당 법은 ‘미키 마우스법’이라고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미키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키는 디즈니랜드 호스트 노릇을 포함해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심볼로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10조 원이 넘는 규모의 디즈니 캐릭터 산업에서 미키가 차지하는 지분이 50%가 넘는다고 한다. 사실상 미키가 디즈니를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 작품 어딘가에 미키 마우스를 심어 놓곤 하는데, 이를 ‘히든 미키’라고 부른다. 2013년 개봉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겨울왕국>에서도 히든 미키를 발견할 수 있다.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
Plane Crazy (정신나간 비행기, 1927)
Steamboat Willie (증기선 윌리, 1928)
The Band Concert (밴드 콘서트, 1935)
Brave Little Tailor (용감한 꼬마 재봉사, 1938)
Mickey and the Seal (미키와 바다 표범, 1948)
Mickey's Christmas Carol (믹키의 크리스마스 캐롤, 1983)
Runaway Brain (런어웨이 브레인, 1995)
Get a Horse! (말을 잡아라!, 2013)
Fantasia (판타지아, 1940)
Fun and Fancy Free (미키와 콩나무, 1947)
Who Framed Roger Rabbit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 1988)
Mickey's Once Upon a Christmas (미키의 크리스마스, 1999)
Fantasia 2000 (판타지아 2000, 1999)
Mickey's House of Villains (미키 마우스와 악당의 집, 2002)
Mickey, Donald, Goofy: The Three Musketeers (디즈니 삼총사, 2004)
Mickey's Twice Upon a Christmas (미키의 크리스마스 선물, 2004)
The Mickey Mouse Club (미키 마우스 클럽, 1955–1959; 1977–1979; 1989–1994)
Mickey Mouse Works (미키의 환상의 크리스마스, 1999–2000)
Mickey Mouse Clubhouse (미키마우스 클럽하우스, 2006–present)
Mickey Mouse (미키 마우스, 2013–present)
초창기의 미키는 흰자위가 없는 눈이 까만 점처럼 박혀 있는 형태였고, 하얀 장갑도 끼지 않았다.
그는 1929년작 <오프리 하우스>에서 처음으로 하얀 장갑을 착용했는데,
까만 몸통 때문에 손과 발이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
애니메이션, 코미디 / 미국 / 7 분
감독 : 월트 디즈니 (Walt Disney). 어브 이웍스 (Ub Iwerks)
1928년 11월 18일 개봉한 <증기선 윌리>의 포스터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
미키가 발을 구르고 휘파람을 불며 배의 키를 돌리는 장면인데,
증기선 윌리를 대표하는 씬(Scene)으로 유명하다.
휘파람 부는 미키는 현재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영상 로고로 쓰이고 있다.
선장 블랙 피트(Black Pete)와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증기선 윌리>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생쥐 캐릭터 미키 마우스(Mickey Mouse)가 3번째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토키(有聲) 애니메이션이다. 월트 디즈니가 직접 감독하고, 1928년 11월 18일 뉴욕의 콜로니 극장에서 개봉되었는데, 이 날이 바로 훗날 월트 디즈니의 얼굴이 된 미키 마우스의 생일이기도 하다.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는 버스터 키튼의 인기 영화 <증기선 빌(Steamboat Bill)>의 줄거리를 빌려와서 만들었는데, 증기선의 선장에는 심술궂고 악명 높은 블랙 피트(Black Pete)가 등장한다.
미키 마우스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월트 디즈니(Walt Disney) 이지만, 미키 마우스에게 애니메이션 캐릭터로서의 생명을 불어 넣어준 사람은 어브 아이웍스(Ub Iwerks)라는 디즈니사의 만화가로 월트 디즈니와 절친한 사이였다. 어브 아이웍스는 커다란 귀에 새까만 눈을 가진 미키 마우스의 외형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최초로 미키가 출연한 만화를 혼자서 다 그리다시피 했다고 전한다.
최초의 미키는 눈이 왕방울만하고 손에 장갑을 끼지 않았다. 현대의 미키는 점잖고 수줍음 많은 신사 이미지를 풍기지만 초창기 미키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말썽꾼이었다.'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을 염두에 둔 캐릭였기 때문이다.
미키의 데뷔작 '미친 비행기'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로 일약 스타가 됐다. 당시 미키 목소리는 디즈니가 맡았다. 이 작품으로 월트 디즈니는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다.
어브 아이웍스(Ub Iwerks)
월트 디즈니(Walter Disney)
첫댓글 와~~ 미키마우스가 1928년에 태어났군요~~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동심을 안겨주는 미키마우스 ^^
1928년 11월 18일이 생일이더군요. 92살~
미키 사진 모아서 뽀샵하느라 눈이 혹사하는 바람에
'증기선 윌리'는 중도에서 멈췄습니다.
즐겁게 봐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뽀삽이 눈을 무척 피로하게 하는데 일일이 사진을 뽀샵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덕분에 저희는 편하게 즐기지만요~~
정말 고맙습니다 ^^
저도 즐겁게 보았습니다. 우리집 카페로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