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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말한다 ! 수행의 방향성
눈꽃 추천 0 조회 64 25.06.10 06:47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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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06.10 06:48

    첫댓글 [길이 전부고, 길이 끝이다] 에 달린 댓글에서 발췌했습니다.

  • 25.06.10 08:36

    방님 말씀의 맥락상 '( )에 초점을 맞춘다'는 건
    ( )을 확증하려는 의도를 갖는 것 아닐까용?

  • 작성자 25.06.10 13:35

    네 저도
    무아를 확증하기 위해서는
    1. 무아를 알겠다는 방향성을 갖고
    2. . 들숨날숨에서 촉감을 잡으며,
    3. 그 촉감을 잡는 행위에서 무아임을 체득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되긴 해요.

    또 무상을 잡는 것도
    1.그 방향성에서 무상을 잡겠다로 향하여.

    2. 들숨 날숨에서 촉감을 잡는다.
    3. 그렇게 알려진 촉감의 드러남을 보며 무상을 체득한다.

    그러니까 들숨날숨을 할 뿐이지만
    그 들숨날숨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무아다' '무상이다' '괴로움이다' 하는 삼특상을 추론으로 안다는 것일까?
    라고 추측해봅니다.

  • 작성자 25.06.10 21:22

    설명이 필요합니다.

  • 25.06.11 02:51

    전통적 방법을 따르고 싶다면, AI에게 "불교의 관법에 대해 알려죠"라고 물으면 될 거 같습니다.

    알아차림은 그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필요한거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차림등에서 논점의 '관'이 발생하거든요.

    불교는 지옥에 가는 방법과 천상에 가는 방법, 수행하는 방법, 일상에서의 경험... 모두 같은 구조입니다. 평등합니다.

    관이라는 거는, 경험으로 아는 겁니다. 물론 (법 즉 경험에 근거한) 추론으로도 알 수 있어요. 소위 '관'에서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가 안다는 모든 것들이 그렇습니다. 그렇죠?

    그런즉 (경험한) 기억의 분석에서도 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한 경험 자체에서도 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꼭 추론이 필요한 거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불에 가까이 가니 뜨거워지니까(유쾌하지 않은 느낌이 스물스물 발생하면서 밀어내는 의도가 점차 강하게 발생), 저거는 위험한 거다, 저거는 가까이 가면 안되겠는데... 그러면 일종의 추론입니다. 그렇죠?

    불에 손을 직접 넣으니까, 겁나 뜨거워(강렬한 느낌, 강렬한 의도 발생)... 이거 진짜 위험하네... 그러면 경험에서 직빵으로 아는 겁니다. 그렇죠?

  • 25.06.11 02:52

    .
    지금 일련의 논의에서, 관이라는 것은 연기의 모습을 아는 거라 적은 바 있습니다. 적었듯, 무상 등이 다 연기의 모습입니다.

    무상한지 어떻게 알까요? 여러가지 접근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고 불교 공부도 하고 그런 것이거든요. 배웠으면 써먹어야 합니다.

    교학 공부하고, 소위 실참하고... 따로 국밥으로 하면요. 이게 교학의 이해가 잘 성립하지 않습니다. 교학이 실참을 이끌고 실참이 교학을 이해하게 하고...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이 효율적이고, 뭐랄까... 제대로 하는 거라고 할까요? 그래요.

    연기로 성립한 것은 무상하니까, 연기 즉 조건 성립이란 점을 확인해도 무상을 확인하는 거예요. 그렇죠? 자기가 연구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나름 방식도 찾고, 이해도 합니다.

    어쨌든 무상이다. 어떻게 무상을 직접 알 수 있을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뭘까요?

    뭐겠습니까? 무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예요.

    자기가 산란한 마음이라 미친년 널뛰기하며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니까 한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알려질 수도 있잖아, 그렇지 않아요?

    법 즉 사실이 알려지는 고요한 마음 상태, 지에서...알려진 것을 유지하는 지가 행해지도록 조정하는 겁니다.

  • 25.06.11 02:50

    .
    불에 손을 직접 넣어봐야...뜨거운 맛, 불의 맛을 직접 알듯이... 빡세게 유지하려고 해봐야, 무상하다는 것도 직접 알아요. 그렇지 않나요?

    물론 의문이 들 수는 있어요. 이거 사실 유상한 건데, 내가 수행력 부족으로 항상하지 않은 거 아니야? 그래도 빡세게 함 해보면, 최소한 다음의 결론은 나와요. 적어도 나의 조건에서는, 항상한 것은 없고 무상하다... 빡세게 했으니까, 이거는 무상을 직접 아는 거예요.

    불법을 공부한다는, 소위 수행한다는 거는요. 노가다입니다. 과거에 그런 말 적은 적이 있는데, 알아차림 이거 정말 노가다다. 그런데 노가다는요. 평등해요. 빡세게 한 만큼, 가져다 줘. 성취를 하게 한다구요. 운빨이 별로 없어요. 정말 평등하다구요.

    그래서 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알아차림이라는 방법은, 이거 정말 평등하고, 이게 바로 연기다. 연기의 모습 중 하나다.

    어쨌든 유지하려는 노력, 이거 마음을 상당히 개발시켜 줍니다. 자기 마음을 다루는 힘을 길러줍니다. 노가다를 하면, 실전 근육이 붙는 거와 똑 같습니다.

    자신이 무상을 직접 알기 위해 골몰한 거, 골몰해 선택한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을 실현한 노력...그게 성취입니다.

  • 작성자 25.06.11 11:29

    [지 관을 빡세게 한만큼 성취한다]
    여기서 막힙니다.
    나름 한동안은 매진해보기도 했으나, 작은 무언가는 알려졌지만 큰 성취에의 길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무상 고 무아를 있는 그대로 알고자 하는 염원을 놓친적은 없습니다.

    지금 시대는 붓다로부터 2,500년을 달려왔고,
    그 세월은 붓다시절 밝혀지지 않았던 수많은 사실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밝혀지고 있어요.

    수행은 꼭 止로만 해야하나?
    안되던데..

    그래도 나는 그 앎 속으로 들어가고 싶거든.

    그 앎.
    우회로도 있겠지.

    저는 결국 우회로를 선택했고, 그 우회로에서 알려지는 앎앞에 전율하고 있죠.



  • 25.06.11 17:58

    크고 근사한 거, 만능 해결책, 정답... 이런 거를 기대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거를 기대하는 것이, 유아견입니다. 그게 '나'를 찾아 헤매는 거라구요.

    세상에 가제트 만능팔 같은 거는 없습니다. 그런게 있다면, 그게 바로 무아가 틀리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음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
    항상한 것, 괴로움이 아닌 것, 나로 삼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로 삼아 취해라.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

    저도 그러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가제트 만능팔을 본 적이 없습니다.

    빡세게 유지하려고 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어요. 선정도 깨지거든요. 그러니 그런 정도는 당연히 깨지죠.

    유지하려는 노력... 예로, 의자에 앉았을 때 발바닥 감촉을 붙잡고 그 감촉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그 발바닥 감촉이 끊임 없이 요동을 칩니다. 감촉 A라는게, A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A', A"... 다만 우리는 A, A', A"... 그 모두를 감촉 A라 이름할 뿐입니다.

    과학적으로, 그거 본질이 뇌로 전달되는 전기 신호 같은 거일 테니까, 그럴 수 밖에 없기는 하겠죠?

  • 25.06.11 18:20

    .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발바닥이 방바닥과 부딪히고 있는 거, 그런 거처럼 쉬운 거도 많아요.

    쉽든 어렵든, 평등한 가르침이기에, '관'은 똑 같이 성립합니다.

    중요한 거는, 세월입니다. '관 소위 통찰' 위에 세월이 소복하게 쌓이는 겁니다. 그리고 과거 적었듯, 세월이 쌓인다는 거는 행위가 쌓인다는 거예요. 행위가 쌓인다는 것은, 강한 힘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재수가 좋든, 유전자가 그렇든, 처음부터 강한 힘을 일으키는 토대가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용가리 통뼈라도, 세월이 쌓인 거 앞에서는 평등해지는 겁니다. 그게 본질이라면 본질이라서 그래요. 용가리 통뼈도 뼈라구요. 용가리 통뼈라고 뼈가 아닌게 아닙니다.

    어쨌든 뭐...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담은 길, 마음이 가는 대로의 궤적, 그렇게 흔적을 새기기 마련입니다.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저 역시 지적에 응하고 있을 뿐인 것이고...

    행위, 업, 집중... ... 힘은 세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고려할 측면이 최소한 세개는 있다, 이거죠.

    힘의 크기, 힘의 방향성, 힘의 대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그런 것이고 그 정도입니다.

  • 25.06.11 20:03

    항상ㅡ불변의 거시기를 기본적으로 상정하는 인도문화권을 배제하면,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진 대부분의 현대인은 무상, 즉 '모든것은 변한다. 예외없이'란 언명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들에게, 관찰을 통해 무상을 확증하라는 얘기는,
    관찰을 통해 중력의 작동을 확증하라는 얘기와 같을 거에요. 한마디로 당연한 얘기 한다는 거죠.

    근데 삼법인은 괴로움을 여의는 길인데..
    그들 중 대부분은 그 과보는 누리지 못해요.

    그 이유로,
    머..아주 피상적인 진단이기도 한데요..
    이치적인 이해가, 실제 순간순간의 현실에 반영되지 않아서 인것도 같아요.

    이 지점에서,
    이해는 기본이고, 소위 <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25.06.11 21:28

    '무상.고.무아도 이해했고, 연기도 이해했어'라고 생각해도 실제 지를 통한 관의 확증 없이는 실제 이해한 것이 아닌가요?
    네.. 아니라구요?
    그렇다면 황벽님은 수행전과 수행후의 생긴 그 힘이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25.06.12 02:46

    수행이란 걸 했다고 치면.. 과보는
    봉팔이 먼산보기를 좀 잘하는 거랑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들에 빠져들지 않는 편..
    요정도 인듯여

    전제 : 일상을 기준으로 할 때 얘기구여
    큰 이벤트가 터지면 둘 다 작동 안 하고 존버..

  • 25.06.12 10:50

    관의 확증 없이도, 이해한 것은 이해한 거죠.

    그리고 '관'이, '앎'이고, '이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황벽님도 지적했듯, 결국 얼마나 힘을 갖춘 이해인가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어떤거냐 하면요. 물과 돌덩이를 생각하면 됩니다.

    물이 한곳을 두드리면, 돌덩이가 빨리 닳아요. 몇십년 정도면 그냥 마...

    그런데 그냥 흘러내려도, 돌덩이가 닳습니다. 닳기는 닳아요. 그런데 몇십년 정도 지나도 그냥 마...

    몇십년 정도 지나도? 인간이 얼마나 살 수 있냐 이거죠. 게다가 산다는게, 돌덩이를 늘리는 일도 많이 하다 보니...

    산다는게요... '존버'라는 말을 보니 생각나는데, 삼성전자를 이십여년전에 쪼꼼 사서 지금까지 존버 중입니다.

    "현대건설처럼만 안되면 돼..." 이런 마음으로...

    요즘은 가끔씩 "이게 참 미련한 짓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세월이 많이 쌓여서...

    세월이 쌓인다는 거는 힘을 갖춘다는 거고...

    움직이기 힘들어지죠.

    어쨌든 단일한 이해로 초지일관 존버하면, 움직이지 않는 방향성은 갖출 수 있어요.

    폼나게 포장하자면...그 속도는 느릴지라도, 부동을 지향한다?

    부동이 열반의 특성이잖아요?

  • 25.06.12 19:13

    그 삼성전자는 이십년 전보다 몇 배 불었나요? ㅎㅎ

  • 25.06.13 00:35

    7~8배 정도 됩니다. 까까 사먹을라구요.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장기투자에 적합한 종목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 25.06.13 08:42

    와우~ 그때 많이 사 놓았으면 부자되었겠네요.. :)
    주식 잘 모르는 저는 적은 금액으로 삼성전자 오만원 초반에 사놓았다가 8만원 대에 팔고 다시 5만원 초반에 사놓았습니다. 8~9만원 때를 기다리며 무관심 모드로 ..ㅎㅎ

  • 25.06.14 10:38 새글

    숨결님처럼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리만브라더스 사태 등에도 버티고, 버티고, 존버하고... 이게 스토리를 간직하다 보니까... 참...

    많이 샀으면, 아마 20년 동안 존버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한주 팔고는, 수퍼가 돈 받고 협찬을 받아 강요하는 선택 "1+1 할인 특가"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까까를 사는 권리 확보 정도? 그렇죠 뭐...

  • 25.06.14 21:25 새글

    20년 존버하면서 스토리를 간직하게된 삼성전자? ㅎㅎ

    이것은
    전략인가요?
    집착인가요?
    부동심인가요?

    언제 파실 거예요?
    너무 사적인 질문이면 패스~ ㅎㅎ


  • 10:02 새글

    사적인 질문인가? 글쎄요. 어차피 친구들이 작년 7월 삼성전자 폭락한 이후로 한번씩 물어요. 니 삼성전자 어케 됐노?

    아니, 이 새끼들이... 모처럼 보면, 친구 안부를 물어야지, 왜 내 삼성전자 안부를 물어? 하하하

    뭐든지 오래 묵으면 요괴가 된다고... 요괴가 될라믄, 솔직히 수행 요괴가 되던가 해야지, 이건 뭐... 삼성전자 요괴도 아니고...

    스토리가 있다는 거는, 그게 '나'이고 집착입니다. 부동심도 집착과 같은 겁니다. 힘을 갖췄다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는 정말 평등하다구요. 본질적으로 특별 대우하는게 없습니다. 부처님 불국토 장엄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숨결님처럼, 다시 사더라도 팔아치울 필요는 있습니다. 샀다 팔았다 샀다 팔았다 하면서 국가에 세금도 내고 증권사에 수수료도 내고 무상을 실현해야, 국가도 좋고 향상심도 생기고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동심이라는게 생멸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소멸에도 죽음에도 향상하려는 힘이니까... 삼성전자라는 '나'에게서도 집착을 떨치고, 향상심을 간직한 부동심을 지향해 볼 생각입니다.

    여하간 초지일관하면, 흘러내려도 돌덩이가 닳기는 한다는 겁니다. 그게 스토리고 '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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