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앙박물관에서 "가야본성-칼과현"이란 제목으로 가야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가야 특별전에서 확인하게된 두번째 문제점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앞서 일본역사왜곡 교과서 지도와 동일한 위치에 '대사'와 '기문'을 그린 가야특별전 가야 지도를 지적했습니다. 앞서 지적한 가야지도 하나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시전 전체를 둘러보면 "임나일본부 주장에 노골적으로 찬성/동조하는 기획자의 장치"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됩니다. 특히, 전시회 내내 '임나'라는 단어를 일본서기에서 인용합니다. 물론, '광개토태왕비'와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에 "임나"라는 국가 혹은 지역이 등장하기에 용어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임나'를 일본이 한반도 침략 논리로 써먹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가야 특별전에서 어떤 의도로 어느 출처에서 인용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서기 고대 한반도 남부를 왜가 지배했다는 주장이 다수 기록된 일본 역사서입니다. 요새 흔한 말로 일본서기 일부분은 “유사역사"라고 평가 받아도 할말 없는 책입니다. 사실 확인과 검증이 필요한 책을 마치 정통 역사서처럼 간주하고 인용합니다. 일본서기에 대한 의견은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평가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두번째입니다. 두번째 문제점 일본서기에서 "임나일본부"부분을 집중 인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가야 특별전에 게시된 또 다른 지도를 보겠습니다. 이 지도에 아래 부분에 붉은 원으로 표시한 부분을 보시죠. '순천 운평리 고분'이라는 표기 아래에 두 개 지명이 있습니다. '사타'와 '상다리(상치리)' 라는 지명입니다. 이 두 지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본서기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사타와 상치리는 임나국 4개 고을 중 2개를 의미합니다. 왜 깜짝 놀랄 일인지 아래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상다리(上多唎)는 상치리(上哆唎)라는 지명에 대한 오타? 아니면 의도된 오기일까요?!
임나국 4개 고을? 의아함을 잠시 접어두고 가야 연대표를 다시 보겠습니다. 맨 위에 적힌 "512년. 가라국, 임나 4현 백제에 상실(서기)" 에 주목해주십시요
삼국사기에는 임나4현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해당하는 연도는 '일본서기 남대적 계체' 일왕 기록에 보입니다. 그 해를 가리키는 일본서기 내용을 보면
"일본서기에 일왕 계체는 512년 12월 백제가 조공을 보내오자 임나국 4개 고을 상치리(上哆唎)·하치리(下哆唎)·사타(娑陀)·모루(牟婁)를 사신을 보내 백제에게 줬다" 그렇다면, 임나4현 중 상치리와 사타가 지도 그 위치에 있었다는 근거가 있을까요? 오직 일본이 한반도 남부 지배 설을
정당화 하고픈 지역에 위치를 비정(比定)하는 "설" 만 있을 뿐입니다. 일본서기의 큰 약점 중 하나가 "지리"입니다. 역사 기록을 기술할때 지리적 설명이 없으면, 그것은 곧 가상의 이야기로 취급 받게 됩니다. 임나일본부가 그러합니다.
일본서기 전제적으로 '임나任那'에 대한 의미가 왔다갔다 합니다. 초기에는 북쪽이 바다로 막힌 지형으로 ‘임나’를 설명 하는데, 뒤에는 가야 전체를 임나로 확대 지칭합니다. 임나에 대해서 전혀 일관성이 없습니다.
왜가 점령하고 있던 임나4현을 백제에게 줬다? ... 그래서 위 연대표와 지도 속 지명은 크나큰 위험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로, "왜 倭"가 한반도 남부 지배 주장을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스토리와 그에 해당하는 지명이 가야특별전 지도에 표기된것입니다.
도데체 언제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습니까? 왜가 바다 건너로 군대를 보낼 조선술, 항해술 조차 없던 시절입니다. 변변한 철제 무기도 없이, 타고 싸울 말조차 없던 왜가 우리를 지배한다구요?
일본 식민사학자 스에마쓰야스카즈(末松保和)의 주장 (고대 왜의 식민지 임나를 한반도에 정립한 <임나흥망사> 저술 )에서 한발짝도 벋어나지 못하고 일본서기 자구 해석에 빠져 임나일본부론에 동조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니… 아베를 필두로 일본 우익들이 임나일본부를 폐기하지 않는 좋은 ‘꺼리’가 아닐까요? 극도로 치솟는 흥분은... 심호흡 몇번으로 잠시 다스리고 다시 연대표를 보겠습니다.
"541,544년. 아라국, 임나부흥회 주도(일본서기)"
'임나'가 뭔데 부흥회를 주도하나요? 아라국은 무슨 이유로 임나 부흥회를 할까요? 연대표가 말하는 541년, 544년은 이 시기는 일왕 흠명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해당 연도 일본서기를 내용에는 아라국이 주도했다는 임나부흥회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왕 흠명이 임나를 되돌리라고 독촉?해서, 백제 성왕 주도로 각국 사신들과 임나일본부 길비신 등이 신라를 두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논하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 기록 맨 처음에 거론되는 인물이 안라의 차한기 '이탄해', '대불손', '구취유리' 입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안라 인물들의 발언 조차 없습니다. 원문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연대표를 적은 이유가 뭘까요? 바로, 일본인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함안(咸安)에 임나일본부(日本府)가 있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안라/아라가야를 임나일본부가 설치된 장소로 간주하고 임나 재건를 주도했다는 소설이 탄생하는 대목입니다. 연대표 작성자는 일본 식민사학자 학설 Replay 앵무새가 아닐까요?
문제의 일본서기 해당 부분을 좀더 살펴 보겠습니다.
541년 기록 : ~赴加羅 會于任那日本府相盟 以後 繫念相續 圖建任那 旦夕無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단어가 보이십니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번역을 보면
"加羅에 나아가 任那 日本府에 모여 서로 맹세하게 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 마음을 두고 任那를 재건하려고 하는 일을 아침 저녁으로 잊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541년 07월 기록에도 '임나일본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임나일본부 라는 야욕과 왜곡입니다.
가야사에 관심없던 분들은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가 이해 안될 수 도 있습니다. 또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 도 있습니다.
'임나일본부'에 깔린 검은 속내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임나일본부'는 왜가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고, 한반도 북부는 한사군이라는 중국 한나라 식민지가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은 일본 식민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라며 대한제국 강제 병합을 정당화하는 일본식 식민주의 역사 논리입니다.
지금도 한반도를 차지하겠다는 일본의 검은 속내를 숨긴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앞으로 한반도를 차지할 명분을 위해서 가야를 임나로 간주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이 전시가 끝나면 일본에도 똑같이 전시한다는 계획(소식)도 들려옵니다. 과연, 일본에 가서 하는 전시에서도 이렇게 교묘하게 “임나일본부”를 숨겨놓을까요? 아니면 노골적으로 드러내놓을까요? 임나일본부 찬성/동조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니라면,
"임나"에 대한 명확한 정의(위치와 의미)를 작성해서 전시관 입구에 게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계속 뭉갠다면, 그것은 일본에 가야를 바치겠다는 속셈을 드러내는 꼴입니다. “남해안 일대 연안 항로의 요충지를 따라서 왜와 관련되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있고…”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제가 답하지 않아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그 검은 속셈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가야 전반에 흐르고 있는 북쪽 부여와 흉노의 영향도, 문화 동질적 요소에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유독 “왜계(倭係)”라는 말만 늘어놓는 그 검은 속내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왜곡된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임나일본부를 주장하는 가야 특별전에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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