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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이 당시 나의 결론이다.
1. 대학 가요제나 강변 가요제는 방송국의 자체 축제의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듀서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시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던 밴드는 입상권 (당시는 무조건 발라드)의 노래보다는 행사 구색용의 쿵짝 쿵짝을 해줘야 된다.
2. 심사위원은 티비를 보면서 채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관객과 같이 있다. 그러므로, 관객들의 반응을 잡아내는 것이 결과 적으로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하는 지름길이며, 가장 정당한 방법이다.
3. 기성 곡이 아니라 신곡을, 다시 말해서 듣도 보도 못한 곡을 현장 관객, 심사 위원, 티비 관객 이 평생 처음으로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번 들어보니 좋은 곡' 따위는 먹힐 이유가 없다. '한방에' 보내야 하는 것이다.
4. 어떤 노래든 1절쯤 들어보면 답이 나온다. 2절은 어차피 1절의 반복이다. 그렇다 해도 ' 예의상' 1절 2절의 반복구조는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인트로와 아웃트로를 나 들어 왔어요.. 저 끝났어요…라는 식으로 쓰는게 아니라, 곡의 이미지를 전달 하는 독립곡으로 간주하고 화려하게 발리는 거다. 특히, 일회성의 행사를 눈 지긋이 감고 두시간동안 인내심있게 아마추어들의 장기자랑을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작 하는 순간 튀어야 하는 거다.
5. 코드와 리듬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패턴으로… 단지 어레인지 먼트를 국내 밴드 족보나 가요 족보에 전혀 없는 팝 록 밴드 풍으로 복잡하게 벌린다.
6. 이상의 아이디어를 수줍은 아마추어처럼 연주 하면서 동정표를 따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고, 무엇보다 우리체질에 맞지 않는다. 노련한 표정으로 노래가 삑사리가 나도 눈에 힘을주며, 박자가 가도 태연해야 한다.('태연' 보다 '의연'이 어울리겠다.)
7.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잔대가리 수준을 넘어 거의 야비 수준에 이르는데…하는수 없다. 이 게 리더의 역할이다. 대학 가요제에서 초창기 구도는 대상-그룹 금상-듀엣에서 대상-듀엣 혹은 솔로 금상-밴드의 구도 였다가, 중기 이후는 대상, 금상-아무나 동상-참가 밴드중 제일 난 놈 이라는 구도로 정착되었다. 고로, 일단 라이벌 밴드들을 모두 격파한 후 최소 금상을 탈환해 온다.(회의 할 때 최소 금상 이라고 얘기 했다가 애들이 무지 구박했다. 꿈 깨고 동상 이라도 건지자고…대상 소리 꺼낸 놈은 한 마리도 없었다.)
여기 까지 굴린 후 인트로서부터 후주까지 10분쯤 걸려서 이불 속에서 헉헉 대며 곡을 썼다. 이리하여, 88년부터 현재까지 아직도 공연에서 우려 먹고 있는 "그대에게"가 탄생했다. 사람들이 공연장에서 이 노래의 인트로가 나오는 순간 까무라치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난 아직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어쩄든, 졸라 좋아해주니 고맙긴 고맙다….
벼락치기 연습과 마구리 가사 쓰기로 1차 예선에 나가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정동 MBC에 모여 있는 '그룹사운드'들은 당시 우리나라 밴드들의 종류별 콜렉션 같았다.
주력인 대학 서클들 외에도 당시 사람들이 경악하는 패션-울트라 장발, 가죽잠바,가죽팔찌(쇠찡 박힌…), 카우보이 부츠-로 무장한 메탈 밴드도 있었고, 자주색 기지바지(당연히 배바지), 깃또 와이셔츠, 도끼빗, 닭대가리 파마의 펑크풍 밴드도 있었으며, 서울대에서 왔다는 괴상한 3인조는 째즈도 아닌 가요도 아닌 골 때리는 곡을 연주했는데 밴드 이름이 실험실이었으며, 바벨2세 에 나오는 요미와 흡사한 키보디스트가 피아노 연주로 관객들을 으악 죽이고 있었다.(그의 이름은 정석원 이었다..훗날 그의 별명은 요미가 된다…)
밴드들은 서로 살벌한 시선을 교환하며 한팀 한팀 연주를 했고 우린 사실 별로 긴장하진 않았다. 수천명의 관객이 모이는 진짜 공연에서 무려 '오프닝 밴드'씩이나 해본 것은 우리 밖에 없을거야..라고 생각한거다. 게다가 우린, 뺑이 치고 단독 공연도 했었으니까…무대 경험이 그렇게 중요 한지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인상 깊었던 출전자 들로는 강강수월래를 부른 밴드가 있었는데, 보컬 리스트가 '널뛰기' 모션을 하며 안무까지 곁들인 초강력 팀이어따…(무려 3차예선까지 올라왔었다.) 완전 뽕짝을 연주한 팀도 있었는데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 완전 40대여서 출전자들이 "여기 대학가요제 마자여??" 하고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1절이나마 끝까지 연주한 팀은 우리를 포함 2-3팀에 불과했고, 심한 경우에는 네마디 만에 땡 하고 벨이 울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특히, 반 사회적인 아웃룩을 하고 있을 경우에는 두마디 만에 벨이 울리기도…
연주를 시작할때는 학교 이름, 팀 이름, 곡 제목을 싱어가 소개하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서울대, 연대, 서강대 연합 무한궤도 입니다.." 하는 순간 관객석이 웅성웅성 하는게 아닌가.. 졸라 쪽 팔렸다. 점수 좀 높은 학교 다니는게 도대체 음악하고 무슨 상관인지..그렇다고 학교 이름은 밝힐 수 없구여…하는 수도 없어서 2차 예선서 부터는 "서강대, 연대, 서울대…" 순으로 얘기 했다.(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쓴 웃음이 나는 기억이다. 어른들이 명문대..명문대 하는 이유가 있긴 있구나…하지만 왜 음악 필드에 까지…
3차 예선을 통과 하자, 팀 분위기가 골때리게 되어버렸다. 당시 우리는 1,2,3차 예선을 우리가 모두 1등으로 통과 했을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근거로 목표를 동상에서 은상으로 대거 수정 하는 등..들뜨기 시작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중고생 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수입을 얻고 있었는데(말하자면, 불법과외)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쌤플링 키보드를 살 돈은 턱 없이 모자랐다.
우리 아버지의 10남매나 되는 친척 중 유일하게 약간의 한량 기질이 있다고 인정되는 작은 아버지에게 고민 상담차 머리칼 나고 처음으로 찾아 갔는데, 의외로 흔쾌히 턱이 빠질 정도의 거금인 당시 돈 100만원을 마련해 주셨다.
이게 내 평생 음악하면서 내 힘 아닌 다른 사람의 돈을 받은 유일한 케이스다.(아직도 안 갚았다.) 해서, 조현문이 갖고 있는 주노60과 디엑스 7(친척집에 있던 것을 어찌 어찌 하여 장기 임대라는 명목으로 쎄벼왔다.) 김재홍이 갖고 있던 롤랜드 디50 (대학 들어가면 키보드 사 주실거죠?? 라고 중1떄부터 졸랐다고 한다.) 에다가 내 아카이 엑스7000이 합쳐져 스테이지 위에는 무려 4대의 키보드가 올라가게 되었다.
물론 당일날 출전하는 다른 밴드들도 우리와 같은 등급의 악기를 사용했지만, 그건 당일 날 악기 사에서 대여한 것 이고 우리는 우리소유의 키보드가 있었기 때문에 차이는 활용도에서 나는 것이었다.
모든 키보드는 스플리트 모드로 왼손 오른손이 다른 소리를 내도록 셋업되어 있었고, 내 키보드에서는 동시에 5개의 틀린 소리를 지원하도록 설정해 놓았다.
우승 후에 무한궤도는 억대의 장비를 쓴다는 소리가 나돌았는데 억대는 아니고 그저 몇 백만원급의 '두뇌'를 사용했다. (음악하는 놈 중에 장비 탓 하는 놈 치고 발로 뛰면서 장비 구하려고 뺑이 치는 놈은 여지껏 못 봤다. 다른 놈이 갖고 있는 장비는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아나보다.)
결선에 진출하게 되자, 우리는 담당 프로듀서에게 따로 불려가 밀실에서 잠시 대화를 가졌다. 이 사건은 출전자들이 약간의 의심어린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되는 원인이 되었는데, 내용인 즉슨 그 전해, 말하자면 87년에 6.29선언 이후 대학가요제가 열리게 되자 결선 참가자들이 단합하여 합동 뮤지컬 공연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 보복으로 MBC는 행사 자체를 축소하여 버렸는데, 올해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경우 그 주모자는 틀림없이 무한궤도 일 것이라고 지목 되어, 쉽게 말해 개기면 너네 죽어~! 라는 다짐을 받고 나왔던 것이다.
사실 궤도 맴버중 짱돌이라도 한 번 던졌던 사람은 나 밖에 없었는데, 다시 강조 하자면 리더인 책임 때문에 나….엄청 착한 표정 하고 있었다..(그런 착한 표정하지 말아요~~~ㅠ.ㅠ)
여담이지만 이승철 선배도 강변 가요제에 나갔었는데, 밀실로 불려가 너 대가리 털만 깎고 오면 생각 좀 해보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울트라 양아치 장발을 범생이 머리로 자르고 갔더니… 그래도 떨어뜨리더래..
운명의 12월24일, 대학가요제가 사상 최초로 잠실 체조 경기장에서 열리던 그해…그해 겨울은 졸라 추웠다. 왜냐믄, 방송에 나갈 인서트 화면을 찍는다고 눈밭에서 굴리질 않나..썩은 미소 띄우며 나뭇가지 붙들고 재롱을 떨라고 하질 않나..사실 우리는 첫 공연 이후에 틴에이저 잡지에 취재 요청 엽서가 많이 와서 인터뷰를 몇번 해 봤는데,
인간 피라미드 쌓기, 풀밭 뒹굴며 화사하게 웃기 등을 요구 하는 바람에 골 때렸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급기야 12월23일 밤, 맴버 전원이 고열과 복통, 설사, 현기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눈 앞이 캄캄 했는데 그래도 다행인건, 씨파..나 안해..하는 사람이 없어서 같이 손잡고 울면서 우짜 됐던동 show must go on이다 하고 다짐을 하였던 것이다.
당일 날 리허설, 나는 MBC엔지니어들이 포진한 콘솔로 가서 내가 원하는 사운드를 좌~악 브리핑한 후 몇 개의 페이더를 내 맘대로 조정해 놓고 휭하니 밴드 스테이지로 돌아왔는데, 건방지다고 갈굼 살벌하게 당했다.
당시 무대 배치는 체육관 센터에 거대한 메인 스테이지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서 솔로 가수들이 고목나무에 붙은 모기 폼으로 노래를 하고, 밴드 스테이지는 메인 스테이지의 20분의 1사이즈로 한 쪽에 찌그러져 있었는데 드럼 셋트와 엠프 사이에서 설 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게다가, 솔로들의 마이크는 듣도 보도 못한 고급품인데 비해 밴드 싱어의 마이크는 이럴 수가…3만원짜리 오디오 테크니카가 아닌가…(지금 가정용 오디오 마이크가 그거보단 낫다.) 한술 더 떠, 무대위에 모니터 시스템이 용량이 너무 적어 우리가 연주하는 소리보다 체육관벽에 부딪쳐서 돌아오는 소리가 더 큰 거였다.
몸살은 났지, 배에 힘은 없지, 목은 쉬었지, 빽빽 소리 지르고 노래 해봐야 내 목소린 하나도 안 들리지… 정말 최악의 스테이지였던 것 같다. 당시 무한궤도 보고 스테이지 매너가 너무 노련해서 아마추어 같지가 않다 라는 평들이 있었는데, 아마 몸살 안 난 상태에서 우리를 메인 스테이지위에 올려 놓았으면, 좌로 뛰고 우로 뛰고 완죤히 지랄이 났을 거다.
사회는 이택림, 김은주 였고 (당시 나는 김은주 아나운서를 보고 뿅 가서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엔트리 1번 부터 대학가요제가 진행 되었다. 우리는 엔트리 16번..꼴번 이었는데 우리는 속으로 불만이 대단했다.
우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참가자가 발라드 넘버여서 우리 순서까지 관객이 집중력이 유지 될 거라고 도저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무대는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지, 참가 번호는 꼴번이지, 정말 찬 밥 한번 제대로 먹어 본다고 생각했다.
15번이 노래를 하는 동안 우리가 밴드 스테이지에 올라가 준비를 시작했다. 체조 경기장에 꽉 찬 관객들의 소리와 무대 스피커의 굉음 사이에서 혼이 반쯤 빠져 악기들의 전원을 넣었는데 내 재산 목록 1호 쌤플링 키보드에서 bad data disk…하는 사인이 뜨는것이 아닌가…
전에도 한두 번 겪은 적이 있는 일로 당시 쌤플리 키보드는 로딩 시간이 너무 길어 엑스 7000은 퀵 디스크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빠른 대신 디스크가 불안정 하여 내용이 자주 손상되는 것이었다.
빽업 디스크를 미리 준비 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 날 너무 탈진해 잠들어 버린 것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거다. 손상된 디스크가 다시 돌아올 리 없건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로딩을 되풀이 하는 동안 15번의 노래는 거의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밴드의 음악적 리더와 스테이지 리더는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데, 당시 나는 음악적 리더 보다는 오히려 스테이지 리더에 가까웠다.
당시로서는 복잡한 편이었던 무한궤도의 셋업을 3분내로 해치워야 하는데 사고가 해결이 되질 않으니 모든 준비를 맴버들에게 일임해 버리고 나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속담처럼 작살 난 디스크를 만지고 있었던 거다.
여기서 해철이의 비겁함이 나온다.
성당에 안 나간지 몇 년이나 되었건만, 나는 그 와중에 번개 같이 (정말 빠른 속도로) 주기도문, 성모송, 사도신경을 암송한 뒤 30년 내로 성당 하나 지어드리죠…라는 아부성 멘트를 날리고 키보드를 있는 힘껏 움켜잡은 뒤 온 정신을 집중 하여 디스크를 넣었다.
내 평생 어떤 일에 그렇게 강렬하게 집중해 본 적은 지금껏 없었을 것이다…
loading…이라는 사인이 보이고…사운드가 입력 되었다.
나는 살아있는 주 예수의 증거를 드디어 보는 구나..하고 감격했지만, 감격할 시간이 없어서 맴버들에게 다시 침착하게 돌아온 내 표정을 확실하게 보여준 후 (서로의 표정을 확인한 것은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다.) 밴드 스테이지로 올라온 김은주 아나운서를 맞았다.
몇 마디의 인터뷰 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관객들은 지쳐 있었지만, 체육관 전체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200명쯤으로 추산되는 우리 친구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바람을 잡았고 첫 공연 이후 결성되어 있었던 수십 명의 소녀 팬클럽도 가세했으며, 또한 운이 엄청 따랐던 게 당일 날 체육관에는 88올림픽 때 사용했던 조명 시스템이 아직 렌탈 기간이 남아 있어 그대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15명의 발라드 엔트리 들이 노래를 하는 동안 심심해서 하품을 하고 있던 조명 기사가 옳다 꾸나~~전부 돌려 부러~~ 로 모든 조명 시스템을 풀로 올려 버린 거다.
마치, 이 행사의 메인 밴드이자 엔딩 인 듯 한 분위기가 자동빵으로 연출되었음을 나중에 화면을 보고 알았다.
(후일담인데 당시의 심사위원장은 조용필 전하였다. 게다가,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이 양반들이 모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이었던 거다.
조용필 사단으로 도배된 심사위원석에서 전하께옵서는 거의 꾸벅꾸벅 조시다가 그대에게의 인트로를 알람시계로 착각, 깨어났는데 나중에 보니 기억나는 게 우리밖에 없더라는 거다.
채점지를 걷는 순간, S모 편곡자 왈, 형..어떡하지??
전하 왈, 야..우리가 보컬인데…보컬 줘라..보컬…
L모 편곡자 왈, 그래..그래..그 새끼들이 좀 시원 했어…
이리하여, 강력한 대상 후보 주병선을 정말 간발의 차이로 돌리고 대상이 우리에게…하늘에서 떨어졌다.)
후주가 끝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기석으로 돌아가는데 관객석에서 흥분한 사람들이 체육관 바닥 쪽으로 넘어 들어오며 사인을 받는다..사진을 찍는다..소동을 부렸고 경비원과 경찰들이 우리 쪽으로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예전에 한번 겪은 일을 다시 재현하는 듯 한 확실한 기분으로 대상이로구나…해냈다…라는 것이었다.
강변 가요제 출전 당시 이상은이 대상을 타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결선까지는 거의 구색용 노래의 분위기였던 것이 당일 날 관객들이 열광하고 이상은에게 소녀들이 몰려들어 난리를 치자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상우가 금상으로 떨어지고 이상은이 냉큼 대상을 집어가는 것이 아닌가.
기석에 앉아서 은상을 발표할 때까지 우리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떨어지던가, 대상이던가 둘 중의 하나인 분위기였던 거다.
대상 무한궤도라는 이택림씨의 외침 순간 껑충껑충 뛰었던 사람은 내가 아니고 베이스 조형곤이다.
머리 스타일과 복장이 거의 유사해 그게 나였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매우 거만하게 터벅터벅 무대위로 밴드의 맨 뒤에 서서 의당 받을 걸 받는 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학가요제의 대상쯤으로 내 기뻐하는 얼굴을 남에게 보일 순 없다는 엄청난 교만감도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대학 가요제는 끝이 났고 기뻐할 힘도 없이 완전히 지친 우리는 체육관 밖에서 서로를 황당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가…내일 보자…하고는 해산했다.
전원 귀가 후 시체처럼 잠들었는데, 아침에 현찬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일이 꿈이 아니고 사실인 게 맞냐는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우리는 서로 볼을 꼬집으며 지냈다.
대학가요제 에피소드의 엔딩은 이렇다.
난 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귀가했다.
집은 온통 불이 꺼져 있었고,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부지 왈, "……우짜면 좋노…"
어머니 왈, "그러게요…(침울)…대상씩이나 타버렸으니…"
"이제는 더더욱 말려지지도 않을 테고…
두 분은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내가 상을 탄 것이 내 인생 말아먹을 흉사의 조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삐거덕~) 저..왔어요.."그래…""저..대상 탔어요.."
"그래… 티비 봤다…(마지못해) 수고 했더구나…자라…"
"…네…"
이것이 88년 MBC대학 가요제 대상 수상 및 대학가요제 1회 이래 십수 년만의 밴드 그랑프리 탈환에 대한 울 엄마 아빠의 공식반응이다.
젠장…다른 집은 엄마 아빠가 이쁘다고 뽀뽀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줬단다.…젠장….
에세이 짜깁기해왔어열... 마왕은 대학가요제를 농락했긔....ㅋㅋㅋㅋ
대학교 2학년이었긔...
첫댓글 헐 무섭긔 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재야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잰데?
1~7번만 읽어도 답 나온다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onna 천재
멋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증거를 보았대
30년 내로 성당하나 지어드리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왕 지킬 수 있겠어??ㅋㅋㅋㅋㅋ
우왕 뒤에 뭔가 더있을 듯한.. 보고싶다
와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이러니저러니해도 마왕은 참 비범하다니까 ㅋㅋ
손나 연구하고 이불속에서 멜로디언으로 20분만에 만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저거 뒤에 더 있는데ㅋㅋㅋ 자기들 앞에 죄다 발라드 밖에 없어서 조명기사님이 하품만 하고 있다가 자기들 나오니까 88올림픽때 쓰고 렌탈기간 남아 있던 조명들 풀로 올려서 주인공같이 tv에 나왔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모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 루머로는 '그대에게' 라는 곡이 홍대밴드의 곡인데, 마왕이도둑질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왕이라면 가능한일이라고 생각한 내친구 넘 웃겼다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렌탈기간 남은거 풀로 올려줬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시 라이브영상 가지고계신 능력자분들 올려달라규 ㅠㅠ
성당 지어준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다 생각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왕이 대상 타갖고 오니까 이젠 빼도박도 못하고 말려도 안 들을 거라고 부모님이 무진장 고민하셨다던 얘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악한다고 한달을 가출했는데도 부모님 걱정하나 없이 태연하셨다는 얘기듣고 나 자지러젔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대단하다 ~ 천재다 천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스에서도 이거 많이 애기했던거 같은뎈ㅋㅋ
정말 글 너무너무 재밌게 쓴다 아아아아 부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을 참 재밌게 하신다
마왕 최고!!
마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재밌다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왕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