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에게 갈 행복
삼청동 법련사는 법정스님이 서울에 오실 때마다 머무르던 절이었다.
스님은 민폐라며 절대로 신도 집에 머물지 않았다.
그러니 법정스님에게 볼일 있는 일간지 기자나 나 같은
출판사 담당자들은 법련사로 가서 스님을 뵈었다.
그때의 법련사는 지금 같은 현대식 건물이 아닌
한옥의 정겨운 느낌이 드는 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스님께서 프랑스 길상사를 창건하려고 동분서주하실 때였다.
나는 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법련사로 갔다.
조그만 방에 스님과 함께 여장부 같은 분위기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고 계셨다.
"파리에 가보니 절이 하나도 없어요.
유학생도 많고 교포도 제법 되는 데 마음을 의지할 만한 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절을 하나 짓기로 하고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봤어요."
스님게서는 불자는 물론이고 종교가 다른 유학생들에게도 개방하여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는 절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절을 짓는 데 드는 경비가 문제였다.
스님은 원고료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며 시작하려 했으나,
경비가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액수라 현실적인 난제였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성분이 말했다.
"제가 벽돌 한 장 값부터 절이 완성될 때까지 모든 비용을 희사하겠습니다.
스님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말씀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절을 짓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모아 짓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여러 사람들에게 길상사가 내 집 같을 것입니다."
"아, 스님,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 나는 파리 길상사에 대해서 잊고 지냈다.
내가 파리에 갈 일이 있다면 길상사에 묶으라고
권유하셔서 절이 예정대로 창건됐나 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파리의 길상사 창건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을 스님이
돌아가시고 7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재불 화가 방혜자 화백이
내가 사는 산방으로 찾아와 길상사 창건 일화를 들려준 것이다.
방혜자 화백은 스님의 원고료에다 파리에 거주하는 불자들의 보시는
물론이고 자신의 그림까지 팔아 길상사 창건 작업을 도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사연을 전해주었다.
그때 그 여자분이 길상사를 지어주었더라면 선뜻 마음을 낸 파리에
거주하는 분들의 걱정과 고생은 면했을 터. 그런데 스님은 왜 사양했을까?
불가에는 자작자수自作自受란 말이 있다.
행복이란 스스로 지은 만큼 스스로 받는다는 말이다.
스님게서는 여러 사람에게 가야 할 행복이 한 사람에게만 가는 것을
경계하셨을지 모른다. 그렇다. 공짜를 좋아하는 세상에서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이러한 '행복의 문법'까지 가르쳐주는 것이 바른 도리이지 않겠는가.
법정스님의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