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알려진 문학교수가 '신인 평론가'로 등단했다는 글과 사진을 보았다.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신인' 낱말을 검색했다.
神人
臣人
新人
娠人 : 아이를 밴 임신부
愼人 : 조선 시대, 정삼품 당하관 및 종삼품인 종친의 아내에게 주던 작호
信人 : 믿음이 가는 사람
迅人
...
이하 생략
위 많은 낱말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信人 평론가 : 믿음이 가는 평론가로 해석되나?
만약에 이 뜻이라면... 웃긴다.
'신인 평론가'로 등단했다는 어떤 문학지의 소식을 읽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명한 문학교수가 이제서야 평론가로 등단했다고?
그럼 지금껏 대학교 교단에서는 무엇을 가르쳤다는 뜻인까?
일정한 자격도 없이 학생들 앞에서 문학평론을 가르쳤다는 뜻일까?
'신인'이라는 용어가 아리송하다.
'신인'이란 용어를 보다 신중히 썼으면 싶다.
문학계에 나타나지 않은 앳된 사람이나, 나이 들었어도 처음으로 문학계에 발을 디딛는 뜻이라면, 새롭게 나타났다는 뜻의 '신인'이라는 용어를 붙여 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대학교 문학교수를 이제서야 신인(新人) 운운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
다른 방법, 다른 용어로서 명칭을 부여했으면 싶다.
'한국 국보문학' 사무실에 전화를 넣었다.
'한국 국보문학' 2020년7월호를 수령하려고.
책은 발간되었으나 오늘 오후에는 사무실에 직원이 없다기에 나는 다음 주 월요일 사무실에 들러서 수령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7월호에 게재된 글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다음 주에는 알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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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0. 6. 27. 토요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이틀 전에 있었다.
70주년이 이틀 지난 오늘 인터넷 뉴스에는 경기도 광주 소재 남한산성 야산에서 대북전단 600여 장, 책, 1달러 미화지폐 2장이 발견되어서 경찰이 이를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곁들여서 최근 대북 전단 살포로 뉴스의 촛점에 오른 북한 탈북자 단체 가운데 하나인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의 얼굴 사진도 떴다.
형인 박상학은 서울 송파구에 어떤 아파트에서 살고, 동생인 박정오(큰샘 대표)의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다.
박상학은 지난 6월 22일 밤 11시부터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서 전단 50만 장을 뿌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말의 진위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낄낄거린다.
서울 송파구에 어떤 아파트에서 산다는 탈북자 박상학(최근에 송파구에서 산다는 사실이 뉴스에 보도)...
마음만 먹으면 인근에 있는 남한산성 야산에 금방이라도 올라갈 수 있다.
나도 서울 송파구에서 살기에...
마음만 먹으면 시내버스로, 걸어서라도 금세 오를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다.
박상학과 연관한 어떤 사람이 남한산성의 야산에 올라서 몰래 여기저기 흩뿌렸다고 추측했다.
입으로는 무슨 말인들 못하랴?
아쉽다.
뒤짚어 보기의 하나이다.
나는 올 6월 들어와서야,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충격적인 숫자다. 35,000여 명이라니...
또한 이들이 만든 탈북자 단체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에 또한번 놀랐다.
왜 이렇게 많어?
결론은 .. 돈을 목적으로 하여 유사한 단체를 마구잡이로 만든 거 아녀?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북한은 이들 탈북자를 '배반자', '인간쓰레기'라고 말한다.
탈북자가 이렇게 많다면 반대로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사람은 전혀 없을까?
만약에 이런 '탈남자'가 있다면 우리는 서슴없이 말할 게다.
'배신자', '인간쓰레기'이라고.
때로는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더 신뢰가 가는 경우도 있다.
1993년 3월에 북한으로 송환된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남한에서 체포되어서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남측의 갖가지 회유책에도 거부하면서 미전향하였기에 34년간이나 버텼다. 극도로 쇠약한 노인이 되어...
남북간의 화해정책 일환으로 미전향 장기수로는 처음으로 북한으로 넘겨진 노인 이인모.
이후에도 미전향 장기수들이 이북으로 송환되었다.
2000년에도 60여 명이...
차라리 이들 미전향수들이 더 인간적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본인은 전향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감옥살이를 했기에.
그런데 최근에 뉴스에 부상한 박상학, 박정오 형제를 위시로한 35,000여 명의 탈북자들.
이들의 가족은 북한에 남아 있다면?
이들 가족들은 북한당국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상상조차도 끔찍하다.
1967년 3월 판문점을 통해서 월남 귀순한 이수근 사건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은 1969. 1. 31. 남한을 탈주하였다가 베트남 사이콩에서 체포.
훗날 사형을 당했다.
위장탈출인가 아닌가에 대한 재판... 훗날 ...
그 당시에는 굉장한 사건이었다.
진정으로 탈북자였다면? 북한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친인척)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무엇이 진실인 지는 모르겠다. 신만이 알 듯..
..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자 김일성 북한주석의 수행기자 출신인 이수근씨는 1967년 3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 대대적 환영과 거액의 정착금을 받고 대학교수와 결혼했고 중앙정보부 판단관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처조카 배경옥씨와 함께 이용해 캄보디아로 향하다 기내에서 중정 요원에 체포됐다.
당시 중정은 "이씨는 위장귀순한 이중간첩"이라고 발표했고, 이에 전국적으로 대대적 반공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씨는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 등으로 검거 6개월만인 같은 해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후 21년간 옥고를 치루고 나온 배경옥씨가 이수근은 위장간첩이 아니었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었으나, 민주화운동보상위는 2005년 이수근은 위장간첩이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과거사정리위는 2006년 12월 전체위원회 회의를 열어 "조사결과 이수근은 위장간첩이 아니었다"며 "당시 남북한 체제경쟁으로 개인의 생명권이 박탈된 대표적인 비인도적, 반민주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규정했다. ...
※ 배경옥 :
이씨의 도망을 방조하고 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이 선고됐던 이씨의 외조카 김모 씨에 대해서는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하 생략
1987년 1월 김만철 가족
북한 청진항을 출발하여 탈북 시도, 동해에서 표류하다가 일본 쓰라가 항에 도착.
이후 한국으로 가족 모두가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다. 10억 원의 보상금은 사기로 날려먹고...
1997년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
남한에 정착하여 어떤 여자과 재혼
2010년에 사망하여 10월 14일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
나는 몇 해 전, 대전현충원에 방문했다.
고급스럽게 안장된 황장엽의 무덤을 보았으나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너도 역시 .. ...'.
정부와 언론매체에서는 어떤 사실을 100% 진실되게 보도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보도하고, 불리한 것들은 감추고, 또는 마지 못해서 보도를 하되 흉내를 내는 척한다.
정보가 완전히 차단된 일반 국민은 정보를 어떻게 얻을까?
TV, 신문 등에 불과할 게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 왜곡된 것만으로써 정보를 획득할 게다.
또는 비공식인 유언비어를 듣거나 개인의 상상력으로 짐작하고는 아는 체를 할 게다.
언론매체의 습성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짐작하는 내 눈에는 뉴스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낄낄낄 수준이다.
2020년 남한의 언론관은 몇 개쯤 됄까?
아마도 300개도 넘을 터.
이 많은 언론매체에서는 사주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진실을 과장, 왜곡, 무시할 게다.
다들 사실인양, 진실인 양 보도하겠지만서도... 기관/ 개개인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