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칠석.
음력 7월 7일.
이날은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들이 놓은 오작교에서 1년에 1번씩 만났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전설은 중국 주(周)나라에서 발생하여 한대(漢代)를 거쳐 한국에 전해져서 지금까지 구비전승되었다.
칠석날에는 보통 비가 내리는데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환희의 눈물이라고 한다.
이날 풍습으로는 걸교(乞巧)라 하여 처녀들이 견우성과 직녀성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고, 선비와 학동들은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으면 문장을 잘 짓게 된다고 하여 시를 지었다.
농사 절기상으로는 세벌 김매기가 끝나고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 하여 한여름철의 휴한기에 접어드는 탓으로 호미걸이 등을 놀면서 휴식을 취했다.
술과 떡, 안주를 준비하여 놀고 풍물 판굿이 꾸려지는 마을축제를 벌인 것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술멕이날'이라 하여 두레꾼들이 술푸념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름 장마비에 흙탕이 된 우물을 청소하여 마을민들이 마실 우물이 깨끗하고 잘 솟아나오게 해달라며 소머리를 받쳐 우물고사를 올렸다
.
아낙들은 아기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면서 백설기를 쪄서 칠성제를 올리기도 했는데, 칠성제는 정갈하게 지내는 것이라 소찬으로 준비하고 흰무리를 빚는 것이 원칙이었다.
견우직녀설화 (한국 설화) [牽牛織女說話]
견우와직녀.
견우성과 직녀성에 얽힌 설화.
칠월칠석(七月七夕)에 견우와 직녀가 1년에 1번 만나게 된다는 설화로서, 칠월칠석이 되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가까워지는 자연현상의 관찰에서 생긴 듯하다.
동양에 널리 알려진 설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기록된 설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양(梁)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실려 있다.
409년 축조된 평양 덕흥리(德興里) 고구려 고분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직녀가 그려져 있다.
직녀는 옥황상제의 손녀로 목동인 견우와 혼인했다.
그러나 이들은 혼인한 뒤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다.
옥황상제는 그 벌로 두 사람을 떨어져 살게 하고 1년에 1번만 만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은하수가 그들을 가로막아 만날 수 없게 되자, 까마귀와 까치들이 머리를 맞대어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 다리를 까마귀와 까치가 이었다 해서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이날 오는 비, 곧 칠석우(七夕雨)는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 한다.
출처: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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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칠석날이 가지는 의미
칠월칠석날은 양과 음의 기운이 똑같은 날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칠석날 저녁 무렵에 해와 달이 동시에 서산에 떠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칠석날 서산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다는 것은 음과 양의 기운이 어느 한쪽에 지우침도 없이 똑같다는 의미이다.
이 모습을 병풍에 담아 임금님 용상 뒤에 세워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다.
日月은 해와 달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오악五岳은 조선시대에 팔도강산 중 나라를 수호하는 다섯 개의 산이라는 의미로 ,백두산이 북악北岳, 묘향산이 서악西岳, 삼각산이 중악中岳, 지리산이 남악南岳 그리고 태백산(금강산)이 동악東岳으로 조선의 영토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조선의 영토를 의미하는 팔도강산 위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병풍을 임금님 용상 뒤에 세워둔 것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 어느 한쪽으로 지우침도 없이 불편부당하게 나라를 다스리라는 교훈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즉 모든 정사를 보살핌에 있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공명정대하게 하라는 뜻이다. 또 해와 달같이 밤낮으로 항상 백성들을 보살피라는 의미도 담겨있는 그림이다. 단순히 임금님 뒤를 장식하기 위하여 세워둔 그림이 아니라 칠석날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을 나타낸 것이다.
칠석날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 위에서 만나는 날이다.
이것은 음과 양이 어느 쪽이 강하고 약함도 없이 같은 기운아가 때문에 은하수 위 오작교 다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녀가 만난다는 것은 음양의 조화와 교접을 의미한다. 즉 음양의 조화인 남녀의 교접은 생산을 의미하고 생산은 풍요를 나타낸다.
칠석날은 우리 조상들이 일 년 농사를 수확하기 전 마지막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칠석날을 기하여 하늘에서 음양의 기운이 서로 조화가 이루어져야만 땅에서는 결실을 맺게 된다.
그것은 칠석날이 지나야 벼가 이삭을 팬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칠석날이 지나야 과일도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내기 시작하며 곧 이어 수확을 할 수가 있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를 보면 「하백河伯은 천하天河의 사람으로 나반의 후손이다.
7월 7일은 바로 나반이 하늘의 강을 건너는 날이다.
이 날 용왕에게 명하여 하백을 부르나니, 용궁에 들어가 하백으로 하여금 사해의 뭇 신을 주관케 하시느니라. 천하는 다른 이름으로 천해天海라고도 한다.
지금 북해北海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천하의 주께서 말씀하시길 천도天道, 즉 하늘의 도는 북극에서 일어난다. 고로 천일天一의 물이 나온다. 이를 북극수라 하며 북극은 수정자水精子가 기거하는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는 말은 없다. 인류의 조상인 나반이 은하수를 건넜다고만 하였는데 은하수를 건너는 이유는 인류의 또 다른 조상인 아만을 만나기 위하여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반과 아만은 우리의 아담과 이브다.
여기서도 남녀가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남녀의 만남은 곧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여기에서 물과 관련이 있는 하백이 나온다. 하백은 다른 말로 물의 신이라고도 한다.
하늘에서 ‘수정’은 남방주작 칠 수에 속한 첫 별자리인 ‘정수精宿’를 말한다. 정수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별자리며 흔히 동쪽 우물이란 뜻으로 동정東井이라고 하였고 남자들의 첫 경험에서 얻어지는 사정을 ‘동정’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보면 천일의 물, 즉 천일 생수와 수정자 등 물과 관련된 말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물이 바로 생명의 근본으로 생명은 생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천문을 보면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아름다운 가는 별자리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즉 직녀성인 녀수女宿 위에 패과敗瓜라는 깨진 바가지란 뜻이 담긴 별이 있다.
직녀는 견우를 만나려고 그 깨진 바가지로 은하수 물을 퍼내려고 하였으나 깨진 바가지론 그 많은 은하수 물을 다 퍼 낼 수 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직녀는 점대漸臺라는 정자 모양의 별자리에 올라 견우를 그리워하면서 사랑의 정표를 자기가 짜고 있던 베틀 북을 견우에게 던졌는데 그것이 포과匏瓜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견우 또한 직녀가 그리워 논밭을 갈 때 끌던 소의 코뚜레를 던졌다.
그 별이 필수畢宿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다시 직녀가 견우에게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를 빗든 빗을 던졌다.
이 별이 바로 기수箕宿라는 별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칠석제를 지내는 제관들은 반드시 여자로 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여자는 생산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하백이 여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하백은 수신(水神), 하령(河靈), 오작(烏鵲)의 다른 말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백이 사해(四海)의 뭇 신을 주관하면서 나반이 아반을 만나러 갈 때 하늘의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준 사람일 것이다.
또 신을 자기 의지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으로 하늘나라 용궁의 무당이란 말이 된다.
곧 하백이 무교에서 말하는 용태부인을 말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칠석날까지는 대부분 장마철이다. 그러나 칠석날을 전후하여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은 은하수의 신, 물의 신이라는 하백이 생산을 준비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라고도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은 칠석날이 되면 집집마다 우물을 청소하여 청결히 하고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바치고 칠석제를 지냈다. 또한 장마철에 눅눅해진 사고史庫에 보관중인 책들을 햇볕에 말리기도 하였다.
지금은 다인들을 비롯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칠석날이 되면 칠석제를 올린다.
그러나 칠석날에 쓰는 제물은 반드시 생산을 의미하는 오이, 가지, 호박 등을 제물로 사용하여야 한다. 칠석은 여성의 날로써 남성의 양물을 상징하는 재물을 올려야만 생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조성제의 무속이야기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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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음력 7월 7일 칠석이 되면 치성광 부처님께 정성어린 공양을 올립니다.
가족모두가 무병장수하게 하여 주시고 자손들이 대대손손 창성하게 해달라고 몸과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불교에서는 참으로 많은 불보살님들이 계시는데 그 중 한분인 치성광 부처님은 일광(日光)보살과 월광(月光)보살을 좌우 보처 보살로 하시고 북두칠성인 칠성군과 그 보처 28숙(宿) 및 많은 성군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계십니다.
치성광 부처님께서는 특히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칠석에 즈음하여 성대한 재를 열어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무병장수를 주십사 기원하는 것입니다.
또 더러는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혹은 글을 잘 쓰는 등의 손재주, 솜씨를 기원하기도 한 것이 칠석이었습니다.
조선 말엽만 해도 칠석이면 나라 곳곳의 사찰들이 재를 올리느라 밤을 낮인양 환히 밝희곤 했습니다.
가내 태평을 빌고 자손창성과 수복을 기원하는 인파는 불과 7일 뒤인 우란분절에 까지 그대로 연결되었고 이어 팔월 대보름이 다가오니 칠월과 팔월 이 기간 동안은 가히 온 나라가 흥겨운 잔칫집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부녀자들은 마당에 바느질 차비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문인들은 술잔을 교환하면서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또한 볕이 좋을 때 옷과 책을 말린다.
집집마다 우물을 퍼내어 청결히 한 다음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두고 칠성제를 지낸다.
음식으로 밀국수, 밀전병을 하고 잉어를 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오이 김치나 복숭아, 수박으로 과일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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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세대는 7월 7석의 의미에 관심없지만우리세대이후는 조금의관심과 뜻에 의미를 두고 기억하고 제를지내려하는데 지금의 젊은세대들과 자라나는 이나라의 꿈나무들에게는 잊혀가는 문화인듯하여 아쉬워요. 님의 상세한 칠월 칠석의 내력을 잘읽고 마음에 담아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열어 가세요.
좋은 많은자료 잘 읽었습니다 유익한 정보 였구요 전해 내려오는 설 이지만 깊은의미가 내포되여 있음을 옅볼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어제가 칠석이죠.....견우와직녀가 만났는지 모르겠네요....어제는 비가 안온걸보면..만나질 못했나봐요...눈물이 흐르지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