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품다
강 문 석
“나의 사전에는 결코 에어컨이란 있을 수 없다!” 직장 은퇴 후 2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매년 여름이면 아내는 에어컨 타령을 해댔고 나는 나폴레옹의 말을 흉내 내어 이런 황당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해가 갈수록 아내의 에어컨 열망은 식어갈 수밖에 없었고 우리 집에서 이제 에어컨은 물 건너 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에어컨을 금년 여름이 막바지에 이른 며칠 전 설치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열 돔에 갇힌 북반구에 들어 질식할 것만 같은 폭염을 이길 방법은 에어컨밖에 없었던 것. 그러니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에어컨에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에어컨을 멀리했던 건 구입비용이나 전기요금이 겁나서가 아니라 사람의 몸도 자연의 일부라서 더운 여름철이면 적당히 땀을 흘려주어야 건강이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래 전 <재벌25시>에 실린 롯데 신격호 회장의 일화가 기억난다. 젊은 날 일본에 건너가 롯데 껌으로 크게 성공한 그는 세계적인 광고의 귀재로 불릴 만큼 사업수완이 뛰어났다. 일본에 가정용 세탁기가 처음으로 등장하자 그는 발 빠르게 도쿄 국세청장 집에 세탁기를 사서 보냈다. 그러자 선물을 받은 국세청장은 오히려 그에게 화를 버럭 냈다. 우리 마누라의 유일한 운동이 빨래인데 왜 남의 건강을 망치려 드느냐며 세탁기를 돌려보냈다. 같은 맥락으로 에어컨이 없으면 하다못해 창이라도 열어서 자연풍을 쏘일 것이고 부채로라도 팔운동을 하게 된다는 생각을 나는 줄곧 해왔다. 유달리 더위에 약한 아내는 그동안 많이 힘들면서도 남편이 워낙 강하게 반대하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런 아내에게 가끔씩 냉방병을 설명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날 여름은 에어컨이 만든 과도한 실내외 기온차가 냉방병을 만들어 감기환자를 양산하고 있다. 에어컨은 냉각수나 공기를 세균으로 감염시키는 레지오넬라균도 만들어낸다. 그러고 시원한 실내온도를 유지하느라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는 눈과 코 목이 건조해져 따갑거나 두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에어컨의 부작용을 아내는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딸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해보라는 부탁을 해대고 있었다. 아이들이 찾아와 어린 새끼들을 봐서라도 에어컨을 설치하자고 매달려도 난 응하지 않았다. 삼사십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가전제품은 일본 대만 독일이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한국이 가장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 내 입에서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말이 떨어졌을 때 아내의 기분은 하늘을 날고 싶었을 것이다. 이미 어둑해진 시간인데도 아내는 참지 못하고 바로 집을 나섰고 매장은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삼성에어컨 45평형’이 아내의 눈앞에 어른거렸을 터이다. 예상대로 폭염 때문에 에어컨 매장은 붐볐지만 주문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담당자의 에어컨에 대한 업무지식이 놀랍다고 생각했을 때 그의 입에선 뜻밖에도 ‘전기세’와 ‘매립형’과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세금과 요금을 구분하지 못하고 ‘매입’을 ‘매립’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카드로 대금을 결제한 아내가 그 영수증을 들고 귀가하여 바로 딸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딸아이는 에어컨 모델명을 바로 인터넷에 입력하여 먼저 구입하여 사용한 사람들의 후기를 꼼꼼하게 챙겼다. 거기엔 우리가 계약한 모델에서 곰팡이 냄새가 난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러고 에어컨은 삼성보다 엘지가 더 알아준다는 것까지도 사람들은 까발린 모양이다. 난 번거로워서 둘 다 좋다고 했지만 아내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딸을 앞장세우고 찾아가 해약과 계약을 다시 하면서 용량도 절반수준으로 내렸다고 했다. 지난 2000년에 주일대사관 직원이 쓴 도쿄의 세든 집에 에어컨을 설치했던 체험담을 접하면서 정확하고 예절바른 일본인 기술자를 부러워했는데 이제 우리도 그에 못지않았다. 에어컨 기사들은 약속시간에 맞춰 방문했을 뿐 아니라 기기와 공기구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차량에서 가져다 날랐다.
한꺼번에 쌓아놓아 고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로 읽혔다. 마지막 실외기 배관구멍 틈새를 실리콘으로 때우면서 보조기사는 스티로폼 포장박스를 들고 와서 물을 달라고 했다. 세숫대야가 있다고 했지만 그는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포장박스에 물을 받았다. 2명의 기사는 그렇게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4시간 가까이 긴팔 작업복을 입은 채 말없이 일했다. 그들은 오늘 세 군데 작업장 중 마지막이 우리 집이었다. 직장은 남양주에 있는데 남부지방에 주문이 폭주해 출장을 왔고 오늘이 5일째라고 했다. 아내가 삼성과 엘지를 비교해서 에어컨 성능을 물어도 그냥 씩 웃으며 “다 같죠. 그런데 더 많이 시원하죠.” 어느 제품이 더 시원한지 알 듯 모를 듯한 짧은 대답이 다였다.
둘은 설치작업을 끝내고 나서도 일한 자리를 깔끔하게 쓸고 또 닦았다. 세계 어딜 가도 이 정도로 정성껏 일한다면 환영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 설치한 에어컨을 가동하고 나서 실내 온도가 내려가자 땀 뻘뻘 흘리면서 일했던 현직 때의 사무실이 떠올랐다. 1960년대까지는 해마다 여름이면 부채로 더위를 날렸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선풍기가 등장했고 서울올림픽이 열릴 즈음에야 사무실에 냉방기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여름이면 늘 발전설비가 간당간당하여 절전을 독려하러 기업체를 찾아다녀야하는 전력회사에서 냉방기를 마음껏 틀수는 없었다. 그 무렵 태광산업 본사를 방문했다가 비둘기 색상으로 만든 제복을 걸치고 부채로 더위를 쫓으며 일하는 직원들을 만났다.
자사 제품을 알리기 위해선지 여름철에 보온성 근무복도 마다않고 고군분투하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태광산업에서 가까운 영락공원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부산시 시설관리공단 일선 사업장인 공원에선 절전운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기를 펑펑 써대고 있었다. 그때도 정부에선 여름철 권장 최저냉방온도를 28℃로 정하고 있었다. 손님 하나 없는 대형식당 스탠드에어컨 3대가 모두 돌아가고 있었고 실내온도는 18℃로 추웠다. 식당 종사자 서너 명이 나와서 자신들은 에어컨에 손댄 적이 없다고 했다. 행정관청이라면 정부시책을 기업체에 알려서 따르도록 해야 할 터인데 거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한반도를 찜통으로 만든 폭염이 앞으로도 불쑥불쑥 찾아올 전망이라니 어떤 생존전략을 세워야 할지 막막하다.
[글쓴이] 수필가 / 사진가 / 여행작가 / 비디오작가
첫댓글 회장님~늦게나마 에어컨 설치하신거 축하드립니다! 너무 심하셨네요~사모님 심정을 헤아려서 진작에 설치해 드리시지요~ 올 여름뿐만 아니고 앞으로 매년 더 더워진다고 하니 잘 하셨 습니다^^ 그리고 에어컨이 습도를 조절하여 쾌적함을 제공해 주니 기여도가 많습니다요~^^
존경하는 회장님^^
부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사모님! 에어컨 품으신거 축하드려요~!
부끄럽습니다. 축하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몇몇 분들께서 카톡메시지로 그런 인사를 해오셨네요.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폭염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