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6국, 왼쪽이 이야마유타 오른쪽이 야마시타 게이고 본인방 |
2012년은 '본인방' 탄생 400주년이다.
'본인방(혼인보 本因坊)'은 한 일본의 한 바둑 가문의 이름이자 일본의 가장 오래된 프로바둑 타이틀 이름이기도하다.
초대 본인방은 산샤(算砂)다. 샨샤로부터 본인방이 시작되었다. 본인방은 "일본 교토(京都)의 작코지(寂光寺 사찰이름)내에 있던 7개의 탑두(塔頭: 본 절에 속해 있는 작은 절로, 스님들의 거처) 중 하나의 이름이다".
샨사는 죽을 때 남긴 말이 유명하다. 샨사는 1623년 에도(江戶)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기 주변에 "이것이 바둑이라면 패를 걸어서 살아보겠는데 사람의 목숨이란 어쩔 수 없구나"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본 막부정권으로부터 인정받은 '기소'였지만, 자신이 세운 가문 본인방 후계자와 일종의 공직인 '기소'의 후계자를 분리했다.
이후 기소의 자리를 놓고 일본의 4대 가문이 수백년 경쟁하게 되며, 본인방은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한국의 문용직 박사(정치학, 프로 은퇴)는 그의 책 '바둑의 발견'에서 일본 본인방 가문의 '도샤쿠, 슈사쿠'가 바둑의 수법과 사고에 끼친 큰 영향에 관해 심도있게 논한 바 있다.
본인방가는 1세 본인방 산샤(算砂)부터 마지막 본인방 슈사이(秀哉)까지 총 21대, 350년의 시간동안 존재했다. 본인방가의 최후는 메이지 유신으로 인한 산업시대의 본격적인 등장과 봉건시대의 폐막, 그리고 근대적인 일본기원의 등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결정적으론 일본내 혼란과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 정부의 '봉록'이 끊겨" 본인방 가문의 경제적 토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당시 가장 기타니 미노루와 6개월간의 인퇴기를 두고 떠났다. 1938년 6월 26일부터 12월 4일까지 뒀다.
이 6개월간의 바둑을 소재로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명인'이란 이름으로 소설을 썼다. 65세 슈사이 명인(右)과 30세 기타니의 대결. 제한시간 각 40시간, 신문 연재 64회, 대회 기간 6개월, 현존하던 봉건시대 마지막 명인의 은퇴기였다. 슈사이 명인은 마지막 승부의 불꽃을 태우고 이듬해 죽어버렸다.
이후 본인방이란 이름은 1939년 시작된 일본 최초의 프로기전 '본인방전'의 이름이 됐다. 후계자를 지명해 이어지던 봉건가문이 자본주의 최초의 상업프로기전 이름이 된 것이다.
한편 본인방 가문과 많은 일화를 남긴 한국인은 갑신정변을 주동한 김옥균(1851~1894)이다. 정변이 실패하자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해 슈에이 본인방과 우의를 쌓았다. 현재도 5점 접바둑 기보가 남아있고, 우정을 나누던 김옥균 바둑판을 한국기원이 소장중이다.
▲ 도전 6국의 전야제에서 양 대국자 포즈를 취했다 본인방 400주년의 주인공은 누가될까? 제67기 본인방전 도전7번기가 3-3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간다는 소식이다. 지난 7월 10일 일본 미에현 토바시에서 끝난 도전 6국에서 현 본인방 야마시타 게이고가 도전자 이야마 유타에게 221수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최종 7국은 18 일과 19 일(목)에 시즈오카 현에서 열릴 예정이다.
본인방은 기성, 명인과 일본의 3대 프로기전 타이틀이다. 제한시간은 8시간. 67기 대회의 제1국은 400주년을 기념해 초대 본인방 산샤가 머물렀던 작코지에서 지난 5월15일, 16일에 걸쳐 열렸었다.
야먀시타는 6국이 끝난 후. "괴로웠다. 마지막이 되서야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종국에 가게 됐으니 꼭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도전자 이야마 유타는 "이제 최종국이다. 전력을 다할 뿐이다"라고 감상을 말했다.
일본 서열 3위 기전 본인방전의 우승상금은 3200만엔(약 4억3,000만원)이다. 도전 7국은 일본기원을 통해 사이버오로에서 인터넷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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