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1차 ; 저지리 1667번지(남동향사 터)
2차 ; 저지리 1808-7번지(중산간서로3699) 現저지보건진료소
3차 ; 저지리 1843-2번지(중산간서로3687)
경찰서 저지지서는 1946년 3월 26일 김군하(金君夏)가 제주감찰청 제1구 경찰서 저지파견소의 수석으로 부임하면서 비롯되었다. 1947년 12월에는 박운봉(朴雲鳳)이 지서주임으로 부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저지지서의 연혁에는 제주경찰 감찰청 제1구경찰서 저지지서가 신설된 것은 1948년 3월 15일로 되어 있다. 남동향사와 같이 사용하고 있던 저지지서는 4·3 기간에 2차례 무장대의 공격을 받아 순경을 포함한 인명피해가 있었다. 1948년 4월 7일 무장대의 습격으로 민간인 3명(고창윤, 김귀원, 김태종)이 학살되고 지서 일부가 불에 탔다. 그러자 지서는 현 보건진료소 자리로 지서를 옮겨갔다. 보건진료소의 남쪽과 서쪽 모두를 포함하는 다소 넓은 곳이었다. 이곳으로 옮긴 후에도 경찰은 남동(南洞)향사를 계속 이용했다. 이곳에 주둔한 서청 응원경찰은 현처묵이 지휘했다.
1948년 4월 20일 저지지서는 명이동을 좌익 마을로 간주하고 명이동 청년 이달호를 총살한 후 모든 주민들을 남동향사에 가두었다. 경찰은 주민들을 고문하며 취조하다 노인(현봉희의 장인 고계봉)을 학살하고, 명이동 좌익혐의자의 집을 불태웠다.
1948년 5월 13일 무장대 100여명이 2차 지서를 습격하여 전소했고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당시 지서를 지키고 있던 경찰 김인하(男 28세, 납읍리 출신)가 무장대에 대응해 교전하던 중 사망했다. 주민 문인(女 58세)과 문명조(男 65세), 박용주(男 58세) 3명은 평소 경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장대에게 살해당했다. 김묘득(女 88세)은 집이 불탈 때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
무장대의 1,2차 지서 습격에 대해 문원숙(男 2003년 77세)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저지지서에는 2번 습격이 들었어요. 4·3사건이 난 직후에 4월 7일엔 순경은 안 죽고 민간인만 죽었어요. 그런데 5월 13일 2차 습격에서는 지서도 모두 불에 타고 김인하 순경하고 우리 조부님인 문명조, 박용주, 문인이 죽었어요. 그 후 지서가 타버리니 저지는 한경지서(두모지서)에서 관할하며 토벌대만 왔다갔다 하다가 나중에는 복원신청을 해서 복원했죠. 우리 조부님도 2차 습격 때 죽창에 맞아 죽었어요. 습격왔을 때 할머니와 같이 ᄆᆞ방애에 있었죠. 폭도들은 얼굴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에 시커멓게 먹칠하고 다녔어요. 그 당시 아버지가 구장 다녔어요.(구장 직책을 맡았다는 뜻) 작은아버지는 민보단장이었고. 폭도들은 ᄆᆞ방애에 숨어 있던 할아버지를 죽창으로 죽였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할아버지 시신을 토롱(임시매장)했다가 이장해서 잘 모셨죠. 차라리 총에 맞아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13군데를 죽창에 찔려 죽었으니 굉장히 억울하죠. 지서가 완전히 불에 타 없어지자 남동향사에 응원경찰이 와서 주둔했어요. 지서를 유지하려는 거였죠. 서북청년들이 많아서 여기서는 서청부대라고 했어요.”
1948년 12월 5일 저지리가 소개되었다. 이 때 저지지서도 일시 폐쇄되었다. 1949년 마을이 복구되어 주민들이 복귀한 다음에는 다시 경찰파견소가 이 마을에 들어섰다. 現 저지예술정보화마을 미센터에 들어선 3차 지서는 마을성담과는 별도로 높이 3.5m 규모의 성담을 둘렀다. 성담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었고 방어를 위한 총안(총을 쏘기 위한 구멍)도 설치했다. 지금은 총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가정집과 경계를 이루던 지서 남쪽 성담이 높이 2.5m, 길이 30m 정도 남아 있다.
1949년 12월 28일에는 모슬포경찰서가 신설되면서 그 관할에 예속되었다. 1957년 7월에 모슬포경찰서가 폐지됨에 따라 제주경찰서 한경지서에 편입된다. 1971년 7월 1일자 제주도 규칙 390호에 따라 제주경찰서 저지지서가 저지리 1797번지에 대지 120평, 건평 20평으로 설치되었다. 지금 지서가 지어진 땅 130평은 이 마을 최승호씨가 아버지 최문구와 할아버지 최영송의 이름으로 희사한 것이다. 이들의 기념비가 지서 앞에 있다.(1991 제주의 마을 시리즈 저지리, 2020 개정증보판 제주4·3유적Ⅰ)
《작성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