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와 한강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에덴하우스(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신촌리 345번지)에는 장애인 120여 명이 직접 쓰레기봉투를 생산하고 있다. 에덴하우스는 사회법인 장애인복지시설인 에덴복지재단의 초기 명칭으로 본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된 장애인재활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상 1층은 사무실과 목양실, 지하 작업장에는 10개 라인의 설비와 기계가 마련되어 있다. 지상 2층에는 기숙사가 마련되어 있고 밖으로는 선교센터가 마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생산직 직원의 90%가 뇌성마비, 정신지체 등 중증장애인들이다. 사무직원들은 대게 글을 쓸 줄 아는 3급 이하의 경증 장애인과 기독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생산라인은 2급 이상의 중증 장애인들이 담당하고있지만 직업 능력이 일반인들 못지않게 능숙하다.
1998년 IMF체제 하에도 순조로운 공정 끝에 완공되어 오늘에 이른 에덴복지재단의 전신은 국가대표 유도선수 출신 정덕환 이사장이 자립을 위해 마련한 ‘에덴복지원'이라는 업체로 출발하여 여러 차례 난관을 해쳐오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장애인 복지 시설로 성장하였다. 이는 직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장애인들의 사투와 노력의 결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에덴하우스는 2006년 현재 120명의 직원과 기숙사, 후원단체를 둔 대규모 시설의 복지재단으로 거듭나면서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긍지를 심어주고 있다. 전자부품 납품에서 쓰레기봉투 생산에 이르는 동안 그 수익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 지원금 월 85만 원을 합하면 웬만한 일반인 봉급과 맞먹는 액수다. 작업장 벽보에는 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이 해낼 수 있다는 의지가 담긴 구호가 적혀 있다. 이 구호는 장애
인직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에덴하우스에서는 하루 40만~50만 장의 2~100ℓ짜리 쓰레기봉투들을 제작하고 이를 수도권 2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 공급한다. 에덴하우스의 올해 매출 목표는 60억. 전자부품을 조립하여 납품하는 업체로 출발한 에덴하우스는 주민 반발 등 온갖 난관을 헤치고 여러 차례 업종 변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눈물겨운 사투와 노력 끝에 맺은 결실로 장애인들도 결코 일반인에 뒤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정덕환 이사장은 장애인들에게 아버지이자 스승이다. 필자는 신학대 선배인 문형진 목사님을 통해 알게 된 에덴하우스에서 지난해 연말부터 정월 초까지 2주간 실습을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다시 에덴하우스를 방문하였다. 필자와 한 방을 쓰던 경비원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작업장에 들어서면서 나를 알아보던 몇 분이 있었다.
에덴하우스에서 받은 실습프로그램을 대충 이랬다. 오전 7시, 자정, 오후 6시에 배식이 있고 밤에는 라면이 야식으로 나온다. 정직원은 오후 9시까지 야근이지만 실습생은 오후 6시에 작업이 종료된다. 취침시간은 오후 10시, 기상시간은 오전 7시로 아침 식사 후 8시에 선교센터에서 예배를 보고 9시에 작업이 시작된다. 오전 예배는 정 이사장의 아내인 이순덕 목사의 기도로 시작된다.
장애를 겪으며 살아 온 젊은 시절의 정 이사장의 삶은 마치 필자와 동등한 입장이 아닐 수 없었다. 정덕환 이사장은 촉망받던 정상인에서 순식간에 찾아온 장애로 인한 학업의 중도 하차(명문대를 입학했으나 거의 한 학년을 놔두고 그만두었다.) 후 10여 년의 방황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나와 장애 부분은 달랐으나 그 역시도 장애인들은 같은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