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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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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자작시.산문.독후감. 태그없이 올리기 스크랩 [시와생활] 기억의 고집 / 조윤희
시사랑사람들 추천 0 조회 13 08.06.05 09: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54년을 지하 567층에 은거하는 한 여자를 나는 알고 있다.
하이트맥주와 디럭스 담배를 좋아하는 그, 검은 머리와 검은 옷과 검은 신발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두고 어느 독자의 밑글
‘심하게 예쁘시군요’라는 표현을 보면 추녀도 아닌 듯.
그는 학창시절 전교 1등하는 짝꿍이 시험 때만 되면
야속하게도 모법답안을 가릴 때처럼 통째로 생을 가리고 산다.
그를 만나려면 내게만 허락된 암호를 따라 지하 567층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가 날더러 벗이 될 수 없다 내처도 나를 그를 끝까지 친구라고 우긴다.
참돔을 낚을 때 새우를 미끼로 쓰듯 우리가 서로를 유인하는 미끼는 오직 우정,
말하자면 우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상자를 작당해 훔친 공범이다.
세상 일에 함구해야할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다.
"우리의 미래는 안개와 같다/우리의 과거는 지옥이었고 또 낙원이었다
우리의 돈은 우리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는다/아침이 왔다, 일어나라"
‘빅토르 최’의 말을 빌려보지만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문인 줄 알고 힘껏 밀어붙이는 벽’
너무 오래 지하에 머물러서일까.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시력이 나쁜 듯,
내가 세상의 험한 골짜기를 싸돌아다닐 때
오늘도 그는 지하 567층에서 매우 안전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기억의 고집 / 조윤희



벽을 밀고 있는 여자가 있습니다
문인 줄 알고 힘껏 밀어붙입니다
반동으로 튀어나오는 여자가 피는 흘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곳이 문이 아니었던가
그 여자의 기억의 고집은 집요합니다
막무가내로 파고들며 밀어붙입니다
결코 물렁해지지 않는 벽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어떻게든 그 여자는 그 속을 통과해 들어가야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에 관한 기억의 고집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길모퉁이 그 벽에는
한 여자의 회색벽화가 세워집니다
바랜 입술은 이제는 그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나 위에 나붙은 포스터들이
그녀의 추억을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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