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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1박 2일 동안의 공동체 울력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봉화 수련원 대강당에서 새벽 4시 30분에 공동체 전체 대중이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대중이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스님은 봉화 수련원 앞밭으로 가서 들깨 모종을 뽑았습니다.
뒤이어 행자들 대여섯 명도 밭에 도착해 스님과 함께 들깨 모종을 뽑았습니다.
“큰 모종만 뽑읍시다.”
작은 모종은 밭에 그대로 두고 크게 자란 모종만 뽑아서 콘티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길쭉한 들깨 모종들이 준비해 간 박스 안에 빼곡하게 담기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정도면 오늘 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트럭에 들깨 모종을 가득 실은 다음 다시 봉화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준비 운동을 함께 한 후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오늘 다 같이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하겠습니다.”
합장하고 명심문을 외친 후 밭으로 향했습니다. 산길을 지나자 넓은 밭이 나타났습니다.
트럭에서 모종을 내리고 먼저 모종과 잡초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잡초를 제거한 모종을 대야에 모아주면 한 사람씩 대야를 들고 한 고랑을 맡아 모종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아랫단과 윗단이 있는 넓은 면적의 밭이지만 60여 명이 한 고랑씩 맡으니 금방 모종이 빼곡하게 심겨 나갔습니다.
“모종이 부족해요!”
여기저기서 모종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트럭이 다시 빈 콘티 박스를 싣고 새벽에 모종을 뽑아온 밭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후 트럭이 모종을 다시 싣고 도착했습니다.
“모종 좀 가져다주세요.”
모종에서 잡초를 분리해내는 사람, 모종을 대야에 담아서 고랑마다 운반해주는 사람, 고랑을 따라 빈 구멍마다 모종을 심는 사람, 각자 맡은 역할을 부지런히 했습니다. 중간중간에 스님이 큰 목소리로 행자들에게 일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큰 모종은 조금 더 깊이 심어 주세요.”
물 주기 팀은 긴 호스를 고랑마다 옮겨가며 방금 심은 모종에 물을 듬뿍 주고 지나갔습니다.
물을 다 준 곳에는 북삽으로 흙을 살포시 부어 주었습니다.
“흙을 덮을 때는 모종 쪽으로 움푹 들어가게 덮어 주세요. 그래야 비가 오면 물이 그 속으로 들어가니까요. 연구를 하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웃음)
윗단에 모종을 다 심은 후 물 주기 팀만 남기고 전체가 아랫단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랫단에도 모종이 거의 다 심어갈 무렵 다시 스님이 외쳤습니다.
“모종이 남는다니까 사이사이에 모종을 더 심을까요?”
“아니요!”
이번에는 모종이 남으니까 ‘곳곳에 모종을 더 심을까?’ 하고 스님이 농담을 하니까 대중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밭 같네요. 모두 수고했어요.”
물 주기 팀만 남기고 다 함께 봉화 수련원으로 돌아와 작업복을 그대로 입은 채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 시간이 끝나가는 데도 물 주기 팀이 밭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소식을 듣고 스님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밭으로 가서 교대를 해줍시다. 물 주기 팀도 밥을 먹어야죠.”
스님은 밥그릇을 놓고 다시 밭으로 향했습니다. 물 주기 팀이 고랑마다 호스를 이동시켜가며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교대를 해서 물 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스님은 방동사니를 여러 대 꺾어서 여치집을 만들었습니다. 뻣뻣한 방동사니를 한 가닥 한 가닥 엮자 예쁜 여치집이 금방 만들어졌습니다. 스님이 만든 여치집은 문을 열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문을 열면 여치가 쏙 들어갈 수 있어요.”
“우와!”
행자들은 시골 출신 스님의 솜씨를 보고 모두 신기해 했습니다.
스님이 물 주기를 끝내고 봉화 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오니 식사 시간이 끝나고 다 함께 대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정비 시간을 잠깐 가진 후 11시 30분부터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문경, 두북에 흩어져 있던 모든 공동체 대중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먼저 스님이 1박 2일 동안 울력을 하느라 수고한 대중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봉화 수련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작년에는 밭이 아니라 풀밭 같더니 올해는 밭같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밭을 보고 우리 농사팀 솜씨가 아닌 거 같다고 해서 제가 ‘우리 농사팀도 이 정도는 해요’라고 했어요. 묘당 법사님한테 물어보니까 송석영 거사님이 봉화에 오셔서 두둑을 반듯하게 만들어주셨다고 하네요. 앞에 수수밭은 대중부가 와서 심었고요. 묘당 법사님과 두북 농사팀이 중심이 돼서 들깨 밭을 일구고 전체 공동체 대중이 와서 함께 수고해주셔서 이제 거의 밭같이 만들게 됐습니다. 두북 농사팀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박수)
지금 으뜸절과 실천 장소는 모두 대중부에 공개되어 있는데, 이곳 봉화 수련원은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봉화와 가까운 영주, 안동, 태백 등에 사는 몇몇 정토회원이 봉사하러 오고는 있지만 관리는 공동체 책임입니다. 이곳을 대중부가 관리하도록 하고 개방하면 우리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농사를 안 지어도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시설 사용권도 다 넘겨줘야 해요. 봉화 수련원은 공동체 대중이 가끔 전체가 모여 수련도 하고, 병가를 낸 환자들이 지낼 수 있는 장소로 사용하려고 아직은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련원 옆에 농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이유를 모르면 자꾸 오해를 하게 되기 때문에 먼저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손을 들고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약 2시간 동안 8명이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인류 문화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인류문화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대중공사 시간에 스님께서 인류문화사를 공부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인류문화사란 주로 인류 문명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전파되었느냐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문명은 어떻게 발생하고 전파될까요? 제가 우연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 아이디어가 지금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보다 효율적이면 전파가 됩니다. 핵심은 효율입니다. 그렇다고 효율적이면 다 확산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한테는 효율적이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된다면 전파력이 없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에게도 이익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면 전파가 됩니다. 저 사람을 따라 해 보니까 나에게도 이익이 되면 너도 나도 따라 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직접 만드는 것보다 누군가 다 만든 걸 훔치는 게 나한테는 더 이익입니다. 노력이 적게 드니까 효율적이죠. 그런데 나도 훔치고 너도 훔치다 보면 공동체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도둑질은 전파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속한 공동체가 아니라 남의 공동체에 가서 훔쳐오면 내 공동체 안에서는 아무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걸 따라 배워서 나도 가서 훔쳐오고, 너도 가서 훔쳐오고 하니까 공동체 내에서는 다 이익이에요. 그래서 다른 부족이나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일이 생긴 거예요.
신화에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나오고, 호랑이는 도망가고 곰이 여자로 변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할 게 아니라 곰이나 호랑이가 무엇을 의미를 하고, 왜 그런 신화가 생겨났는지를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어요. 알에서 태어난 고주몽, 아버지 없이 동정녀가 낳은 예수님 등 이런 신화도 특별한 것 같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주 비일비재한 이야기예요. 아버지 없이 태어난 위인은 대부분 자수성가한 사람을 뜻해요. 신분사회에서는 대부분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죠. 아버지라는 배경 없이 뛰어난 인재가 되면 아버지를 밝힐 수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목수라면 신분제 사회에서는 성인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어야 되는 거예요. 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신분이 서자였습니다. 서자의 아들이면 왕위 계승권에서 정통성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인 유화부인이 왕과 만나기 전에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만나서 주몽을 벴다고 하면 왕의 아들보다도 훨씬 더 정통성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신화를 사실로 여기면 종교가 되죠. 그렇다고 신화를 거짓으로 여길 문제는 아닙니다. 신화를 사실과 거짓의 관점이 아니라 ‘왜 이런 신화가 발생했을까’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더 깊이 이해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인류 문화사에 대한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인류 문화사를 포함해서 제가 즉문즉설에서 청년들에게는 앞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세상을 보려면 다섯 가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첫째, 물질의 근원과 우주의 역사
둘째, 생명의 근원과 생명의 역사
셋째, 인류의 근원과 인류문화사
넷째, 우리 민족의 역사
다섯째, 정신작용의 원리
이건 우주의 생성과 같은 거거든요. 우주의 생성이라는 게 물질의 근원과 같고 생명의 시작과 생명의 근원도 같은 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의 역사, 생명의 역사, 인류의 역사, 문명사, 우리 민족사, 그다음에 정신 작용에 대한 여러 가지 기본 상식들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죠. 그래서 뇌의 활동을 너무 물질적으로 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너무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걸 강조해서 너무 극단에 치우쳐도 안 돼요. 모르기 때문에 자꾸 극단에 치우치거든요.
정신작용도 알고 보면 물질적인 기초 위에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그러나 물질 작용보다 한 차원 높은 작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작용은 물질을 떠나서 일어날 수 없고, 물질과는 또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두 가지 특성을 다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물질로만 해결할 수도 없고, 오직 수행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거예요. 정신질환에 따라 호르몬이 문제라면 호르몬을 조절하면 되고, 어떤 정신적 프로그램이 문제라면 프로그램의 고장을 고쳐야 된다는 거예요. 컴퓨터로 비유하면 하드웨어가 고장 났으면 컴퓨터 기술자가 하드웨어를 고쳐야 되고, 소프트웨어가 문제가 생기면 백신으로 치료하거나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야 한다는 얘기거든요. 기본 상식이 없으면 한쪽에 치우치게 됩니다. 누가 명상을 하다가 공중에 1m만 뜨거나 예언이 한두 개만 맞아도 혹해버리거나 말도 안 된다고 부정을 하죠. 이렇게 늘 치우치게 됩니다. 그냥 ‘저런 현상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신비한 현상에도 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다만 내가 그 원리를 모르니까 신비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두려움도 마찬가지예요. 알면 두려워할 일이 없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두렵잖아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초기에는 방치했다가 중국에서 난리가 나니까 전 세계에서 과잉대응을 했잖아요. 그런데 한 2년쯤 지나고 나니 바이러스가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조금씩 합리적으로 대응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제가 ‘조심은 하되 두려워하지는 말라’라고 했잖아요. 잘 모르면 방치를 해서 문제가 되고, 두려워해서 과잉 대응을 해도 문제가 됩니다. 유의는 하되,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됩니다.
꼭 절을 하거나 명상을 해야 수행을 하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은 지혜롭게 살라고 가르치셨잖아요. 지혜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혜도 지식적으로 받아들여요.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마음에 두려움이나 번뇌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증득하는데 지식이 기초가 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이 전문가 수준으로 뭘 많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교화하려면 기본 상식은 갖추어야 합니다. 최소한 인류 문명이 이룬 성과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해요. 내가 괴로움 없이 사는 데는 그런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교화를 하려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내용 전달이 돼야 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지식은 필요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바보라고 불리던 주리반특 같은 사람도 깨달아서 괴로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처님처럼 교화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부처님은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왕으로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교화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겁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왕들과 대화를 하며 교화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지식이 많고 강의는 잘해도 마음공부를 안 하면 내가 화가 나거나 괴로운 상태를 잘 모르거나 욕망을 잘 제어하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러면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은 될 수 있어도 수행자로서 행복하게 사는 길에서는 멀어지는 문제가 있어요. 수행자는 마음공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세상 공부에 주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자기 해탈을 위한 수행과 타인의 해탈을 돕는 교화도 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삶 자체가 수행과 교화였죠. 교화를 위해서 기본적인 상식은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외에도 하절기 공동체 일과, 코로나 방역 지침을 비롯해 개인적인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일단 들깨를 다 심고 나서 오늘 물을 주었고, 일기 예보가 맞다면 며칠간 날이 흐릴 거예요. 그러면 들깨가 대부분 살 겁니다. 서울 공동체에서 이번에 다 못 심으면 2주 후에 와서 나머지를 심겠다고 했잖아요. 이번에 다 심었으니까 2주 후에 와서 북돋기만 해 주면 됩니다. 그때까지 날이 가물면 물을 한 번 더 주고 나서 북돋기를 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주 주말에는 두북 수련원에 와서 풀을 좀 매 주면 안 될까요? (웃음) 산윗밭에 비가 온 뒤로 풀이 확 자랐어요. 풀을 막 뽑으면 안 되고 도라지 싹이 나서 섬세하게 뽑아야 해요. 지금 논에도 피가 엄청나게 자라서 피도 뽑아야 해요. 두북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니까 다음 주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함께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서울 공동체만 쳐다보고 살아요. (웃음) 문경은 문경대로 바쁘고, 두북 농사팀에 얘기해봤자 본전도 못 찾아요. 제가 얘기하면 오히려 저보고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도와 달라고 합니다. (웃음)
1박 2일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가끔 이렇게 모여서 울력을 합시다.”
공동체 대중들은 앞으로 더 자주 전체가 모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1박 2일 동안의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오후 2시에 봉화 수련원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잠깐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행자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스님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원고 교정을 하였습니다.
오후 5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니 다시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습니다. 스님은 몇 가지 업무들을 본 후 저녁 8시 30분이 되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16번째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두 타임 연속으로 명상을 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질문을 받지 않고 곧바로 스님이 명상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최고의 휴식
“주말은 휴식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일주일에 6일은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 하루는 쉬다가 지금은 5일간 일하고 이틀간 쉬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과 일부 나라에서는 4일 일하고 3일 휴식을 합니다. 이렇게 휴일이 늘어나고, 휴식을 소비적으로 하다 보니까 가계 부담이 점점 늘어서 가계 적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세상에서는 노동이 생산을 뜻하고, 휴식이나 놀이는 소비를 뜻합니다.
일을 할 때도 즐겁게, 긴장하지 않고 애쓰지 않는다면 지치지 않습니다. 또 소비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휴식을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최고의 휴식입니다. 육체도 멈추고, 정신적 작용인 생각도 멈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었든 물건을 잃어버렸든 사람과의 갈등이 생겼든 계속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괴롭습니다. 그 생각을 멈추어버리면 마치 영화가 상영되다가 꺼진 것처럼 아무 일도 없어집니다.
명상을 할 때는 일하듯이 애를 쓰거나 긴장하지 말고 아무 할 일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동작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어봅니다. 우리는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늘 움직이던 습관이 있어서 또 답답해합니다. 계속 생각을 하면 피곤한데도 생각이 멈춰지지 않죠.
명상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도 계속 생각이 일어난다면 그냥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이니까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욕구가 일어나면 욕구를 따르지도 않고 욕구를 억제하지도 않듯이 생각이 일어나면 따라가지도 않고 참지도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나 결심, 의도를 놓아 버립니다. 어떤 것이든 ‘다만 그렇구나’하고 알아차립니다. 모든 것을 멈추어도 호흡은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내 호흡을 느껴 봅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 알아차립니다.”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탁, 탁, 탁!
30분 간 두 번에 걸쳐 명상을 해보았습니다. 명상이 끝나고 실시간 채팅창에는 명상을 해 본 소감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스님이 직접 몇몇 눈에 띄는 소감들을 읽어 주었습니다.
“It was a fully relaxing rest. Thank you.”
(충분한 휴식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y breath was deep and calm. I feel relaxed.”
(호흡이 깊고 고요했습니다. 편안합니다.)
“I was watching my thoughts coming in and I was also watching my breath peacefully.”
(생각이 올라오면 편안히 지켜보다가 들숨 날숨을 평화롭게 느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산아랫밭에 가서 들깨 심기 울력을 한 후 오전에는 주간반 활동가를 위한 전법활동가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경전대학 커리큘럼 준비회의와 인도 성지순례 준비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활동가를 위한 전법활동가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