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왔다
강성남
안경이 왔다
시집 한 권이 따라왔다
분홍 꽃나무도
꽃나무 아래 소년도 왔다
수국을 바라보며 석류차를 마셨다
꽃잎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우리는 말을 아꼈다
수국은 조화造花일까
생화生花일까
꽃의 진위보다
별자리가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저녁은 남쪽으로부터 불어온 안부라는 걸 모른 채
배롱나무 아래에서 만나자
연꽃못에서 만나자
꿈으로 온 목소리를 기억해내며
봉정사 우물의 맑음을 생각했다
처음인 듯 내가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이듯 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잘 웃는 건
내가 나를 보기 위해서라는 걸
보고 싶다고, 오직 너 하나만 그립다고
그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에게
혼자 견디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에게
안경이 와서
꽃나무 뒤편의 세계가 있다는 걸
거기 또 하나의 내가 있다는 걸
영혼이 날아드는 곳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집이래
이해할 수 없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언어 너머 세계를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어루만지듯 만져보았다
안경이 와서
안경이 와서
어디서 온 줄 모르던 내가 왔다
어디서 온 줄 모르는 나도 왔다
출처 : 시집 『당신과 듣는 와인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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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이 왔다 / 강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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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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