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이 어긋나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도,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사고의 방향성에 세월이 쌓이면 자신의 성품으로 성숙됩니다. 지금까지 법무아님의 글을 보면서 느낀 바는, 출발에서 이미 틀렸기에 모두가 어긋나 있습니다.
제가 처음 불교 공부할 때, '있지 않지만 없지도 않다'등의 표현은 말장난으로 보였습니다. 심히 불만족스러웠죠. 그래야 정상입니다. 물론 그러한 표현에 끼워맞춰서 이해를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그냥 머리속에서 끼워맞춘 거지, 사실을 그렇게 아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전혀 선명하지 않아요. 무슨 뜻이냐? 법의 이해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요... 제가 솔직히 말할께요. 이게 그 뭐냐... 모르는 거는 그냥 모르는 거구요, 그게 흠은 아니거든요. 자꾸 말을 만들어서 덮어씌우려 하지 말구요. 관심이 있으면, 그냥 쿨하게 "이런 부분 점검해 보자"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면 그만입니다. 누가 뒤에서 잡으려고 쫓아오지 않습니다.
덮어씌우다 보면 점점 궁해집니다. 참... 정말 님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께요.
보세요... 저는 위에서 오온 중 식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아는 놈, 아는 작용, 알려지는 대상의 세가지가 나올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아는 놈이 식이예요? 아는 작용도 식이고? 제가 구체적으로 물은 것에서요. 어떤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이 아는 놈이고, 파란색인 줄 아는 것이 식이예요? 전혀 매칭이 안되잖아요... 논지와는 상관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아무 거나 가져다 붙이고 있잖아요...
자꾸 그러는데요. 정말 그러지 마세요. 그 정도 가치는 없어요. 님이 훨씬 귀합니다. 비교 불가예요.
조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그렇게 변명하지 마라, 너는 훨씬 귀하다, 그런 식으로 변명을 자꾸 하면 니가 망가진다, 니가 잘몬한게 그 정도 가치가 엄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덴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적어도 저한테는요. 조카가 변명을 안하더라구요, 지금은 애엄마인데도요...
<< 위에서 오온 중 식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아는 놈, 아는 작용, 알려지는 대상의 세가지가 나올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아는 놈이 식이예요? 아는 작용도 식이고? >> 위와 같이 지적했는데, 아래와 같이 답합니까? == 아는 놈은 식이고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입니다. ==
'식의 작용'은 오온 즉 색수상행식 중 뭔데요? 오온으로 묻고 있다고 누차 적고 있는데, 동문서답도 적당히 해야지... 개그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아래와 같이 첨언도 해놨잖아요. << 제가 구체적으로 물은 것에서요. 어떤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이 아는 놈이고, 파란색인 줄 아는 것이 식이예요? >>
너무 간단한 것을 물었는데, 자꾸 회피하면서 전혀 딴소리만 늘어놓는데 말입니다. 정말 모르나?
법무아님이 위에서 중언부언하며 결국 "있지 않음이 식의 영역이 아닌 건 맞습니다"라고 했죠? 있지 않음등의 주장은, 경험이 아니고 판단입니다. "어떤 경험에서 비유비무라는 판단이 생겼다"는 가능합니다. 그 경험이 비유비무라는 판단의 토대입니다. 그런데 비유비무를 경험했는지 묻는 질문에, "경험했다"고 답하고서는 이후 "내가 그런 판단을 했으니, 그 판단을 경험한 거 아니냐, 나는 그것도 경험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하는 거는 그냥 황당한 겁니다. 그런 황당함의 지적에 무슨 논증이 필요합니까?
부처님께서 오온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오온에 '나' 즉 '주체'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온 중 식온이, '대상을 아는 주체'라고 주장하는데 어떤 논파를 해야 할까요? 한술 더 떠서 "아는 놈은 식이고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입니다. 물론 주체와 작용을 뭉뚱그려서 식이라고 표현할 순 있습니다"라는 말까지 하는데요. 거기에 기본 개념부터 숙지하라는 말 이외에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제가 오온으로 질문했으니까요. 오온으로 말하자면요. 식의 작용이라는 표현은, 색수상행식의 오온 중 수상행을 통칭하는 겁니다.
님은 위에서 어떤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과 파란색인 줄 아는 것은 모두 산냐 즉 상온인데,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제가 "그 둘 다 상온이라면, 님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한 식은 구체적 사례에서 어떤 작용을 칭하는 겁니까?"라고 물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파란색이 알려지는 경우에서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도 파란색인 줄 아는 것도 모두 산냐 즉 상온인데, "아는 놈은 식이고,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이라고 운운한데서 말하는 '아는 작용'은 도대체 뭐를 아는 거죠?
위에 적었듯, 덮어씌우다 보면 점점 궁해집니다. 안그래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점점 더 누더기가 되어 버립니다. 덮어씌우기가 그런 거예요.
아... 참고로... 불생불멸 내지 비유비무는, (일차적으로) 모두 승의제입니다. 속제에서는 '발생과 소멸' 내지 '있음과 없음'입니다.
===
아... 역시 참고로... '유무단상을 끊는 중도'는 속제에서도 기능합니다. 발생과 소멸 그리고 무상(있다가 없음, 없다가 있음)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속제 역시 '제' 즉 '진리'라고 이름하는 겁니다. 승의제 내지 진제는, 속제의 의미를 보다 깊이 파고들어 파악하는 겁니다. 그래서 불생불멸, 비유비무, 무무상등이 등장합니다.
위와 같은 구조인데 반야부는 중도(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보니, 반야부의 경론을 보면, 속제의 중도를 포섭하여 함께 서술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불생불멸, 비유비무, 무무상등을 한 단어로 '공'이라고 하는데요. '공공'까지도 진행하기에 좀 더 복잡한 형태까지 나옵니다. 그냥 그 뿐입니다. 별 거는 아니예요.
어쨌든 위와 같은 구조로 성립되어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 혼동하는 이도 종종 발견됩니다. 말에 먹혀 그냥 횡설수설하는 거...
비유비무등은 판단이라니까요, 폼나게 포장하자면 지혜... 경험을 말했는데, 무슨 사구부정 운운하며 자꾸 말도 안되게 중론을 가져와요... 경험이 판단의 토대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워요? 여기에 무슨 언어의 다의성이 나와요... 경험으로 있는게 있는 거지, 위에서 언급한 소공경을 읽어보세요. 부처님께서도 삼매수행을 제시하면서 있는 것은 있다고 하신다니까... 또한 진제가 속제가 틀렸다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 겁니까...
닥치는 대로 용어 나열하면 다가 아니구요, 양자역학은 또 왜 나와요...
제가 적은 말이 어려운 말도 아니고, 위에 님이 적은 글을 읽어보세요. 계속 틀렸음을 논증하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결국 더 쉽게 적어놨잖아요. 대화에서 매너의 출발은요. 우기기를 자제하는 겁니다. 뭐...그래 우겨도 좋아요. 그런데 논증하라니까... 뭐가 문제냐고 계속 따지니까, 대답해 준 거구요. 기본 개념 좀 숙지하라고 누차 말했잖아요.
관용도 마찬가지에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에 관용을 해요? 산수문제에서 1+1=2인 건데, 1+1=3이라는 주장도 관용적으로 접근하자고 하면 그게 관용이예요? 뭐...문학 문제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논점에 맞춰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구요. 그냥 솔직한 감상을 적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는요... 답답하고 짜증스럽기도 한데요.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좀 생뚱맞지만 귀엽기도 해요. 그냥 제 솔직한 심정이 그래요. 모처럼 과거 넷에서 알게 된 다른 분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그 시절엔 팔팔했는데 말이지...
저도 나이를 먹어서 대부분 까먹고 말입니다. 이제 아는 것도 별로 엄어... 그런데 사실 개념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아요. 사고의 틀, 구조, 접근방식...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구요.
불교가 복잡한 측면도 있어서요. 토대가 있어야 되요. 그래야 혼동을 지양할 수 있습니다. 그 토대가 믿음일 수도 있구요. 경험일 수도 있고, 가르침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토대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가장 쉬운 토대는, 의외로 믿음이 아니라요. 평범한 일상의 사실들, 일상적 경험입니다. 뭐...관용적으로다가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믿음도 의외로 귀하거든...
저 말고 제가 적은 내용이, 앞으로 나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위 본글 아래 법계유심님의 글에 적은 꼬리말까지 포함해서요.
첫댓글 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거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방향성이 어긋나 있어서요. 그러한 접근방식으로는, 적절한 판단에 이르기 어려울 겁니다.
분명한 토대에서 출발해야 사상누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법을 안다는 것은 선명히 안다는 겁니다. 그것을 신기루에 비유할 수 있더라도 말입니다.
[ 분명한 토대에서 출발해야 사상누각이 아닐 수 있고 선명함을 기대할 수 있다 ]는 취지로 적었는데요...
도대체 판단의 토대가 되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 법무아님의 사유는 '사실(법)'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방향성이 어긋나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도,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사고의 방향성에 세월이 쌓이면 자신의 성품으로 성숙됩니다. 지금까지 법무아님의 글을 보면서 느낀 바는, 출발에서 이미 틀렸기에 모두가 어긋나 있습니다.
제가 처음 불교 공부할 때, '있지 않지만 없지도 않다'등의 표현은 말장난으로 보였습니다. 심히 불만족스러웠죠. 그래야 정상입니다. 물론 그러한 표현에 끼워맞춰서 이해를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그냥 머리속에서 끼워맞춘 거지, 사실을 그렇게 아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전혀 선명하지 않아요. 무슨 뜻이냐? 법의 이해가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분명 대답했습니다. 님이 이제껏 이곳에서 적은 글 전부라고...
정작 님은 질문을 받아도 대답은 안하는데요. 여기서도 마찬가지...
도대체 님의 판단의 토대가 되는 사실이 무엇입니까?
정말 말장난하고 싶지는 않구요.
원래 전부 다 틀린 글은 손을 댈 수가 없는 겁니다. 다 틀렸으까요...
그래서 시정을 하기 위해 묻잖아요.
님의 판단의 토대가 되는 사실이 무엇이냐니까요.
님이 경험하고 진짜 아는 것이 무엇이냐니까요.
님이 있지 않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없지 않음을 경험한 적은 있어요?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말만 그렇게 해요? 그게 법을 아는 거예요?
경험한 적이 있어요? 그러한 말장난이 토대가 된 적이 있냐구요...
있지 않음이나 없지 않음을 경험했다... 정말 그래요?
일체인 오온에서 마음이라고도 번역되는 식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회피하지 말구요. 대상이 있음을 안다겠죠... 그렇죠?
그러니까 '대상이 있음을 안다'가 맞잖아요? 그렇죠?
식은 대상이 있음을 아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아는 것이다... 다시 물어봅시다.
어떤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과 파란색인 줄 아는 것은 다른 겁니다. 식은 두가지 중 어떤 작용의 이름입니까?
자꾸 회피하는데요. 다시 묻죠. 그 둘 다 상온이라면, 님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한 식은 구체적 사례에서 어떤 작용을 칭하는 겁니까?
===
식은 대상이 있음을 아는 겁니다. 저는 간단히 감지작용으로 칭합니다. 즉 대상의 있지 않음등은 식 즉 경험의 영역이 아니구요, 오직 판단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걸 경험했다고 주장해요?
사실 즉 경험에 터잡지 않은 판단만 나열하면, 불교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사실에 터잡는다는 겁니다. 판단으로 사실을 끼워맞추려고 하지 말고, 사실에서 판단을 일으켜야 불교입니다.
사실에서 판단을 일으키기에 사실이 배척당하지 않습니다. 있지 않음이나 없지 않음 등은 그것만 가지고 논하면 말장난이구요, 있음이나 없음 등의 사실을 긍정하고 토대로 삼아야만 말장난이 아닐 수 있습니다.
중관 쪽은 티벳이 강하고 잘 보존했으니까, 법무아님은 티벳불교 계열 언급도 자주 하는데요. 거기가 삼매 전승이 강한 편이니 [ 소공경 = 공에 대한 짧은 경 = 공의 짧은 경 = 공의 작은 경 ]을 검색해서 읽어 보고 참조하면 좋겠습니다.
식의 작용과 식을 구분한다... 그런 이상한 말 하지 말구요...
그냥 기본 개념이라도 잘 숙지하구요. 일상에서 점검해 기본 개념의 이해를 높이는게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가요... 제가 솔직히 말할께요. 이게 그 뭐냐... 모르는 거는 그냥 모르는 거구요, 그게 흠은 아니거든요. 자꾸 말을 만들어서 덮어씌우려 하지 말구요. 관심이 있으면, 그냥 쿨하게 "이런 부분 점검해 보자"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면 그만입니다. 누가 뒤에서 잡으려고 쫓아오지 않습니다.
덮어씌우다 보면 점점 궁해집니다. 참... 정말 님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께요.
보세요... 저는 위에서 오온 중 식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아는 놈, 아는 작용, 알려지는 대상의 세가지가 나올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아는 놈이 식이예요? 아는 작용도 식이고?
제가 구체적으로 물은 것에서요. 어떤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이 아는 놈이고, 파란색인 줄 아는 것이 식이예요?
전혀 매칭이 안되잖아요... 논지와는 상관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아무 거나 가져다 붙이고 있잖아요...
자꾸 그러는데요. 정말 그러지 마세요. 그 정도 가치는 없어요. 님이 훨씬 귀합니다. 비교 불가예요.
조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그렇게 변명하지 마라, 너는 훨씬 귀하다, 그런 식으로 변명을 자꾸 하면 니가 망가진다, 니가 잘몬한게 그 정도 가치가 엄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덴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적어도 저한테는요. 조카가 변명을 안하더라구요, 지금은 애엄마인데도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격을 갖춰나가는게 이런 저런 지식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하핫
<<
위에서 오온 중 식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아는 놈, 아는 작용, 알려지는 대상의 세가지가 나올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아는 놈이 식이예요? 아는 작용도 식이고?
>>
위와 같이 지적했는데, 아래와 같이 답합니까?
==
아는 놈은 식이고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입니다.
==
'식의 작용'은 오온 즉 색수상행식 중 뭔데요? 오온으로 묻고 있다고 누차 적고 있는데, 동문서답도 적당히 해야지... 개그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아래와 같이 첨언도 해놨잖아요.
<<
제가 구체적으로 물은 것에서요. 어떤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이 아는 놈이고, 파란색인 줄 아는 것이 식이예요?
>>
너무 간단한 것을 물었는데, 자꾸 회피하면서 전혀 딴소리만 늘어놓는데 말입니다. 정말 모르나?
아니... 오온은 색수상행식의 다섯가지에 식작용을 더해 여섯가지가 오온이라는 겁니까?
덕분에 한참 웃었습니다. 좀 답답하기도 하고... 이거 참 뭐라 말할 수가 없네...
위에서 적었듯, 중론이고 고구마고 말하기 전에, 그냥 기본 개념이라도 잘 숙지하세요.
그러니까 자기도 그 의미를 모르는 말 계속 하지 말구요, 우선 기본 개념이나 숙지하시라구요...
저의 이야기는 식의 특성상 있지 않음이나 없지 않음은 체험의 영역이 아니라는 거예요. 체험 즉 사실의 영역에서는 있거나 (직접적 추론으로) 없거나 둘 중 하나예요. 사실을 토대로 삼으라구요. 그게 불교라구요.
틀렸음을 논증이라...
퀴즈의 정답과 오답을 결정하는 것 등은 논증의 영역이 아닙니다.
법무아님이 위에서 중언부언하며 결국 "있지 않음이 식의 영역이 아닌 건 맞습니다"라고 했죠? 있지 않음등의 주장은, 경험이 아니고 판단입니다.
"어떤 경험에서 비유비무라는 판단이 생겼다"는 가능합니다. 그 경험이 비유비무라는 판단의 토대입니다.
그런데 비유비무를 경험했는지 묻는 질문에, "경험했다"고 답하고서는 이후 "내가 그런 판단을 했으니, 그 판단을 경험한 거 아니냐, 나는 그것도 경험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하는 거는 그냥 황당한 겁니다. 그런 황당함의 지적에 무슨 논증이 필요합니까?
부처님께서 오온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오온에 '나' 즉 '주체'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온 중 식온이, '대상을 아는 주체'라고 주장하는데 어떤 논파를 해야 할까요?
한술 더 떠서 "아는 놈은 식이고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입니다. 물론 주체와 작용을 뭉뚱그려서 식이라고 표현할 순 있습니다"라는 말까지 하는데요. 거기에 기본 개념부터 숙지하라는 말 이외에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
애초에 제가 오온으로 질문했으니까요. 오온으로 말하자면요. 식의 작용이라는 표현은, 색수상행식의 오온 중 수상행을 통칭하는 겁니다.
님은 위에서 어떤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과 파란색인 줄 아는 것은 모두 산냐 즉 상온인데,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제가 "그 둘 다 상온이라면, 님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한 식은 구체적 사례에서 어떤 작용을 칭하는 겁니까?"라고 물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파란색이 알려지는 경우에서 색깔이 있음을 아는 것도 파란색인 줄 아는 것도 모두 산냐 즉 상온인데, "아는 놈은 식이고, 아는 작용은 식의 작용"이라고 운운한데서 말하는 '아는 작용'은 도대체 뭐를 아는 거죠?
위에 적었듯, 덮어씌우다 보면 점점 궁해집니다. 안그래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점점 더 누더기가 되어 버립니다. 덮어씌우기가 그런 거예요.
아... 참고로... 불생불멸 내지 비유비무는, (일차적으로) 모두 승의제입니다. 속제에서는 '발생과 소멸' 내지 '있음과 없음'입니다.
===
아... 역시 참고로... '유무단상을 끊는 중도'는 속제에서도 기능합니다. 발생과 소멸 그리고 무상(있다가 없음, 없다가 있음)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속제 역시 '제' 즉 '진리'라고 이름하는 겁니다.
승의제 내지 진제는, 속제의 의미를 보다 깊이 파고들어 파악하는 겁니다. 그래서 불생불멸, 비유비무, 무무상등이 등장합니다.
위와 같은 구조인데 반야부는 중도(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보니, 반야부의 경론을 보면, 속제의 중도를 포섭하여 함께 서술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불생불멸, 비유비무, 무무상등을 한 단어로 '공'이라고 하는데요. '공공'까지도 진행하기에 좀 더 복잡한 형태까지 나옵니다. 그냥 그 뿐입니다. 별 거는 아니예요.
어쨌든 위와 같은 구조로 성립되어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 혼동하는 이도 종종 발견됩니다. 말에 먹혀 그냥 횡설수설하는 거...
비유비무등은 판단이라니까요, 폼나게 포장하자면 지혜...
경험을 말했는데, 무슨 사구부정 운운하며 자꾸 말도 안되게 중론을 가져와요... 경험이 판단의 토대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워요? 여기에 무슨 언어의 다의성이 나와요... 경험으로 있는게 있는 거지, 위에서 언급한 소공경을 읽어보세요. 부처님께서도 삼매수행을 제시하면서 있는 것은 있다고 하신다니까...
또한 진제가 속제가 틀렸다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 겁니까...
닥치는 대로 용어 나열하면 다가 아니구요, 양자역학은 또 왜 나와요...
제가 적은 말이 어려운 말도 아니고, 위에 님이 적은 글을 읽어보세요. 계속 틀렸음을 논증하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결국 더 쉽게 적어놨잖아요.
대화에서 매너의 출발은요. 우기기를 자제하는 겁니다. 뭐...그래 우겨도 좋아요. 그런데 논증하라니까... 뭐가 문제냐고 계속 따지니까, 대답해 준 거구요. 기본 개념 좀 숙지하라고 누차 말했잖아요.
관용도 마찬가지에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에 관용을 해요? 산수문제에서 1+1=2인 건데, 1+1=3이라는 주장도 관용적으로 접근하자고 하면 그게 관용이예요? 뭐...문학 문제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님아... 온 우주의 주제를 다 논하려구요? 님의 글에 대한 저의 지적에서 틀린 점이 무엇입니까? 중언부언하지 말고, 다른 거 가져오지 말고, 제가 한 말을 가지고 지적해 보세요. 저는 님의 글에 대해 그렇게 하잖아요. 그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말도 안되는 거를 말도 안된다고 하는 거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적은 글이 맞다면, 말도 안되는 거를 자꾸 주장하고 논점과 무관한 것을 계속 나열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제 말의 틀린 점을 지적하라는데, 수학 관점... 산수문제는 님이 관용을 주장하기에 그런 거는 관용이 아니라는 예를 든거지, 해석학 논쟁하자고 그런 거예요? 하하하
논점에 맞춰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구요. 그냥 솔직한 감상을 적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는요... 답답하고 짜증스럽기도 한데요.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좀 생뚱맞지만 귀엽기도 해요. 그냥 제 솔직한 심정이 그래요. 모처럼 과거 넷에서 알게 된 다른 분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그 시절엔 팔팔했는데 말이지...
저도 나이를 먹어서 대부분 까먹고 말입니다. 이제 아는 것도 별로 엄어... 그런데 사실 개념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아요. 사고의 틀, 구조, 접근방식...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구요.
불교가 복잡한 측면도 있어서요. 토대가 있어야 되요. 그래야 혼동을 지양할 수 있습니다. 그 토대가 믿음일 수도 있구요. 경험일 수도 있고, 가르침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토대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가장 쉬운 토대는, 의외로 믿음이 아니라요. 평범한 일상의 사실들, 일상적 경험입니다. 뭐...관용적으로다가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믿음도 의외로 귀하거든...
저 말고 제가 적은 내용이, 앞으로 나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위 본글 아래 법계유심님의 글에 적은 꼬리말까지 포함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