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후 지난 70여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학가와 영화를 포함한 문화계를 지배해온
좌파들이 영화 건국전쟁의 파죽지세 돌풍에 혼비백산
멘붕 상황에 빠졌다
그동안 좌파들은 역사를 왜곡해서
대한민국, 미국, 일본은 악이고
북한, 러시아, 중국은 선이라고 표현해왔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악이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선이라고 표현해왔다
자본주의 우파는 악이고
공산주의 좌파는 선이라고 역사를 왜곡해온것이다
그러나 건국전쟁 영화 한편이
이런 좌파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진중권을 비롯한 좌파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건국전쟁을 까내리는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건국전쟁을 보고서 똑똑해지면
4월 총선에서 좌파정당들이 참패당하고
좌파들의 입지가 줄어들기때문이다
그래서 좌파들이 건국전쟁을 두려워하는것이다
국민들은 좌빨들의 이간질에 속지 말라.
" 1965년 이승만 대통령 장례식에 바친 박정희 대통령의 조사(弔詞)"
코리아타임스 2014-07-22 링크 http://www.koreatimes.com/article/865411
“조국독립운동의 원훈이요, 초대 건국대통령이신 고 우남 이승만 박사 영전에 정성껏 분향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삼가 조의를 드립니다. 돌아보건대 한마디로 끊어 파란만장의 기구한 일생이었습니다.
일제의 침략에 쫓겨 해외의 망명생활 30여 성상에, 문자 그대로 혹은 바람을 씹고
이슬위에 잠자면서 동분서주로 쉴 날이 없었고, 또 혹은 섶 위에 누워 쓸개를 씹으면서 조국광복을 맹세하고 원하던 것도,
그 또한 혁명아만이 맛볼 수 있는 명예로운 향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70노구로 광복된 조국에 돌아와 그나마 분단된 국토위에서
안으론 사상의 혼란과 밖으로는 국제의 알력 속에서도 만난을 헤치고 새 나라를 세워,
민족과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여 민주한국독립사에 제1장을 장식한 것이야말로,
오직 건국인만이 기록할 수 있는 불후의 금문자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 견지하신 민족정기에 입각하여 항일반공의 뚜렷한 정치노선을 신조로
부동자세를 취해왔거니와,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사의 국가적 경륜이었고, 또 그중에서도 평화선의 설정,
반공포로의 석방 등은 세계를 놀라게 한 정치적 결단력의 역사적 발휘였던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귀국을 박정희 대통령이 막은 것이 아님.
이기붕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 및 4.19 사건 때문에 여론이 나빴던 것이 사실임.
뉴스 펌/ 조선일보 입력 1999.11.09. 19:05
링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9/11/09/1999110970485.html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당시 이박사의 귀국을
박대통령이 막은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인데, 그 당시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이박사 말년에 벌어진 부정선거와 4·19 등 실정의 여파가 정부에 큰 짐이 되고 있었습니다.
언론들도 국장에 절대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1965년 7월20일 오후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결정했다.
이석제 총무처 장관이 장례준비소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장관이 박정희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니 박대통령은 "하여튼 정부로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 바라오"라며
간단하게 언급했다. 이 장관은 평소 박대통령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