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홈페이지에도 많은 글들이 올라있는 layne님(천리안)이 꼽아보신 90년대 베스트 앨범 50선 입니다 -
전에 동아리 회지를 위해 썼던 글인데 한번 올려봅니다. 물론 전적으로 제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이 리스트는 현재까지 존재해왔던 명반 선정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굳건히 nevermind 가 1위를 지키고 있는 90년대의 명반 선정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이 명반 선정의 기준은, 무엇보다도 그 음반 자체의 음악적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시대를 앞서나가고, 시류를 창조하는 것만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반이 사람들의 귀에 그리고 가슴에 어떠한 감정을 전달 하며 얼마나 그 감정을 깊이 각인시키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아는 것도 들은 것도 없이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된 리스트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이 리스트는 수긍을 할 수 있는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1. the stone roses / the stone roses
- 이 음반은 실제로는 89년에 발표되었으나, 사람들의 귀에 들려지고 반응을 얻어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해당되는 일이기에 선정대상에 들어가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의 시애틀 이전에 멘체스터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명백히 감탄스러운 것이다. 장르의 혼합+배양=새로운 어떤 무엇. 이것은 그런지가 만들어낸 공식이 아니다. 멘체스터는 실제로 플라워 무브먼트 이후 가장 히피에 근접한 문화의 총체였으며, 그 중심에 서서 영국 기타팝의 전통과 힙합,애시드하우스가 만난 충격적이면서 신선한 사운드를 선보인 것은, 그리고 배기 씬의 다른 어떤 밴드와도 차별되는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인 것은 스톤로지즈의 이 데뷔앨범을 너바나나 이전의 위대한 록 밴드들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드럭을 , 꿈과 이상을 음악에 심어서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는 힘을 부여한 생명 체로서의 음반.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새로운 음반. 90년대를 nirvana가 정의했다는 말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2. jeff buckley / grace
- 어디에 호소해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록음악에 낭만을 가득 부어놓은 이 기묘한 음반은, 이미 정의되고 안정된 상황에 있는 것 만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에 받아들여지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다른 록 뮤지션이나 대학가에서 그 반응을 얻어내기 시작한 이 음반은 장르의 혼합이나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인 가사들로 점철된 90년대의 다른 음반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느낌을 준다. 어떤 무엇보다도 사랑과 낭만과 죽음에 가까운 이미지들. 그리고 고전적인 듯 하면서도 새로운 독자적인 송라이팅. 그에 대한 평가가 요절 뒤에 요란히 부풀려진 것이라 할지라도 이 음반의 아름다움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3. belle & sebastian / if you're feeling sinister
- 그 다양하게 쏟아져나오던 90년대 영국의 폭발적인 음악적 흐름들도 이제는 여성보컬+남자뮤지션의 트립합과 무적의 자아도취 애티튜드+복고적 기타사운드의 dad-rock, 섹스와 드럭에 대한 집착+화려한 관능적사운드의 브릿팝 등으로 귀결되는 듯 하는데, 느닷없이 고전적인 포크-챔버 팝을 들고 나온 이들의 이 두번째 앨범은 위에 언급한 그 어떤 조류도 줄 수 없는 편안하고 소박하고 나른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 알수 없는 친근함은 도무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걸 알 필요 없이 무심히 마음이 따라가게 되는, 그리고 드물게도 저절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순수의 가치.
4. suede / dog man star
- 시류를 떠난 독자적인 사운드로서 스웨이드가 주었던 충격은 the drowners가 실린 1집으로서 충분했지만, 그 방향으로 가져올 수 있는 온갖 미덕이 다 실린 이 음반으로서 스웨이드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완성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떳떳이 입밖에 내기를 주저하는 그 뒷면 의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음반은 관능,유혹의 그 극단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철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증폭시킨 음반 전체의 완성도 를 과시함으로써 브릿팝'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분명히, 이 음반엔 언론도 비평가도, 대중도, 심지어 오아시스마저 어찌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존재한다.
5. radiohead / ok computer
- 라디오헤드의 가치는? 1) Creep이라는 훌륭한 곡을 만들어낸 기특한 밴드. 2)최고의 라이브 밴드. 3) 동시대의 어떤 밴드와도 다른 슬픔과 우울의 정서. 4)음반이 나올 때마다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기특함.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지? 정답은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크립을 만들어 낸 것도 훌륭하지만 그 크립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그 파도를 스스로 극복해낸 점은 더더욱 훌륭하다. '청승'이라고, 지나치게 심각하다고 몰아붙일 수 있는, 라디오헤드는 그런 밴드가 아니다. 솔직히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이 음반의 후속작이 얼마나 훌륭할지 겁이 나기까지 하는 그런 위력적인 느낌을 주는 음반 이 도대체 얼마나 있던가? 라디오헤드가 훌륭한 점은 그런 기특한 성장의 지속 만이 아니라, 만들어낸 음반 자체의 빼어남에도 있으며, 이 음반은 그러한 빼 어남의 현재진행형의 정상에 위치해 있다.
6. r.e.m / automatic for the people
- 거물밴드 알이엠. 실제로 REM이 만들어낸 많은 음반들은 하나라도 빠지는 것 없이 안정된 수준을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데뷔앨범 인 Murmur이후 압도적인 수준의 빼어난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사실인데, 데뷔한 뒤 2-3개의 음반이 보통 가장 훌륭하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고 이미 최정상에 올라선 뒤에, 데뷔한지 10년도 지난 후에 이런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진정코 감탄스럽다. drive, nightswimming 등이 주는 아름다움은 밀려오는 그런지의 파도에 전혀 흔들림 없이 알이엠 스스로 가진 요소들로부터 끌어낸 것이기에 더더욱.
7. wu-tang clan /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 힙합 음악과 아름다움의 상관관계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반적으로 힙합음악과 아름다움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에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2pac과 Notorious BIG라는 걸출한 스타들마저도 어쩔 수 없는 힙합-랩 음악의 스스로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이 기념비적인 음반은 암울한 피아노 루프에 실린 격렬한 랩과 라임으로 '랩 음악도 아름다울 수 있다' 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Tearz 같은 걸 듣고 있노라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비장하기까지 하다. 힙합이 록음악의 영역에 침투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빼어난 데뷔앨범.
8. blur / parklife
- 정말이지 90년대 중반 브릿팝의 폭발이 없었더라면 90년대의 록음악은 별 볼일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다른 뛰어난 밴드들의 출현을 가능케 했던 하나의 시발점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지만 하나하나의 곡수준의 뛰어남 및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로 볼때 이 음반은 실로 감탄스러운 '작품'이다. 록음악-팝음악의 경계에서 쉬이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랑스런 영국음악의 전통을 거의 모조리 끌어모아 하나의 세련된 사운드로 빚어낸 그 능력은 블러가 현재 언론이나 다른 밴드들에 의해 얼마나 씹히고 있건간에 관계없이 훌륭한 것임에 틀림없다.
9. chemical brothers / dig your own hole
- 훌륭한 데뷔앨범인 exit planet dust 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최근작 surrender보다도 이 음반을 꼽은 이유는, 하드록+전자비트 라는 테크노 음악 최고의 결정체를 선보인 그 최초의 격렬한 흥분 때문이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그 하드록적인 질감과 댄서블한 리듬, 컷앤페이스트를 최대한 활용한 음반 전체의 풍성함은 정말로 일렉트로니카의 록음악 정복에 있어서 하나의 쾌거였음에 틀림없다. 아, 그리고 최고의 싸이키델리아를 선보이는 그 마지막곡 the private psychedelic reel의 놀라운 환각도.
10. portishead / dummy
- 이 음반의 유일한 결점이라면, 비오는 어두운 오후,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 음반을 듣고 있자면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사실 정도? 거의 동시에 메인트스림을 휘어잡은 소위 Trip-hop이라고 불리우는 조류 중에서도, 동 시에 등장한 massive attack이나 tricky를 젖히고 최고의 밴드로 떠올랐다는 사실 하며, 음악을 담당하는 남자멤버 한둘+천사표 여성 보컬+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디 라는 트립합 공식(?)을 세우는 공헌까지. mysterious, sour times, glory box, roads같은 수작들이 그득한, 슬프고 아름다운 음반.
11. pulp / different class
- 사실, 펄프의 moderated 버전인 리앨토의 국내성공만 봐도,
펄프가 사람의 감성을 얼마나 자극하는 음악을 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도도하고 화려하며 극적인 사운드의 아름다움에 유일하게 흠이라고
할만한 것은 섹스에 대한 노골적인 집착(거의 편집증에 가까운)을
드러내는 가사 정도. 앨범 전체에 빠지는 곡 하나 없는 유려한 송라이팅에
정말 치밀히도 안배된 편곡.
12. pearl jam / ten
- 펄잼이 받는 평가는 얼마간 부당한 점이 없지 않다.
등장한 시기의 비슷함이나 성공의 규모로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nevermind보다 몇달 늦게 등장했다는 사실 때문에 펄잼의 이 훌륭한 데뷔앨범이
받는 평가는 항상 너바나의 그늘에 가려진 no.2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비슷한 듯 왜곡된 평가를 받는 것과는 달리,
펄잼의 사운드는 너바나의 펑크-메탈적 요소가 강한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 음반이 청자에게 주는 느낌. 절제되면서도 주술적이며,
신비롭고 환각적인, 그리고 어느 순간 격렬하게 터져나오는 화려함까지.
그것은 펄잼 자신들조차 단 한번밖에 만들 수 없었던 그런 것이었다.
진정코, 이 음반은 nevermind보다 한수 위다.
13. ride / nowhere
- 이쪽 계열의 최고 작품은 흔히들 마이블러디발렌타인의 Loveless라고들 하지만,
진정코 드림팝, 그 단어가 가지는 원래의 의미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이 음반이 아닐까 한다. 격렬한 기타가 비장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뒤를 받치는 가운데
맑고 갸녀린 보컬과 힘찬 드럼, 이따금씩 끼어드는 현악의 어우러짐은
짜임새있는, 응집된 능력의 귀결이다. paralysed, vapour trail이 주는
아름다움에 한점 부끄럼이 없는 다른 곡들의 막강함은
이 음반의 손을 들어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14. rufus wainwright / rufus wainwright
- 이 음반은 매우 귀중하며, 또한 매우 귀중하지 않기도 하다.
매우 귀중한 이유는 이 음반이 시류라고 불리우는 그 어떤 것들과도
완벽히 동떨어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는 점이며,
또한 그 이유로 시류라고 불리우는 것들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기 때문에
귀중하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코 아름다움 이라는 것만 따지고 든다면,
이 오페라-재즈 터치의 순수한 팝송들은 그 어떤 음반들의 그것들보다도 아름답다.
이 차가운 혼돈의 시대에 홀로 서있는 순수의 가치.
15. alice in chains / dirt
- 작곡의 훌륭함은 둘째로 치고, 이렇게 사악하게,
이렇게 주술적으로 가슴에 파고들어오는 목소리는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싸이키델릭+메탈이라는 강력한 사운드에 얹혀서 들리는
그 고통의 목소리는 진실로 섬뜩한 것이며
사운드가든이라는 '지적인' 동반자에 비교해 볼때,
감정으로 바로 육박하는 '음악'자체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16. radiohead / the bends
- 이 음반은, 아직 다른 어떤 조류로부터의 영향이 조금씩 엿보인다는 것만
빼놓고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록레코드다. 앨범 전체적으로 street spirit같은
영가나 fake plastic trees같은 슬로우템포, the bends나 just 같은
강한 록 넘버에 이르기까지 약간 불안한 구성을 띠고 있으나
그것을 산만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느낌으로 엮어가는 것은
라디오헤드 특유의 '정서'이며, 오히려 그 불안한 요소들이,
완벽하게 손질된 OK Computer 에 비해 더 강력하고 젊고 폭발적인 흥분을
가져오는 것이다. the bends 의 간주에서의 상승작용은 사람의 기를 질리게 하며,
Street Spirit과 High and Dry의 독창적인 감성은
이 음반의 손을 들어주기에 주저함이 없게 한다.
17. nirvana / nevermind
- 물론, 이것은 언더그라운드의 오버그라운드에 대한 승리이며,
결과적으로 여타 다른 언더 밴드들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려
록의 판도를 뒤바꾼 혁신적인 음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음악적으로 그런 결과들을 필연적으로
가져올만한 어떤 '위대함'이었느냐에 대한 의문은 어쩔 수 없이 들고야 만다.
물론 폄하할 생각은 없다. 음반 내내 들려오는 시대의 젊음의 목소리들,
지저분한 기타톤에 펑크의 에너지를 얹은, 그것들을 대변하기에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음반이었음에 틀림없다.
18. smashing pumpkins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 스매슁 펌킨스의 가장 훌륭한 작품에 관한 논란은
이 앨범과 Siamese Dream으로 나누어지는데, 아직 시애틀 그런지의 모양새를
벗어나지 못한 전작에 비해 이 음반은 1979, Tonight Tonight, Zero 등을 통해
그런지 밴드의 모습으로부터 스스로를 탈피시켜 빼어난 록 밴드로
스스로를 진화시킨 진정한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장에 압축시켰더라면 이 음반의 순위는 exponentially 올라 갔겠지만.
19. beck / odelay
- 천재이자 거장이자 20세기의 마지막 총아로 불리우는 근거는
바로 이 음반에 담겨져 있다. 메이저에서의 결과물을 단 두장밖에
내놓지 않고도 이 기묘한 청년은 컷앤페이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선배들의 업적을 자기의 것으로 고스란히 담아낸 이 역작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벡만의 독자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담아내고 있다.
Devil's haircut, where it's at, jack's ass 등등등.
아직 벡이 자신의 음악적 경력의 정점에 서있지 않음은 분명해 보이며,
동시대에 끼친 영향면에서도 너바나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특함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더더욱 벡의 앞으로의 발걸음이 주목된다.
20. prodigy / fat of the land
- 이 음반이야말로 케미컬 브러더스가 발견한 금광의 문을 활짝 젖히고
들어가 금광을 손에 넣어버린 뭐 그런 것이다. 하드록+테크노 사운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음반은 케미컬 브로스가 진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무엇이라고 한다면, 정말이지 머리보다 가슴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록앤롤링하고 그루브하고 흥분되는,
록이 맨처음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야성에 호소하는 그런 본능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멀쩡하게 일하고 있던 사람들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듯이 춤을 추게 만드는 Breathe와 Firestarter의 위력은 정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