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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
18
훈장처럼 볼과 턱 경계선에 멍이 들었다. 멍을 반경으로 부어오른 살은 타박상의 충격을 고스란히 들어내고
있다. 자신이 데려가겠다, 아니다를 두고 옥신각신하던 논쟁은 결국 응급실행까지 내내 계속되었다. 이깟 멍
쯤 집에서 응급처치하면 그만이지만 이곳까지 고집을 부려 오게 만든 장정의 사내들이 응급실 구석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경미한 타박상인 은오를 두고.
“지금 똑바로 하고 있는거 맞습니까?”
“네?”
“좀 살살하시죠. 환자 아파하는거 안보여요?”
문혁의 호들갑은 정말이지 소름이 돋았다. 간호사가 약을 바른다고 집게와 약을 바른 거즈와 살이 닿았을 때
살짝 놀라 움츠러들었던게 아파하는걸로 보였나보다. 간호사는 심히 불쾌한 듯 했다.
그들의 병원 타령에 은오는 극구 사양했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의견이 일치되서 진권과 문혁은 은오가 거절하
든 말든 병원까지 끌고 온 것이다. 사실 경미한 부상은 부상이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미미해 보이기 민망했다.
그걸 갖고 소란을 피우니 간호사는 오죽했겠는가. 은오는 딱딱하게 굳은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녀는 죄송하단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멍은 3~4일 정도면 빠질거에요. 오늘은 냉찜질하시고 내일부턴 멍빠질때까지 온찜질하세요. 약발라놨으니
세안은 피해주시고, 내일부터는 정상세안 가능하세요.”
“네.”
구구절절하게 늘여놓는다. 진권과 문혁을 흘끗거리는것도 잊지 않았다. 지나치게 수려한 그들의 용모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 방금 막 뽑아 온 이온 음료수를 건네는 진권과 물에 적신 손수
건을 건네는 문혁, 둘 사이에선 보이지 않는 이상기류가 흐른다. 의견 일치로 그나마 나아졌나 했더니 2라운드
시작이다.
깊은 한숨을 쉬자, 진권이 놓치지 않고 바짝 다가섰다.
“왜? 아퍼? 욱씬욱씬해?”
“어.”
“여기?”
진권이 멍이 든 뺨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은오는 그 손을 뿌리쳤다.
“거기 말고, 네들 덕분에 머리가 욱씬욱씬하다.”
진권의 손을 뿌리치고 은오가 앉아 있던 베드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문혁이,
“화장실 가게?”
제발 둘 다 좀 진정하라고! 대형사고 터졌니?
은오는 여기가 병원이라는것을 명심했기에 심호흡을 하고선 그들에게 말했다. 진권이야 둘째치고 문혁은
덩달아 야단이다. 하나도 모자라 둘이 쌍으로 법석을 떨어 은오는 매우 심기가 좋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하게 속부터 차오르는 열로 마침 목도 마르고 해서 진권이 건넨 음료수를 받아들어 경쾌하게 입구
를 따서 마시자 진권은 문혁을 보며 히죽였다. 문혁은 분해 하더니 쌈박질을 벌일 기세다. 은오는 유치해서
못봐주겠다며 혀를 찼다.
“여기까지 와서 자꾸 이럴래?”
“뭐, 어쨌다고.”
“우리 아무짓도 안했어. 가만히 있잖아.”
냉큼 우린 아무것도 몰라요- 란 순진한 얼굴로 있으면 다인가, 또 다시 이럴땐 죽이 들어 맞다. 이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들은 혈투를 벌였다. 또한 은오는 원치않게 그런 피 튀기는 싸움을 목격자의 입장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땐 오로지 한가지, 말려야 한다는 전적인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작정 뛰어 들어 그들의 주먹질에 뛰어들었다. 눈을 질끈 감고 사이에 끼어 든 은오의 뺨으로 진권이
강하게 휘둘러진 주먹이 날아왔다. 묵직하고 두꺼운 남자의 주먹은 슬로우모션처럼 날아 와 자신의 무식
한 행동을 반성해야 했지만 이미 멈추기엔 늦은것이다.
퍽! 은오가 나가떨어져 갔을때야 겨우 멈췄다. 경악으로 물든 진권과 문혁은 합의나 상의할 필요도 없이 단박
에 은오에게 붙어 엠블런스며, 119를 외쳐대기 바빴으니까 말이다. 고작 멍 하나 가지고 그 난리를 피웠던,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도 이 난리를 피고 있는 그들. 그들이 다시 싸우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의 몸을 난리며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린 은오다. 그들은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출근하는 여성이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 있기는 하겠지만 흔하지는 않을것이다. 은오는
흔하지 않은 케이스에 자신이 포함된것과 회사사람들의 뒷담화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꺼리를 제공할 대상이 됨
을 받아 들일수 없었다. 누차 말했다싶이 그녀는 쓸데없는 관심의 대상이 되는것을 싫어했다.
수군거리는 간호사들을 피하기 위해 응급실을 나왔다. 그들은 여전히 사나운 눈빛을 교환했지만 은오 때문에
멱살잡이까지 가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아스팔트 바닥에 찢어진 스타킹을 벗어던진터라 바람은 매섭게 다리
사이를 지나갔다. 오한으로 가볍게 어깨를 떨자 이번에는 문혁이 상의를 벗어 은오의 어깨에 걸친다.
“서문혁. 개수작 하지마!!”
“…”
“어디까지 쫓아 올 작정이냐?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야겠어!!”
“권아.”
흥분한 진권은 욱한 나머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은오는 그의 상의를 거절할 타이밍을 놓친것 뿐이
다. 그런데 이미 눈이 먼 진권이 멋대로 그들 관계를 확대 해석하고 말았다. 푸드덕 날뛰며 거친 날갯짓을
하는 그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이대로 가다간 영락없이 폭행죄로 경찰서까지 가는 수순을 차례로 밟아야 할것이다.
“이 새끼 하는 짓 좀 봐. 가관이잖아? 시커먼 속내를 누가 아냐고.”
그는 답답한지 가슴을 쾅쾅 치며 어후! 탄식을 연발했다.
“하. 진짜 못봐주겠네.”
“씨팔, 뭐?!”
진권에 있어선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문혁이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네것도 아니면서.”
“……”
허를 찔린 진권이 입을 다물었다.
“몇 년의 세월동안 네 여자로 만들어 놓지 않고 뭐했어.”
“말이면…단줄 알아?!”
“충분히 파고들 수 있게 틈을 벌여 놓은건 너야. 그 많은 시간동안 대체 뭘했어! 네 여자도 못만들어놓고선.
남이 채가도록 수수방관하는것밖에 더 되겠어?”
“네깟놈이 채가라고 놔둔게 아니란 말이다!!
그건-!!”
은오가 그들의 싸움을 말리려다 상처까지 입었다는 사실은 이제 저만치 잊고서 고성이 오갔다. 은오는 몰상식한
작태를 참다 못해 소리를 질렀다.
“작작하지 못하겠니?”
“-!!”
은오의 노성에 깜짝 놀란 진권이 일순 모든 동작을 멈췄다. 더불어 문혁도 진정을 찾아가는 듯 했다. 다 큰
사내들이 한 여자에게 쩔쩔맸다. 서문혁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쨌거나 이 소동의 장본인이기도 하니까.
“내 눈앞에서 눈꼴 사나운짓좀 그만해. 최소한 싸우려거든 내 눈 앞에서 치고박지말란 말이야!”
“…”
“……”
“당장 내일부터 출근을 어떻게 해? 사람을 개망신을 줘도 유분수지. 나는 네들 싸움질 때문에 몇일동안 얼굴
팔리게 생겼어. 이렇게 출근하면 날 보고 좋아라 할 사람 많겠다! 내 얼굴 꼴 보고도 또 싸움질할 생각이 드니?
입이 있으면 말해 봐!”
“아- 그게. 저 새끼가… 자꾸 사람 속을 뒤집어…”
“조진권. 네 놈 때문이잖아.”
“시끄러! 잘잘못을 따지자는게 아냐.”
서로의 잘못으로 미루는것인가. 횡설수설하던 진권이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반격에 나섰다.
“류은오, 이건 전부 너때문이잖아. 넌 어째서 어중간한 반응인거야? 저 자식이 뭐라고! 넌 왜 싫다
말을 안하는건데? 너 은근히 바라고 있는거 아냐?”
“조진권, 너!!!”
진권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이성과 판단을 동시에 잃은 듯 했다. 항상 통하던 은오의 제압도 먹히지 않았다.
이래서야 상대할 수가 없었다. 어떤말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똑같은 반응이랄게 불 보듯 뻔했다.
“아니면 내가 불안한게 재밌어?”
“…”
“나 빡도는거 보고 싶은게 아니고서야…”
말을 이을수 없었다. 은오가 진권의 멱살을 잡고 끌어 당겼다. 방심한 채였기 때문에 그녀의 힘에 쉽게 끌려
온 진권의 입술에 입술을 묻었다. 스륵 열린 입술 사이를 문혁이 생라이브로 지켜보고 있다는것도 잊은채
진권은 열중했다. 틈이니 뭐니 허튼소리를 하게 만들어 놓지 않기 위해 확실한 도장을 찍는 것이다.
다만
문혁이 받아들여주느냐가 문제였다. 팔짱을 끼고 거드름을 피우던 그의 자세가 틀어졌다. 왠만한 환경에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문혁은 그녀의 행동에 자세심을 잃는 듯 했다. 그의 그녀는 항상 문혁의 내면에 숨
겨진 질투심을 유발했다. 문혁은 스스로 이런 감정이 있으리라고는 예전에 미처 체험해보지 못한 것들의 감정이었다.
“됐지?”
홍조를 뛰운 그에게,
“왜? 더 필요하니?”
갑작스런 침입에 첫키스처럼 능숙하지 못했던 그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달려 들었다. 그녀의 가는 허리를 휘어
잡아 끌어 당겼고 머릿칼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단단하고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문혁은 그들의 생생한 키스신
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입술을 빨아 당기다 굴속으로 끌어당겨 샅샅히 핥았다. 사탕이라도 되는것처럼
혀를 녹이다가 뜨거운 천장을 간질이자, 그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정열적으로 달라붙었다.
확실하게 진권은 말보다는 몸, 행동으로 이해가 되는 타입이었다. 입술이 떨어지고는 매우 흡족해하는 진권의
눈이 보였다. 그리고, 냉정을 넘어 깊게 가라앉은 검정호수같은 문혁의 눈이 그녀를 쫓았다.
“서문혁.”
“…”
키스가 끝나고 그녀의 입에서 바로 문혁의 이름이 불러지자 진권은 기분이 나쁜 듯했다. 은오는 진권의 머리
통을 감싸 안았다. 상처받기 쉬운 녀석. 항상 강한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너무 여렸다. 신경질적이지만 우유부
단하고 제멋대로인 자신을 몇 년동안이나 곁에 있어준건 진권이었다. 그의 마음을 받아들임을 떠나, 항상 옆에
있었던건 진권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진권을 생략해도 과거의 서문혁은… 과연, 그때에 어떠했었는가. 진권
이 없었다한들 류은오에게 서문혁은 반입금지종이다. 그는 현재진행형의 악연이다.
“서문혁. 우린 단단하진 않지만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우린 가벼운 사이가 아냐. 우리에겐 네가 모르는 시간,
추억이 있어.”
“…”
끌어안은 머리통이 점점 뜨거워졌다. 구부정한 자세로 숙여 있는 그의 얼굴은 아마 웃는 얼굴이거나,
문혁을 향해 쌤통이라며 비웃는 얼굴이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마치 이겼다는 듯이.
“시간이니 추억이니, 유치하다 할 너한텐 상관없는 일일테지만.”
문혁은 왜 단언하는건지 알수 없었다. 시간? 추억? 그녀는 자신이 그런데에 관심을 두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정작 자신은 반대로 궁금한것 투성이었다. 두터운 전공서적을 끼고 캠퍼스, 도서관등을 거닐었을 모습, 학사모
를 쓰고 몇 년도 졸업식이란 현수막 앞에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었을 그녀의 모습, 열의에 넘쳤을 신입사원
때의 모습, 입학식의 설렘, 시험때의 고뇌, 첫 승진때의 기쁨등등의 그녀의 세월들이 궁금했으나 이러한 문혁
의 마음을 알수 없는 그녀는 정작 모든 것을 부인했다.
“어차피 너에겐 가지 않아. 무모한 네 오기와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라.”
은오는, 진권의 손을 들어줬다. 문혁은 심장으로 콕콕 쑤시는 기분이 어떤건지 대충 알수 있게 되었다. 바늘로
쑤시는 듯한 고통으로 가슴이 찌릿했다.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문혁의 검은 호수같은 눈이 점점 알수 없는
짙은빛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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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유! 겨우 주말을 면했군요! 늦어도 주말엔 맞춘다는 약속으로 분량이 최끔 짧네요.
오늘은 삘이 충만하건만.(사실일까…)
소녀(...)는 댓글 하나에 행복. 평일날 보고 싶다면
그대들이여, 눈팅은 안돼안돼
어머!!!!!!이럴수가!!아 이거 점점 애매모호해져요...
이런, 날카로우신. 딱히 기준이 없다는. 왜 이러는지, 어떻게 될지 계속 지켜봐 주세요.
아니이건!!너무재밌잖아우헝헝!!작가님 진짜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