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가? 불사(佛事)인가? - 혜능대사의 방앗간에서 배우는 응무소주(應無所住)와 정토장엄
극락사는 최근 매우 바쁩니다. 절 일이 아니라 베이커리카페 일로 매우 바쁩니다. 심지어 법회를 휴강하기까지 하니, 겉으로 보기엔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닐까요?
노스님을 모시고 공부할 때 불교에는 5대 수행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간경(看經), 주력(呪力), 염불(念佛), 참선(參禪),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사(佛事) 수행입니다.
노스님께서는 마지막 불사 수행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불사는 단순히 절을 짓는 건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과 연결된 모든 이로운 일이 곧 불사 수행이니라."
베이커리카페에서 일하는 것은 노동일까요, 불사일까요?
이는 일의 겉모습에 따라 갈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마주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정의되는 것입니다. 노스님의 가르침처럼 베이커리카페의 일을 '부처님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주한다면 이는 곧 살아있는 불사가 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법당에서 향을 사르고 예불을 올린다 한들, 부처님 일을 한다는 깨어있는 자각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피로한 노동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불사의 정의가 겉으로 드러난 대상 경계(六境)가 아니라 내면의 마음가짐에 맞춰질 때, 비로소 수행자의 온 삶이 불사 수행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물 긷고 땔나무 나르는 것이 신통이요 묘한 작용이다." 방거사(龐居士)
보살의 자량(資糧)과 저잣거리에서 마주한 한 구절
불사 수행의 또 다른 명칭은 '보살장엄(菩薩莊嚴)'입니다.
보살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성불의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중생을 온전히 돕고자 한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량(資糧)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더라도, 내게 한 푼의 돈도 없다면 그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보살은 물질과 영향력 같은 '세간의 자량'과 자비와 지혜 같은 '출세간의 자량'을 두루 축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장엄이며, 불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는 국토장엄(國土莊嚴)이자 정토장엄(淨土莊嚴)입니다.
『금강경(金剛經)』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서는 이러한 불사 수행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이 구절은 육조혜능(六祖慧能) 대사의 출가 인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홀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나무를 팔아 살아가던 가난한 청년 혜능은,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울려 퍼지는 『금강경』 독경 소리를 들었습니다.
경쾌하고 맑은 목탁 소리에 이끌려 귀를 기울이던 중, 장엄정토분의 바로 이 구절,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듣는 찰나 온몸에 깊은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심오한 교학의 뜻은 다 알지 못했지만 이 가르침에 가슴이 사무쳤고, 참된 배움을 얻고자 어머니를 공양할 은혜를 마련한 뒤 스승을 찾아 출가하는 일대 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서슬 퍼런 첫 문답, 불성에는 남과 북이 없다
청년 혜능은 스승을 찾아 천 리 먼 길을 걸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선종의 종통을 잇고 계시던 오조 홍인(弘忍) 대사를 마주했지만, 첫 만남부터 배움의 길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첫 대면에서 오간 서슬 퍼런 문답입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남쪽 영남에서 왔습니다."
"남쪽의 미개한 오랑캐가 어떻게 감히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냐?"
"사람에게는 남쪽과 북쪽이 있을지 몰라도, 불성(佛性)에는 남과 북이 없습니다."
이토록 당돌하면서도 막힘없는 답변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머무름 없이 마음을 쓰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청정한 불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어떤 편견이나 고집에도 얽매이지 않고 때에 맞게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됩니다.
만약 '나는 오랑캐 출신'이라는 자격지심이나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라는 아집에 머무르는 마음으로 스승을 대했다면 어땠을까요? 스승의 날카로운 시험 앞에서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였거나, 화를 벌컥 내며 옹졸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가 존경하는 선종의 큰 기둥, 육조 혜능 대사의 이 귀한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념과 후념의 청정, 온 일상이 부처님의 일이다
"전념(前念)이 청정하고 후념(後念)이 청정하면 곧 보살이다."
육조 혜능 대사는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를 남긴 무주상보시의 달인입니다. 대사는 무주(無住)를 일상에서 훈련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전념과 후념의 청정을 지키는 방편을 제안합니다.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데 필요한 마음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앞 찰나와 뒤 찰나의 티 없는 청정함일 뿐입니다.
"보살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해야 하니, 물질(색)에 머물지 말고, 소리·냄새·맛·감촉·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해야 한다.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 『금강경(金剛經)』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불사의 핵심은 법다운 마음가짐인 무주상(無住相)입니다. 이러한 청정심으로 밥을 먹는다면 밥 먹는 일 자체가 불사가 됩니다. 책을 읽어도, 걸음을 걸어도, 절을 해도, 법문을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불의 길을 향하고 있는 모든 일상은 곧 부처님의 일인 불사이며, 보살이 정토를 장엄해 나가는 거룩한 과정이 됩니다.
떡방앗간과 선방의 경계를 허문 깨달음
"마음이 청정하면 그에 따라 불국토가 청정해진다." 『유마경(維摩經)』 「불국품(佛國品)」
육조 대사는 스승과의 첫 만남 이후에도 대중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선배 스님들 역시 그를 글자 하나 모르는 시골뜨기 오랑캐라며 얕보았습니다. 그 결과 진리를 배우러 온 그에게 경전 공부나 참선 대신 방앗간의 거친 허드렛일만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대사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응무소주'의 법다운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승 홍인 대사는 묵묵히 방아를 찧는 제자의 청정한 마음이 무르익어 감을 관찰한 뒤, 한밤중에 그를 몰래 방으로 불렀습니다. 스승은 가사를 둘러 불빛을 가리고 『금강경』의 가르침을 다시 전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장엄정토분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이르렀을 때, 혜능 대사는 마침내 확철대오(確徹大悟)합니다. 처음 수행의 인연을 맺어주었던 경전 구절이 깨달음의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대사는 당시의 대오를 이렇게 오도송(悟道頌)으로 터뜨렸습니다.
"어찌 내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한 줄 알았겠습니까!
어찌 내 자성이 본래 나고 죽음이 없는 줄 알았겠습니까!
어찌 내 자성이 본래 스스로 다 갖추어져 있는 줄 알았겠습니까!
어찌 내 자성이 본래 흔들림이 없는 줄 알았겠습니까!
어찌 내 자성이 능히 온갖 만법을 다 만들어내는 줄 알았겠습니까!"
혜능 대사는 분별과 집착을 벗어던진 무분별의 깨침을 얻었기에, 결코 요동치 않는 부동(不動)의 불성을 온전히 마주한 것입니다.
"평상시의 마음이 곧 도(道)이다." 『조주록(趙州錄)』
이처럼 전념과 후념의 청정 속에서 살아갔기에, 혜능 대사에게는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는 일과 선방에서 좌선하는 일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 없었습니다.
지금 극락사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다시 묻습니다. 이것이 과연 주객전도입니까?
머무름 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반죽을 치대고 빵을 구워 중생을 맞이한다면, 이 카페가 곧 거룩한 법당이요 살아 숨 쉬는 정토장엄입니다. 만사(萬事)가 불사(佛事)입니다.
첫댓글 떡방아간 혜능붓다님께서 오신듯요_((()))_. 일이 수행. 수행이 일_()()()_. 베이커리 카페의 모든 붓다님들께. 합장공경 올립니다_()()()_ 감사하고 사랑해요^^~~♡
불사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봉사합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전념이 청정하고 후념이 청정하면 그가 곧 보살이다'. '만사가 불사다'. 눈앞의 경험에 전념하고, 기꺼이 즐거운 일상이 저절로 불사가 되도록 스스로를 닦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만사가 불사입니다.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스님_()()()_
온 일상이 부처님의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_()_
응무소주 이생기심
만사가 불사입니다
_((♡))_
머무름 없는 청정한 마음.
오늘의 글로 마음에 담아 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요즘 보살의 마음이라 하기엔 부끄러웠는데요 다시 부처님말씀 마음에 담아 보살의 마음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 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_()_
일상이 부처님의 일입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