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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임윤찬은 이 소녀다, ‘피케팅’ 예고된 16살 천재
카드 발행 일시2024.08.28
에디터
박건
김호정
‘뉴스 페어링’ 팟캐스트
관심
이제는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 사람을 만나요.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이라 제가 너무 많이 배우거든요.(JTBC ‘임윤찬의 고전적 하루’ 中에서)
온종일 혼자 피아노 연습만 할 것 같은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밝힌 영감의 원천은 뜻밖에도 ‘사람’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예원학교, 예술의전당 영재 아카데미에서 만나,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각별하다고 하는데요. 임윤찬과 그에게 영감을 준 클래식 영재들이 지금 세계 클래식계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임윤찬과의 인터뷰 뒷이야기를 담은 더중앙플러스 ‘임윤찬 비하인드’를 연재한 김호정 기자는 2000~2010년대에 태어난 한국의 클래식 영재들을 ‘신인류’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음악 영재들이 출현했다는 뜻인데요. 2004년생인 임윤찬도 그중 한 명입니다. 선배들의 연주를 흉내 내기보단 자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독창적인 소리를 찾아 나서는 게 ‘K클래식 신인류’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최근 클래식계에 등장한 한국의 음악 영재들은 과거의 영재들과 또 어떤 점이 다를까요? 친구들과 함께 음악에 ‘과몰입’하며 자란 임윤찬의 학창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리고 김호정 기자가 픽한, 공연 티케팅이 치열해지기 전에 꼭 보러 가야 할 천재 연주자는 누구인지 중앙일보 팟캐스트 ‘뉴스 페어링’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지난 5월 김호정 기자와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경기도 고양시 JTBC 스튜디오에서 '임윤찬의 고전적 하루' 녹화를 하고 있다. 이날 임윤찬은 "주변의 음악하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오디오 재생 버튼(▶) 누르고 방송을 들어주세요.
📍임윤찬에게 영감을 주는 친구들(2:13)
-고독한 연주자? 임윤찬 뜻밖 대답
-클래식 영재들이 만나서 노는 법
-중학교 3학년 임윤찬 영상에 ‘성지순례’ 가는 이유
📍‘K클래식 신인류’의 탄생(7:01)
-한국 클래식 영재 키운 유튜브
-클래식 신인류, ‘이것’이 다르다
-“피케팅 곧입니다” 김호정 기자가 픽한 연주자
※ 아래 텍스트는 인터뷰 전문 스크립트입니다.
🎤진행 : 박건 기자
🎤답변 : 김호정 기자
▷박건〉 음악에 미친 영재들이 클래식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 태어난 천재 음악가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데요. 오늘 ‘뉴스 페어링’에서는 클래식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음악 영재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건 기자입니다. 오늘은 더중앙플러스에서 ‘더 클래식’과 ‘임윤찬 비하인드’를 연재한 김호정 기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호정〉 안녕하세요. 김호정입니다.
▷박건〉 최근에 임윤찬 피아니스트와의 인터뷰 ‘고전적 하루’의 뒷이야기를 다룬 ‘임윤찬 비하인드’도 완결을 했는데요. 연재 마친 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김호정〉 제가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함께 JTBC에서 ‘고전적 하루’를 녹화하고 방송한 다음에요. 사실은 방송에 나가지 못한 분량이 너무나 많았어요. 그래서 그걸 우리 더중플 독자들하고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하인드를 시작했는데요. 특히 중요했던 건 방송에서 편집됐던 내용의 대부분이 음악적인 이야기들이었어요. 대중을 상대로 한 방송에 나가기는 너무 어렵다거나 너무 깊숙이 들어간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정말 음악 좋아하는 사람끼리 더 깊이 들어가는 시리즈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비하인드를 연재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돌’ ‘수퍼스타’로서의 임윤찬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임윤찬으로 시작해서 우리가 더 음악을 듣고, 취향을 좀 더 넓혀가고, 음악에서 많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시리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5회를 마쳤습니다. 음악 기자를 하면서 이런 시도는 처음이었다고 생각해요. 대놓고 ‘음악 팬들하고 음악 이야기만 하자’ 이런 시리즈였기 때문에 굉장히 뿌듯하고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건〉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기사를 읽었다고 하던가요?
▶김호정〉 이전에 ‘더 클래식’ 기사는 봤었어요. 근데 ‘임윤찬 비하인드’는 제가 아직 보내주지 않았거든요. 이제 보내줘야겠죠.
▷박건〉 하긴 피아노 치기에도 바쁜데요.
▶김호정〉 맞아요. 맞습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JTBC '임윤찬의 고전적 하루' 녹화 중 연주를 하고 있다. 임윤찬은 "10년 뒤 은퇴를 하게 되면 같이 음악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며 또래 음악가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성룡 기자
▷박건〉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흥미롭다고 느끼셨던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김호정〉 저도 반성했던 부분인데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보고, 몇 번 만나면서 (그가) 전심전력을 다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좀 고통스럽게 음악을 하는 부류라고 생각했었어요. 삶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음악에 바치고, 시간, 집중력 같은 것들을 거의 음악에만 바치고 나머지에는 거의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굉장히 행복해하고, 그 순간들을 즐기고,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행복함을 많이 느끼는 그런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가 다 끝나고 방송이 나가기 전에 우리가 행복에 초점을 맞춰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임윤찬 피아니스트한테 “지금까지는 뭘 하고 싶고, 어떻게 열심히 하고 있고,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얘기를 했으니까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한지 가장 기쁜지에 대해서 써주세요”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주위 사람들, 특히 음악 하는 친구들하고 어울릴 때 너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고요. 제가 “10년 뒤에 뭐 할 것 같아요” 물었더니 “은퇴했을 것 같은데요”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피아노 쉬면서 뭐 할 거예요?” 물었더니 “친구들 만나야죠”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박건〉 친구들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던가요?
▶김호정〉 친구들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고, 음악적인 영감을 주고받는 커뮤니티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굉장히 인상적인 인터뷰이자 방송이었죠.
▷박건〉 구체적으로 어떤 친구들을 주로 언급하던가요?
▶김호정〉 방송에도 나왔지만 자기보다 두 살 더 어린 첼리스트 한재민군하고 아주 가깝게 지내고요.
▷박건〉 (한재민 첼리스트는) 유퀴즈에도 나왔었죠.
▶김호정〉 맞아요. 한재민 첼리스트랑 같이 음악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도 많이 공유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형님 피아니스트인 김도현 피아니스트하고도 음악적인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고요. 최근 무슨 책 읽는지 책도 추천해 주고요. 그런 풀(pool)을 형성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2006년생 한재민 첼리스트는 2021년 만 15세의 나이로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평소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절친한 사이다. 권혁재 기자
▷박건〉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예원학교를 졸업했잖아요. 그 친구들이랑 (학생 때) 이미 앙상블을 꾸려서 유튜브 채널에 연주 영상도 올리고 했더라고요. 재미있었던 게 거기에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중학교 3학년 때 쇼팽 에튀드(연습곡) 연주하는 영상이 있는 거예요.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얼마 전에 쇼팽 에튀드 전곡 연주해서 앨범을 내기도 했었잖아요.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는 “성지순례 하러 왔습니다” 이런 댓글을 달면서 즐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학교 다니면서 공부했던 친구들과 교류를 쭉 이어가고 있는 건가요?
▶김호정〉 맞아요. 특히 예술의전당 음악 영재 아카데미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 예원학교 친구들하고도 다 연관이 될 텐데 그 친구들하고 음악도 많이 듣고, 음악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연주도 많이 했던 걸 볼 수 있고요.
▷박건〉 그렇게 음악밖에 모르는 영재들은 만나면 서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도 궁금한데요. 또 나이가 아무래도 아직은 한창 놀기 좋아할 나이잖아요. 이런 영재들은 만나면 뭐 하고 노는지 이런 것도 궁금하더라고요.
▶김호정〉 저도 그 장면을 상상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임윤찬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 만났을 때 많이 물어봤어요. “도대체 어떤 그룹입니까?” 물어봤더니 중학교 1~2학년 때 만난 친구들인데 영재원에서는 다 힙하게 후드티를 입고 다닌대요. 어린 친구들이잖아요. 그리고 귀에 뭐 하나씩 꽂고 그냥 앉아 있대요. 그러고서는 “너 이거 들어봤어?” 하면서 1900년대 초반 피아니스트들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연주 같은 걸 서로 귀에 꽂아주고, 듣고, 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 놀았다는 거예요.
알려지지 않았던 연주자의 음악을 찾아 듣는 그런 과몰입하는 마니아 그룹, 연주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지만 듣는 걸 너무 좋아하는 그룹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임윤찬 피아니스트한테도 물어보니까 “친구들하고 어떻게 음악을 들었어요?” 물어보니까 “누워서 들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일상적으로 그런 음악을 찾아서 듣고, 감동하는 것들이 정말 당연했던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나온 친구들인 것 같아요.
▷박건〉 어찌 보면 어린 나이에 진로가 정해진 상황이고, 음악이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스트레스는 전혀 없는 모양이네요.
▶김호정〉 약간 신인류인 것 같아요. 2000년대생 연주자들은 콩쿠르 나가서 이긴다거나 좋은 학교에 간다거나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크는 것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냥 음악이 너무 좋아서 자기 시간을 온전히 다 바치고 주변에도 음악 하는 친구들밖에 없고, 음악에 도움 되는 영감 얘기밖에 안 하는 그런 세대인 것 같아요.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중학교 3학년 때 예원학교 친구들과 결성한 프릭스 앙상블 연주회에서 쇼팽 에튀드(연습곡)를 연주하고 있다. 2024년 임윤찬이 첫 스튜디오 앨범으로 쇼팽 에튀드를 선보이면서 이 연주회는 임윤찬 팬들 사이에서 '성지순례' 영상이 됐다. 사진 FRIX Ensemble 유튜브 캡처
▷박건〉 우리가 예전에 봤던 음악 영재들과 최근에 나타난 영재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특징이 있을까요?
▶김호정〉 일단 정보의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예전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딱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 선생님이 같이하자고 하는 곡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거든요. 음악회에 가서 다른 곡을 들어볼 수 있겠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잖아요. 근데 지금은 저는 유튜브의 힘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세계 각국에서 녹음 기술이 없었을 때 피아노 롤로 녹음된 그런 음원까지 다 찾거든요.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하는 쇼팽, 부소니가 연주하는 바흐, 쇼팽 이런 것까지 듣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음악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무한해지는 것 같거든요. 예전에는 테크닉이 뛰어나고, 잘 배웠고, 연습 많이 했고, 시스템이 좋은 곳에서 배웠다는 게 음악 영재들의 특징이었다면요. 지금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어디서 저런 아이디어가 나왔지?’ 이런 놀라움을 주는 영재가 많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건〉 클래식 자체가 역사가 엄청 깊은 장르잖아요. 어린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음악이 앞선 세대 선배들의 음악과는 어떤 식으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김호정〉 말씀드렸듯이 음악에 과몰입했다는 게 드러나는 연주자들이 많거든요. ‘더 클래식’ 연재할 때도 그런 영재들에 대해서 한 번 썼었는데 정말 놀라운 연주자들이 많았어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2008년생, 첼리스트 김정아 2011년생. 김정아는 현대곡을 연주한 적 있는데 그건 2016년쯤 나온 곡이라 레퍼런스가 거의 없거든요. 누구를 따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어린아이가 자기가 보는 대로 그 곡을 연주해서 이제까지 나왔던 연주랑 다르면서도 충격적인 연주를 한 거예요.
어른을 흉내 내서 어른스럽다는 게 아니라 자기의 세계와 색채가 있는 2000년대생 연주자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어른들이 어떻게 연주했는지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자기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음악가들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아요. 또 요새 트렌드가 그런 음악가들을 반겨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 같아요.
2011년생 김정아 첼리스트는 2010년대에 작곡된 현대곡에서 자신만의 해석이 담긴 연주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사진 김정아
▷박건〉 그럼 클래식계의 기성세대는 어린 클래식 연주자들의 도전을 어떻게 바라보는 편인가요?
▶김호정〉 제가 이번에 ‘임윤찬 비하인드’에 쓰려다가 못 썼는데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영상을 제출했는데 연락이 안 와서 떨어진 줄 알았다고 그랬어요. 근데 그게 누락이 돼서 다음 날 연락이 왔다는 얘기를 했잖아요. 그러면서 본인은 자기 연주가 워낙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이번에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같은 곡을 친 걸 보면 “‘전람회의 그림’을 저렇게 친다고?” 쇼킹한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틀 안에서 평가하려고 한다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거죠. 근데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직관적으로 ‘전람회의 그림’을 아예 몰랐던 사람조차도 굉장히 강렬한 상상을 하게 하는 연주잖아요. 기성세대에서는 분명히 ‘저거 저렇게 연주하는 거 아닌데’ 생각이 분명히 있을 수 있어요. 임윤찬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제가 말씀드린 새로운 연주자들에 대해서도 이견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건〉 올해 초에 연재하셨던 더 클래식에서도 어린 음악가들의 활약을 주목하신 적이 있잖아요. 저는 그 기사에서 2006년생 이하느리 작곡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더라고요.
▶김호정〉 이하느리 작곡가가 올해 열린 제50회 중앙음악콩쿠르 1위 출신입니다. 지금 음악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어린 작곡가예요. 작곡가이기 때문에 엄청난 콩쿠르에 나가서 상을 타고, 카네기홀이나 베를린 필에서 데뷔하고 이러지는 않지만요. 이 작곡가 음악을 들으면 ‘이게 뭐지?’ 생각이 들면서 음악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주목하고 있는 아주 젊은 작곡가죠. 지금 18살밖에 안 됐는데요.
그동안 작곡에 대해 우리는 모든 악기를 다 한 번씩 다뤄봐야 하고, 배워야 할 이론도 너무 많고, 지금까지 어떤 사조로 작곡이 이뤄졌는지도 봐야 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자기 생각이 나왔을 때 곡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잖아요. 그래서 지휘와 더불어서 가장 원숙한 장르가 작곡이라고 생각을 해왔었는데 너무 어린 작곡가가 중학생 때부터 신선한 곡들을 막 쓱쓱 써내려가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이건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주 경종을 울린 그런 음악 영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박건〉 전통적으로 작곡은 모든 악기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보니까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작곡과에 한해서는 영재를 안 뽑는다고 돼 있더라고요.
▶김호정〉 보통은 중학교 졸업하고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많이 들어가는데 (이하느리 작곡가는) 검정고시 쳐서 고등학생 나이에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죠. 워낙 지금 세계적으로 젊은 지휘자가 열풍이거든요. 근데 그것보다도 작곡은 좀 더 실질적인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이, 경력이 좀 필요한 장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주 지켜볼 만한 그런 작곡가가 지금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건〉 이하느리 작곡가가 중학교 1학년 때 썼던 습작곡을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콘서트에서 친 적이 있잖아요.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김호정〉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그 곡이 너무 재밌어서 선생님께 갖고 가서 이거 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아니 이런 곡을 갑자기 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고서 악보를 봤대요. 그러고 나서 “그래 쳐라” 이렇게 말했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흥미롭고 재밌게 곡을 쓰는 작곡가인데요.
우리는 당연히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본인하고 얘기해 보면 온종일 앉아서 (곡을) 쓴다는 거예요. 너무 잘 쓰고 싶고, 너무 새로운 걸 쓰고 싶어서 온종일 앉아서 (곡을) 쓰고요.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연주해준 곡이지만 본인은 보니까 좀 마음에 안 들어서 폐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작곡가들이 (곡을) 폐기했다는 건 자기 작품 목록에 안 올리겠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천재형이면서 열정적으로 과몰입하는 또 한 명의 음악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6년생 이하느리 작곡가는 2024년 만 18세 자격 요건을 갖추자마자 중앙음악콩쿠르에서 작곡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사진 이하느리
▷박건〉 이렇게 젊다 못해 어린 음악가들의 활동이 최근에 많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이게 한국 클래식계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인 건가요?
▶김호정〉 이렇게 아주 어린 음악가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죠. 특히 아시아 중심으로 좀 더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유독 많이 배출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 지표를 콩쿠르로 볼 수밖에 없는데 콩쿠르에서 튀어나오는 신인을 봤을 때 한국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거든요. 세계에서도 굉장히 주목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경계하면서 지켜보는 그런 상황입니다.
▷박건〉 그럼 실제로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는 건가요?
▶김호정〉 국제 콩쿠르는 해외에서 열려서 국제 콩쿠르가 아니고 유네스코 산하의 국제 콩쿠르 연맹이 있거든요. 그 연맹에 가입이 된 게 국제 콩쿠르인데요. 최근 그 연맹에서 매년 통계를 내기 시작했어요. 2021년도부터 냈는데 2023년도 통계를 보면 총 58명의 우승자가 국제 콩쿠르에서 나왔는데 그중에 10명이 한국 사람이었던 거예요.
▷박건〉 1등 한 사람 58명 중에서 10명이 한국 국적이었단 거잖아요.
▶김호정〉 맞아요. 어떤 콩쿠르는 3~4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계속 한국인들이 우승하기도 하고요. 한 10년 전쯤에 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등부터 5등까지 전부 올림픽 양궁 수준으로 한국인들이 우승했던 콩쿠르도 있었어요. 또 2022년도에는 70명 중에서 10명이 한국 우승자였거든요. 입상자까지 치면 훨씬 더 많겠죠. 그래서 이제 ‘한국 음악가들 없이는 국제 콩쿠르를 못 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너무 콩쿠르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근 경향을 보면 연주자들이 단순히 콩쿠르만 우승하는 게 아니라 미국 명문 음악대학 교수로 임용되거나 아주 좋은 오케스트라에서 종신 연주자로 수석 임용되거나 이런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체질 자체가 음악가로 바뀐 세대의 음악 영재들이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건〉 이 영재들을 우리가 일찌감치 알아봐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원석인 상태에서 알아봐야 공연도 한번 가보고 노래도 들어보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분들이 유명해지면 공연 티케팅이 굉장히 치열해지기 때문에.
▶김호정〉 ‘피케팅(피 터지게 치열한 티케팅)’이 되죠.
▷박건〉 맞아요. 피 터지는 ‘피케팅’이 되기 마련인데 티케팅이 힘들어지기 전에 우리가 꼭 먼저 알아봐야 할 음악가의 공연을 하나만 꼽아주신다면요?
▶김호정〉 너무 좋은 질문이십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연주를 정말 추천해 드리고 싶은데요. 이 연주자는 (2023년 만 14세 때) 스위스 티보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 주니어 부문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나이가 안 되는 거예요. (하한선에서) 한 살인가 모자랐던 거예요. 그런데 보니까 시니어 부문은 나이 제한이 상한선만 있는 거예요. 29살 이하만 나올 수 있었는데 그럼 여기라도 나가보자 해서 나갔는데 1등을 해버린 거예요.
2008년생 김서현 바이올리니스트는 2023년 스위스 티보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서 시니어 부문에 나가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호정 기자는 김서현의 연주회를 꼭 봐야 할 공연으로 꼽았다. 사진 티보르 바르가
▷박건〉 그러니까 주니어 대회는 나이가 안 돼서 못 나갔는데 시니어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해버린 거잖아요.
▶김호정〉 경험 삼아 나간 건데 1등을 해버린 바이올리니스트거든요. 연주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진심으로 잘하는 어린 사람을 찾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의 인성이나 세계관, 됨됨이 같은 게 음악에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김서현 바이올리니스트는 사람으로서도 완성된 느낌이 들거든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끝까지 신념을 갖고 하는 거예요. 예원학교를 다녔는데 3년 내내 6학기 동안 단 한 번도 (학점) A를 놓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국제 콩쿠르를 나가고 바이올린을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하는데도요.
자기가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음악을 전달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까 인간의 됨됨이 얘기를 한 건데요. 저는 그런 연주를 좋아하는데 그 생각이 바로 서 있고, 지금 하고 싶은 얘기가 많고, 독특하고, 확실한 그런 연주자입니다. 아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 유학을 가게 될 것 같은데 한국에서 많이 못 볼 수도 있고요. 조만간 아주 치열한 티케팅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되시면 꼭 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박건〉 네 잘 들었습니다. 떠오르는 클래식 영재들의 활약을 자세하게 소개해 주신 김호정 기자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호정〉 네 감사합니다.
▷박건〉 중앙일보 팟캐스트 ‘뉴스 페어링’도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음에도 깊이 있고 알찬 이야기 준비해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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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이 쓰고 임윤찬이 쳤다, 청중 혼 빼는 어린 천재들
에디터
박건
관심
중앙일보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3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