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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세계적 영웅이다)
제2절 울산 공업셴터 건설
제3항 박정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과 Gulf Oil의 협조
1962년도초 동복아의 운전중인 정유공장 개수를 보면 일본이 6개 정도, 필리핀이 3개, 대만이 1개가 있을때 한국은 정유공장 하나 없는 빈국이었다. 필리핀은 1인당 국민소득상으로도 230불선이어서
우리보다 3배나 부자였다.
한국은 62년 5개년 사업으로 건설계획을 수립하여 처음으로 정유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선진국인 일본과 필리핀에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때 Gulf Oil이 Kuwait에서 원유개발에 성공하여 신흥 Major Oil이 되어 필리핀과 대만의 정유공장에 합작투자를 한데 이어 원유공급망을 계속 확대하는 정책에 의한 여세로 한국과도 손을 잡은 것이다.
Gulf Oil은 울산정유 공장이 64년 일산 35.000 배럴 규모로 가동한 이래 73년 말에 Oil Shock가 생길때 까지 5배 증가한 175,000 바롈의 정유사업을 하는 동안 미국과의 혈맹인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에 대하여 Major Oil로서 한국의 경제개발에 차관을 마련해 주는등 실질적인 협조자였다.
60년대말 유공이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에 의한 70년대초의 석유화학 추진을 위한 희망자가 없을 때에 나프타 분해공장 사업자로 지정될 때에도 한국의 정책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였다.
오일 쇼크때 Gulf는 광권이 박탈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원유공급 삭감에 대하여 증량시켜 주고 한국이 오일쇼크를 원만히 해결하고 제일 먼저 중동에 진출하여 Oil Money를 벌어 들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Dorsey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을 국시로 하는 한국의 공산국가와의 대결에 감사하여 오일쇼크를 해결에 도움을 주기위하여 최선을 다한다고 피력하였다.
박정희는 Gulf의 Dorsey 회장앞으로 보내는 친서에서 미국의 Major의 20% 유류공급 삭감에 대하여
"한국은 비상대책으로 10%는 절약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그이상의 삭감은 60만 대군에 유류공급에 지장을 초래하므로 남침을 노리고 있는 원시 공산국가와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안보가 위태롭다" 라고 하시면서 동맹국으로서 선처를 호소한 것이다.( 오수석 방미시 필자수행, 박정희 대통령 친서초안 작성)
60년대의 동북 아시아의 부국 필리핀은 미국의 필리핀에 있는 미국의 화려했던 최강 해군과 공군기지를 전부 철수 시켜 세계적 빈국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세계적 빈국 대한민국은 철저한 반공산 국가로서 미국과의 동맹으 국가안보를 유지하고 경제건설을 이룩하여 필리핀 보다 10배나 높은 부자나라를 건설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미 군사동맹 국가로서 주한 미군주둔에 이어 Gulf Oil이나 Dow Chemical과 같은 미국의 대회사의 한국에의 존재는 미국의 주한 미군과 같은 안보효과를 갖는다는 소신을 가지고 미국과의 합작을 강조하였다.
Gulf는 73년의 오일쇼크 때 중동 산유국의 국유화 조치로 Kuwait 광권을 잃고 major로서 힘이 없어졌다. Gulf는 한국에 투자한지 17년만인 1980년 8월 19일에 한국에서 쓸쓸히 떠났다.
선경은 당시 선경합섬등의 섬유류에 전통있는 회사였지만 몇배나 큰 유공을 인수하는 행운을 가졌고 그후 한국이동 통신과 하이닉스를 매입한 그룹이 되어 SK그룹으로 개명하여 에너지 , 통신, 반도체, 배터리등의 전통과 첨단산업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이 되었다.
울산 정유공장은 SK 이노베이션이 되어 2023년에 감격스러운 탄생 60주년 행사를가졌다.
제4항 울산정유 공장 건설의 국가적 의의
한미 합작사로서의 국영 유공은 정유 공장으로서 국가의 제1차 에너지 공급책임을 완수하였고 정부의 5개년계획과 중화학에 의하여 석유화학의 핵심인 나프타 분해공장을 담당하여 석유화학공업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울산 공업센터 건설 발파소리에 따라 울산 정유공장에서 묵묵히 일하신 KOC0와 유목회 회원분들의 값진 공이 크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6,70년대에 잘사는 조국을 만들기에 기여한 역군으로 긍지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리하여 박정희의 울산공업센터의 장생포 단지에는 정유공장과 석유화학이 들어서 있고 종합제철 단지에는 자동차 단지가 되었다.
울산항 입구 전하동 일대는 세계 일류의 조선소 현대중공업과 현대 미포 수리조선소 단지가 되었다. 단지마다 주종 공장을 중심으로 협업과 관련 중소공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울산 광역시가 된 온산에는 73년 박정희의 중화학 선언으로 비철금속 단지가 건설되어 여기에는 비철금속의 광물제련소 처럼 공해발생 소지가 있어 갈곳이 없는 입지조건이 까다로운 정유공장 제지 팔프제철 공장등이 입주하여 있다.
온산 비철금속 단지는 망망 대해를 바라보는 해안에 인공적으로 만든 온산항 ( 추후 울산 신항 건설 )과 부두시설을 건설하여 수출입이 자유롭고 동,연, 아연등의 제련에서 발생하는 공해를 용이하게 처리할 수있는 단지로서 중화학단지의 하나로 만들었다. (비철 단지에서 추가
설명 위계)
지금으로 부터 60여년전 고래잡이 어촌에 불과 했던 울산군이 박정희의 울산 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한 이래 국가 최대의 공업도시를 형성하여 제5위의 공업국으로 격상시키는데 주도적 역활을 하고 있다.
울산 광역시는 이리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역사 문화 관광 교육과 산업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필자는 한국의 산업을 알고 싶으면 울산을 방문하라고 권장한다.
대한민국은 62년 2월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때의 "우리는 세계 최빈국으로서 자손대대로 물려 받은 가난을 물리치고 부국을 만들기 위해 울산공업센터를 건설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치사 말씀이 현실화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의 국가로 빛내면서 오늘날의 서구 선진국이 2세기에 걸쳐 만든 선진대국을 반세기만에 만든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세계 어디 또 있습니까! 전진합시다. 전진만이 번영의 길로 가는 길입니다.
(울산 끝 여수로 계속)
2024.4.6 김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