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서해성 선생님께서 얼마 전 이런 트윗을 남기신 바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진압된 여당에서 보듯, 박근혜 식 정치란 명령정치다.
단문정치/단어정치는 분명함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민주정치란 수시로 설명/대화하는 정치다.
당내에서조차 이를 유신부활이라 하고 있다.
민주정치는 구구한 술어다. 단문정치는 단문사회를 강제한다.
그리고 영화 '화차' 의 변영주 감독은 나는 꼽사리다에 출연해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지요.
(전략) 영화 쪽은 민통당 지지자들이 더 많아요.
왜냐하면요,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영화정책이 좋아졌기 때문이에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영화정책이,
김영삼 정부나 이명박 정부의 영화정책보다 훨씬 좋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그래서 바꿔 말해서, 영화계를 당신의 것으로 갖고 싶다면,
좋은 영화정책을 만들고 영화를 진흥을 하면 되는 일이지,
그 중에 몇 명을 찍어서 얘네들 때문에 얘네들이 우리 말을 안 들어 라고 말한다는 건
제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도 안 하는 짓이에요.
(중략)
근데 너무 웃기잖아. '우리 얘기 들어!' 라고 그런다면 무슨 얘기를 해 줘야 하는데,
'날 사랑하라고!' 외엔 말을 안 해. '날 지지하라고!' 외엔 말을 안 해. 내용이 없어.
보통의 일반인들은, 이 말만 듣고는 박근혜와 수구 진영을 비웃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의 말하기는 이미 우리 일상에 너무나도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고, 비단 박근혜만 비판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의아해 하시겠지만, 산 증거로 들 수 있는 현실이 있습니다. 바로 직장과 군대가 그것이고,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는 '핵심/요약 중시의 문화' 와 '쉬운 것만 좋아하는 경향' 이 그것입니다. 직장과 군대에서는 예 아니오를 비롯하여, 짧은 문장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라고 강제하고, 우리 현실에는 어려운 글과 긴 글 대신 이해하기 쉽고 짧은 글을 좋은 경향으로 여기는 경향이 자리하고 있죠. 농담 같으시다면, 나는 꼽사리다에서 선대인 소장을 김미화 씨와 우석훈 박사가 갈구는 주된 레퍼토리를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말 길다고 갈구고, 설명이 어렵다고 갈구죠.
제가 카페에 쓴 '교육이야기 - 진실의 모양' 편에서 이야기했듯, 진실 또는 현실은 한 번에, 또는 짧은 몇 마디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글의 태반을 '만연체' 로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런 현실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또는 제 생각을 빠짐없이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실 듯 한데, 제가 잘난 척 하고 싶었으면 짧은 말을 던져놓고 '그것도 이해 못하냐?' 고 갈구는 쪽이 더 편했을 겁니다. 제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고 잘난 척 하고 싶었으면 뭐하러 제가 제 생각을 길게 늘어놓으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반박이나 검증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까? 하하.
자신이 민주당이나 통합진보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박근혜를 비롯한 수구 세력을 비판한다고 해서 이런 '수구의 말버릇' 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왜냐구요? 여러분은 이 사회에서 살아오신 분들이십니다. 저처럼 언어의 문제에 천착하고 제 언어를 '소통과 변화를 위한 언어' 로 가다듬기 위해 발악해 온 사람도, 자칫 한눈을 팔면 저런 수구식 말하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수구식 말하기는 교육을 통해, 직장이나 군대 등 사회 조직을 통해,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문화 또는 관습을 통해 나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논술만 해도 그렇죠. 단문을 써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라. 핵심만 간단하게 써라 등등... 제가 기존의 논술 방법으로 가르쳤다면 훨씬 더 편하게 가르치고 돈도 쉽게 벌었겠지만, 그러지 않고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가르친 것 또한 '부족하나마, 단문의 문제점을 깨닫고 있었고 단문 사용이 사회에 끼칠 영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성세대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저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기성세대를 '왜, 어떤 맥락에서' 비판하는지 자세하게 제 의견을 밝힙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기성세대의 대답은, 위에서 말한 박근혜식 대답이 많았습니다. 너는 부정적이다(또는 네 시각이 부정적이다), 물고기는 맑은 물에서 살지 못 한다, 너는 세상을 아직 모른다... 내참.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잘못된 부분, 혹은 자신들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지적당하면 그걸 반박도 해 보고 이해도 해 보고 한 다음에, 그 지적이 맞으면 수용하면 되고 아니면 반박하면 될 일입니다. 덮어놓고 저를 부정적이라 말하는 기성세대야말로 오히려 부정적, 박근혜의 복사판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언어는 의식을 지배합니다(물론 의식이 언어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언어,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이해하려 드는 건,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짓이고, 현실의 변화를 가로막는 짓일 겁니다.
물론 어려운 길입니다. 그간 자신에게 익숙한 말하기 방식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바꿔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제가 이미 제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해 본 일인지라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주변인들에게 미친 년놈 취급받기도 좋을 겁니다. 말투가 왜그래? 라든지, 네가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와 같은 오해를 많이 사실 겁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회의 변화를 원한다면, 국민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꾼다면, 이번 제 글을 기회로 자신의 말하기 또는 글쓰기 방식을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돌이켜 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유신시대의 망령에 홀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시대가 남긴,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말하기 방식을 사용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내 식대로 가공해서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