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들에 있어 원치 않는 시련이나 환난을 당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거역하는 죄악들로 인한 것으로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깨어지고 그 사이가 단절케 되었으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어둠과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일 뿐 아니라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가면 갈수록 죄악들을 더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 그 자체로는 살아서도 지옥의 그림자들 가운데 살게 된 것이면서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처지와 신세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어쨌든 그러한 죄악들 가운데에는 반드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면서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며 선악 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아담과 하와부터도 그러했듯이 그에 합당한 값과 대가와 책임들 등과 같은 심판들이 어떤 식으로든 살아서도 죽어서도 없을 수가 없는 것이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러한 인생의 시련이나 환난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은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미지근하고 병들며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진정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을 덧입어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임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손해나 박해, 문제, 대적, 갈등, 막힘, 오해, 질병, 사고 등과 같은 시련이나 환난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인데..
그러한 경우는 모든 일들을 주장하시고, 과거, 현재, 미래 등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하시며,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회로애락의 주재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오직 한 가지인 것으로 사실상 그러한 고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과 은혜와 복과 쓰임을 위한 연단과 단련과 훈련과 준비의 시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하더라도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적지 아니 유혹에 빠지고 시험에 들면서 실제로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하게 됨으로 인한 경우로서 그러한 때에는 다윗이나 솔로몬, 베드로 등에 있어서의 한 때의 심각했던 죄악들과 그로 인한 결과들의 사례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 죄악들로 인해 구원이 돌이켜 지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 등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오히려 더욱 사랑하셔서도 아비의 심정으로 그가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은 막으시곤 하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며, 때로는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많은 시간들을 돌고 방황케 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통찰해 보면 그러한 세 가지의 모든 문제적 상황들에 있어서의 해결 방법은 근본적으로는 하나 같이 모두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가장 먼저 제시했던 믿지 않는 불신자들, 전도 대상자들의 시련이나 환난의 경우에 있어서야 말로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에,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어떤 경우든지 모든 상황과 문제들, 해결과 역전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 진정 구주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 들이며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와 다른 그 무엇보다 그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면서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말씀 그대로 갈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고 모든 상황과 형편들을 통치하시며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기르시고 순간순간까지도 주장하시며 다름 아닌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으로 정말 말씀과 함께 증거되고 계시되며 약속하신 대로 10가지 이적을 일으켜서라도 해방될 수 있게 하시는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바다를 갈라서라도 구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말씀에 약속된 대로 어떤 식으로든, 진정 사람이 할 수 없으며 세상이 상상도 못할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우시고 해결하시며, 더 나아가 모든 것을 뒤바꾸시고 완전히 역전될 수 있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신실하고 진정되며 제대로 된 믿음으로 몸부림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의로운 고난인 경우에도, 아니 그러한 때에야 말로 더욱 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더더욱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겁게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그때 반드시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생생하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능력들로 강렬하고 풍성케 됨으로 인해 그 어떤 고난들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하나, 순간순간 이길 수 있게 하는 그 이상의 신령한 힘을 실제로 얻게 되는 것이며, 피할 길이나 피할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길 등도 보게 됨과 함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더 놀랍고 짐작도 못하며 강력하고 기적적이며 상상도 못할 역사들까지 보고 누리게 되는 기회와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죄악들로 인한 징계들이나 광야와 같은 시간들을 보냄 등과 같은 시련이나 환난 가운데 있는 경우라면 그래도 역시 근본적으로는 다 마찬가지인 것으로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진정 그 있는 자리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생각나고 발견하며 분별한 죄악들부터 각성하고 반성하며 자백하고 자복하기 시작하면서 참회하고 돌이키는 것, 동시에 즉각적으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당장에라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과 작정이 최선인 것이고, 사실은 유일한 방법인 것이며, 그때 얼마든지 생각 이상, 상상 이상의 사함과 나음들이 가능한 것일 뿐 아니라 전적인 회복과 역전들도 정말 생생히, 때로는 순식간에 누리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언3:11~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7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