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루카복음 16,1-8)
- 매일미사 2023.11.10(금) https://missa.cbck.or.kr/
오늘 복음에서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협잡꾼’ 또는 ‘사기꾼’처럼 묘사된 집사의 모습을 주인이 칭찬하는 것으로 비유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루카 복음사가는 독자들에게 ‘협잡꾼’이나 ‘사기꾼’이 되라는 것일까요?
복음사가는 이 비유에서 ‘협잡꾼’의 모습 그 자체를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로 내세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라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곧 세속적 이익을 좇아 재빠르고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비유 속 집사의 모습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자녀들도 그처럼 부정한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는데, 하물며 빛의 자녀들은 어떠하여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과 관련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능숙하고 현명하여야 한다는 교회 공동체를 향한 신앙적 권고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듯 교회 공동체는 천사들로만 구성된 집단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회개하는 죄인들의 공동체,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공동체, 성령께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삶 속에서 복음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에 얼마나 적극적입니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고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 김상우 바오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매일미사(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3.11.10 오늘의 묵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