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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미국 캐나다 여행기
2019. 07. 24
2019. 08. 04
황선춘 양의옥
천섬 2019년 7월 31일 수요일 맑음
한국 시간 8월 1일.
오늘이 여기 시간으로는 7월 31일이지만 오후가 되면서 한국시간으로 8월 1일 월삭이 된다.
여행 오기 전의 이이야기를 적어 지인들에게 편지와 사진을 보냈다.
월삭에 드리는 글이었다.
보내고 바로 확인하니 벌써 답장이 두 군데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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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장로님.
좋은 여행하시니 주님의 은혜입니다.
건강하게 즐거운 여행하시기
기도합니다.
오늘도 어떤 목사님이랑 점심을 하면서
황 장로님 이야기를 했지요.
좋은 분이 가까이 계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늘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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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축복을 받으신 것이지요.
건강축복
시간 축복
금전적인 축복
캐나다에서 미국
너무나 넓은 대륙의 풍경
우리나라는 손바닥만한 땅덩어리 안에서
죽어라 살려라
지지고 볶고 있으니
세계 여행을 다녀보면 식견도 넓어지고
애국심도 생긴답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애국자이십니다.
먼 길 긴 여정
잘 소화하시고
뜻 깊고 알찬 여행 하시고 귀환하시길 빕니다.
고국엔 일본물품 불매운동...
너무 현실에 맞지 않는 선동인 것 같아 가슴 아픕니다.
좀더 크고 넓게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으로
산다면 그것이 선진국민이겠지요.
좋은 아침
보슬비 내리지만 우산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전해온 넓은 마음의 우산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정서진에서 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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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글보다 받는 글이 더 아름다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어
오히려 감사하기는 내가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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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우리 일행 34명은 시간을 너무 잘 지키기로 유명해졌다.
5시 반, 6시 반, 7시 3단계 계율을 정확히 소화해 낸다.
천섬으로 가기 위해 일찍 나서기 위함이라 식사도 일찍 하였다.
식사가 간편식 컨티넨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 좋다.
많은 종류의 음식은 골라 먹는데 우리의 뇌를 혹사시키지만 간단한 음식은 필요한 적은 수로 나오기에 더 간편하고 뇌의 부담이 적다.
빨간 통사과, 사각으로 다듬은 각종 과일(수박, 메론, 파인애플), 처음으로 나온 모닝커피 향이 좋아 냄새를 맡으며 한 모금 마실 제 심신의 피로가 살며시 사라진다.
음식의 묘기인 것 같다.
오늘은 3시간 20분을 가서 천섬을 관람할 예정이다.
1시간을 달려 빅 사과농장에 도착한다.
사과로 잼은 만드는 과정과 손으로 작업하여 사과를 깎고 씨를 발라내어 각종 관련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 옆에 흰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아기가 손을 흔들며 이 광경을 보니, 일 하다 말고 종업원들이 손을 흔들고 환영을 한다.
맑고 환한 웃음이 우리 마음에 사과보다 더 진하고 좋은 향기를 준다.
판매장에는 여러 상품이 잘 진열되어 있다.
각종 사과 파이, 잼, 빵들이 즐비하고 간편 물통과 의류도 파는 종합 가게다.
대신 먹어보라는 문구는 없고 비싼 값 표식만 보인다.
작은 물통 하나 사고 나온다.
모두가 달기만 하여 입맛에 역기능을 가져온다.
말쑥한 우리 버스의 기사는 사과 과자 두 봉지를 사서 우리 모두에게 맛을 보라고 한다.
재치도 있고 정도 많다.
남에게 친절도 하다.
항상 운전석 옆에 큰 바구니를 놓고 각종 고급 과자를 놓는다.
승객이 지나갈 때마다 집어 먹으라는 것인데 먹다가 모자라는 것 같으면 다시 과자를 한 바구니 채워 넣는다.
본받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왕복 16차선의 대로에 들어간다.
참 고속도로 넓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산업도로보다 폭이 더 넓다.
끝없는 들판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지을 것 같지만 농사짓는 경작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도로 옆에 말쑥한 집을 짓고 정원에는 잔디를 깔았다.
과일이나 채소나 식물을 가꾸지 않으니 보기도 시원하다.
한 시간을 가서야 농사짓는 밭이 나온다.
한 덩어리가 어찌 넓은지, 기계 아니고는 농사지을 수 없을 만큼의 광활한 밭인데 농사짓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노랗게 익은 보리와 밀 그리고 벤 자국만 남았다.
하도 밋밋하고 반복되는 환경이니 가이드는 영화나 음악을 틀어준다.
우리나라는 건물을 한 곳에 밀집하여 높고 빽빽하게 짓는데 여기서는 집들을 들판으로 분산한 것 같다.
토론토에서 킹스톤으로 이동하여 세인트로렌스 강 하류에 밀집한 천 여개의 섬들을 보기 위한 행보다.
킹스턴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 남동부 프론터낵 군의 군청소재지다.
토론토 북동쪽 220㎞ 지점, 세인트로렌스 강이 흘러드는 온타리오 호의 북쪽 연안에 있다.
1673년 카타라키 인디언 정착지에 모피 교역소이자 군사 요새로 설립되었으며, 설립자는 프롱트나크 공작으로 17세기 후반에 뉴프랑스의 총독을 지낸 루이 드 뷔아드였다.
1758년 영국인들에게 파괴되었다가 1783년 영국 왕당파들이 재정착했고, 조지 3세를 기념해서 킹스턴이라고 명명했다.
온타리오 호의 주요해군기지로 성장했으며, 1841년에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 주 연합정부가 이곳에 세워졌다.
지금은 북동쪽으로 144㎞ 떨어진 오타와에서 시작되는 리도운하가 지나며, 세인트로렌스 강 어귀에 있는 번화한 항구다.
퀸스대학, 세인트조지 성당, 세인트메리 성당, 국제 하키 명예의 전당, 캐나다 왕립군사대학, 국립방위대학, 캐나다군사요원대학 등이 있다.
1812년 전쟁 중에 설립되었다가 1830년대에 재건된 거대한 헨리 요새는 현재 군사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여기로 흐르는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강의 수원으로부터 오대호를 지나 뉴펀들랜드와 캐나다 본토 사이의 캐벗 해협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4,000km의 거리를 흐르는 거대한 수로체계의 중요부분이다.
캐나다에서 3번째로 긴 강인 세인트로렌스 강의 본류는 온타리오 호의 동쪽 출구에서 캐나다 본토 심장부를 지나 세인트로렌스 만에 있는 앤티코스티 섬의 하구에 이르기까지 1,287km 뻗어 있다.
온타리오 호에서 콘월 시까지의 상류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이룬다.
넓은 구조지형의 저지를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 유역은 6개 지역으로 나뉜다.
미국과의 국경에 걸쳐 있는 세인트로렌스 강 급류지대, 퀘벡 저지대, 삼각강 상류지대, 삼각강 중류지대, 삼각강 하류 지대, 삼각강 해안지대다.
온타리오호도 알아보자.
북쪽으로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남쪽으로 미국의 뉴욕 주와 경계를 이룬다. 대략 타원형인 이 호수의 장축은 311㎞로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85㎞의 너비를 갖는다.
이 호수로 유입되는 주요강은 나이애가라 강이고, 그밖에 제너시·오스위고·블랙 강이 남쪽에서 흘러들어오고 북쪽에서 트렌트 강이 흘러든다.
지형에 대한 공부를 하는 동안 도로 옆으로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대략 칸 수를 세어보니 100칸이 넘는다.
황허강 하류에 몽골로 가는 화물열차보다 긴 것 같았다.
역시 큰 나라는 기차도 크고, 자동차도 큰 것 같다.
드디어 우리가 목적하는 천섬이 나오기 시작한다.
천섬은 사우전드 제도 (Thousand Islands)다.
1,500개 이상 되는 조그만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프린스에드워드 반도로부터 캐나다 온타리오 주 브록빌에 이르기까지 128㎞가량 펼쳐져 있다.
애머스트, 울프, 호, 심코, 그레너디어 섬 들을 포함해 서쪽에 있는 섬들은 대부분 캐나다령이며, 그라인드스톤, 웰스, 칼턴 섬 등을 포함하는 동쪽의 섬들은 미국 뉴욕 주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휴양지인 이 섬들 중 어떤 것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다고 한다.
천섬은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섬이 만들어낸 풍경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낚시, 세일링, 골프, 스쿠버 다이빙, 사이클링 등 다양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우리가 유람선을 타기 위해 줄을 섰는데 벌써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유람선 관광객과 우리와 함께할 관광객이 꽉 메운다.
천섬유람선 탑승은 약 1시간가량 진행된다.
신의 정원이라 불리었던 1865개의 섬들이 그림같이 늘어선 풍경은 대단하다.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워도프 아스토리아 볼트가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볼트성은 애절함이 있는 듯하다.
볼트성은 그 당시 초특급 호텔인 뉴욕의 Waldorf Astoria Hotel의 주인, 호텔 재벌가 죠지 볼트가 중세의 성모양의 건축양식으로 1900년도에 그의 부인 루이스에게 사랑의 정표로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그 부인의 조부가 엄청 부자였는데 볼트의 성실함을 보고 자기를 도와준 정성에 감사하여 호텔의 경경권과 자기의 사랑하는 손녀딸을 볼트의 아내로 점찍어 준 것이 호텔의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6층의 건물로 120개의 방이 있는 이 성은 완공 6개월을 앞두고 사랑하는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04년에 모든 공사가 중단이 되었고 그 이후 볼트씨는 미완성의 성을 뉴욕주에 기부하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이 지나치면 천사들도 시샘하는가?
아내의 넋이 차마, 승천하지 못하고 볼트 성 곳곳에 남아 사랑이루지 못한 채 많은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부인 루이스가 죽기까지 주방장이 갖은 정성을 다하여 음식의 질감과 색깔을 돋보이게 하고 향미와 수분을 제공하는 17가지의 재료를 사용하여 드레싱을 만들어 병든 부인 환자가 먹게 하였는데 오늘날 드레싱은 큰 인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요리가 된 것도 보면 지고한 사랑이 주는 흔적은 천 년을 살아가는 것 같다.
천 개의 섬을 다 보지 못하고 그림 같은 바다위의 조금의 집만 보고 돌아온다.
바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맑은 하늘은 흰 구름과 함께 가을을 부르고
시원한 세인트로렌스 강바람은 콧노래를 부르게 한다.
평화의 그림은 천섬이 여행객을 위해 그려준다.
마음이 푸근하다.
가는 도중에 성모마리아 대성당 옆을 지나간다.
앙드레 성당이라고도 한단다.
앙드레 신부가 소아마비 환자들을 기도로 치유하여 유명해진 성당이고 지금도 성당 내부에는 환자들이 가지고 온 지팡이를 던지고 걸어갔다는 지팡이가 300여개나 된다고 한다.
현수막에는 지저스 앙드레 신부의 이름이 항상 걸려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차 안에서 잠시 보고 지나간다.
이제 킹스턴에서 약 3시간을 소요하여 몬트리올로 간다.
몬트리올(Montreal)은 프랑스풍이 느껴지는 도시다.
몬트리올 하면 올림픽이 생각나고 1976년인가 제21회 올림픽에서 우리 양정모 레슬링 선수가 금메달을 띠는 광경을 중계하던 그리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기억이 나는 이름이다.
한국 선수가 해방 후 처음으로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몬트리올은 캐나다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은 항구도시다.
몬트리올 혹은 몽레알은 퀘벡주 남쪽에 있는 캐나다에서 토론토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불어권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몬트리올은 미 대륙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불어권 도시이기도 하며 전 세계에서 주요 불어권 도시 중 한 곳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몬트리올의 인구는 퀘벡주의 주도인 퀘벡보다 세 배 가량 많으며, 몬트리올 시의 인구는 170만 명 정도다.
호셜래가 군도의 가장 큰 섬인 몽레알 섬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오타와 강과 세인트로렌스 강이 만나는 지점 가까이에 있다.
자크 카르티에가 산 능선 주위에 도시를 세워 몽로얄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세인트로렌스의 양쪽 해안지대뿐만 아니라 몬트리올과 다른 섬들도 포함하는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세인트로렌스 강과 수로에 접해 있는 가장 중요한 항구로서, 동쪽으로 확 트인 대서양과 서쪽으로 그레이트 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트리올은 1950년 이후 크게 변모했다.
문화 중심지이며, 1960년에 설립된 극장과 연주회장으로 이루어진 예술의 전당과 박물관, 화랑, 공공도서관, 서점 등이 있다.
또한 캐나다 고등교육의 주요중심지 중의 하나로서 맥길대학교와 콩코디아대학교에서는 주로 영어로 강의를 하는 반면 몬트리올대학교와 퀘벡대학교 몬트리올 캠퍼스는 프랑스어 사용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맥길 대학교는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 위치한 연구 중심 공립 대학이다.
가이드가 차 안에서 설명을 한다.
1821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상인 제임스 맥길의 기부에 의하여 최초 설립되었으며, 다운타운 캠퍼스와 맥도널드 캠퍼스로 이루어져 있다.
11개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고, 300개가 넘는 프로그램에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신입생들의 입학 성적이 캐나다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다른 대학들에 비해 장학금을 얻기는 어려운 편이다.
학비는 퀘벡주 출신과 캐나다 내 다른 주 출신, 그리고 해외 유학생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캐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12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44명의 로즈 장학생을 포함하여, 9명의 아카데미상 수상자, 3명의 퓰리처상 수상자, 3명의 우주 비행사, 3명의 캐나다 총리, 13명의 대법관, 4명의 해외 국가원수, 28명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캐나다에서 박사학위 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이며, 가장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이기도 하단다.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방사능 연구로 원자핵이 발견된 대학으로 유명하며, 세계 최초로 인공 세포, 인터넷 검색 엔진, 전하 결합 소자 등이 발명되었다.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세계 최상위 26개 대학 중 하나이다.
맥길대학교는 시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각종 행정자료 및 공공시설이 실습의 재료가 되고 이곳에서는 아이스하키를 공안하여 최초의 아이스하키 원조가 된 대학이이도 하다.
켐퍼스 안에 실내 아이스하키 경기장이 보인다.
당뇨의 원인을 발견하고 인슐린을 발견한 대학이기도 하다.
학교 앞에 파란 십자가의 교회가 보인다.
엄청 크게 보였다.
그런데 교회가 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지금은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또 어떤 교회는 매각되어 나이트클럽에 팔리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엄청난 규모의 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이유는 과학과 문명의 발달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긴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
몬트리올의 도시는 뉴욕처럼 지상에 전신주와 전선이 없다는 것이고 이미 1882년엥 지하철이 놓임으로 모든 전선은 땅 속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우리는 몬트리올 시청 앞에 내린다.
자끄 까르띠에 광장 구경을 하는데 노틀담의 교회도 보고, 시청 앞의 넬슨제독의 동상도 보았다.
넬슨은 영국 해군 제독인데 어찌 프랑스 영에서 자기를 적대하는 넬슨의 동상을 세웠을까?
그래서 그런지 높은 지지대 위에 동상은 생각보다 작게 만들었다.
자끄 까르띠에 광장은 몬트리올 구시가지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광장의 입구에는 이곳의 통치자였던 호레이쇼 넬슨의 동상이 서 있는데 여기서 바라다 보이는 올드 포트는 환상적인 전망으로 유명하다.
거리의 악사와 저글러, 판토마임 연기자, 초상화가,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미술가들로 가득하다.
노트르담 성당
금빛 예배당이라고 불리는 노트르담 성당은 1824년에 준공해 1829년에 완공된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네오고딕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외관은 물론 화려한 내부 장식이 유명하여 매년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내부는 천정과 제단,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비로움과 함께 숙연함을 느낀다.
예배당은 전체적으로 금빛을 띠고 있으며,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조각품들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노트르담 성당은 외부관람으로 진행되었다.
몬트리올에서 호텔은 집이라는 뜻이고 시청을 호텔로 부르는 것은 처음 알았다.
숄트레이크 동계올림픽 하키경기 2불 이야기도 있다.
넬슨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차에 오른다.
고사라고 하는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고래사냥을 뜻하는 말이란다.
오늘의 한식은 상치에 된장 불고기다.
오랜만에 보는 상치를 보고 모두 거기에 손을 대니 주인은 상치를 한 상에 대여섯 번을 날라 주고 된장도 수시로 주지만 눈 하나 찌그리지 않고 상냥한 음성과 모습으로 우리의 피로를 덜어주었다.
고마운 한식당 고사의 고마움에 머리 숙여 감사했다.
여기 도로는 좋은데 노면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염화칼슘 때문이란다.
눈이 오면 사고가 나기에 우선 염화칼슘을 엄청 부어 사고를 적게 하는 대신 도로가 울퉁거리는 어려움을 감수한다고 한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312호에 들어갔으나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로비에 연락하여 1225호로 바꾸었고 너무 높아 내려 달라하여 612호로 두 번 바꾸어 잠자리를 들어간다.
와이파이를 통하여 월삭에 드리는 글을 보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탱큐!
마지막 날 2019년 8월 2일 금요일 맑음
4시에 기상
5시에 탑승
조식은 도시락으로 준비하여 차에 오르고 국경에 이르기 전에 먹기로 하다.
특히 사과는 맨 먼저 먹어야 하는 통관 금물이다.
1시간 이동하여 국경에 있는 면세점에 도착한다.
여기는 모든 물건이 면세가 되므로 사람들은 단풍나무 수액과 아이스 와인 그리고 쵸콜릿 등을 산다.
바로 앞에 국경의 심사를 받는 곳인데 앞서 있던 버스가 시간을 많이 끌어서 우리도 불안하였다.
버스 기사와도 잘 아는 경찰인 듯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도 우리를 안심시켰다.
우린 버스에 화물과 여권 가방도 내려놓고 몸과 여권만 챙기고 차에서 내려 심사를 기다린다.
순서에 따라 먼저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고 질문에 응답한다,
내 차례가 되었다.
가볍게 인사하고 담배와 술을 가지고 있느냐고 한국말로 담배, 술? 한다.
물론 나는 NO!라고 조금 강하게 부인을 한다.
현금이 얼마 있느냐고 묻기에 200불 있다고 하니 더 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사실은 200불 보다는 많은 돈이 있었지만 한번 잘못 말했다가는 매우 까다롭기에 간편한 물음에 답하고 통과하였다.
아내 쪽을 보니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같은 제스쳐를 쓰더니 나보다 더 빨리 통과시킨다.
나중에 알아보니 날 보고 남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여 그냥 보내주더라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친절과 남편이 있는 여자는 테러나 나쁜 짓을 하지 않는 통계가 있어서 통과시키는 것이 통례란다.
하여튼 아내는 남편의 음덕을 충분히 본 것이다.
여기가 퀘벡과 볼몬트 국경인 셈이고 우리는 무사히 미국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유학생 1호인 유길준이 공부한 곳으로 유명하고 그가 동행한 보빙사가 조선과 미국의 교류에 이바지한 역사적 흔적이 있는 기록으로 유명한 곳이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은 조미조역을 체결하고 상대국에 공사를 설치하기로 하였으나 조선은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미국에 공사를 설치하는 대신 보빙사라는 사절단을 파견한다.
유길준은 바로 이 보빙사의 사절단의 수행원이 되었다.
사절단은 조선의 전통예법에 따라 미 대통령을 예방하였고 허리를 굽혀 큰절을 하다가 미 아더 대통령이 깜짝 놀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절을 받는 모습이 그 당시 신문에 보도되었다고 하여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보빙사는 조선 조정의 실세 민영익을 단장으로 홍영식, 서광범 등 개화기의 핵심 인물들로 구성된 사절단이다.
사절단장 민영익은 일을 마치고 유길준을 미국에 남아서 유학하도록 한다.
26세의 유길준은 얼마나 공부에 전념하였는지 3개월 만에 영어를 독파하고 번역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여파 속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조선 정부의 명으로 귀국하여 7년간 유페되었고 그 사이에 서유견문을 썼다고 한다.
그런 전통을 가진 역사적 도시 보스톤이다.
주유소에서 우리는 쉬고 버스는 연료를 보충한다 .
첫날 연료를 넣고 2,300Km를 달려와 이제 연료보충을 하는 버스가 믿음직스럽다.
화이트 마운틴을 지나는데 이 이름은 바람이 세차고 겨울에 온 눈이 녹지 않아 산이 눈으로 덮여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란다.
시애틀은 인디언 추장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시란다.
여기 도로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연속된 곳으로 가도 가도 산이 나오는 지역이다.
여태까지의 평지를 벗어나 산속으로 난 고속도로에서 영화를 보여준다.
크래식 영화로 음악에 천재성을 가진 어거스트가 역경을 딛고 음악의 묘미를 보인 이 영화는 독특한 키타 연주와 처음 배운 피아노 악보로 합창단 단장을 놀라게 하여 결국 이 음악에 의해 자기 어머니를 찾는 감명 깊은 영화다.
보스턴 한식당에 들어간다.
서울대를 나온 앨리트가 미국으로 유학을 하던 중 만난 이 부부는 자기의 성으로 이가 식당이란 이름으로 한식당을 운영하고 지금도 정성을 다해 손님을 모시고 있다.
된장찌개가 맛이 있어 두 그릇을 먹고 상치쌈도 상치 크기가 적당하여 먹기에 좋았다.
나오며 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 라고 가벼운 인사를 하였다.
보스턴은 산업과 교육의 중심도시다.
미국 건국 200년의 역사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문화의 중심지이며 진보적 사상과 보수적인 생활, 활기찬 현대적 도시와 조용하고 차분한 고도가 공존하는 독특한 색을 띤다.
그래서 하버드대학,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보스턴대학, 터프트 등의 명문교들이 소재하고 있는 미국 최고의 대학도시라고 이름이 붙었다.
우리는 먼저 하버드 대학을 견학한다.
하버드 대학교는 우리가 아는 영재들만 모인다는 미국 최고의 대학이다.
영국 식민지인 미국에서 설립된 최초의 대학으로 1636년 식민지관할위원회로부터 설립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1637년 뉴타운에 대학을 세우고, 1638년 최초의 수업을 시작했다.
개교 당시 교명은 ‘뉴 칼리지’였으며, 설립 목적은 성직자 양성이었다.
1638년 책 400권과 재산의 절반을 대학에 기증한 청교도교회 목사 존 하버드의 뜻을 기리기 위해 1639년 교명을 하버드대학으로 바꾸었다.
1780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초기에 하버드대학교는 교회의 후원을 받았으나 200년 정도 지나면서 점차 교회와 정치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하버드대학교는 교육과정개혁에서도 선두적인 역할을 했다.
찰스 W. 엘리엇 총장은 낡고 경직되고 고전적인 교육과정 대신 선택과목제를 도입했다.
1978년 교수진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헨리 로소돈스키 학장과 데릭 복 총장은 학부학생들이 전공분야 학위를 따기 전에 5개 분야에서 기초학문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중핵교육과정을 마련했다.
여자대학이었던 래드클리프대학은 1977년 하버드대학교에 합병되어 하버드대학교의 학위가 수여되었으며, 1999년 래드클리프 대학원으로 개편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1~2학년 시기에는 전공구분 없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3학년 때 전공을 결정하고 해당 학과에 지원하여 전공수업을 듣고, 학위를 수여받게 된다.
학위수여는 메모리얼 교회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은 이 대학을 나온 학생중에 세계 1,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영혼을 기리기 이하여 만든 교내 교회다.
졸업생과 가족 한 명만 식장에 들어갈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생중계되는 예식을 볼 수 있단다.
메모리얼 교회 앞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적 등을 보유하고 있는 하버드 중앙 도서관이 있다.
겉보기에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닌데 사실상 규모가 세계 최고이며, 1,800만권 이상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단다.
타이타닉호로 희생된 아들을 기라기 위해 아들의 이름으로 어머니가 기증한 도서관인데 그 약속으로 건물을 파괴하지 말아달라는 뜻에 따라 지하로 5층을 증축한 도서관이다.
정면으로 보기보다는 옆면을 그 길이 또한 대단하다.
도서관 내부의 벽면에는 오래 돤 격언이나 명언이 적혀있는데 그 중앙 위에 보이는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이 붙어있다고 한다.
어느 노부부가 이 대학교에 자기가 번 돈을 투자하고 싶어서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교 축의 대표들은 이 사람의 행색이 너무 초라하여 보잘 것 없는 부담을 느낄 사람으로 판단하여 말도 내지 못하게 하고 만나 주지도 않고 발걸음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몇 번을 방문한 노부부는 이 대학을 포기하고 메사츠주스 대학을 설립하였고 이를 늦게 알게 된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학교를 발전시킬 좋은 기회를 놓쳐 후회를 하였고 이런 격언을 만들어 도서관 중앙에 게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은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여기서는 참으로 절실하게 느낀 말임에 틀림없다.
많은 그룹들이 도서관 앞 계단에서 공부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하버드대학교의 동문회와 교수진은 미국의 지적·정치적 발전에서 여러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존 애덤스, 존 퀸시 애덤스, 러더퍼드. 헤이스,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등 8명의 미국 대통령과 수많은 법률가·장관·의원 등을 배출했다.
또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을 비롯하여 노벨상 수상자를 33명이나 배출했고, 작가로는 랠프 월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헨리 제임스, 헨리 애덤스, 로버트 프로스트, T.S. 엘리엇, 월터 리프먼, 로버트 로웰, 노먼 메일러 등이 있다.
그밖에도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배우 토미 리 존스와 나탈리 포트만,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첼리스트 요요마 등 무수히 많다.
한국인 동문으로는 전 대통령 이승만, UN 사무총장 반기문, 헤럴드 회장 홍정욱, 첼리스트 장한나, 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백낙청, 철학자 김용옥 등이 있다.
다음에 엠아이티 대학을 관람한다.
여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한다.
엠아이티(MIT)는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의 약자다.
메사추세스 공과대학.
지질학자인 로저스가 과학의 진흥과 개발을 목적으로 1861년에 설립하였으며 1865년에 세계 최초의 공과대학으로서 개교하였다.
설립이래 공학, 이학, 건축학, 인문과학 분야에서 수많은 공적을 쌓았고 유능한 과학자들을 배출해낸 공과대학교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계 학부의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하버드 대학교나 보스턴 대학교 등 인근의 대학들과 공동수업 · 단위교환 · 학생교환 등을 행하고 있다.
MIT졸업자는 UN 사무총장부터 IT업계 영웅들까지 수많은 스타 동문 군단을 자랑한다.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슬론 경영대학원과 경영학부를 각각 졸업하였으며,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회의 위원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 중앙은행 총재가 경제학과 출신이다.
학계에는 노벨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비롯하여 ‘100달러 노트북 PC’로 유명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미디어 랩 소장이 있다.
KAIST 외국인 총장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로플린도 MIT에서 물리학 석·박사를 마쳤다.
한인 동문에는 정몽준, 서남표 전 KAIST 총장, 배순훈 전 KAIST 부총장 등이 있다.
기부금을 기여한 인엔지니어링 인물을 벽에 전시했는데 우리나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총재와 박정희 부부의 사진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당시 오천만 불 즉 오십억 원 이상의 기부자들인데 실제 기부액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엠아이티 대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는 도중 찰스강을 가로지르는 하버드 브릿지를 통과한다.
MIT 대학이 가까워 이 다리를 MIT 다리라고 이름 짓자 이 대학 학생들이 기를 쓰고 반대 운동을 하자 하버드 다리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멀리 63빌딩과 같은 건물이 있는데 우리나라 63빌딩이 여기를 모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상 60층 지하 3층
다음은 마지막 여행 스케쥴에 있는 퀸시마켓을 간다.
퀸시 마켓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물이다.
1824년부터 2년간 건설되었다.
이름은 당시 시장이었던 요시아 퀸시 3세에서 따왔고 한다.
퀸시 마켓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위에서 보면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단다.
정문 앞에서 한 마술사가 둥근 공위에 판자를 놓고 묘기를 부리고 있다.
빨간 공을 아래에서 던져주면 묘기를 부리면서 받아 돌리며 관객의 시선을 뺏는다.
퀸시마켓 내부 중앙에는 동서로 긴 복도가 이어졌다.
외관은 뉴잉글랜드 전통의 화강암 구조, 내벽은 빨강 벽돌 구조로 되어있다. 동서 각각의 출입구에서는 로마 양식이 있는 반면, 측벽은 현대 건축으로 지어졌다.
또한 건물 중앙에는 구리로 덮인 돔이 붙어있다.
돔 바로 아래는 휴게소와 정문이다.
개업 당시부터, 퀸시 마켓은 계란, 치즈, 빵 등 식료품을 주로 취급하는 쇼핑 센터였다.
또한 1970년대에 동물의 뼈가 발견되었으며, 도살도 행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퀸시 마켓은 패늘 홀과 노스 마켓, 사우스 마켓과 함께 패늘 홀 마켓플레이스라는 쇼핑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퀸시 마켓에는 각종 식료품 상점과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다.
점심 시간대가 되면 시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점심을 사러 퀸시 마켓에 모여 든다.
우리 부부는 가이드가 추천하는 크림차이드 한 개와 콜라를 시켜 2층의 둥근 휴식처에서 먹는다.
맛이 관연 일품이고 10달러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다.
음식을 먹고 나오면 야시장처럼 길거리 좌우에 거리 판매장이 나온다.
버스가 기다리는 야외 야채시장에서 체리 5달러와 복숭아, 자두, 천도사과 1달러치를 사온다.
호텔에서 먹을 것인데 값에 비해 양이 너무 많다.
싱싱하고 값이 싼 과일을 시간이 없어서 다 못 먹는 것이 안타깝다.
마지막 밤의 호텔 훠포인트호텔(FOUR POINT BY SHERATON WAKEFILD)
잊지 못할 것은 지금까지의 호텔 중 1층 로비에 붙어있는 제일 가까운 방이라는 것.
포근하고 아름답고 널찍하고, 잠이 잘 오는 그런 호텔이었다.
시설이 매우 좋다고 생각되었다.
내일은 마지막 아침을 먹고 한국으로 떠나는 가벼운 날이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고
8시 반에 아침 먹고
9시 반에 버스를 탄다니 이런 행운이......
잠을 충분히 자 두어야 한다.
하나님, 아내와 같이한
미국 캐나다 여행을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곳에 다녀 오셨네요. 우리 동창들 열 서너명이 미동부와 캐나다에 다녀왔던 생각이 나요. 천섬에 갔을 때 비가 와서 무척 아쉬웠지요. 그날 선옥이가 맘에 들어하며 찜해 놓은 섬이 있었는데 잘 있나 모르겠네요. 늘 건강하신 모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