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부녀회 발자취
우봉 김동익
그때그시절을 아시나요 북서울농협
영농부녀회
발자취를
보리고개 시절 가난을 몰아내고자
온국민이
힘을모아 새마을 운동을할때
농로개설을 하기위해 남여노소 부녀자 모두
세면대야
들통 리야카 삽 곡갱이
들고나와 흙을파고 나르고 마을안길 넓히기로
돌담을 헐고 하수도공사 를
주민 노력 동원 부담으로 하든일
당시 마을 통장
과 새마을지도자는 밤낮수고
말로 헤아릴수없는 고생을
영광의 희망으로 알고 일하던
시대에
농협 단위 조합에서는 신용사업 비료 ,농약판매외
가을추수기 추곡 수매사업 으로 봄철에환급사업이 전부였던것이다.
또한 당시농업을 전업으로한 가입자만 이용하는
단위로
단위조합장은 행정 구청장의 임명장에 의해 업무가 진행되였다
조직또한 미미한가운데 토착적 농경구조를 버서나지
못하고 있던중에
새마을운동활성화 점화되여 역동적 조직 활동이 시작되여
부엌환경개선 부두막 높이기사 마을도로 꽃길가꾸기 식단 개선하기
식생활 개선등
농촌 소득증대 사업시작과 부녀회가 적극참여 필요 로하게 되였다
이시기에 중계동 납대울마을 이 새마을
최우수부락으로 선정
대통령 하사금을 3회수상하여 새마을회관과 마을안길 하수도공사
와
세면포장을 말끔이하고 소득지원 지원 금으로 납대울부녀 주관으로
중계동 310번지
전 1500평[주식회사 상아제약소유] 임대 공동작목으로
메주 콩을 심고 김매기 타곡수확
소득사업을조직을 통한 것이 초기영농 부녀회 모체이다
당시 적극 참여자는 임계송[당시농협 감 사
김동진처]한명우[이석도조합원처]
몇몇 부녀가[고인] 통장 김광래 과 처 김동익 새마을 지도자
'협동 운영
몇몇 동호인이 모임으로 하다가
단위조합에서 조직 부녀부가 탄생 케되고 당시
초대 부녀부장은 박부장이란것만알고있음
부녀부가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부녀회활동이시작
각마을 순회 현지방문지도헥더였음
아울러 상계일동 번동 도봉동 방학동 작목반 활동이
활성화 교육과 지도가 이루어젔으나
1975년이전에는 행정단위에 한국부인회가 있어으나
특별한활동은없어고 조직으로만있어다
1976년에 도시새마을운동 적극 활성화 교육이
이루어져 새마을지도자연수원[당시수원농민회관]
도시새마을교육47기수료자 중심 도봉구 29개동
순회전달교육을 하면서 정식 새마을 부녀회가
조직 활동 하기시작하였다
순회교육 강사는 월계동 김문학
[농협독농가교육1기]
상계동 김학무 [ 상계동 작목반47기 ]
상계3동 김용겸 [상게3동지도자]
도봉동 정수길 [도봉동지도가47기]
번 동 한상운[번동 작목반]
미아동 김 화택[미아동새마을지도자]
중계동 김동익 [도시새마을47기학생장]
수유동 김영규 [수유지도자]
40일간 자연부락 과 동을 순회 교육시키며
부녀회조직필요성을 강조 새마을부녀회와 영농
탄생시켜 단위조합도 새마을운동에 적극참여
작목반활성화 양돈단지부녀회 활성되여
잘살기운동으로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 로이여지여
현재에 역량을 발휘하고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있다
#이글을쓰게된동기는 세월이흘려 역사의 뒤안길에서 바라봄에 이제 고희를 넘었고 산수[傘壽]이며
고인이 된분도 계시니 작은
기록이라도 남겨드리고 자 함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