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법원이 인종차별을 체계적으로 강요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가장 강력한 캠페인을 펼쳐 이 나라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치프 알버트 루툴리의 사망 경위를 파악하는 심문을 시작했다고 영국 BBC가 14일(현지시간) 전했다.
1967년 7월 21일 그는 철길을 걷다 열차에 치여 두개골이 파열돼 목숨을 잃었는데 처음에는 사고사로 결론 내려졌다. 1898년 짐바브웨 불라와요 태생으로 사망 당시 69세로 적지 않은 나이였다. 활동가들과 유족들은 오랜 세월 공식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며 사인 심문을 반겼다. 고인의 자녀들 가운데 두 딸만 생존해 있는데 올해 나이 93세와 90세라고 했다.
사망 당시 지금은 금지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자였는데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싸움에 앞장 선 공로로 196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ANC는 그 뒤 백인의 소수 통치에 맞서는 싸움을 주도해 1994년 첫 민주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국립기소청(NPA)은 "치프 리툴리의 죽음에 대해 초기에 발견된 것을 뒤집기 위한 시도로 법원에 증거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증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거의 60년 전에 초기 조사 결과, "남아공 철도 직원들이나 다른 누군가의 범죄 혐의를 알려주는 증거는 일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캠페인 단체는 당국이 그를 살해한 뒤 은폐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루툴리의 손자 샌딜 루툴리는 BBC에 초기 수사는 "(전직)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의 행동을 은폐하기 위한 화이트워싱"이라면서 "우리는 독립적인 사법부가 이 사안을 주재해 1967년 7월의 운명적인 그 날에 일어난 일들을 독립적으로 발견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샌딜 루툴리는 NPA가 이 복잡한 사안을 다뤄 2000년대 초반 검찰에 이 사안을 언급한 뒤 친척들과 함께 협업한 데 대해 칭찬했다. 가족은 거의 한 달의 심리를 통해 첫째 루툴리가 정말로 어떻게 숨졌는지, 둘째 누가 그의 죽음에 범죄 책임을 져야 하는지 두 차원의 해답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사망 당시 루툴리는 그라웃트빌(현재 콰줄루나탈 지방)의 주거 구역을 벗어날 수 없었고 정치 참여도 금지돼 있었다. 그는 이 나라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했다. 남아공은 지금까지 모두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그 중 노벨 평화상은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1984)와 넬슨 만델라, FW 드 클레르크(1993)등 모두 네 사람이 수상했다.
루툴리 사건 말고도 이날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유명한 사건이 변호사 음룽기시 그리피스스 음셍게가 1981년 피살됐는데 45차례 흉기에 찔렸고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됐다. 이 사건에 대한 사인 심문 결론 공표는 오는 6월 17일로 미뤄졌다.
그를 살해한 범인들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수사는 일 년 뒤 실패로 막을 내렸다가 9년 뒤에 부타나 알몬드 노페멜라가 음셍게를 비롯해 일곱 명의 다른 ANC 멤버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활동가들을 구금하고 살해한 은밀한 암살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노페멜라는 이 조직의 지휘관 더크 코엣지, 데이비드 치카랑게와 함께 1997년 음셍게 살해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지만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에 의해 형사 사건이 결론 내려지기도 전에 사면됐다. 지난해 음셍게의 죽음에 대한 심문이 재개됨을 설명하면서 법무부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며, "어떤 결정적인 정보가" TRC에 아직 제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