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괴공(成住壞空);
나서(成) 머물다(住)
무너져(壞) 사라진다(空).
나는 생겨나서 머물렀으며
현재는 무너지는 과정이고
사라질 잠깐의 날만 남았다.
찰나마다 변하였기에,
불변의 나는 없었으며
변화하는 나만 있으니.
나라고 부를 일정한 내가 없어
나는 자아도 Atman도 없어서
사물마다 ‘나’라는 존재는 없어;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하는구나.
내가 없어 자유롭고
내가 없어 공허하여,
대금 소리 비람 되어
날다 흩어져 텅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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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간보(井間譜)라 부르는
우물마루 모양의 소리틀에
소리를 가두어 기르다가,
길이 없는 길이를 가진
날숨의 장마루에 눕던 소리가
솔잎을 빗다가
대숲을 보듬고
장독대에 든다.
간장독 옆
너럭돌 위,
하얀 사발
첫 우물물.
할머니 두 손바닥 사이로 내린
일곱별들이 그릇에 떨어지면
정화수가 가늘게 흔들리며
잠깐 하양이 되는 세상.
하얀 새벽, 하얀 치마저고리, 하얀 머리,
하얀 백자, 하얀 물, 하얀 별, 하얀 기도.
자전을 멈춘 지구, 눈 감은 별.
바람도 대금도 멈추어 하얗다.
비가 내린다, 하얀 비가 내린다.
공(空)과 허(虛); 공허(空虛)로 내린다.
우산은 버려라, 성글게 오는 겨울비 맞으며
사라져 즐거운 적멸의 경지를 배우려 하니.
눈물; 사라져 평화로운, 사라져 슬픈.
환영과 적멸의 사이에 빗방울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