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임
『문화일보/유희경의 시:선(詩:選)』2023.02.01.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요
감나무와 가로수와 하천을 옮겨가며 체온을 바꾸는 햇살과 바람과
(…)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우월해지는 사람
유전되는 사람’
- 정우신 詩『끝나지 않은 이야기』
- 시집〈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아시아 | 2022
장서가 가득 꽂힌 책장들을 떠올리거나 책을 빌려보고 반납하는 곳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도서관에 관심이 없거나, 방문한 지 오래된 사람일 것이다. 지금 도서관은 온갖 일이 벌어지는 ‘복합문화서비스센터’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도서관의 초대를 받아 강연하거나 행사를 진행하곤 한다. 갈 때마다, 시민들의 열의에 깜짝 놀란다. 현실 생활과는 무관하다 여겨지는 시 읽기, 시 쓰기에 이토록 관심을 갖고 있다니 싶은 것이다. 마치 목마른 사람처럼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며칠 전에는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시 낭독회를 가졌다. 폭설 직후, 얼어붙은 날씨를 뚫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별 기대 없던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에 나는 그저 감동하고 말았다. 한 문장 한 문장 전심을 다해 받아들이는 그들을 보며 시란 독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낭독회가 끝나고 궁금한 게 남았다는 양 잔뜩 눈빛을 반짝이며 다가온 어린 독자는 주머니 속 젤리 한 봉지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하여간 도서관에서 제안이 오면 거절할 수가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작가여도 나와 같을 것이다.
얼마 전 ‘작은도서관사업’의 존폐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다행히, 그 가치를 인정받은 모양이다. 도서관이란 그저 책을 모아두는 장소가 아니라, 숨 쉴 틈을 찾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들이 숫자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