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 제도(Marshall Islands, 마셜제도공화국, Republic of the Marshall Islands, Marshall諸島)
오세아니아의 국가. 중부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동부에 있는 섬의 무리로 이루어진 공화국.
수도는 마주로이고, 공식 언어는 마셜어·영어이고 화폐단위는 미국달러다. 1986년에 독립하였다. 2개의 환초열도인 동쪽의 일출열도와 서쪽의 일몰열도로 이루어져 있다. 두 열도는 약 200km의 간격을 두고 약 1,290km에 걸쳐 뻗어 있다. 섬들은 해저로부터 융기된 순상화산 위에 산호가 쌓인 크고 작은 섬 수가 1,200개 이상이다. 마주로와 콰잘런에 전체 인구의 약 60%가 살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전통적인 마을을 이루면서 살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그리스도교도이다.
평행으로 달리는 2개의 환초열도인 동쪽의 라타크 또는 일출열도(日出列島)와 서쪽의 랄리크 또는 일몰열도(日沒列島)로 이루어져 있다. 두 열도는 약 200km의 간격을 두고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약 1,290km에 걸쳐 뻗어 있다. 크고 작은 섬 수가 1,200개 이상이며, 29개의 나지막한 환초와 5개의 산호섬 중 표고가 고조선(高潮線)에서 6m를 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섬들은 해저로부터 융기된 순상화산 위에 산호가 쌓인 것들이다.
역사
16세기 에스파냐 탐험가 사베드라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래 19세기 말까지 에스파냐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1788년 영국인 마셜과 길버트에 의해 이 지역에 대한 세밀한 탐험이 이루어졌지만 1850년경부터 독일인들의 무역회사가 진출하면서 독일이 에스파냐로부터 괌섬을 제외한 이 지역 일대를 1885년 매입하였고, 그후 독일의 보호령으로 선포되었다. 마셜제도는 제1차 셰계대전 이후인 1921년부터 일본의 위임통치령 하에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부터 UN의 태평양 신탁통치령이 되어 미국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1965년부터 마셜제도를 포함한 미크로네시아 일대에 자치와 독립에 관한 주장이 대두되었고, 그해 미크로네시아 의회가 탄생했다. 1967년 미크로네시아 내에 있는 여러 섬들의 정치적 미래를 논의할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1977년 미국이 신탁통치를 끝내겠다고 선언하면서 1978년 마셜은 미크로네시아연맹에서 탈퇴하였다. 1979년 헌법을 제정하여 자치정부를 발족하고 다음 해에 아마타 카부아(Amata Kabua)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마셜제도공화국은 미국과의 자유연합협정의 조인으로 미크로네시아 내 다른 나라들과 함께 1982년 독립하였다. 하지만 내정과 외교는 독자적으로 수행하나 안보문제는 미국에 위임하였다. 1983년 국민투표에 의해 독립이 확정되었으며, 이 협정은 1986년부터 정식으로 효력이 발생하였다. 한편 마셜제도에 미군기지 유지를 허용하는 대가로 2001년까지 15년 동안 매년 3000만 달러를 원조받았다. 1991년 UN에 가입하였고 초대 대통령인 아마타 카부아가 1980년 이래 5회 연속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다. 1996년 아마타 카부아가 사망한 후 1997년 아부타 카부이의 사촌인 이마타 카부아(Imata Kabua)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1999년 실시된 총선거에서 야당인 케사이 노트(Kessai Note)가 승리하여 다음 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마셜 제도의 섬들은 태평양의 약 46만 6,000㎢에 이르는 면적에 걸쳐 흩어져 있다. 그중 가장 큰 환초는 콰질런이고, 주요섬은 훌륭한 항구가 있는 잘루이트이며, 수도는 마주로 섬에 있는 대리트울리가달랍(D. U. D.)이다. 비키니·에니위탁 환초는 미국의 핵무기 시험장으로 이용되었다(1946∼58).
비키니섬은 1946~1958년까지, 그리고 에니위톡섬은 1948~1958년까지 미국의 핵실험장으로 이용되었다. 에니위톡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은 핵실험 이후 1980년에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비키니섬의 거주자들은 방사능 물질의 완전한 제거와 보상을 요구해, 미국 정부는 1985년부터 마련된 보상신탁기금으로부터의 이자로 현재까지 마셜제도공화국 내 원폭실험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있다. 1992년 미국 과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아직까지 비키니섬은 방사능 물질로 오염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한편 콰절런섬은 1947년부터 미국의 미사일 목표지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소개된 주민들은 이웃한 에베예섬으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에베예섬은 인구과잉으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다.
기후는 열대성으로 모든 섬의 연평균기온이 28℃이다. 강우량은 섬마다 다른데, 북쪽 환초에서는 500∼800㎜이고 남쪽 환초에서는 4,060㎜이다. 마셜 제도의 환초는 보통 길이가 약 40km이다. 하나의 초호를 둘러싸고 있는 불규칙한 타원형의 산호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호초를 따라 작은 섬들이 자리잡고 있다. 토양은 주로 모래성분으로 비옥도가 낮다.
마셜 제도의 원주민들은 미크로네시아인들이다. 가장 인구가 많은 환초는 마주로와 콰잘런으로 마셜 제도 전체 인구의 약 60%가 이 두곳에서 살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전통적인 마을을 이루면서 살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그리스도교도이다. 마셜어와 영어가 통용된다.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과 어업, 돼지·가금(家禽) 사육이 주요경제활동이고, 주요작물로는 코코넛·판다누스·빵나무·타로토란·칡 등이 있다. 수출용 코프라 케이크, 야자유 생산, 미국 미사일 기지에 대한 콰잘런 토지임대료가 주요수입원이다.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선박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섬 사이를 운항한다. 마주로에는 민간조선공업 단지가 하나 있으며 초호 안에 훌륭한 정박소가 있는 환초들이 많다. 마주로와 콰잘런에는 국제공항이 있으며 국내선 비행기 몇 편이 환초들 사이에 취항하고 있다. 1529년 스페인의 항해가 알바로 사베드라에 의해 발견된 마셜 제도는 자본이 부족하여 자원개발을 촉진시키지 못했다.
1885년 독일이 마셜 제도를 보호령으로 선포했고 1914년에는 일본이 점령했으며 1919년 이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콰잘런과 에니위탁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은 뒤 미국이 점령했으며 1947년 미국 관할의 국제연합 태평양제도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58년 핵실험이 중단되었으며 정화사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비키니와 에니위탁은 1980년대초만 해도 주민들이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어서 주거지 재조성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1979년 마셜 제도 주민들이 헌법을 승인함으로써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82년 마셜 제도는 미국과 자유연합협정을 맺었고, 이는 1983년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되었다. 이 협정에는 미국이 마셜 공화국 내의 안보와 국방을 담당하며 공화국에 재정지원을 제공하기로 규정되어 있다. 신탁통치는 1986년에 해제되었으며 마셜 제도 공화국은 미국과 자유연합체제 속에서 완전한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
정부는 33명으로 구성되는 단원제 국회인 니티젤라가 선출하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다. 이로지('추장'이라는 뜻) 평의회는 주로 전통법규와 관습에 대해 자문하는 기능을 갖는다. 의료는 마주로에 있는 병원과 다른 6개의 섬에 있는 진료소에서 담당하며 공립학교와 교회가 운영하는 사립학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