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가장 위대한 SF작가 아서 C. 클라크 생애 모든 단편을 만난다!
통신 위성, 인터넷, 우주 정거장, 핵발전 우주선 등 현대 과학에 결정적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미래학자이자 SF계의 거장 아서 클라크의 단편집. 아이작 아시모프와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계의 3대 거장으로 불렸으며,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여러 차례 휩쓴 것은 물론이고 1986년 미국 SF작가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의 칭호까지 부여받은 최고의 작가의 생애 모든 단편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집필한 대부분의 단편은 우주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그중 약 절반은 외계 문명과의 조우, 혹은 예고된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외계 문명의 노력 등을 담고 있다. 특유의 철두철미한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SF 작가의 빅3로 불렸던 『아이, 로봇』의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 누구도 아서 C. 클라크만큼 통찰력 있게 미래를 볼 수 없었다"라며 그의 선견지명에 경의를 보내기도 하였다. 물론 이번 단편집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아서 C. 클라크의 방식과 다른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집은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우주 오디세이」의 원작인 「파수병」등 SF 문학 최고의 거장이 유감없이 발휘한 과학적 상상력과 조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아서 C. 클라크 1주기, 그의 생애에 쓴 모든 단편을 만난다. (08년 3월 19일 작고)
'통신 위성'과 '인터넷', '우주 정거장', '핵발전 우주선' 등 현대 과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래학자이자 SF계의 거장 아서 클라크의 단편집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라마와의 랑데부』, 『유년기의 끝』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 아서 C. 클라크는 2008년 3월 19일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1주기를 맞이하여 그가 생애에 쓴 모든 단편을 담은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이 국내 첫 선을 보인다. 전 4권 중 우주 시대의 개막을 연 후반기 1953~1999년까지의 단편 65편이 이번에 먼저 출간되었으며, 초기 작품 39편(1937~1953) 역시 올 가을 출간된다.
이 작품집에는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안자 팀 버너스리가 WWW의 영감을 얻어낸 「프랑켄슈타인의 전화」, 「딥 임팩트」의 원작이 된 「신의 망치」, 해수에서 우라늄을 채취하는 신기술을 예견한 「바다를 캐는 사람」, 휴고상 수상작인 「동방의 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작이 된 「파수병」, 『해저 목장』의 원작 단편, 화성 얼굴 바위가 발견되기 전 이를 예견해 화제가 된 「시간의 말썽」 등 104편에 이르는 생애 발표한 모든 단편이 실려 있다. 특히 이번 단편집에는 아서 C. 클라크가 직접 각 단편에 얽힌 에피소드나 관련된 코멘트를 달아 독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SF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경이로운 미래의 예언자
SF 작가의 빅3로 불렸던 『아이, 로봇』의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 누구도 아서 C. 클라크만큼 통찰력 있게 미래를 볼 수 없었다"라며 그의 선견지명에 경의를 보냈다. 미래학자로도 널리 알려진 그가 예견했던 것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45년 발표한 '정지궤도'에 관한 논문이다. 논문에서 인류의 로켓 기술이 발달한다면, 지구 상공에 위성을 쏘아 올려 특정 궤도에 위성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고, 위성은 지구의 자전과 같은 속도로 돌며 통신이나 방송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세계 최초 정지궤도용 통신 위성이 발사된 때가 1963년이니 아서 클라크의 아이디어는 시대를 약 20년이나 앞선 셈이다.
그의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선을 회전시켜 가짜 중력을 만드는 장면 역시 실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선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과 핵추진 우주선, 우주 정거장과 우주 방위 시스템, NASA 등에서 현재 연구 중이며 일본 학자들이 최근 그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우주 엘리베이터' 등이 모두 그의 소설 속에서 가장 먼저 선보여졌다. 미래에 대한 그의 놀라운 식견은 인류의 과학 발전과 우주 여행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대표적으로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내딛은 그 순간에, 아서 C. 클라크가 바로 이 우주시대를 열었다는 격찬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과학사적 공로로 1982년 국제 마르코니 협회와 프랭클린 학회의 금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영국 행성간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왕립 천문학회와 우주비행학회 등 많은 조직의 임원을 거쳤다. 또한 NASA의 자문 위원과 미국항공우주학회(AIAA) 명예회원이 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1945년 먼저 발표한 정지궤도는 클라크궤도로 명명되었으며, 2000년 유럽통신위성단(EUTELSAT)은 통신위성의 이름 역시 ‘아서 클라크 호’로 명명되었다. 우주의 한 소행성에는 '4923 클라크'라는 그의 이름이 붙여졌으며, 2001년 발사된 우주탐사선은 그의 작품에서 이름을 따 '오디세이 호'라는 이름이 부여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호주에서 발견된 공룡의 화석에도 그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휴고 상, 네뷸러 상 등 유수의 SF 문학상을 휩쓴 SF계의 마지막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와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계의 3대 거장으로 불렸던 그는, 21세기에 들어서서는 현존하는 마지막 SF 거장이었다.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여러 차례 휩쓴 것은 물론이고 1986년 미국 SF작가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의 칭호까지 부여받았으며, 최고의 SF 영화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우주 오디세이」의 원작자로도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00여 권의 과학 소설과 논픽션 책을 낸 그는, 스리랑카에 머물면서 해저 과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해저 목장』과 같은 인기 소설로 국내에서도 수십 년 전부터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외에도 『라마와의 랑데부』, 『유년기의 끝』 등은 SF 팬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힌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다른 SF 작가들과 달리 지나치게 엄숙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집필되었다는 지적과 과학적 사실보다는 인간에 대한 탐구에 더 중점을 두게 된 현대 SF 작가들과 비교 되어 평가절하 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도리스 레싱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등, SF 문학사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특히 이번 단편집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아서 C. 클라크의 방식과 다른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육식식물」은 어느날 변종 식물을 키우게 된 남자가 이를 이용하여 살인을 계획하는 작품이다. 변종 식물이 점차 육식에 탐을 내고, 이를 통해 살인 계획에 이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스티븐 킹의 호러 스릴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예상 외의 결말을 통해 소설 속의 판타지가 현실과 만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재미있게 풀어낸다. 「홍보 활동」에서는 외계인의 침략을 다룬 영화가 크게 히트를 치자, 외계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가진 인류가 평화적인 외계 종족의 접촉을 폭력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멸망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더 이상 아침은 없다」에서는 먼 외계 생명체가 곧 태양의 폭파를 예견하고 지구 인류를 구하기 위해 한 학자에게 텔레파시를 통해 구원책을 귀띔해 주지만, 술에 취한 학자는 냉전에 과학을 악용하는 인류가 구원받을 필요 없다며 거절하고, 게다가 필름이 끊기는 바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인류가 모두 멸망을 맞이하는 등 누구나 과학적 지식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에 동화될 수 있는 많은 작품이 담겨 있다.
우주를 꿈꾸던 SF 소설가의 작품 세계와 그의 마지막 날
그가 집필한 대부분의 단편은 우주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그중 약 절반은 외계 문명과의 조우, 혹은 예고된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외계 문명의 노력 등을 담고 있는데, 아서 C. 클라크는 죽음에 이르기 전인 90세 마지막 생일에 자신의 DNA를 우주로 날려보내 외계인들과 언젠가는 조우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언젠가 우리 인류가 사멸한 뒤 고도로 발달한 외계문명이 우리가 남긴 유물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를 다시 되살려내 또다른 시간대에서 살아가게 해 줄지도 모르죠. 뒤를 부탁하네 스티븐 킹."
1999년 과학소설로는 최초로 《네이처》에 작품을 실어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으며, 2008년 3월 19일 스리랑카의 자택에서 9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세계의 많은 석학과 유명 작가들이 추모의 글을 남겼으며, 2005년 아서 C. 클라크의 이름으로 SF 상이 신설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예스24 제공] |
작가 소개 |
저자 | 아서 C. 클라크 |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영미 SF문학계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SF작가이자 미래학자이다. 사실상 생존하는 가장 유명한 SF작가이다. 1917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부터 과학과 저술에 강한 관심을 보였으며,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이던 2차 대전 말에는 통신위성의 아이디어를 맨 처음 창안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로 우주 비행에 대한 소설과 글들을 출판했고 영국 행성간 학회의 임원이었다. 독자적인 작업 외에도『라이프』 지 편집진들과 함께『인간과 우주 Man and Space』를 제작했고, 미국 우주인들과 더불어 『달 위에 처음으로 First on the Moon』를 썼으며,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함께 소설이자 영화 대본인『2001: 우주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를 썼다. 미국 우주계획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 NASA의 자문을 맡아왔고, 의회 초청으로 관련 위원회에 전문가로 출석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과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킨 데 대한 탁월한 공로로 브래드포드 워시번 상을 받았다.
1956년부터 현재까지 스리랑카에서 살고 있으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 영국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대표작으로『유년기의 끝』,『라마와의 랑데부』,『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 등이 있다. [예스24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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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1960-1999
서문 7 이카루스의 여름(1960) 11 떠오르는 토성(1961) 27 의원과 죽음(1961) 44 에덴 이전에(1961) 77 증오(1961) 95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1967) 120 견성(1962) 126 소용돌이(1962) II 135 원숭이 가정부(1962) 157 빛나는 것들(1962) 168 비밀(1963) 195 프랑켄슈타인의 전화(1965) 204 태양으로부터 부는 바람(1964) 215 신들의 음식(1964) 244 최후의 명령(1965) 251 어둠의 빛(1966) 255 세상에서 가장 긴 과학소설(1966) 264 재생(1966) 266 잔인한 하늘(1967) 271 허버트 조지 몰리 로버츠 웰스 귀하(1967) 300 성전(1968) 304 중성자 조류(1970) 311 재결합(1971) 314 지구 통과(1971) 317 메두사와의 만남(1971) 339 격리(1977) 405 기세창(1984) 407 증기기관 워드프로세서(1986) 408 황금빛 바다에서(1986) 417 신의 망치(1992) 423 와이어 연속체(1997) 443 이웃을 교화하기(1999) 477
[알라딘 제공]
아서 C. 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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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 2005년 3월, 스리랑카 콜롬보의 자택에서 촬영
아서 찰스 클라크 경, CBE, Kt (Sir Arthur Charles Clarke, 1917년 10월 16일 ~ 2008년 3월 19일)은 영국의 작가,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이다. 자신의 과학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동명의 영화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그는 로버트 A. 하인라인과 아이작 아시모프와 함께 과학소설계의 ‘세 거물(Big Three)’로 불렸다.
대표작으로 《라마》 시리즈,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유년기의 끝》, 《도시와 별》, 《낙원의 샘》 등이 있으며 《바다 순찰대》와 같이 단편을 각색한 장편도 있다.
1973년, 1979년에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3월 19일 90세를 일기로 스리랑카 콜롬보의 자택에서 숨졌다.[1]
[편집] 정지 위성
클라크의 가장 큰 과학적 기여는 정지 위성을 이용한 통신 중계에 관한 고안이었다. 그는 이 생각을 〈Extra-Terrestrial Relays — Can Rocket Stations Give Worldwide Radio Coverage?〉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45년 10월, Wireless World라는 잡지에 기고했다. 그의 이 업적을 기려 정지 궤도를 클라크 궤도, 또는 클라크 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고문이 현재의 통신 위성을 만드는게 영감을 주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벨 연구소의 존 R. 피어스는 1954년 독자적으로 통신 위성의 개념을 고안하였고, 에코 위성과 텔스타 계획에도 참여했다. 게다가 피어스는 클라크의 글과는 상관없이 통신 위성에 관한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고 적고 있다.
또한 클라크의 통신 중계에 관한 고안과는 별도로, 정지 궤도의 위성을 통한 통신에 관한 생각은 그 이전의 다른 글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지 위성의 아이디어는 헤르만 오베르트의 1923년 책 Die Rakete zu den Planetenräumen(행성 간 공간에의 로켓)에 언급되어 있으며, 정지 위성을 이용한 통신은 헤르만 포토치닉의 1928년 책 Das Problem der Befahrung des Weltraums — der Raketen-Motor(우주 여행의 문제점 - 로켓 모터)에 나와 있다. 클라크는 그의 책 Profiles of the Future에서 이 예전 결과를 인정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앞으로 100년,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란 제목으로 '아서 C.클라크'의 미래 예측 글이 실린<리더스 다이제스트> 2001년 6월호! (그 뒤는 월간 <판타스틱> 5월호~)월간 <판타스틱> 5월호
에 눈에 띄는 기사가 실려있는데, '아서 클라크' 추모 특집기사에 포함된 '2001년 아서 C.클라크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고한 2100년까지의 미래'란 제목의 박스 기사!
1968년에 '2001년의 미래를 예측'했던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를 발표한 SF작가이자, 통신위성의 실용화를 50여 년전에 내다보았고 Y2K 문제를 10여 년전에 예측한 미래학자인 '클라크'한테 2001년을 맞아 '앞으로의 미래는 어떨까요?'를 묻는 건 당연지사. 이에 '클라크'가 모노리스를 굴리며 내놓은 답안 14가지가 실려 있는데, 마침 창간호부터 모으고 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어판이 있길래 찾아보니 14가지에 15가지를 더 보탠 29가지가 실려있었다.(분명 예전에 읽었을텐데 까아맣게 잊고 있었다...;)
혹시 1년 단위로 총 100가지를 예측한 건 아닐까싶어 여기저기 검색한 끝에('타임_Time'지에서 발행하는 홍콩판 영자주간지인 '아시아위크_Asiaweek'에도 기고했다는데 못 찾겠음~) 겨우 5가지를 더 찾아내 총 34가지를 실어본다.
「다음에 벌어질 사건들 가운데 일부, 특히 우주계획은 이미 일정이 잡혀 있는 것들이다. 나는 다른 사건들도 모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중에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건들도 있다. 내 예측이 정확한가는 2100년 12월 31일에 체크해주기 바란다.- 아서 C.클라크」
'클라크' 가라사대,
2001. 1989년 발사된 '갈릴레오 탐사선'과 1997년 발사된 '캐시니 우주탐사선'이 각각 목성과 토성의 위성에 대한 근접탐사 수행. 2002. 저온 핵반응을 이용한 최첨단 동력장치의 개발로 화석연료시대의 종말이 예고. 2003. 자동차 산업계에 새로운 에너지 장치의 개발로 완전연소가 가능한 신개념의 엔진으로 대체. 'NASA'에서 화성 탐사 로봇 발사. 2004. 관련당국의 공식적인 허가아래 최초의 복제인간이 탄생. 2005. 화성 탐사선으로부터 첫 탐사결과물 보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금의환향. 2006. 지구촌의 마지막 탄광이 폐광. 2007. 'NASA'에서 허블 망원경보다 성능이 우수한 차세대 천체 망원경 개발. 2008. 고인이 된 '스탠리 큐브릭'감독이 80회 생일을 맞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 수상. 개발도상국에서 원자탄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비상소집된 유엔 안보리가 모든 핵무기의 폐기를 결의. 2009. 우주에너지를 이용한 최초의 양자발전기 개발로 재래식 수력 및 화력발전소와 고압선용 철탑 시대가 종말을 선언. 2010. '빅브라더'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자모니터링을 해오던 정부가 전문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조치함으로써 범죄가 사라짐. 2011. 마리아나 해구에 살고 있던 75m 크기의 세계최대 문어 촬영에 성공하고 연말에 더 큰 해양생물이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서 로봇탐사에 의해 발견. 2012. 우주항공선에 의한 우주여행의 상업 서비스가 개시. 2013. 영국의 해리왕자 또는 브루나이 왕족들이 우주를 여행하는 최초의 왕족이 됨. 2014. 거대 우주왕복선을 개조한 '힐튼 지구궤도 호텔'이 착공. 2015. 양자발전기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물질을 원자 단계에서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 용도가 다양해진 구리와 납 가격이 금값의 두 배로 폭등. 2016. 환율이 서로 다른 각국 화폐제도가 사라지고 '메가와트-시간'이 교환 단위로 채택. 2017. 100회 생일을 맞이한 '아서 클라크'가 힐튼 궤도호텔의 첫 번째 투숙객이 됨. 중국 정부가 사상 최초로 자유총선 실시. 2019. 거대 운석이 북극의 빙산을 강타, 그 여파로 그린란드와 캐나다 해안이 큰 피해를 입게되고 마침내 '스페이스 가드'계획(잠재적 위험이 있는 혜성, 소행성 따위를 찾아내 궤도를 변경시키는 계획)이 가동. 2020. 인공지능 수준이 인간두뇌에 근접한 '로봇 사피엔스' 개발. 2021. 유인우주선이 화성에 도착. 인류, 화성에 첫 착륙. 2023. 유전공학을 이용한 공룡복제 성공. 2024. 은하계의 중심에서 오는 외계의 적외선 신호 감지하나 신호 해독은 실패. 2025. 신경학의 연구가 진전되어 귀나 눈, 피부 등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인 정보입력이 가능해진 '브레인 캡'이 개발. 2036. '국민총생산_GNP'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 2040. 나노기술에 기초한 만능복제기 '유니버설 레플리케이터'가 완성. 농업과 공업, 노동이 사라지고 예술, 오락, 교육이 혁명적으로 발전. 자연상태로 돌아간 토지에서 인공적인 수렵채취 사회가 재현. 2045. 모든 생활용품이 구비된 리사이클링기법으로 만들어진 이동식주택 등장. 음식물 합성에 필요한 탄소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로부터 추출되는 시대가 개막. 2047. 홍콩반환 50주년을 맞아 중국과 홍콩간 각종 장벽이 완전 철폐. 2050. '유토피아로부터의 탈출'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자 수백수천만 명이 미래사회에서의 모험을 위해 냉동수면을 선택, 남극과 북극에 '동면호텔' 등장. 2051. 달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인간이 상주. 2057. 10월 4일, '스푸트니크 호' 발사 100주년을 기념하며 우주시대 개막. 지구상 인류뿐 아니라 달 화성 금성 목성 토성과 각각의 위성들로부터 축하메시지. 2061. 지구에 접근한 '핼리 혜성'의 핵에 유인우주선 착륙. 혜성에서 원시적인 생명체가 발견되면서 생명이 우주공간 어디든 존재한다는 '위크라마싱'과 '호일'의 100년 된 가설이 증명. 2090. 이산화탄소에 의한 햇볕차단으로 지구의 제2빙하기시대 우려 대두,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지구 온난화 부추김. 2095. '스페이스 드라이브'의 개발로 빛의 속도로 날으는 우주비행선이 개발, 은하계에 대한 탐사가 시작. 2100. 역사는 흐른다......
2008/03/19 11:20
대학 3학년 때인 1984년인가.같은 과 선배로 소문난 영화광이었던 정성일씨가 후배들을 모아놓고 좋은 영화라며 어두컴컴한 강의실 한켠에서 필름을 영사했다.하도 지루해 하품을 연발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물론 나중에 근사한 비디오로 출시됐을 때 다시 보고 정 선배가 왜 이 영화를 좋다고 했는지 깨닫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처음 봤을 때 기억에 남은 단 하나의 장면.유인원 무리의 우두머리가 동물 뼈다귀 같은 것을 하늘로 던져 올렸는데 카메라가 이 뼈다귀를 따라 올라갈 즈음,갑자기 뼈다귀가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바뀌었던 것이다.알고리즘의 정수 같은 이 장면 하나만이 기억에 또렷했던 것은 인류의 도약을 이토록 압축적으로 장엄하게 그려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었다.그리고 비디오로 다시 봤을 때 이 영화의 원작이 1948년 아서 C 클라크라는 전설적인 공상과학(SF) 작가가 쓴 단편이란 것을 알고 작지 않은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클라크가 19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임대주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9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단순한 SF작가의 영역을 초월한 인물이었다.1945년 그는 통신위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실제로 통신위성이 출현한 때보다 수십년을 앞선 획기적인 발상이었다.지구정지궤도는 흔히 ‘클라크 궤도’라 불릴 정도로 그의 발상을 오롯이 따른 것이다.
우주왕복선과 슈퍼컴퓨터(영화에서 ‘할’로 불린),광커뮤니케이션 등을 너무도 정밀하고 자세하게 묘사해 전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소설은 물론,넌픽션까지 100편을 펴냈으며 과학소설을 눈앞의 현실로 바꾸는 데 공헌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60년대 말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때 월터 크롱카이트와 함께 해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우주여행 구상을 작품으로 옮기기도 했고 호주 대산호초군과 인도양 탐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주로 위대한 SF작품들을 통해 얻어졌다.그는 최근에도 “종종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며 “작가,심해 탐사자,우주여행 개척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작가로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해 3권의 책을 낼 정도로 왕성한 집필력을 갖고 있던 그는 79세에 ‘3001-마지막 오디세이’를 내는 기염을 토했다.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어린 시절의 끝’(1953)‘도시와 별들’(1956)‘신의 9억가지 이름’(1967)‘라마와의 랑데뷰’(1973)‘지구제국’(1975)‘먼 지구로부터의 노래’(1986) 등이 있다.
큐브릭과 함께 그는 1948년에 낸 ‘보초(Sentinel)’와 ‘새벽의 조우’를 버무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각본으로 내놓았다.각본을 집필하면서도 그는 꾸준히 ‘2010’‘2061’과 ‘3001-마지막 오디세이’를 집필하는 끈기를 발휘했다.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20년이 지난 1989년 클라크는 “2001년은 인류사에 커다란 분리(과학과 현실의 간극을 의미하는 듯)를 넘어서려 했던 시절에 집필한 것이었다.닐 암스트롱이 고요의 바다에 발을 내디딘 순간,우리는 영원히 그 시절과
결별했다.이제 역사와 허구는 단락 없이 서로 간여하게 됐다.”고 설파한 바 있다.
영국 서부 마인헤드에서 1917년 12월16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타운턴의 후이쉬 문법학교를 나와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어린 시절 공상과학에 빠져든 것은 울워스 출판사가 냈던 잡지 ‘놀라운 얘기들’ 창간호를 손에 넣으면서였다.H.G.웰스와 올라프 스테이플던 등 영국 작가의 작품을 탐독한 그는 10대시절 학교 잡지에 글을 기고할 정도로 일찍 문학에 눈을 떴다.
2차 세계대전 중 클라크는 왕립공군에 자원 입대,그곳에서 레이더를 무력화하는 착륙 방법 업무를 맡기도 했다.그곳에서 그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통신하는,당시로선 획기적인 구상을 메모로 남겨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천문학자 패트릭 무어는 영국천문학회에서 10대 시절 그를 만나 평생의 우의를 키웠다.“여러 모로 그는 시대를 앞선 인물이었다.”며 “그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는 순수하고 비전을 갖춘,누구든 믿을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인공위성 말고도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다.위대한 공상과학 작가로,훌륭한 과학자로,위대한 예지자이자 친한 친구로서 나는 그가 저하늘로 간 것이 몹시 슬프다.”고 애석해 했다.
클라크가 이사로 일했던 국립우주학회의 조지 화이트사이드스 사무국장은 고인의 열정이 “여러 측면에서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항상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와 어떻게 우리의 삶이 미래에 개선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서리주에 거주하는 미스바란 과학자는 그의 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며 “오늘을 더욱 활발하게 이용하는 것이 비전”이라고 말했다.
개인생활은 불행하기 짝이 없었다.1953년 결혼했지만 64년 이혼한 그는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1956년 사업 파트너,가족 등과 함께 스리랑카로 이주,인도양 탐사 등에 나섰다.1960년대 후반부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고생한 그는 휠체어에 의존하기 시작했으며 95년부터는 완전히 휠체어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우주 무중력 상태처럼 자신의 몸을 완전 통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스쿠버다이빙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나중에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위대한 SF작가로서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도 있었다.1998년 아동학대 혐의에 연루돼 기사 작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나중에 결백이 증명됐지만 말이다.
지난해 90세 생일을 맞아 그는 세 가지 소원을 빌었다.스리랑카 내전의 종식과 인류가 더 청정한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일,외계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발견되는 일을 꼽았다.그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들을 우주공간으로 떠보내지 않은 데 대해 후회되는 것은 없지만 DNA가 새겨진 머리카락을 우주궤도에 올려놓았으면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어느 날 너무나 앞선 문명이 이 황폐한 우주로부터의 전설과 조우할 날이 올지 모른다.그때 난 다른 세계에 존재할지 모른다.”고 말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뒤를 부탁하네.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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