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장난도 정도껏 치라는 매니저 형의 말에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알았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곧 음악프로
생방이어서 우리는 쉴 틈도 없이 급하게 밴을 타고 다음 스케쥴로 이동했다. 여전히 유천이와 준수는 옥팬티와 정력
에 관한 사뭇 진지한 대화를 하는 중이었고 창민이는 금방 편의점에서 사온 따끈따끈한 삼각김밥을 만지작 거리며
'이걸 먹어, 말아...' 하면서 역시나 진지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정윤호는 나를 철저히 쌩깐 채로 내 옆에서 잠을 청
하고 있다. 아까 일로 별 말은 없었지만 무척 저기압이다. 제법 나른한 표정을 짓고서 잠을 청하는 정윤호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완숙미가 엿보인 달까. 하얀 솜털이 빠진 매끈한 피부는 깨물어보면 달콤한 과즙
이 입술과 혀끝을 축일 것 같다. 그 충동을 억지로 자제하며 방송국까지는 삼십여분 정도 남았다는 매니저 형의 말에
나 역시 잠을 청했다. 새근새근 거리는 정윤호의 달달한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세상 모르게 잠자는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에 기대어 나 또한 나른해진다.
리허설이 끝나고 무대에서 열띈 공연을 가지는 도중에도 자꾸 웃음이 나와 미치는 줄 알았다. 아 귀여워 미치겠어, 정
윤호. 나는 내 파트를 부르면서도 정윤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노골적으로 바라봤다. 객석에서 펄레드 풍선과 플
랜카드를 광적으로 흔들어대며 함성을 지르는 카시오페아에게 눈길을 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내 눈동자는 오로
지 정윤호만 갈구한다.
꽤 시간이 지나 방송국에 다와간다는 것을 느낄 때쯤, 나는 느낌이 이상했다. 나른하게 풀어져 있던 정윤호의 어깨에
약간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나는 조심스레 눈을 떠 내게 어깨를 대주고 있는 놈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깨어
났는지, 놈은 차창 밖에만 눈길을 보내는 채로 얌전히 있었다. 원래 같으면 나를 싫어하게 된 정윤호였기에 나를 당연
스레 밀쳐버렸을텐데도 정윤호는 아무 미동도 없다. 코끝이 괜히 찡해지기 시작한다. 옛날 생각이 나서. 옥팬티를 열
렬히 논하던 맞은 편에 앉은 유천과 준수는 어느새 서로의 머리통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고 막내 창민이는 이미 다
먹은 삼각김밥 빈 포장지를 손에 꼬옥 쥔 채로 하얀 밥풀이 묻은 얇은 입술을 웅얼웅얼 댄다. 아마 꿈에서도 무언가
를 맛있게 시식하나 보다.
"이제 그만 치워."
깨어있는 날, 느낀건지 정윤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은 채로 말했다.
"......."
하지만 나는 고집스레 다시 눈을 꾹 감고 잠자는 척한다. 싫어, 절대 안 일어날 꺼야. 나는 겨우겨우 포커페이스를 유
지하며 심지어는 새근새근 숨소리까지 냈다. 완전 어색한 숨소리다.
"눈 떴던거 다 알아."
그 소리에 순간 눈을 뜬 난 깨달았다. 차창 밖에 시선을 던지고 있던 정윤호의 두 눈은 사실 창 밖 풍경을 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검게 선팅된 차 유리에 비친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너도 훔쳐보는 거 잘하네?"
자다 일어나서인지 조금은 잠긴 목소리가 맘에 들지 않아 살짝 인상을 썼다가 차창에 마주치는 녀석의 검은 눈동자을
향해 자조적인 미소을 보냈다.
공연을 끝내고 무대를 내려온 우리는 매니저 형과 코디 누나들이 주는 수건으로 땀으로 흥건해진 얼굴을 닦았다. 그리
고 생수병을 따서 물을 들이켰다. 물을 마신 후 고개를 돌리니 정윤호와 한바탕 재미를 보았던 새로 온 코디 누나는
여우 같은 눈웃음을 치면서 손수 녀석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 손길을 받으며 가만히 있는 빌어먹
을 놈 한 개. 내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것 같던 정윤호는 내 시선을 느끼며 마음 속으로는 철저히 비웃고 있을 것이
다. 그러니까 '넌 나에게 안돼.'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코디 누나와 마주보며 작업적인 미소를 날린다. 그 미소에 주
위에 있는 다른 여자들마저 껌뻑 죽어난다. 아아, 나도 포함해서.
"안녕하세요! 선배님!"
평균나이 열여덟을 달리는 신인가수 그룹 여자들이 금방 공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와 우리들과 마주친다. 방금까지
있었던 박유천과 김준수는 보이지 않고 나와 창민이, 정윤호만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 중 한명이
정윤호와 아주 친하다는 듯이 정윤호 옆에 있는 코디 누나를 고의적으로 확 밀쳐버리곤 놈의 팔짱을 낀다.
"오빠! 오빠! 나랑 약속한 거 안 까먹었죠?"
"나중에 연락할께, 그만 가라 너."
본의아니게 인상이 구겨져 있는 나와 저쪽 구석에 떨궈진 민망해하는 코디 누나를 훑어보며 정윤호는 미간을 좁힌다.
하지만 그 발랑 까진 년은 끝까지 정윤호의 단단한 팔뚝을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저번에도 연락한다구 하고 깜깜무소식이였잖아요! 흐응, 이렇게 본 것도 정말 오랜 만인데 이러기에요? 지현이 삐졌
어요!"
할 수만 있다면 주위 이목도 무시하고 저 계집애의 손모가지를 잘라 그 둘을 질투하는 코디 누나에게 바치고 싶다.
지금만은 나와 코디 누나는 한 마음일 테니까. 코디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손모가지를 잘근잘근 씹어먹을 것이
다. 은근히 죽이 맞을 것 같은데.
"놔라, 이거."
놈은 머리에 피도 안마른 그 여자 후배를 제 딴엔 매너있게 조심스레 밀쳐낸다. 그러나 눈은 얼어 붙어있는데 그제야
그녀도 살짝 눈치를 까곤, 자기 멤버들과 함께 대기실로 이동한다. '전화 좀 해줘요, 오빠! 나 피말리겠어!' 하는 귀
띔도 잊지 않은 채. 그 모습에 나는 또 심술이 난다. 그래서 입술을 잔뜩 비죽거리며 옆에 있는 창민이를 데리고 매
니저 형에게로 가버렸다. 그런 나의 뒷통수가 조금 따끔거린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다음 스케쥴로 이동하기전 나는 세수나 할 겸 창민이를 보내고 화장실로 갔다. 아직 생방이 끝나지 않아 화장실엔 사
람이 없었다. 나는 신경질을 부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세면대 위 커다란 거울 속 내 얼굴을 노려봤다.
내가 모자란 게 뭐야.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외모를 만족한다. 그렇다고 무슨 왕자병도 아니거니와,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예계에서 나보다 잘난 얼굴은 많지만. 찬물을 틀어 세수를 하기 시작 할때였다.
똑..또르르르-.
양손에 찬물을 받아 연거푸 얼굴을 적실 무렵, 무언가가 구르는 소리를 내며 내 신발 앞 코를 톡 친다. 그 소리에 나
는 젖은 얼굴을 들었고 뭐야, 라는 신경질적인 표정을 거두지 않은 채로 발 밑을 내려다봤다. 옅은 녹색빛 조그만 구
슬이었는데 주워보니 옥구슬이었다. 그때 연이어 또 몇 개가 또르륵-, 소리를 내며 맞은편 셋째칸 화장실에서 작은
옥구슬이 두 어개 굴러와 내 발 앞에서 멈춘다.
"아씨이...또 떨어졌어, 어떡해?"
"쉬잇...!"
오호라.
나는 손에 들린 옥구슬과 맞은편 화장실 문을 번갈아보며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천이 놈의 목소린, 그
렇다쳐도 준수의 돌고래를 능가하는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는 그리 흔한 목소리가 아니였다. 한달 전부터 저 둘의 낌
새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설마, 했었는데. 나는 소리없이 웃어버린다.
"애쓴다."
좁은 화장실 안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강아지와 돌고래, 그 두 놈을 배려하여 나는 혀를 끌끌차며 화장실을
걸어나왔다. 그러자 내 등 뒤로, 놀란건지 숨을 급하게 삼키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린다.
조금은 부럽다. 너네들이.
다음 스케쥴까지 마치고서야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내일 아침일찍 데리러 온다는 매니저 형을 현관문까지 마중나간
후, 그때부터 우리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최근에 새로 바뀐 숙소라 저번 숙소보다는 넓고, 아직까지는 깨끗했다.
그러고 보니, 다음주에 우리 DVD찍으면서 숙소공개 영상도 찍기로 했는데. 나는 콧잔등을 긁적이며 소파에 몸을 누인
다. 그러자 막내 창민이가 배고프다고 내 옆에 붙어앉아 칭얼댄다. 정윤호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먼저
자라는 말과 함께 폰을 챙기며 숙소를 나가버렸다. 나는 녀석이 오늘밤에도 뭘 할지 뻔히 알고 있었기에 어딜 가냐고는
묻지 않았다. 다만 콘돔은 챙겨가냐고 물었었는데, 정윤호는 말없이 나를 야렸었다.
"악!씨발! 두 개가 모잘라! 유천아!!"
"뭐어?! 다시 세봐!"
"아씨! 진짜 두 개 모자라!"
"이 병신아~! 그러니까 아까 거기서 꼼꼼하게 더 찾아보자고 했잖아!"
"벼엉신?! 죽을래?? 씨이! 너 미워!! 미키뻐드렁니야!"
숙소로 오자마자 바로 현관 앞에서 바지부터 벗어젖히던 유천이는 선물받았던 옥팬티 주위를 꼼꼼하게 훑어보았었다.
마찬가지로 그 옆에서 준수도 무릎을 꿇고 앉아 유천이의 엉덩이 쪽에 붙어있는 자잘한 옥구슬을 한 개 한 개 꼼꼼히
뜯어살펴보다가 몇 개 자리가 비어있자 난리를 치는 유천이에게 삐져서는 얼굴이 새빨게 진 채, 자신의 작업하는 방
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궈버렸다. 평소같으면 유천이는 얼른 준수에게 달려가 화를 냈던 것을 사과했겠지만 자신도 심
통이 나서 벗었던 바지를 주워들고 침실로 가서는 마찬가지로 문을 철컥 잠궈버렸다. 그리고는 정적. 소란스러웠던
거실은 급작스럽게 조용해졌고 유천과 준수가 다퉜던 그 자리는 찬바람이 스친 듯 휑했다.
나는 잠시 벙쪄있던 얼굴표정을 고치고는 창민이를 토닥이며 라면을 끓여주려고 소파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
다가 아까 유천이와 준수가 소란스럽게 현관에서부터 뛰어들어왔던 것이 생각이 나고, 아마 현관은 신발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있을것이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나는 당장 현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리고 역시나 엉망인 현관에서 신발정리를 하는데, 유천이의 운동화를 집어들자마자 그 속에서 옥구슬 두 개가 바닥으
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병신이네, 박유천 자식."
나는 그 옥구슬들을 빤히 응시하다가 잠시 갈등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그것들을
주워 바짓 주머니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나만 새드엔딩인 것은 싫으니까-.
숙소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유천이와 준수가 조용해지자 숙소 안은 TV브라운관에서 들리는 소리만 제외하면 완전 삭막
했다. 창민이에게 라면을 끓여준 뒤 너무 피곤해서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았는데,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어느
덧 새벽 2시를 넘겨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윤호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듯 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바지춤에서
최근에 새로 구입한 신 기종의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정윤호에게 전화 대신 문자를 넣었다.
[적당히 박아대고 들어와.]
하트도 넣어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관계를 맺다말고 내 문자를 본 정윤호의 표정이 기괴망측하게 구겨질 것을
떠올리고는, 그냥 하트없이 보내버렸다.
소파에서 잠들었던 터라 뻐근해진 몸을 기지개 켜며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순간 테이블에 놓여있던 휴대폰
이 드르륵-하고 진동음을 냈다.
[왜 안자.]
문자 보낸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도 빨리 답장이 오다니, 조금 놀랐다.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머리카락 때문에 간지러운 뺨을 긁적인 후 답장버튼을 눌렀다. 녀석이 이렇게 문자를 안 씹을 줄 알았다면 이전부터
자주 보내는 거였는데. 나는 내 미련함을 자책한다.
[안 잔거 아니야. 잤다가 이제 일어난거야. 안 들어올꺼야?]
빠른 스피드로 나의 손가락이 문자키를 꾹꾹 눌러댔다. 그리고는 전송. 그냥 아주 오랜만에 이 녀석과 문자를 친 것
뿐인데,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조차 기쁨을 얻다니. 나 단단히 또라이아냐.
나는 한숨을 쉬며 침실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침실에는 창민이 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채며 다시 발길을 돌려 준수가
들어갔던 작업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곳에는 한 팔에는 미키마우스 얼굴이 프린팅된 베개를 끌어안고 방
문 앞에 쭈그려앉아 방문을 벅벅 긁고 있는 박유천이 보였다. 녀석은 내 인기척을 감지 못한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
고 '준수야아, 나 밤에 너없으면 못자는거 알잖아...' 하고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참 처량하고 나에게 그 모습을 보이면 박유천은 창피해서 미키마우스가 살고 있는 쥐구멍에 대가리를 쳐박
으며 숨고 싶어할 것이 뻔했기에 소리없이 발을 움직이며 그곳에서 등을 돌렸다.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나는 정윤호의 문자가 왔을까봐 몇번이고 폴더 플립을 열었다 닫았다 했지만 30분이 지나
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뭐야, 이 씹힌 기분은.
그리고 그때 침실 밖, 즉 준수 녀석 작업실로 추정되는 근처쯤에서 방문이 달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씨이, 추우니까
빨리 들어와서 나 안고 자.' 하는 김준수의 조곤조곤한 말 소리가 겹쳐 들렸다. 그러자 울먹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준수야아~.' 하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빌어먹을 박유천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것을 끝으로 다시한번 방문이 달칵
닫히는 소리가 내 귓가에 파고든다.
"..씨바알..."
나는 옆 침대에 잠들어있는 창민이가 들리지 않게 입술을 오물거렸고 다시한번 답장이 오지 않는 휴대폰을 노려보다가
더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버렸다. 나는 미스터베이션이나 할까, 하다가 그럴수록 더 비참해진다는 생각에 포기해
버린다.
옆구리가 시린 빌어먹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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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소설
동 성
※※※ 새빨간 망상 ※※※ 03
새빨간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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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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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오오오오오오~!!! 재밋어요~!!!! 글잘쓰세요 ㅠㅠ 진짜 완솝니다앗!!
ㅋㅋ재밌따 히히히히 짱>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