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요즘에 ‘가나안 신자’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젖과 꿀을 흐르는 가나안 땅을 떠올리며 열심히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했습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저를 보며 웃으면서 ‘가나안’을 거꾸로 말해 보라고 하십니다.
‘안나가 신자’라는 것입니다. 냉담 교우, 쉬는 교우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가나안 신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일상 삶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기 힘들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당이 재미없어서 또 신앙이 와 닿지 않아서, 성직자나 수도자에 대한 불만, 교우들과의 마찰로 인해서….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이유로 많은 이가 ‘가나안 신자’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본당은 교적 대비 주일 미사 참석률이 25% 이상입니다. 전국 평균보다도 또 인천교구 내에서도 주일 미사 참석률이 꽤 높은 편이라고 이야기 듣습니다. 하지만 슬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자그마치 70% 이상이 주일 미사에 나가지 않으면서 ‘가나안 신자’로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만을 바라본다면 성당 나갈 이유가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세상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또 사람만을 바라봅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25%의 열심한 교우들의 영향이 ‘가나안 신자’들에게 조금씩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님 당신만을 바라보는 열정을 주님께서는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총을 얻게 됩니다. 이를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를 철저하게 지키셨던 분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님을 따르지 않을 이유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나라에서 믿지 못하게 했으며, 자기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바라보았기에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이겨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어 가장 커다란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 순교자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가나안 신자’의 길이 아닌 순교자들의 삶을 우리도 쫓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순간의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패배자는 자신의 패배를 조건 탓으로 돌린다. 나는 조건을 믿지 않는다. 이기는 사람은 바라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을 때 바라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조지 버나드 쇼).
사진설명: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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