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남원1리 74번지
우리나라에서 비보풍수의 역사적 기원은 신라말의 도선스님에게서 비롯한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이다. 비보의 용례는 『삼국유사』나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 고려 및 조선시대 관련 주요 문헌에 다수 나타난다. 고려왕조에서 비보는 산천비보와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조선왕조에는 풍수적 조건을 보완하는 개념의 일반명사로 쓰였다. 비보 대상의 공간적 위계는 국가비보, 군현비보, 마을비보, 주택비보 등으로 나뉜다.
道詵 827~898. 신라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 성은 김씨, 전남 영암 출신.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수도하였다. 그 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였고 문성왕8년(846)에 전남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선사로부터 법문을 듣고 선법(禪法)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혜철(惠徹)의 가르침을 토대로 도선은 이를 해동 신라의 토양과 풍습에 알맞도록 적용하고자 했다. 동리산 도량을 하직한 뒤, 운봉산(雲峰山)에서 참선삼매(參禪三昧)의 불도를 닦고, 태백산에서 움막을 치고 고행하다가 뒤엔 전라도 희양현(曦陽縣,광양) 옥룡사(玉龍寺)에서 수행하다 입적하였다. 도선은 승려로서보다는 음양풍수설(陰陽風水說)의 대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도선하면 그의 대표적 저서인 도선비기(道詵秘記), 비기하면 풍수지리설이 연상되어, 그는 실제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신화적 존재로까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다. 그의 지리설(地理說)은 중국풍의 음택(陰宅, 무덤) 위주의 것과는 달리 양택(陽宅, 사람이 거주하는 절이나 집)을 그 대상으로 한다. 지덕(地德)의 힘으로 국가의 운기(運氣)를 보존하고 복돋우어 쇠운(衰運)을 막고, 지리술을 통해 나라의 흥성과 국민들의 이익(興國利民)을 가져오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산천의 지세를 점쳐 결정한 곳 이외에 함부로 사원을 세우면 지덕(地德)이 손상되어 국운이 길하지 못하리라'라고 하였으며 이와 같이 도선이 결정한 자리에 세워진 절을 비보사찰(裨補寺刹)이라고 한다. 그는 현실적 이익에 바탕을 둔 풍수(風水)사상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도선의 저서라고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도선비기,道詵秘記>, <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 <삼각산명당기, 三角山明堂記> 등이 있다.(다음지식 풍수지리)
비보풍수는 자연의 지기가 허약하거나 풍수적인 결함이 있거나 불길한 점이 발견되었을 때 새로운 길지(吉地)를 찾지 않은 채 그 결함을 비보하고 부족한 지기(地氣)를 바꾸어 지력 회복을 통해 편안하고 안전한 땅으로 바꾸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보풍수의 법식은 비보법(裨補法)과 압승법(壓勝法)으로 구성된다. 비보법은 이상적인 풍수환경을 이루는 데 부족한 조건을 인위적으로 더하고 북돋는 방식이고, 압승법은 풍수환경에서 지나치거나 흉한 여건을 빼고 누르는 방식이다.
비보풍수는 설치 장소나 조성 주체에 따라 적절히 채택되어 지역마다 명칭, 형태 등에서 각각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통시적으로는 민간화·민속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보 양식이 변모하며, 신앙적 비보에서 실제적 비보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인다.
비보 형태는 시대, 지역, 조성 주체에 따라 특징이 있지만, 사찰이나 탑, 숲, 조산 등이 일반적이었다. 사찰이나 탑은 주로 왕실이나 큰 고을의 비보 형태였는데, 그 조성과 운영에 많은 경제적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적은 비용으로 실질적인 비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숲 비보는 중·소읍이나 마을에서 많이 나타난다. 숲을 활용한 비보는 기능상 경제적·실용적이고 비보 효과가 좋아서 마을의 비보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특히 손쉽게 조성하여 신속하고 상징적인 부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조산은 서민 마을의 대표적인 비보 형태였다.
남원1리 마을 남동쪽에는 진쟁이라는 곳이 있다. 넓고 평평하게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인 이곳에 있는 성담은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이고 돌탑은 현대에 중장비를 이용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앞에 보이는 곳은 공유지인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를 잡는 도축장으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성담과 돌탑이 비보시설이 아닌가 의심되지만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모두 쌓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고만 하여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작성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