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lular memory
후두두두둑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이내 하늘이 뚫린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 또 비네. 요즘 날씨 정말 이상하다니까."
고요한 밤하늘에 비내리는 소리만이 울리고 있다.
우울한 마음에 황재하 그자식 한테 문자나 하려고 했는데, 불현듯 오늘 박소아를 만나러 나간다던 그 녀석의 말이 생각난다.
박소아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며 싱글벙글 입이 귀까지 올라간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좋아하는 애 만나러 갔는데 친구란 이름으로 분위기 깨서 방해 할 수는 없는거니까
에휴
한숨과 함께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 놓기가 무섭게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누구지?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여보세요"
-여보세요, 가주니? 가주야 나 재하 엄마야 . 가주야 어떡하니 우리재하 어떡하니
불안이 엄습해온다. 전화하신 재하 아줌마는 재하 어떡하니만 반복하더니 목놓아 울기 시작하신다.
"네? 재하한테 무슨일 있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울음소리만 계속 되던 것이 잠시
-누나 나 재준인데요. 재하형이.. 아 지금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빨리 와요. 형이 ..아 엄마 정신차려봐
병원?
황재하 너 도데체 무슨 일인거야. 니가 이시간에 왜 병원에 있어 ..
전화를 끊고 대충 가디건을 걸친뒤 택시를 타고 보라매병원을 말했다.
가슴이 뛴다. 도데체 무슨일이지 불안감에 숨도 못쉴 지경이다.
#보라매병원 응급실
"아줌마! 재준아 이게 무슨일 이야? 재하한테 무슨일 있는거야? 지금 왜 병원에 있어, 아줌마 왜 우세요?"
속사포 같은 질문을 쏟아내고 재하의 동생 재준이를 바라봤다.
정말 재하에게 무슨일이 있는 걸까, 방금전까지 운 흔적이 남아있는 재준이가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형.. 오토바이 사고났어. 10분전에..가버렸어. 하늘나라로.. 누나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되?"
"아이고 재준아 .. 이것아 엄마가 오토바이 그렇게 타지 말랬는데도 ... 가주아 어떡하니, 어떡하면 좋니 우리재하
이렇게 빨리 가버려서 어떡하니.."
말..말도안돼. 거짓말
황재하가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고? 거짓말..거짓말이야.. 내가 그렇게 타지 말랬는데
나한테 안타겠다고 약속했는데. 우리 6년 우정을 결고 약속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대로 주저 앉았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눈물 조차 나지 않는다.
멍하니 그렇게 허공을 바라보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박소아.
오늘 만나러 간댔는데. 오늘 황재하 그자식 박소아 만나러 갔는데.
"재준아 . 소아 어딨어? 오늘 재하 소아 만나러 갔는데 소아 어딨어?"
"소아누나, 저쪽에. 가보게?"
"응. 물어볼게 있어서"
재준이가 가르친 병원 로비 쪽으로 힘없는 몸을 이끌고 나갔다.
그곳에는 지성빈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박소아가 있었다.
그래 지성빈. 박소아의 남자친구. 그리고 황재하. 남자친구도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자식.
그리고 이런 황재하를 좋아하는 바보같은 나. 황재하의 단짝친구 나 김가주.
"박소아.."
박소아가 내쪽을 쳐다본다. 역시 오래 울었는지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다. 가냘픈 어께는 여전히 떨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을 터뜨릴듯이 그아이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맻혀있다.
"가주야..가주야 난..난.. 재하, 재하가...흡.."
몇마디 말도 못내뱉고 다시 흐느끼는 박소아를 보며 나는 내속에 무언가가 꿈틀하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 바로 분노였다.
가지고 놀았겠지. 만만했겠지. 재하가 만만하니까, 자기를 좋아한다는거 아니까 어장 관리 차원이었니?
그래서 재하를 불러냈니?
재하가 죽어버렸잖아. 너때문이야. 나와의 약속을 깨면서 까지 널 만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탔어.
다 너때문이야. 박소아
차마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속으로 삭히며 난 돌아섰다.
"가주야 잠깐만..할얘기 있어.."
가늘게 떨리는 박소아의 부름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갔다.
도데체 무슨일이냐며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병원에서는 나오지 않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밤을 새서 울었던 것 같다.
황재하가 하늘나라로 가버린날. 내곁을 그렇게 떠나가 버린날. 그날은 2008년 7월 21일 이었다.
그날 황재하는 그렇게 우리의 6년 우정을 뒤로하고, 나만의 짝사라을 뒤로하고 18살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
그뒤로 2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년 동안 나는 미친듯이 공부했다.
그리고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에 입학했다.
주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렸다. 독한년이라고.
그렇게 친했던 친구가 죽었는데 장례식에서 눈물 한번 흘리지 않더라고.
친구가 죽었는데 자기혼자 아득바득 살아서 대학 잘 가려 하는 그런년이라고.
틀렸다. 이말들은 모두다 틀렸다.
무엇보다 난 너를 잊기위해 공부했고
2년 동안 난 매일 밤 네 생각에 울었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넌 친구가 아니었다.
하나뿐인 나의 사랑. 나의 첫사랑. 시작도 못하고 꺽여버린 그런 슬픈 첫사랑.
.
그날은 2010년 7월 21일 이었다. 네가 그렇게 떠나버린지 딱 2년 째 되는날.
그날도 나는 대학 도서관으로 향하고있었다.
황재하. 그녀석을 잃은 뒤 나는 줄곧 혼자였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것도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도 내게는 모두 무의미한 일이었다.
네가 없기 때문에
"황재하 보고싶다."
여름바람이 살랑 불어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마치 너가 나에게 대답하는 것 같다.
황재하, 보이니? 너 보고있니?
너때문에 나 이렇게 된거 보이니?
부는 바람 조차 네가 말하는 것 같아.
나한테 너가 말하고 있는거 맞지? 혹시 난 관심 없고 네 사랑 박소아만 보고있는거
그런건 아니지? 그러면 나 삐질 것 같으니까 .
톡톡
누군가 내 어께를 두드리는 감촉에 화들짝 놀라 공상에서 깨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아이가 서있다.
"무슨일이시죠?"
그아이를 보면서 황재하. 너가 생각나는 이유는 단지 조금 전까지 내가 네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저기요. 그쪽이 마음에 들어요. 아 이게 아닌데, 그러니까 갑작스러워서 놀래셨겠지만요,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만날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제 이름은 이중하 이구요. 많이 놀라셨죠? 어디가서 차라도 한잔 마실래요?
아니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 우리 만나볼래요?"
정말 놀랐다. 갑자기 만나보나는 그말 떄무이 아니라 왠지모를 익숙함 때문에.
재하야 나 이상해진거 같아. 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인가?
나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어.
"아 역시 너무 갑작 스러웠죠? 죄송합니다. 그럼.."
내 침묵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드린걸까, 이중하 라는 아이는 수줍어 하며 돌아가려 한다.
"아, 김가주 예요"
"네?"
"제이름 김가주라구요. 우리 만나 볼래요?"
이중하. 그아이의 입에 미소가 번진다. 너를 닮았다. 황재하 너를 지독하게 닮았어.
재하야, 나 시작해도 될까? 아직 네가 내 가슴안에 있는데
이런 떨림 설렘 가지고 새로운 사랑 시작해도 될까?
표현 한번 못한채 내 마음속에만 묻어뒀던 내 첫사랑.
이제 이제 보내도 괜찮은 걸까?
나 이제 행복해 져도 되는걸까?
재하야. 널 가슴속에 묻어둘게. 하나밖에 없는 친구야. 아니 내 첫 사랑아
널 잊지는 못할꺼야. 내 모든게 ,세포 하나하나 까지도 모두 널 기억하고 있으니까..
황재하. 보고싶어. 사랑해 사랑했어. 그치만 이제 나 새로 시작해도 되는거지?
너를 닮은 아이. 이중하 그아이와 새로 시작해도 되는거지?
내가 이렇게 궁상맞게 살고 있으니까 네가 날 위해 보내준거 맞지?
나 이제 새로 시작해 보려고 -
첫댓글 머싯쪼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