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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안 부결
◦ 두 번째 국민총투표에서도 반대 우세
- 1980년 제정 후 40년 이상 지난 군부 헌법이 생명을 연장했다. 칠레 현지 시각으로 2023년 12월 17일, 칠레는 새 헌법 채택 여부를 묻는 국민총투표(referendum)를 실시했다. 정부가 의무 투표로 지정한 이번 개헌 표결에는 약 1,500만 명의 선거권 보유자 중 1,300만 명 정도가 참여했다. 개표 결과 전체 유효표의 56%에 해당하는 690만여 표가 반대였고,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 칠레가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헌법을 전면 개정하려고 시도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약 1년여 전인 2022년 9월, 마찬가지로 약 1,300만 명이 참여한 1차 국민총투표에서는 유권자의 62%가 새 헌법에 반대했다. 개헌을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웠던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대통령은 즉각 새 개헌위원회를 꾸리고 재차 헌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1년 이상의 준비 끝에 가진 2차 국민총투표에서도 또다시 개헌이 무산되면서 칠레는 개헌 동력을 크게 잃어버렸다.
◦ 대통령실, “추가 개헌 논의 고려 안 해”...보수 우파 야권은 승리 자축
- 보리치 대통령은 2차 개헌 국민총투표 실시 이전부터 새 헌법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이번 정부에서는 더 이상의 개헌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헌법 개정을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던 보리치 대통령으로서는 핵심 공약 하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2차 국민총투표 개표 결과가 발표된 후, 보리치 대통령은 필요한 새 법안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공약을 최대한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한편, 개헌안이 부결되었다는 소식에 우파 성향 중심의 야권은 환호했다. 개헌 반대 캠페인을 펼친 야권은 국민총투표 결과가 보리치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좌파 성향의 보리치 대통령을 공격했다.
☐ 예견된 결과
◦ 좌에서 우로,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 보인 두 개헌안
- 2022년 부결된 첫 개헌안은 현행 칠레 헌법과 비교했을 때 파격적인 조항을 많이 담고 있었다. 보건, 교육, 의식주 등의 기초 인권을 비롯해 동물 생명권까지 보장하도록 명문화한 동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긴 헌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너무 복잡하다는 비판 속에 칠레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 이와는 반대로 두 번째 개헌위원회에는 보수 우파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고, 그 결과 복지와 평등을 크게 강조했던 1차 개헌안과는 달리 2차 개헌안은 크게 우회전했다. 현행 헌법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이념을 강조했으며, 전반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했다. 그러한 성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은 ‘태아 생명권 존중’ 조항으로, 지금도 일부 허용 중인 임신 중절을 완전히 금지할 수 있다며 여성 단체의 큰 반발을 샀다.
◦ 칠레 국민, 2차 개헌안은 ‘후퇴한 헌법’
- 2차 개헌안 초안이 공개되자, 피노체트 헌법을 바꾸기 위해 개헌을 요구했던 칠레 국민 중 다수는 오히려 그 피노체트 헌법보다 더욱 보수적인 조항까지 담고 있는 새 헌법에 크게 실망감을 내비치며, 자연히 개헌 투표에 대한 관심도 멀어졌다. 2차 개헌 국민총투표에 참석한 한 유권자는 “새 헌법과 지금 헌법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솔직히 의무 투표가 아니었다면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칠레 정치권도 2차 개헌 국민총투표가 결국 보수 성향의 야권에게만 이득인 이벤트로 끝날 것으로 관측했다. 개헌안이 부결되면 야권은 이를 앞장서서 개헌을 추진한 보리치 대통령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고, 설사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새 헌법이 피노체트 헌법과 큰 차이가 없기에 정치적으로 손해 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국민총투표 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도 2차 개헌안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부결될 것이라는 응답이 우세했다.
☐ 변화는 필요해
◦ 구조적 불평등 야기하는 현행 헌법
- 보리치 대통령이 칠레 정치권에서 개헌을 가장 적극적으로 외친 인물이기는 하나, 혼자만의 주장은 아니었으며 그 기저에는 새 헌법을 원하는 칠레 국민의 요구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개헌은 2019년 산티아고(Santiago)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시작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부터 공론화되었고 첫 개헌위원회도 이때 구성되었으며, 당초 1차 개헌 국민총투표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연기되지 않았으면 보리치 정부 탄생 이전인 2020년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 처음은 너무 급진적으로 복잡해서, 다음은 군부 헌법보다도 후퇴해서 칠레 국민이 두 차례 새 헌법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40년 이상 묵은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여전하다. 수자원 사유화까지도 인정하고 칠레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토착원주민을 차별하는 기존 헌법으로는 칠레의 고질병인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 보리치 대통령, 난관 어떻게 해쳐갈까
-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개헌에 실패한 보리치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헌법 개정이 보리치 대통령의 제1 공약이었고, 현 정부가 사실상 칠레 국민의 개헌 열망으로 탄생했기에 개헌 논의 중단 선언은 보리치 정부의 정체성과 정책 방향성을 흔들 수도 있다.
- 큰 기대 속에 출범한 보리치 정부는 글로벌 경제 침체와 지지부진한 개혁 속도에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보리치 대통령은 법률 보완으로 칠레의 불평등을 최대한 해소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정권 교체를 이뤄냈던 현 정부가 2026년까지 어떤 정책으로 민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감수 : 김영철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 참고자료
The Guardian, Chile votes to reject new conservative constitution which threatened rights of women, 2023.12.18.
RFI, Chile vote on new draft constitution is set for December 17, 2023.11.07.
The Guardian, Chile’s right wing presents draft conservative constitution, 2023.11.07.
Reuters, A divided Chile marks 50 years since Pinochet's bloody military coup, 2023.09.12.
DW, Gabriel Boric: Chile's democracy 'still under construction', 2023.09.11.
Global Voices, An emblematic documentary salvaged during Chile's dictatorship has been restored, 2023.09.12.
AP News, Chilean voters reject conservative constitution, after defeating leftist charter last year, 2023.12.18.
La Prensa Latina, ‘Beyond the result, the referendum strengthens our democracy,’ says Boric, 2023.12.17.
The Guardian, ‘Dangerous for women’: warning as Chileans vote on new draft constitution, 2023.12.17.
Reuters, Chileans reject conservative constitution to replace dictatorship-era text, 2023.12.18.
[관련 정보]
1. 칠레, 2차 개헌안 부결…군부 정권 시절 헌법 계속 남아 (2023. 12. 19)
2. 칠레, 개헌안 국민 총투표 실시 일자 확정 (2023. 11. 9)
3. 칠레, 군사 쿠데타 희생자 추모 50주년 행사...여전히 분열된 사회 (2023. 9. 13)
4. 칠레 정부, 피노체트 정권 시기 실종자 탐색 계획 발표 (202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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